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는데도 준희는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가 있기 전에도 화, 목요일에는 재택근무를 해 오던 터라 재택근무가 익숙하고 혼자 일하기 좋아하는 준희 입에서 결국 "회사에 가서 일하고 싶어요." 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준희는 공항철도를 타고 가다가 김포공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고 석촌호수역까지 간다. 종점에서 타는데도 불구하고 앉아서 가기 위해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6시40분에 집에서 나선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눈치싸움이 싫다는 것이다.
혹시 어르신들이 타시게 되면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행위 조차 준희에게는 매우 큰 불편함이라 그 시간대에는 아예 어르신들 안타신다는 확신에 일찌감치 출근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혼자 잘 다니면서 본의아니게 다른사람들과 충돌하는 발달장애인들을 종종 목격할 때가 있다.
아직은 세상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우리편이 아니기에 잘 한다고 자만할 일은 아니다 싶어 나는 늘 그 때마다 준희에게 슬며시 확인한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스마트폰을 하면서 옆사람 가슴쪽에 팔이 닿는 상황은 아닌지 등 다른 사람들과의 충돌이 벌어질 상황은 없는지를 수시로 체크해본다.
이 또한 매우 중요한 사회성기술이기에~~
준희가 근무하는 회사 테스트웍스에서 발달장애인직원 부모 간담회를 줌으로 했다. 마침 나는 그 시간에 강의가 있어 참석을 못했는데 회사에서 간담회 내용을 요약해서 메일로 보내왔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신입직원들 부모들이 많이 참석했다는데 그 중 나온 질문들 중 자녀들이 하는 구체적인 업무내용을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사실 나도 잘 모르던 내용이었기에 얼씨구나 싶어 잊지않고 기억하려고 옮겨왔다.
‘인공지능 데이터셋 가공 업무’
• 인공지능(산업분야별) 학습데이터이해
• 컴퓨터 활용능력, 기초OA능력 필요
• 가공 가이드(매뉴얼) 이해 및 수정
• 오류내용 파악 후 피드백/ 정량화 결과 정리
• 관련 툴 사용성, 기능성 이해 및 활용가능 피드백 전달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465607900169436&id=100001606916836
준희가 다른친구들과의 전쟁기념관 나들이에 동행한 이유는
공항철도를 이용해서 삼각지까지 가보고싶었던
호기심을 풀기 위함이었다.
서울역까지 가서 4호선을 갈아 타고 다니던 노선에서 벗어나
공항철도를 한 번이라도 더 이용해 보고팠던것이다.
몇십년만의 최저기온이니 뭐니했는데
유난히도 따사로운 햇살덕에
그리 추운지 모르고 상쾌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우리 가족끼리만 가면 안되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출발했었는데
다행히도 환승할 때마다 우리가 역에 도착하는 족족 기다렸다는 듯이
열차들이 대령해 주는 바람에
왕복 1시간반정도는 족히 단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유난히 탑승객들이 많지 않은 운 좋은 날로
준희의 불평을 단방에 날려버릴수 있었다.
내가 준희를 전쟁기념관 나들이에 동행케한 이유는
늘 가족끼리만 다니길 좋아하는 준희에게
또래들과 함께 하는 여정들에 대한 색다른 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늘 혼자 하기에 익숙한 준희에게
또래들과 발걸음을 맞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짝을 지어준 친구가 뒤쳐지지 않도록 보조를 맞춰
저만치 앞장서 가다가 가끔 뒤돌아 확인하는 일이
준희에게는 익숙치 않은 일이다.
유난히도 길눈이 밝은 준희를 희안하게 바라보며
눈치껏 보조를 맞춰 빠른걸음을 옮겨주던 통합반의 비장애 친구들과는 달리
이날 동행한 친구들 중에는 이쪽 저쪽 눈치도 없이 튀어
준희 걸음을 자꾸 잡아 세우는 친구가 있었다.
야!야! 하며 다급하게 소리 질러 불러 보기도하고
와~저형 왜저러냐? 며 비아냥도 거려보면서
끝까지 일행을 놓치지 않으려고 나름 애쓰고 있었다.
해내기 청년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혼자 즐길거리를 찾으며 혼자 잘도 돌아다니는 모두에게 부러움을 사는 청년들이
안타깝게도 그룹활동에 익숙치 않아 오히려 더 자주
동행한 교사들을 긴장시켰던 일들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아하~ 준희도 저럴텐데!
내 짐작은 딱 맞아 떨어졌다.
준희가 그 누구와 동행을 해도 걱정을 듣지 안도록
그 누구의 눈에도 문제되지 않게 하기 위한
새로운 훈련이 준희에게 꼭 필요하게 된것이다.
올 겨울방학동안 새로운 목표가 설정되었다.
고놈의 사회성 이란 것에 적합한 맞춤형 인간의 틀을 잡아주기위해
유난히도 혹독한 추위도 잊은채
나는 또 고분분투하게 될 것이다.
나 죽은 후에도 준희 스스로 살아갈 요령들을 선행학습시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