#8월 13일 월요일 맑음 티무르가 다스리는 동안 사마르칸트 근처에는 14개의 많은 정원들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정원의 위치를 비롯하여 바람과 토양, 물을 조사한 다음에 정원을 설계했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조성된 정원들이 사마르칸트의 기후를 쾌적하게 유지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사마르칸트의 여름은 다른 곳에 비해 그다지 덥지 않단다. 그대 당시 정원은 왕궁과 정원 4개로 구성했다. 정원 4개중에 하나는 무화과나무, 하나는 관상식물, 하나는 꽃, 하나는 야채를 심었다. 게다가 정원마다 연못, 흐르는 물, 분수와 많은 새와 동물들이 있는 곳이었다. 티무르는 왕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름을 가진 정원 중에 보기 샤몰(바람의 정원), 보기 발란트(높은 정원), 보기 틸쿠쇼(마음을 현혹하는 정원), 보기 불다(풍부한 정원) 등이 있었다. 아침 7시에 식사를 했다. 요플레, 빵 햄 치즈 버터 꿀 홍차 계란 2개 커피까지 풍성했다. 지난밤에 화장실 냄새로 잠이 깨고 말았다. 에어컨을 켰다. 변기물이 멈추지 않고 나와 시끄러웠다. 따듯한 물도 밤에는 나오지 않는데 아침에는 나온다. 뭔가 시설이 완벽하지 못 한 것이 좀 아쉽다. 환전도 숙소에서 했는데 1$에 2800숨이다. 은행은 1970숨이다. 뭔가 이상한 사회다. 일반인은 은행에서 달러를 구할 수 없단다. 뭔가 검은 시장이 있을 법 한 사회분위기다. 레기스탄 앞으로 갔다. 아내와 사진을 찍지 못해서 광장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긴 의자에 앉아서 사원을 쳐다보며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함께 동행 하는 성미양이 앞에 있는 메드레사에 들어갔다. 입장료는 13300숨이다. 입장권은 3일간 유효하다.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청년하나가 옆에 앉는다. 사마르칸트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란다. 이름은 손가락이 여섯 개라서 어리트크란다. 우리 말로하면 육손이라는 뜻인 것 같다. 한국어 강의는 코이카에서 파견된 두 분이 가르치고 있단다. 4년 졸업을 하면서 성적이 좋으면 국비장학생으로 한국에 있는 대학원으로 유학할 수 있단다. 무료로 공부를 시켜주는데 자기 친구는 벌써 한국의 전북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단다. 자기 꿈은 한국에 유학한 후 이곳 삼성전자 같은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란다. 보수도 많고 세계적인 기업이라 모두가 선호하는 직장이란다. 쉴 때면 이곳에 나와 한국 사람을 만나 한국어 대화를 나누고 있단다. 청년은 순하고 순진하며 잘 생겼다. 코이카 사무실에서 발간한 사마르칸트 가이드북을 한 권 얻었다. 마침 성미양이 나와서 함께 숙소에 가서 짐을 챙겼다. 체크아웃을 하고 이제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벌써 날씨가 뜨겁다. 3번 버스를 탔다. 성미양은 이곳에 다시와야하기에 큰짐은 숙소에 맡기고 중요한 것만 챙겨 가는데도 무거워 보인다. 역에 도착하여 들어가는데 짐 검사가 공항 같은 수준이다. 기차역은 깨끗하고 조용하고 규모도 크다. 경직된 느낌을 준다. 이용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기차가 자주 없던지, 이동할 사람이 없던지, 좌우간 조용하다. 매점의 물건 값은 좀 비싸다.
12시 10분에 기차에 탑승을 했다. 객실에는 TV도 설치되어 있고 깨끗한데 무척 덥다. 에어컨을 틀었다고 창문도 열지 못하게 한다. 부채질을 해도 덥다. 그나마 달리면 좀 시원하다. 53, 54번 좌석이다. 졸린다. 이름모를 역에 2시 10분에 정차했다가 또 달린다. 황량한 사막도 펼쳐지다가 농경지도 보이지만 대부분 건조하고 황량한 벌판이다. 오후 3시 20분에 부하라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니 날씨는 맑은데 무척 덥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다니........ 역에 왔으니 다음 목적지인 타쉬켄트를 가는 기차표를 예약한다. 8월 15일 오전 8시5분, 타쉬켄트 행이다. 표에는 29000숨인데 받는 돈은 35000숨이다. 기차표와 차액에 대한 영수증을 주는데 좀 이상하다. 공식적인 수수료가 붙는 것일까? 글씨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황량한 사막 길을 택시로 가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좀 더 들지만 시간과 육체적으로도 정말 힘든 일이다.
부하라 역은 또 특이하게 예쁘다. 흰색 대리석 건물이 아담하고 깨끗하다. 새로 지은것 같다. 역 광장에서 268번 미니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로 간다. 구 시가지가 이 미니버스의 종점이다. 부하라는 제라프샨 강 삼각주 샤흐루트 운하 연변의 부하라 오아시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1세기 이전에 세워진 도시로 709년 아랍인들에게 점령당했을 때는 이미 교역과 수공업 중심지로 번창하고 있었다. 9~10세기에 샤만 왕조의 수도였으며 후에 카라한 왕조와 카라키타이 인에게 점령되었다가 1220년 징기스칸에게, 1370년에는 티무르에게 정복당했다. 1506년 우즈벡의 샤이반 왕조에게 점령되어 16세기 중엽부터 그들이 세운 부하라 칸국의 수도가 되었다. 부하라는 샤이반 왕조가 페르시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 및 소련에 속했던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영토를 넓힌 16세기 말에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1868년 러시아 보호령이 되었고, 1920년 부하라의 토후는 소련의 붉은 군대에게 추방되었다.
옛 시가지는 모스크와 사원(신학교), 지붕이 평평한 벽돌 집, 지붕을 덮은 시장 등 이전의 모습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중요한 건축물로는 이스마일 사마니 영묘(9~10세기), 칼리안 첨탑(1127)과 모스크, 울르벡 신학교(1417), 쿠엘다시 신학교(16세기), 아부둘라지즈한 신학교(1652)와 지금도 중앙아시아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유일한 이슬람 신학교인 미리아랍 신학교(1536),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건축물인 아르크 요새 등이 손꼽힌다. 경제는 다양한 경공업 및 식료품 산업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양털 가공하는 큰 공장도 있단다. 천연가스매장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로 차츰 부각되고 있다. 금실 자수와 금속세공을 비롯한 전통적 수공예가 지금도 이루어지며 교육대학, 극장 , 박물관 등의 문화시설도 있다.
황톳빛 고대도시, 동화의 도시 라는 별칭을 가진 부하라는 사마르칸트로부터 서쪽으로 270km 정도 덜어진 곳이다. 부하라라는 단어의 어원은 불교의 절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VIHARA에서 나왔다고 한다. 때문에 부하라는 성지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대 도시의 모습이 보존된 거리는 거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흥미로운 건축물들-캬라반 사라이, 영묘, 신학교와 사원, 목욕탕 등-은 물론이며 고대도시 곳곳에 전통적인 민속기술들을 만날 수 있다.
구시가지에 내려 조금 걸어가니 귀엽게 생긴 꼬마 하나가 달라붙는다. 성미양이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에 소개된 숙소를 말하니 꼬마가 앞장선다. 부지런히 따라가는데 무척 덥다. 연못을 지나고 골목길을 계속 간다. 구시가지 끝 정도, 약간 한적한 곳에 도착했다. 파란색 대문에 8이라는 숫자만 써 있는 민박집이다. 간판도 없는 구석진 숙소인데 잘도 찾아온다. 대문을 들어서니 복잡하다. 주인아주머니의 친절함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이유를 알겠다. 책의 위력도 느껴진다. 아쉽게도 방이 없단다. 옥상에서 별을 보며 잘 수 있는데 7$, 도미토리 방은 10$이란다. 성미양은 이곳 옥상에서 자기로 하고 우리는 꼬마를 다라 다시 왔던 길을 돌아온다. 샤프란 게스트하우스도 방이 없다. 연못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니 O'TKIRB다 호텔이 있다. 마침 방이 있다. 숙박비는 두당 14$, 2일을 묵기로 했다. 아침 식사 포함이다. 침대가 4개 있는데 아내와 둘이서만 사용하게 되었다. 에어컨도 잘 작동된다. 일단 숙소가 결정되니 맘이 놓인다. 숙소를 찾는다고 구 시가지를 대충 둘러본 셈이다. 작은 슈퍼를 찾아 물과 쥬스를 사서 마셨다. 정말 시원하고 흡족했다.
저녁 식사를 하러 연못가로 갔다. 식사는 라비하우스 건너편에 있는 식당이다. 규모도 크고 사람도 엄청 많다. 호수를 끼고 있어 분위기도 좋다. 부하라에서 최고급 식당인 것 같다. 이 식당 외에는 달리 먹을 곳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식당 종업원이 안내해 주는 대로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도자기 항아리에 고기와 감자를 넣어 끓인 탕 종류를 시켰고 나는 꼬치를 주문했다. 그런대로 먹을 만 한 음식이다. 우리 옆의 식탁에는 대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데 엄청 풍성하고 화려하다. 20여명의, 어린애로부터 노인들까지 긴 식탁에 앉아서 차려진 음식을 먹는데, 고기는 물론이고 각종 과일이 수북이 쌓여있다.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인데 무슨 잔치인 것 같다. 그 외에는 모두 관광객들이다. 엄청 사람들이 많아 종업원들도 바쁘다. 종업원은 여자들은 보이지 않고 모두 남자들이다. 식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밤이라 황톳빛 고대도시에 은은한 조명을 비추어 또 다른 맛을 보여준다. 먼저 사막 가운데 도시가 있고 연못에는 사람들이 즐비하게 모여 더위를 피해 쉬러 나왔다. 다른 곳에 비해 연못 주위가 시원해서 이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 주민들과 관광객들, 아이들과 어른들, 갓 난 아이들과 아기를 안은 아주머니들까지 호수로 다 모여든다. 밤에는 연못이 개구리 울듯이 시끄럽다. 이 연못이 라비 하우즈이다. 라비 하우즈란, 하우즈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광장과 연못 중심으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옛날의 건축물들이 둘려있다. 1620년에 만들어진 연못은 고대도시의 중앙광장에 위치하며 깊이는 약 5m 정도다. 연못 주위에는 16~17세기에 지어진 노르드 디반데기 신학교와 하나카, 그리고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아카데미였던 구겔다쉬라는 큰 신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광장에는 서민들에게 사랑 받았던 현자 호자 나스레딘의 동상이 있다. 늙어 죽은 고목(Mulberry tree)에는 1477년에 심겨졌다는 표시가 있다. 참으로 오래 서 있는 나무다. 음료수를 파는 총각에게 한 잔 사서 마셨다. 두 종류의 컵의 크기에 따라 가격도 200숨~700숨으로 다르다. 음료수는 달고 시원하다. 우리는 노드르 디반베기 신학교와 하나카로 갔다. 이제는 신학교라는 이름만 있을 뿐 사용되는 용도는 달라졌다. 특이하게 입구 정면 꼭대기 위치에는 두 마리 학이 모자이크로 만들어져 있다. 이슬람 전설에 등장하는 행복의 새 세무르 2 마리다. 1622~23에 만들어진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광장에는 공연이 있었고 주변에는 식당이 배열되어 있다. 공연을 보며 식사를 하는 곳이다. 신학교 교실이나 숙소였던 장소는 이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되었다. 부채, 가방, 모자, 도자기, 나무공예, 등 주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수공예 제품들이다. 주로 여자들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 그림을 그려주는 이도 있다. 코너마다 재미있다. 예쁜 여자 직원도 있지만 아주 잘 생긴 미남 청년도 보인다. 둘러보고 나온다.
연못 옆에는 나무들이 심겨져 있고 현자 호자 나스레딘의 동상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 우주벡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끌고 인기가 좋은 인물은 이 동상의 주인공 호자다. 죽어서도 인기가 있다.
호자는 튀르크 민족들과 페르시아 민족들이 서로 자기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현자다. 실존적인 인물인지 가상의 인물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봉이 김 선달 이라고 누군가 표현했다. 그 얘기 중에 하나를 적어보면, 어느 날 아내와 잠을 자는데 아기가 앵앵 울기 시작했다. 자고 있던 아내가 애를 달래라고 호자에게 말했다. 호자가 왜? 라고 대답하니 아내가 저애의 반쪽은 당신 거잖아요! 그러니 애 좀 달래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호자는 “지금 울고 있는 것은 당신의 반쪽이고, 내 쪽은 지금 자고 있다.” 라고 말했단다. 호자가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은 어느 지역이나 같다. 그런데 어떻게 타고 다녔는지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당연히 제대로 타고 다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꾸로 타고 다녔다는 건이다. 우리가 만난 호자는 제대로 타고 다니는 동상이다. 당나귀도 생동감이 있고, 올라 탄 호자는 곡 술주정뱅이 같이 보이는 웃기는 옷차림과 얼굴 표정이 재미있다.
늦은 밤이라 성미양을 데려다 주기로 했다. 데려다 준다기보다 밤 풍경을 함께 느껴보는 것이다. 은은한 조명과 열린 가게에서 비쳐오는 불빛으로 거리는 특이한 감흥을 준다. 훤하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거리다. 건물들이 모두 고대, 옛날 건물이라 분위기가 부하라답다. 골동품 가게, 의류, 카펫, 기념품 가게 등이 이어진다. 성미양의 숙소는 상가를 벗어나 좀 구석으로 들어간다. 이 거리는 골목인데 가축냄새가 나고 조명도 없어 어둡다. 후레쉬를 켜고 간다. 아내의 배탈이 또 시작된 것 같다. 정로환을 얻어가지고 왔다. 샤워 후에 빨래를 해서 방에 널었다. 숙소는 낮의 태양열로 아직도 후끈거린다. 에어컨을 켜니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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