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한 말이지만 학교 ≠ 학생.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죄가 없고 오히려 설립자의 친일행각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학생들도 많아. 이런 학생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기준은 학교 홈페이지에 적시된 설립자) 설립자에 한해서만 적었어. 예를 들면 경성제국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서울대로 통합됐기 때문에 경성제대를 서울대의 전신으로 보기도 하지만, 서울대에서 인정하는 전신은 1895년의 법관양성소에서 기원해서 1946년 국립 서울대학교로 개교한걸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서울대는 넣지 않았어.
* 학교에 중요한 공헌을 한 인물이고, 현재 학교에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라도 공식적인 설립자가 아닌 경우에는 적지 않았어. 예를 들어 고려대의 김성수(보성전문학교 인수)나 이화여대의 김활란(초대 총장)처럼 학교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학교에서 기리고 있는 경우라도 설립자가 아닌 경우에는 넣지 않았어.
* 설립자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여부는 친일인명사전 선정이나 광복 이후 반민특위 조사 대상자 등 명백하고 명시적으로 친일파라고 볼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넣었어. 즉 친일성향단체에 이름을 올렸거나하는 식으로 친일적성향이 의심되지만 명백한 근거가 있지 않은 경우에는 넣지 않았어.
* 여기까지 읽으면 알겠지만 진짜 웬만하면 다 뺐기 때문에 생각보다 몇명 없을거야. 그런데 여기에 들어있을 정도면 정말 친일파고 학교에서 관계성을 강조하고 있는 인물이란 소리ㅎㅎ...
* 가나다순이고 학교의 설립이 광복 이전인 경우와 광복 이후인 경우를 구분했어.
동덕여자대학교
전신 : 동덕여자의숙
설립시기 : 광복 이후(1950. 전신인 동덕여자의숙은 광복 이전)
설립자 : 조동식
친일행적 : 1942년 3월 동덕고등여학교 교장으로서「매일신보」 에 징병제도의 실시에 부응하여 조선의 여성들에게 ‘군국의 어머니’가 될 것을 역설하는 기고문을 발표하는 등 전쟁협력을 위한 여성의 의무를 강조하고 여학생 교육을 주장했다. 또한 내선일체와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총후생활을 주장하는 기고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설립자의 흔적:
1. 춘강학술정보관(도서관). 춘강은 조동식의 호
2. 새터에서 설립자 미화
3. 필수교양에서 미화
4. 춘강장학금 등
상명대학교
전신 : 상명고등여자기예원
설립시기 : 광복이전(1937)
설립자 : 배상명
친일행적 : 1940년 12월부터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이른바 대동아전쟁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는 기고문을 냈고,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10월에 평의원에 선임되었다.
1942년 징병제의 실시를 전후하여 강연과 기고문을 통해 징병제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1943년 11월 임시특별지원병제도 종로익찬위원회 실행위원이 되었고, 1944년에는 결전태세를 갖추기 위해 조직된 종로총궐기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밖에도 각종 신문과 잡지에 일제의 전시체제에 호응하고 전쟁에 협력할 것을 강조하는 글을 기고했다.
설립자의 흔적 : 상명대 내 배상명 동상 등
성신여자대학교
전신 : 성신여학교
설립시기 : 광복이전(1936)
설립자 : 이숙종
친일행적 : 1939년 4월 성신여학교가 시천교 소유의 건물을 양도받아 성신가정여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5월 ‘해군기념일을 앞두고 해군이야기를 듣자’는 제목의 좌담회에 참석하였고, 같은 달 부인문제연구회와 조선교회단체연합회가 주최한 ‘내선일체의 의상 확립’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8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 주최한 시국인식강연회 강사로 활동하였다. 1940년 조선총독부의 후원하에 내선일체론을 생활양식개선으로 실현하자는 녹기연맹의 연맹원으로 활동하였고, 3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參事)에 선임되었다. 1941년 1월 국민총력조선연맹 부인지도위원에 위촉되었고, 8월 임전대책협의회에 참석하였으며, 9월 임전대책협력회 회원으로 채권가두유격대 명치정대(明治町隊) 대원으로 참여해 1원짜리 ‘꼬마채권’을 팔았다. 같은 달에 최대 민간전쟁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10월에 평의원에 선임되었고, 12월에 부인대 지도위원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10월 조선교화단체연합회가 주최한 시국대책순회강연회 제3반 강사로 활동하였다.
1942년 대일본부인회 조선본부이사, 1943년 9월 국민총력조선연맹 연성부 연성위원회 위원, 11월 임시지원병제도익찬위원회 실행위원을 맡아 종로지역 제1반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달 조선교화단체협의회에서 특별지원병제를 선전하고 권유하는 전위여성격려대 일원으로 경기도 인천·개성·수원 등지에서 강연하였다. 1944년 2월 ‘황민운동’ 전개를 위한 총궐기대회 추진 실행위원을 맡아서 3월 경성 종로총궐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9월 대일본부인회조선본부에서 주최한 좌담회에 참석해 내선부인의 총궐기를 결의하였다.
각종 신문 · 잡지에 일제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조선인의 전쟁협력과 총후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여성을 대상으로 지원병 및 징병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기고하였다. 주요 글을 보면 「물자절약이야기」(『조선일보』, 1938.9.11), 「반도부인과 근로봉사」(『총동원』, 1939.8), 「총후보국은 내선부인의 협동에서」(『경성일보』, 1940.3.10), 「자진하여 저금합시다」(『매일신보』, 1940.12.14), 「여성과 국민총력」(『국민총력』, 1941.2), 「전시국민생활」(『경성일보』, 1942.1.13), 「징병과 어머니의 길, 복종의 정신」(『춘추』, 1944.1), 「참정권과 여성의 각오 더욱 빛날 내조의 공」(『매일신보』, 1945.3.21) 등이다.
설립자의 흔적 :
1. 운정그린캠퍼스(운정은 이숙종의 호)
2. 운정관
3. 성신여대 내 이숙종 동상
4. 운정장학금 등
서울여자대학교
설립시기 : 광복 이후(1960)
설립자 : 고황경
친일행적 :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직후인 1937년 8월 전쟁비용에 보태라고 금비녀 등을 헌납하자는 애국금차회(愛國金釵會)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간사를 맡았다. 1938년 6월 무렵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가 세계YWCA협의회에서 탈퇴하고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일본여자기독교청년회동맹 가입을 결의할 때 김활란·유각경·박마리아와 함께 실행위원으로 선임되었고, 9월 조선부인문제연구회가 주최한 순회강연에 전라남북도 지역에서 강연하였다. 1941년 8월 임전대책협의회 설립에 참석하였고, 9월 임전대책협력회 회원으로 채권가두유격대 서대문대(西大門隊) 대원이 되어 1원짜리 ‘꼬마채권’을 팔았으며, 10월 최대 민간전쟁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12월에 부인대 지도위원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10월 조선교화단체연합회가 주최한 시국대책순회강연회 강사로 활동하였다.
1942년 1월 국민총력조선연맹 부인지도위원으로 선임되어 회의에 참석하였고, 5월 임전보국단 부인대 주최 ‘군국의 어머니 좌담회’에 참석하였으며, 6월 무렵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參事)에 임명되었고, 12월 국민총력경기도연맹이 주최한 ‘징병제취지부인강연회’ 강사로 활동하였다. 사회복지사업을 더 확장하여 1942년 무렵 출옥해서 갈 데가 없는 여성을 정서적으로 교화시키고 한글을 가르치고 경제적 자립교육을 실시하는 여자감화원 가정료와 생후 1개월 미만의 기아를 수용하는 영아원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식량난이 극심해지자 무의탁 소녀들을 데리고 철원으로 내려가서 농사를 짓다가 해방을 맞았다.
신문 · 잡지에 일제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조선인의 전쟁협력과 여성을 대상으로 징병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기고하였다. 주요 글을 보면 「명일의 가정: 자랑과 수치」(『半島の光』, 1941.5), 「전시의 가정: 가정은 국가의 뿌리」(『半島の光』, 1942.8), 「대전 일년간에 배운 것」(『半島の光』, 1943.1), 「징병감사와 우리의 각오, 건군정신에 투철」(『매일신보』, 1943.8.5), 「적전에 새해를 맞이하여」(『半島の光』, 1944.1), 「어려움을 기쁨으로 아는 생활」(『半島の光』 1944.9) 등이다.
설립자의 흔적 :
1. 바롬인성교육 (바롬은 고황경의 호)
2. 바롬하우스 등
한국외국어대학교
설립시기 : 광복 이후(1954)
설립자 : 김흥배
친일행적 : 1932년에 금흥상회를 경영한 것을 시작으로 1942년에는 동양철강주식회사를 세웠다. 태평양 전쟁 중 군수품 공장인 피복공장을 운영하였고, 전쟁 지원 단체인 경성부총력연맹의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설립자의 흔적 : 한국외대 내 김흥배 동상 등
첫댓글 후 역시^^ 친일파에 우리 학교 설립자 빠지면 섭하쥬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하이하이^^~
크 자랑스럽다 민주덕성🌸
서울대 어디감 ;;
서울대는 친일파가 아니라 일본이 세운 대학으로 알고있어! 경성제국대학이 전신이야
@허니와클로버 알아 근데 일본 핏줄이자너
@(쭉빵알리미)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설립한" 대학이라고 써져있잖아ㅋㅋㅋ
@허니와클로버 아니 안다고;;
@(쭉빵알리미) 그니까 이 글에는 안들어가는게 맞다는건데 어디갔냐고 써놨잖아
@허니와클로버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