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삼가장'
풍요로운 한가위 장터
한가위가 코앞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던가?
큰 명절을 앞두고 사람들은, 으레 고향 생각에 아릿한 그리움이 인다.
특히 한 해 중 가장 풍요로운 계절의 고향장은, 두말 할 나위 없이 가고 싶은 곳 중의 백미(白眉)다.
그 해 농사지은 수확물을 이고지고, 사오십리 새벽 고갯길을 걷고 걸어오던 장터 길.
제수고기 몇 마리와 아이들 명절빔 몇 벌을 손에 들고 기뻐했을 그 시절의 촌로들.
소 판 돈으로 호기롭게 막걸리 한 사발 돌리고, 거나한 기분으로 소리도 한 자락하며,
달 빛 따라 귀가하던 우리의 아버지들. 그들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 장터가 새삼 그리워진다.
필자의 고향은 경남 합천 삼가이다.
예로부터 충절의 고향으로 이름 난 곳이다.
남명 조식선생이 후학을 기르던 향리였고,
임진왜란 때는 어느 곳보다 먼저 의병이 봉기했으며,
삼일만세운동이 조직적으로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성묘를 핑계 삼아 고향엘 간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러 가던 백의종군길을 따라 양천강을 건넌다.
곧이어 고향장터 삼가장이 보인다.
경남 삼가장.
'삼가' 하면 삼가장이 생각날 정도로 면 소재지 전체가 장터였던 곳이다.
서부경남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장으로, 합천과 진주를 잇는 물류 중심지였고, 지역 특산물 집산지였다.
특히 미곡과 한우는 이 곳 삼가장에 다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삼가장을 돌아본다.
이제는 현대화, 상설화 되고 있지만 장날의 인파만큼은 옛 장터 시절과 다름이 없다.
촌부들이 이고 온 여러 푸새들은 싱싱하게 푸르고, 제수고기는 자갈치 시장 못지않게 곳곳에 쌓여있다.
특히 떡전어(아주 큰 전어)는 부산에서도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크고 굵다.
탕국용 문어포와 홍합 꿰미도 물색이 선명해 시원한 국물을 우려내겠다.
시골이라 그런지 장날의 농협 공판장도 사람들로 넘쳐난다.
공산품은 모두 이 곳에 다 모인 것 같다.
식용유, 커피세트 등을 손에 든 사람들의 입가엔 따뜻한 미소가 흐른다.
두어 곳의 방앗간에도 불(?)이 난다.
떡 찌는 냄새와 김이 방앗간 가득이다.
한 곳에는 참깨 소쿠리가 줄을 섰다.
명절음식에 쓸 참기름을 짜기 위해서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사정없이 식욕을 자극한다.
아~ 배고프다.
삼가장은 예부터 우시장이 컸기에 식육식당이 많다.
한 곳에선 제수용 소고기를 끊어주고, 한 곳에선 장터국밥과 선지국밥을 연신 말아대고 있다.
한가위 장터 인심이라 그런가? 국밥 안에 고기가 한 주먹이다.
선지국밥의 선지도 붉고 탱탱한 것이 제 맛을 내겠다.
물론 진한 국물 맛은 어느 유명 국밥집보다 더 시원하고 감칠맛이 난다.
묵채 난전에서 잠시 쉰다.
도토리묵과 메밀묵을 채 썰어 양념과 멸치국물에 비벼먹는 곳이다.
메밀묵채는 달큰하니 고숩고, 도토리묵채는 떫으면서도 맛이 진하고 깊다.
참기름 양념장도 매콤고소하니 입안에서 돌고 돈다.
묵채 한 사발과 막걸리 한 잔. 휴~ 배가 다 부르다.
최근에 장터의 술도가가 없어졌다.
오랜 세월 삼가장을 지키며 장꾼들의 친구가 되어주던 장터 막걸리를 이제는 맛 볼 수가 없게 됐다.
정녕 아쉽고 섭섭하다.
장터를 떠나며 세월의 더께가 참으로 무거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운 고향 장터를 생각하며, 인근 오일장에서 장을 보면 어떨까?
조금이라도 고향땅 냄새 배이고 싱싱한 우리의 햇것으로, 정성스레 차례상을 준비해 보시라.
차례상의 의미도 깊어질 것이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