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붓
송승안
나의 그림은 끝을 향해 가지만
꿈꾸던 장면과는 멀다
시작부터 스케치가 어긋난 탓일까
채색은 경계를 넘나들며 덧났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대화처럼 왜곡되었다
가장 빛나야 할 꽃마저 흐려질까
불협의 밤을 지새우다 쥐게 된
지우개붓
지운다는 것은
엎드려 잘못을 매만지는 일
날 선 모서리가 둥글어지고
바탕을 품지 못한 면면 다듬어지면
묻혔던 빛 스며나와
꽃 또한 제 빛을 되찾겠지
서툴렀던 나의 생이여
모난 말에 가로막힌 첫 기억들이여
꽃보다 귀한 나의 아이여
빛의 겹으로 돌아오기를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지운다
서툰 붓질 지워낸 자리에
아직은 잠시
빛이 머물 뿐이나
--애지사화집 김선옥 외 {꽃밥}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 인류의 스승이라는 말에는 어떤 거부감을 느끼는 동시에 두려움과 공포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전 인류의 스승이란 아주 예외적인 존재이며, 그 사회적 지위가 인신人神의 경지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전 인류의 스승들이라면 동양에서는 공자와 맹자와 장자 등이 전 인류의 스승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호머와 셰익스피어와 괴테와 이태백과 세종대왕 등도 전 인류의 스승들이라고 할 수가 있으며, 그들의 삶의 지혜는 영원불멸하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권력의 신전은 유한하지만, 사상의 신전은 영원하다.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 황제의 고귀함과 위대함마저도 그들의 사상의 신전 때문이지, 그들의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이 아니다. 사상가는 최고급의 진리(지혜)의 창출자이며, 그들의 삶의 지혜에 의하여 우리 인간들의 삶의 역사는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게 된다.
우리 인간들은 그 어디에다가 집을 지어야 하는가? 자기 자신이 아버지가 되고 전 인류의 스승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우리 인간들은 무엇으로 집을 짓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사상의 신전을 짓고 그 넓고 비옥한 텃밭에서 모든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사상이란 최고급의 지혜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이라고 할 수가 있다.
송승안 시인의 [지우개붓]은 ‘지혜의 붓’이며, 최고급의 시인으로서의 붓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나의 그림은 끝을 향해 가지만/ 꿈꾸던 장면과는 멀”고, “채색은 경계를 넘나들며 덧났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대화처럼 왜곡되었다.” “가장 빛나야 할 꽃마저 흐려질까/ 불협의 밤을 지새우다 쥐게 된// 지우개붓”, 그렇지만 “지운다는 것은/ 엎드려 잘못을 매만지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반성이란 자기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되돌아 보는 것을 말하고, 성찰은 그 잘못과 부족함을 살펴보고 그것을 개선시키는 것을 말한다. 송승안 시인의 [지우개붓]은 반성과 성찰의 붓이며, 최고급의 지혜의 붓이라고 할 수가 있다. 고귀하고 위대한 것은 천지를 개벽하는 것과도 같고, 수없이 죽었다가 되살아나지 않으면 결코 쟁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전 인류의 스승이 되고 사상의 신전을 짓는다는 것은 그 모든 가치들을 다 전복시키고 천하무적의 황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우고, 또, 지운다는 것은 “서툴렀던 나의 생”을 바로 잡는다는 것이며, 그 결과, “꽃보다 귀한 나의 아이”들을 얻게 되는 것이다.
송승안 시인의 [지우개붓]은 최고급의 지혜의 붓이며, 그 붓에는 “나는 지우고 또 지운다. 고로 나는 천하제일의 시인이 될 것이다”라는 그의 예술철학(사상)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삶은 끊임없는 예행연습이고, 서툴렀던 삶이며, 그러니까 “꽃보다 귀한 나의 아이”, 즉, 단 한 편의 예술작품을 위해 그토록 어렵고 힘든 형벌의 삶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는 것과도 같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학대하고 총살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단 한 편의 시(예술작품)를 남기고 죽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요컨대 세계적인 대 사상가, 즉, 전 인류의 스승의 뿌리는 ‘자기 총살의 형벌’에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송승안 시인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지우고, 또 지우면서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그의 서툰 붓질이 지워지면서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지우개붓]이 피어난다.
시와 예술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며, 전 인류의 스승의 예술품 자체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