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문사 사리암(邪離庵)
경북매일 기사 등록일 : 2015.06.04.
글 : 조낭희 수필가
삿된 마음을 버리고
몸살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몸을 이끌고 청도 운문사 사리암으로 향한다.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유월의 아침은 상큼하다. 벚나무 가로수들이 가르마처럼 하늘 길을 튼 채 신록의 터널을 이루고, 나무들 사이로 깊고 푸른 운문호가 인사를 건네 온다. 때마침 FM에서 흘러나오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의 선율 속에 빠져 나는 꿈을 꾸듯 황홀하다.
일주문에서 운문사를 지나 사리암까지 이어지는 솔숲 길로 접어들었다. 저절로 아픔이 치유되고 삶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이토록 정갈하고 호젓한 산사 길이 있을까? 출입을 제한하며 숲을 관리해 온 까닭에 골짜기는 생태계의 보고로 풍성하고 기름지다. 모래가 섞인 흙길이 사각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고 계곡물도 신록 속에 몸을 감춘 채 소리없이 흐른다. 몸과 마음이 부요해져 구도자가 된 느낌이다. 도솔천은 속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른 아침이라 사리암 입구 주차장은 한산하다. 수많은 차량과 가파른 포장길이 언제나 나를 긴장시키곤 했다. 일주문과도 같은 소박한 표지석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예를 표한다. 사리암은 사리를 봉안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간사할 사(邪), 떠날 리(離)로 삿된 마음을 허락하지 말라는 뜻을 가진 암자다.
퇴계, 율곡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으셨던 `사무사 무불경(思無邪 毋不敬)`이 떠오른다. 삿된 생각을 품지 말고 항상 공경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말이다. 평생 이 뜻을 새기고 실천하며 살기에는 세상이 만만치 않다. 애초에 인간은 쉽게 유혹에 빠지도록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수많은 탐욕과의 전쟁, 나는 그 유혹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해 지금 사리암을 오르는지도 모른다.
부처님의 세계는 멀기만 한데 암자의 이름은 커다란 지침이 되어 가슴에 새겨진다. 드문드문 보이는 불자들도 표지석 앞에서 합장 3배를 한다. 절을 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숙연하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그들만의 정성이며 표현이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을 때 찾아오는가? 번뇌와 망상은 쉽게 씻겨지지 않기에 사람들은 이렇게 육신을 수고롭게 하며 마음을 닦는 것이리라.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나도 산길을 오른다.
포장된 시멘트 길과 들쭉날쭉 모양이 제 각각인 돌계단은 호거산(虎距山) 중턱에 자리한 사리암에 이를 때까지 여유를 주지 않는다. 구불구불 끝이 없는 1008개의 돌계단은 각도가 꺾일 때마다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가끔씩 다람쥐가 숨바꼭질을 하고 산비둘기가 앞서서 길을 안내한다. 숨이 차고 다리도 아프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마음은 걸러지고 가볍다. 이것이 하심(下心)이런가?
어느 해 가을, 친구와 이 길을 오른 적이 있다. 호흡을 고르거나 땀을 식힐 겨를도 없이 그녀는 돌계단에 놓인 대빗자루로 성큼성큼 비질을 하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떨어지던 나뭇잎이 놀라서 멈칫거리고 돌계단은 이내 훤해졌다. 나뭇잎을 밟고 뒷사람이 미끄러질까 배려하는 친구의 마음이 단풍보다 더 고운 오후였다. 그 후로 빗자루만 보면 잔잔한 설법처럼 그 광경이 떠오르곤 한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등줄기에 땀이 흐를 때쯤, 사리암의 3층 전각이 하늘을 받친 채 위용을 드러낸다. 층암 절벽에 자리한 암자치고는 제법 크다. 세련된 건축미를 자랑하거나 암자 특유의 고즈넉한 고독도 없다. 그저 위무 받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넉넉한 품이 있을 뿐이다.
고려 초 보량국사에 의해 창건되어 나반존자 기도처로 알려진 사리암에는 관음전과 산신각, 천태각이 있다. 하얀 눈썹을 길게 드리운 나반존자는 천태산에서 홀로 깨달아 독성(獨聖)이라고도 하며, 중생을 제도하려고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불을 기다리는 아라한이다. 스님의 예불소리에 발걸음이 먼저 알고 숨을 죽인다.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사리굴 전설도 유명하다. 굴법당 안쪽 바위 구멍에서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이 먹을 만큼, 백 사람이 살면 백 사람의 분량만큼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쌀을 얻을 욕심으로 구멍을 키운 뒤 쌀 대신 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관음전에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과 나반존자를 독송하는 기도 소리가 전설 따위를 무색케 한다.
그들의 절절한 열망이 내 안까지 출렁이며 밀려든다. 무엇에 떠밀리듯 나도 사리굴 앞에 자리를 펴고 정좌하다 백팔 배를 시작했다. 어떤 염불도, 무엇을 청하지도 않았다. 그저 절을 하고 싶다. 아무런 잡념도 일어나지 않는다. 몸은 흥건히 땀에 젖고 마음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볍다. 부처님이나 나반존자의 힘이 아닌 심즉시불(心卽是佛), 내 마음 안의 부처를 만난 순간이었는지 모른다.
요사채 툇마루에 앉아서 땀을 식힌다. 장독대 너머로 펼쳐진 수려한 운문산 자락이 가만히 나를 다독인다. 안개가 걷히고 햇살 가득한 앞마당을 누군가 걸어와 말을 건넨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어느 보살님이 해 오셨답니다.”
따끈한 백설기가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다. 나는 눈이 내린 사리암의 겨울밤을 떠올렸다. 초롱초롱한 별들이 사리암의 작은 마당으로 쏟아져 내리는 밤을.
청도 운문사 사리암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