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고도 그릴 수 있는 정든 고향 길 언덕의 추억
-오늘의 삶을 만들어준 희비곡선의 고향 고개이야기-
고향 소리도에는 많은 길이 있다. 돌담길도 있고 언덕길도 있다. 골짜기 길도 있다. 황토 길도 있고 포장길도 있다. 선인들이 다닌 길이었다. 갯가에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다니던 길이다.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다니면서 생긴 길이다. 약초를 캐기 위해 다닌 산길이다.
사람들이 다닌 길도 있지만 야생동물들이 다닌 길도 있다. 바닷길도 얼마나 많았겠는가? 배들이 다니는 길이 있다. 밤배질을 하는 길이 있었다. 같은 고향의 길들 중에도 특별히 추억이 서린 잊을 수 없는 길이 있을 것이다. 많이 걸었던 길이지만 특별하게 기억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학교 다닌 길, 배가 고파 고구마 서리를 했던 길, 소를 몰고 다닌 길, 지게를 지고 걸은 길, 지게 한 짐을 지고도 달음박질을 치던 길이었다. 짐이 너무 무거워 잠시 쉬어가던 고개 길, 큰집 가는 길, 외갓집 가는 길, 세배 다닌 길, 도다리 심부름 다닌 길일 수 있다.
도깨비를 만나 씨름을 했다던 길, 새벽 송을 위해 걷던 길이었다. 고향 소리도에는 고개도 많다. 같은 고개라고 추억이 있는 고개가 있을 것이다. 소풍 다니며 넘던 고개 길일 수 있고, 스승의 날 낚시하러가던 길에 넘던 고개일 수 있다. 나무 풀 짐을 지고 넘던 길이고, 쟁기를 지고 넘던 고개일 수 있다.
발이 닳아지도록 다닌 길이었다. 더운 여름날 멱을 감기위해 넘던 고개일 수 있다. 누군가 돌아가시면 상여를 메고 넘던 고개 길이었다. 초빈을 만들어놓고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하고 온 길인 것이다. 추석명절이 올 무렵이면 윷놀이로 송편 따먹기 윷놀이 하던 길이다.
말 타기 하던 길, 자치기 하던 길, 삼판선 놀이하던 길이다. 집안마다 모여 벌초를 하러 다니던 길일 것이다. 가을이면 문중마다 시향제를 지내기 위해 집안 어른들과 함께 걷던 길이었다. 설날이면 산소를 다니던 길이다. 그 외에도 교회를 다니던 길, 전도, 심방을 다니던 길, 부모가 제주로 가 마을제당이 있던 당두길, 친구 집에 가던 질. 재기차기, 딱지치기, 구술치기, 숨바꼭질을 하던 골목, 연을 날리며, 팽이를 돌리던 길, 썰매를 타며 김 발장을 말리던 길, 정월대보름 농악대, 동동구리무 아저씨를 따라다니던 길, 약장사 굿보고 이동극장 영화 보러 가던 길, ‘편지요!’ 뭍의 소식을 들고 온 집배원 아저씨가 다녀가던 길, 아버지 외상술값 받으러온 길, ‘뻥이요’ 뻥튀기 아저씨, 동네 아이들이 모이는 길, 영어 단어를 외우며 다니던 길, 중간, 기말고사를 준비하느라 열심히 공부하던 길, 리어카에 자전거가 등장하고 오토바이, 차량이 다니게 된 고향 길 등 옛 추억이 서린 고향 길을 잊을 수가 없다.
기찻길로 간 서울, 부천, 경기 남양주, 안성, 고속버스로 간 부산, 울산, 뱃길과 하늘 길로 간 제주 한라산 길, 일본, 대한한공으로 간 태국, 이집트, 이스라엘의 길을 걸어보았다. 특히 예수님이 오르신 골고다 언덕길을 십자가 지고 걸어본 순례는 잊을 수 없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터전이 있는 터기, 그리고 동, 서유럽 및 발칸반도 등 종교개혁의 진원지를 돌아보고 ‘모든 길은 로마로부터’라는 이탈리아 로마의 길을 걸어보았다. 유태인들을 대량학살 시킨 아이슈비츠 죽음의 수용소의 길을 걸어보았고 루터, 존 칼빈의 길을 걸어보게 만든 꿈을 키운 고향 길이었다.사람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밟아보는 땅에 대한 의미부여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언제 무슨 일로 걸어본 길이며 넘었던 고개였든지 그렇게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깊은 이야기가 있었는지 혼자만이 간직한 비밀이 될 것이다. 고향 떠나온 지 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사는 곳 인근의 공원길이나 가까운 산길을 걸을 것이다. 많고 많은 길과 고개를 넘어도 고향의 길과 언덕은 잊을 수 없다.
고향에 가지 않더라도 연필로 화선지에 그리라면 금방 그려낼 수 있는 곳일 정도로 정들었던 곳이 많은 곳이 고향이다. 길이 소통을 하게 해 주었다. 고개가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 살아가는 숱한 스토리가 배어 있는 곳이 길이며 고개다. 정신없이 사느라 잊고 산 게 많다.
이제 세상 살만큼 산 이들은 혼자 훌쩍 고향에 가서 이 길 저 길을 걸어보는 것도 괜찮은 잉이 되고 남을 것이다. 길만 아니라 이 고개 저 고개를 넘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옛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삶의 촉진제가 되고 윤활유가 되고 남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 때 길의 모습이나 고개모습은 아닐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떠나가고 얼마 없어도 고향의 옛길은 그대로고 고향의 옛 고개는 그대로 일 것이다. 이제까지는 부끄러워서 또 누가 될까봐 이야기 하지 못한 게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해도 창피하거나 얼굴 붉어지는 게 아닌 재밌고 그리고 즐거운 이야기가 되는 때를 살고 있다. 고향의 한 두 길은 보존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고향의 한 두 언덕은 시비(詩碑)를 써서 세우면 좋을 것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길에 대한 추억을, 그리고 고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두꺼운 책으로 한 두 권쯤의 사연은 족히 나오고 남을 것이다. 고향 길에 대한 다큐영상을 만들면 멋질 것이다. 소리도를 일주할 수 있는 탐방로가 완성되면 큰 행사하나를 개최하자. 고향 길, 고향의 고개 축제를 펼쳐보면 괜찮을 것이다.
‘나는 길이요...(요 14:6)’라고 한 말씀도 있다. 길 위에 선 존재, 고개를 오르내리는 존재, 사명의 길을 걷고 험산준령을 잘 넘어야 할 것이다. 사진은 31일, 1, 2일 다녀온 수양관 주변 산의 임도 모습과 임도에서 내려다본 작금(作今)마을 모습이다. 겨울 산을 타며 탐방로를 개설하는 재미의 시절을 산다. 팔복의 사색의 길,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길, 예수님 열두 제자의 길을 조성한다.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교계소식】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