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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봐 Make A Wish》
전시기간 : 2024년04월23일~2024년08월04일
관람시간 : 평일(화–금) 오전 10시–오후 8시,
토 · 일 · 공휴일 하절기(3–10월), 오전 10시–오후 7시, 동절기(11–2월), 오전 10시–오후 6시
《서울 문화의 밤》 운영매월 첫째, 셋째 금요일 : 오전 10시–오후 9시
입장시간 :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휴관일 : 1월1일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개관)
전시장소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층 프로젝트갤러리2,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층 전시실2
관람료 : 무료
도슨트안내 : 주중/주말 (화~일요일) 11:00, 15:00 일 2회 운영
전시부문 : 회화, 영상, 조각, 사진 등
전시장르 : 기획
참여작가 : 권희수, 김한샘, 나오미, 다발 킴, 신민, 이원우, 제이디 차, 홍근영
작품수 : 45
전시문의 : 오연서 02-2124-5284
관람문의 : 안내 데스크 02-2124-5248,5249
전시 안내
《소원을 말해봐》는 가벼움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회복해야 할 것들에 주목하는 전시이다.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가 통용되던 과거와 달리, 끊임없는 변화만이 단 하나의 진리가 된 가벼움의 시대에서 불안정한 일상은 ‘뉴 노멀’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며, 또 다른 뉴 노멀이 된 디지털 세계에서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링크를 클릭하며 표류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불안을 덜고 우울과 공허에 잠식당하지 않을 수 있는지, 소통과 공생, 안녕과 행복 등 우리가 잃어가는 중요한 것들을 어떻게 다시 손에 쥘 수 있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램프의 지니를 소환하여 소원을 빌 때인지도 모른다.
《소원을 말해봐》에는 새로운 이야기와 지혜를 전달해 줄 여덟 명의 작가가 ‘안내자’로서 등장한다.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섹션은 개인의 불안, 고립 등의 사회적 징후들이 무속, 신화, 설화 속 ‘유령’과도 같은 존재를 통해 소통과 화해, 공생으로 바뀌어 나가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들로 채워진다. 부표 없이 떠도는 인간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고유한 서사를 통해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첫 네 명의 안내자가 제시하는 작품들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현실에서 영적인 공간으로, 갈등계에서 치유계로 들어가는 포털의 역할을 한다. 나오미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과거와 현재, 인간과 신을 매개하는 마술적 공간을 구성한다. 제이디 차와 권희수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타자성을 탐구하고 한국 신화, 설화, 무속의 요소를 활용하여 초월적이면서도 지혜로운 존재들을 각각 회화와 3D 애니메이션으로 형상화한다. 다발 킴은 이분법적 성 정체성을 융합하는 통찰을 시도하며 신체와 의복의 경계를 허문다.
두 번째 섹션은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존재감을 회복하고 내적 결핍을 극복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들이다. 또 다른 네 명의 안내자들은 마치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지니처럼 실천적이고 즉각적이면서도 유쾌한 방법을 제안한다. 이들은 간절한 염원과 기도를 통해 불안과 공허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나와 타인을 위한 행복과 내적 충만함을 위해 어떤 실천이 가능한지 보여준다. 홍근영은 관람객들의 불행을 점토 조각 형태로 수집하여 행운의 부적으로 바꾸는 연금술을 보여준다. 신민은 관람객들이 소원을 붙일 수 있는 거대한 인물상을 제작하여 각자의, 또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원우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 온 것 같은 조각상이 솜사탕을 건넨다는 연출을 통해 타인을 향한 상냥한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인간 접촉이 약화되고 비물질적 정보 소비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잃어가는 중요한 가치들을 상기시킨다. 김한샘은 RPG 비디오 게임처럼 보이기도 하고 종교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미지를 통해 영웅의 구원 판타지를 현실에 대입해 보도록 유도하여, 가벼움의 시대가 우리를 헛헛하고 공허하게 만들더라도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내는 영웅처럼 우리도 현실 문제를 직면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일종의 ‘영적 여행’으로 제시된 이번 전시는 가벼움이 삶을 낱낱이 흩어놓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존엄성과 정신적 자유를 누리는 조건을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들에게서 시작된 이야기들이 관객 각자의 이야기들로 이어져서 자신만의 서사와 신화, 그리고 간절한 기도를 만들어 내고, 이것이 연결되어 세대를 거듭해 전승되는 지혜가 되기를 바란다.
작품
나오미, <파시(波市)>
‘파시’란 밀물과 함께 부두로 들어온 배들이 선상에 어물을 늘어놓고 팔았던 해상 시장을 말합니다. 나오미 작가의 <파시>는 연안 기능이 없어지고 갯벌이 매립되면서 사라진 ‘파시’의 풍경을 기록하고 역사적 의미를 다시 부여합니다. 작가는 서남해의 어촌 마을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민간 신앙과 영감놀이와 같은 토착 행사가 전승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것에 주목하였습니다. 작가는 조선 시대 불화의 한 형식인 감로탱과 게발도 등을 참조하여 현실 속 믿음의 행위와 초현실적 이미지가 교묘하게 결합된 하나의 군선도(群仙圖)를 만들어 냅니다. 제주도에서 안전한 조업과 풍어를 기원해 주는 바람의 신 ‘영등할망’과 서남해 어촌에서 주로 믿던 도깨비, 중화권에서 바다의 신으로 섬기는 ‘마조’, 고대 일본에서 풍작과 역병을 예언했던 요괴 ‘아마비에’ 등 초월적 존재들이 소환된 파시의 풍경은 낮과 밤, 축제와 전쟁,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모호하게 공존하는 마술적 공간을 제시하면서, 사라져 가는 수많은 것들을 상기시킵니다.
나오미,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새와 물고기>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새와 물고기>는 <파시>에 묘사된 바다 풍경 속 요소로서,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물고기와 새들의 이미지, 그리고 바다를 중심으로 전승되었던 도깨비 신앙의 이미지를 찾아 기록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바다에서 사라져 가는 얼굴 없는 존재들을 호명하고 새로운 형상을 부여함으로써 이들을 어루만지려 합니다. 도상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참고한 감로탱(甘露幀)은 조선 시대에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시행된 수륙재 같은 불교 의례에서 사용된 그림으로, 고혼이 된 망령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 가상과 실재가 모호하게 뒤얽힌 세계와 마주칠 수 있도록 의도함으로써 사라진 존재들과 비존재들에게는 위로의 손길을, 상실과 소멸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는 공존과 공생을 기원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제이디 차, <바다 할미>
제이디 차는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부모 세대의 이주 경험과 캐나다에서 태어나 런던에 거주하는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꾸준히 탐구해 온 작가입니다. 또한 제이디 차는 생태적 관심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제작해 왔습니다. <바다 할미>에는 여러 마리의 바닷새와 할머니가 등장합니다. 작가의 고향인 밴쿠버에 많이 서식하는 동물인 바닷새는 도시가 형성되면서 뒤바뀐 서식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멸종 위기 종들을 대표합니다. 여기서 바닷새는 특이하게도 여우와 여성의 형상이 섞인 존재로 묘사되는데, 작가는 이러한 모든 생명체가 고유한 주체성을 가지며 도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리하게 삶을 이끌어 가는 긍정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표현합니다. 한편, 정면의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는 압도적 눈빛을 가지고, 카리스마와 위엄이 넘치는 존재로 표현됩니다. 작가는 마고할미 설화에 착안하여 사회에서 종종 무시당하는 할머니라는 존재를 강인하고 지혜로운 인물로 그려냅니다. 작가는 세대를 거듭해 전승된 우화나 설화를 통해 서구의 주류 역사에서 지워온 주변부 존재들과 서사들을 재조명하고, 지금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제이디 차, <모계(母系)>
<모계> 에서 각각 바닷새와 까마귀의 몸을 가진 혼종적인 두 여성 존재는 인간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을 상징합니다. 이들이 마주친 순간은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문화와 지식의 교류가 일어나는 모계 중심의 지식 전승을 암시합니다. 작품 속 왼쪽의 인물은 중년 여성의 얼굴을,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젊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거대한 소라 껍데기가 빛나고 있는데, 이 소라 껍데기는 제이디 차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로, 미지의 공간에서 기술이나 정보를 흡수하는 매개체이자 집을 상징합니다. 그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는 두 생명체 사이에서 전달되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나이 든 여성으로부터 젊은 여성에게로 지식이 전승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조상으로부터 전승된 지식이 인간과 동물 모두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지식 전승의 주체인 여성들이 권위와 지혜를 갖춘 존재임을 상기시킵니다.
제이디 차, <미래의 우리들>
<미래의 우리들>은 인물의 지위를 드러내는 초상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이상화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긴 세월 동안 축적한 삶의 지혜와 현명함을 암시하듯 깊은 주름과 눈빛이 강조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할머니의 초상을 한국 설화의 창조신인 ‘마고할미’에 비유하여 권력과 지혜를 지닌 상상 속 여성 조상으로 그려냅니다. 여우 귀를 가진 할머니는 인간과 동물의 혼종인 듯한 존재로 표현됩니다. 나이 든 여성과 여우는 아시아 설화에서 부차적이거나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되곤 했는데요, 작가는 오히려 세대를 거듭하여 전승된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도시에서 현명하게 살아남은 주체적 존재로서 이들을 격상시켜 드러냅니다.
권희수, <레이무숨 씻김굿>
권희수는 예술을 하나의 의식적인 실천으로 간주하고, 자전적인 페미니스트 종교 ‘레이무숨(Leymusoom)’을 창시했습니다. 성별이 없다는 뜻의 ‘무성별(Museongbyeol)’에서 조어한 레이무숨은 디지털을 매개로 한 일종의 유토피아로, 작가는 이를 통해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 이데올로기로부터 ‘탈피’한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 냅니다. 여기서 탈피는 이중적 의미로, 파충류나 곤충류 따위가 자라면서 허물이나 껍질을 벗는다는 의미와, 일정한 상태나 처지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권희수 작가는 탈피가 갖는 두 가지 의미에 착안하여, 레이무숨을 상징하는 인물로 뱀의 모습을 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작가는 레이무숨의 화신인 뱀-여인을 비롯하여 여성 조상들이 피부가 벗겨지는 물리적인 탈피 현상을 통해 비로소 기존 사회의 억압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줍니다.
<레이무숨 씻김굿> 에서도 레이무숨의 화신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2021년 미국 애틀랜타주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사망한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의식을 보여줍니다. 총격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여성들이 주로 근무하는 마사지 숍이었으며, 숨진 여덟 명 가운데 여섯 명이 동양인 여성이었습니다. 이국에 사는 아시아인 여성으로서 깊은 슬픔을 느낀 작가는 애도를 표하고자 이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영상에는 레이무숨 화신과 함께 작가의 아바타인 ‘희수’가 등장합니다. 희수는 피해자의 영혼을 대신해 여섯 발의 총알을 맞으며, 죽은 자의 한을 달래고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씻김굿’을 거행합니다. 고인이 된 사람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씻김굿 의식을 치르고, 망자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죽음 이후의 세계로 떠납니다.
권희수, <프리몰트 17>, <프리몰트 10>
<프리몰트>는 작가의 가족사진을 활용해 레이무숨의 세계를 선보이는 사진 시리즈입니다. 제목 ‘프리몰트(premolt)’에서 ‘몰트’는 ‘탈피’를 의미합니다. 탈피는 파충류나 양서류가 허물이나 표피를 벗는 현상을 지칭하는 동시에, 낡은 습관이나 사고방식에서 벗어남을 의미하는 레이무숨의 핵심 용어입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형상이 변하는 렌티큘러 사진 작품에서 뱀-인간처럼 묘사된 레이무숨의 화신은 마치 섬광이나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데, 이는 레이무숨이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유령적’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작가는 과거에 찍은 가족사진에 레이무숨의 존재를 개입시켜서 기존의 가족사를 재구성합니다. 즉 유령적 존재를 매개로 하여, 아직 가부장제와 같은 억압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으나 앞으로 탈피할 것을 예고하면서, 기존의 가족 서사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화해와 치유가 가능한 시간들로 되돌아봅니다.
권희수, <레이무숨 집>
<레이무숨 집>은 작가의 디지털 작품을 나무와 천 등을 조합하여 수공예 기법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 가운데에는 작가의 여성 조상들이 가부장제 등 억압적 이데올로기로부터 탈피하여 ‘레이무숨’의 디지털 유토피아 공동체에서 자유롭게 공생하는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여성들이 보름달 아래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대지를 감싸면서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은 신비로운 영적 공유가 일어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천을 지지하는 상단의 나무는 ‘대지’를 상징하며, 나무와 레이무숨의 세계를 엮고 있는 여러 가닥의 천 위에는 작가의 일상을 찍은 사진과 작업을 위해 찍은 사진들이 필름 형태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레이무숨’이 무엇보다도 현실에 발 딛고 사랑과 희생, 가족이라는 개념과 경계를 재정의하는 실천이며, 작가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이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권희수, <레이무숨 파이어플라이2023>
<레이무숨 파이어플라이 2023>는 작가의 사진 연작인 《레이무숨 파이어플라이》 중 하나의 이미지를, 전시장을 채우는 크기의 벽지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일명 ‘파이어플라이(Firefly)’라는 AI 사진 자동 생성 기능을 활용하여 자신의 가족사진 원본 이미지의 프레임을 확장시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기존 사진의 맥락에서 벗어나, 가시적이지만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구현됩니다. 이처럼 미지의 작동 원리가 만들어 낸 비가시적 세계의 이미지는 새로운 해석과 개입이 가능하도록 기존의 가족 서사를 변형시킵니다.
권희수, <레이무숨 정원: 새 해>
<레이무숨 정원: 새해>에서 작가는 레이무숨의 디지털 유토피아를 신비로운 정원 공간으로 확장합니다. 작가는 공주시에 위치한 외조부모의 정원과 마당의 옹기들, 그리고 ‘도깨비산’이라고 불리던 앞산 등 어릴 적 기억이 깃든 장소의 다양한 요소를 작품에 포함시킨 후 이를 대지의 신인 ‘마고할미’ 창조 설화와 연결 짓습니다. 정원에는 작가의 친증조할머니 ‘이조’의 아바타로 형상화된 마고 신이 있으며, 작가의 아바타 ‘희수’는 정원에서 여성 조상들과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다가 공주시의 집에서 가족들과 만납니다. 배경이 되는 공간은 렌더링 기법을 사용해 실제 집의 모습을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이후 희수는 마치 영적 여행을 떠나듯이 홀로 정원과 하늘을 배회하고, 다시 정원으로 돌아와 가족, 동료들과 한데 모여 연대와 치유의 순간을 기념합니다.
권희수, <동지>
<동지>는 작가 어머니인 김미영과 작가의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권희수 작가의 작업이 가족사를 다루고 세대 간의 연결과 치유에 기반을 두는 만큼, 작가의 어머니는 작품에 큰 영향을 주는 인물입니다. 어머니는 작가가 실제 삶 속에서 소통과 공감,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지는 실천에 몰두하도록 지지하고 응원하며,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되어 늘 대화하고 소통하는 존재입니다. 영상 속 작가는 작품 <레이무숨 정원>이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정원을 쓸고 닦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비롯되었음을 이야기하면서, 가부장제의 영향이나 여성에게 부과된 돌봄의 의무로 힘들었던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여성의 삶에 공감하고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몸짓을 보여줍니다.
권희수, <레이무숨 신목 2023>
<레이무숨 신목 2023>은 레이무숨의 디지털 세계와 정원을 매개하는 일종의 무속적 기운을 담은 영물로 제시됩니다. 본래 ‘신목(神木)’은 무속 신앙에서 영험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지는 나무로, 마을이나 나라를 지키는 수호목으로 존재하거나 영혼들이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작가가 제작한 <레이무숨 신목>은 특이하게도 나뭇가지나 소창 등의 자연물과 함께 USB와 같은 디지털 기기를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디지털 기기는 작가가 디지털 영상 작업을 만들 때 실제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작가는 무속 신앙의 무당이 거울을 통해 영적 세계를 보듯이, 본인은 컴퓨터 모니터와 하드 드라이브를 통해 레이무숨 디지털 세계에 접근한다고 말합니다. 즉, 작가에게 디지털 기기는 영적 도구와 같으며, <레이무숨 신목>은 작가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창조하고 접속하는 레이무숨이 신성하고 영적인 영역임을 암시합니다.
다발 킴, <드리밍 클럽>
다발 킴은 정체성을 주제로 다양한 매체와 방법을 통해 사회적 개념의 경계를 허물고자 합니다. 작가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자웅동체 존재인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os)’의 양성성을 빌려 옵니다. 영상 작품 <드리밍 클럽>은 과거와 미래라는 개념이 사라진 무한한 공간을 배경으로, ‘정체성’의 이분법적 규범에서 벗어난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되기’의 장을 펼치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되기란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규정할 수 없거나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또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나 상상력을 통해 무한히 변주될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과 존재들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즉 영상 속 인물들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복장과 가면으로 가려져, 성 구분은 물론 어디서 유래한 어떤 존재를 표현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관객은 등장인물이 어떤 존재인지를 상상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해 나갑니다. 인물들은 어딘가를 향해 무언가를 갈구하는 몸짓을 계속하는데, 연속성이 없는 이질적 몸짓은 춤과 제의적 행위 사이를 오갑니다. 경계를 넘어선 이 인물들은 무한히 분화하고 변화하며 도래하지 않을 존재들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작가는 작품 속 인물들이 ‘꿈꾸는’ 목적을 정확히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다양한 되기의 의미를 열어둡니다.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며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존재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발 킴, 《9명의 여신과 사천왕》
《아홉 명의 여신과 사천왕》은 아홉 점의 사진 연작으로, 이 작품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학문과 예술을 관장하는 아홉 여신인 ‘무사이(Mousai)’와 불교의 사천왕이 함께 등장합니다. 작가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나 인도와 티베트 불화 속 이상적 존재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서, 태초의 초월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인간상은 남성과 여성이 결합한 형태였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작가는 서양과 동양, 여성 신과 남성 신을 결합합니다. 사진 속 신적인 존재들은 가면을 씀으로써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으로부터, 동양과 서양이라는 장소적 정체성으로부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적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되어 시공간을 초월한 무한하고 영원한 자유를 만끽합니다.
다발 킴, <달을 품은 의(衣)>
<달을 품은 의>는 이번 전시를 위하여 제작된 신작으로, 대한제국 황제가 입던 대례복인 ‘십이장복’을 구성하는 검은색 ‘현의’와 여성의 대례복인 ‘원삼’의 구조를 해체해 새롭게 변형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생물학적, 사회학적 구분이 뚜렷한 전통 의복을 재해석하여 통합적이고 대안적이며 신화적인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합니다. 작가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 십이장복 대신 조선 시대 왕이 착용했던 ‘구장복’과 ‘대한예전’이라는 예서 및 과거 순종 황제의 사진을 참고하여 이 작품을 구현했습니다. 중요한 의식 때 입던 예복인 ‘대례복’은 황제의 열두 가지 통치 이념을 상징하는 문양이 표현되어, 남성성과 황제로서의 권위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의 허리띠, 허리띠에 거는 장식용 천과 흉배 등 남성 관복에 사용되는 요소에 색동 소매 단과 옷의 옆구리 부분이 트인 구조 등 여성 의복의 요소가 더해졌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작가는 남성 관복에 등장하는 흉배의 이미지를 자신의 자화상 이미지로 대체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의복은 남성 의례복 구조에서 출발하였으나, 여성의 자화상과 여성의 의복 구조를 더하며 해체와 변형을 거듭하면서 결국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신화적 상상력과 양성구유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의상은 실제로 입을 수 없을 만큼 큰 건축적 구조로 설치되었는데, 작가는 이 옷이 혼성적이거나 이름 붙일 수 없는 모든 존재를 포용하고 품어주는 상징적인 집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작가는 이 집이 소수성이든 다양성이든, 현재의 언어로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모든 존재와 비존재들을 품는 초월적 세계가 되어 이 땅에 내 이름으로 발을 딛고 살 수 없는 존재들을 호명하고, 이들이 머물고 존재할 수 있는 간절한 소원의 장으로서 기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홍근영, <불행수집가>
홍근영의 <불행수집가>는 작가의 다양한 종교적 관심사를 보여주는 조각과, 관객이 자신의 불행을 점토로 빚어 단상 위에 올리는 참여로 구성되는 작품입니다. 고대 로마의 여신, 이집트의 파라오, 인도의 원숭이 신 등 다양한 모티프가 형상화된 조각에는 인물이나 신성에 기대어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간 심리와 작가의 내밀한 감정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관객은 불행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흙으로 빚어 다른 참여자들의 점토 조각 옆에 올려놓는 ‘불행 수집’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흙을 빚는 과정에서 심리적 치유를 경험하는 동시에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위로를 받는 양가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원우, <상냥한 왕자>, <제비>
이원우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모순되거나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관객이 조각의 일부로 참여하는 열린 결말의 상황극을 연출합니다. 불안이나 행복을 주제로 작업해 온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은 조각과 회화, 두 점으로 구성됩니다. <상냥한 왕자>와 <제비>는 2미터 크기의 대형 조각과 함께, 행복이 고정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뜬구름처럼 잡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구름 모양의 솜사탕을 만들어 주는 퍼포먼스, 그리고 ‘제비’ 또는 ‘삼키다’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swallow’가 쓰인 회화 작품을 포함합니다. 행복한 왕자와 헌신적인 제비가 등장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행복한 왕자』에서 착안한 이 작품들은 상냥하고 따뜻하게 타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적인 접촉이 약화되고 비물질적 정보 소비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잃어가는 중요한 가치들을 상기시키는 한편, 타인이나 세계와 관계 맺을 때 따뜻하고 상냥한 태도를 취한다면 결국 모두가 함께 행복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신민,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신민 작가는 반복해서 종이를 붙이는 작업을 내면의 수행으로 여깁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은 관객이 종이에 소원을 적어 붙이고, 작가가 그 소원들을 더욱 단단히 새로운 종이로 붙이며 조각에 새 표정을 입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관객과 작가가 합심해서 소원 종이, 그 안에 담긴 소원을 비는 마음을 모으고 쌓아, 물리적 크기가 커질 뿐만 아니라 심리적, 주술적 에너지를 확장시켜 가는 변화하는 조각입니다. 작품이 가닿을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작가에게, 작업은 마치 기도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작가는 관객들도 소원을 적고 붙이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기도와 치유의 과정을 겪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한샘, 아포칼립스 시리즈
영웅 서사를 자주 다뤄온 김한샘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신작에서 성서 속 요한묵시록에 등장하는 재앙의 상징을 초기 비디오 게임의 픽셀 이미지처럼 구현합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차용하는 구원 서사는 갈등 구조가 명쾌하고, 주인공이 등장하여 결국 모든 갈등을 해소한다는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게임 속 주인공은 주어진 퀘스트를 완수하고, 현실에서는 느끼기 힘든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며 구원자로서의 희열을 느낍니다. 하지만 디지털 판타지 속에서 느껴지는 즉각적인 충족감은 일시적이며, 결국 공허와 다시 마주하는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작가가 이번 신작에서 다루는 요한묵시록은 이 세계가 곧 끝날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의 서사와 더불어, 이 세계의 종말이 곧 새로운 세계의 시작으로 이어지면서 그 세계가 비로소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의 서사가 공존하는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즉 김한샘 작가는 ‘가벼움의 시대’가 개인의 우울과 내적 결핍 등 여러 문제를 낳았으나, 비록 이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요한묵시록의 세계관에서 보듯 절망적인 현실 끝에서 희망적 미래와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가벼움의 시대가 우리를 헛헛하고 공허하게 만들어도, 당면한 문제를 돌파하여 해결해 내는 영웅처럼 우리도 현실 문제와 직면하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합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지하1층&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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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층&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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