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성공으로 수렴한 ‘더 나은 실패’의 기록
◇우리는 로켓맨/조광래, 고정환 지음/232쪽·1만5800원·김영사
올 6월 21일 누리호가 2차 발사에 성공해 우주로 도약하고 있는 모습. 두 저자는 이륙하는 누리호를 바라보며 “누리호를 뛰어넘는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꿈꿨다. 김영사 제공
“위성이 궤도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2009년 8월 25일 오후 5시.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가 역사적인 첫 비행을 시작한 지 9분 만이었다. 나로호가 보내오는 데이터를 분석하던 연구원들에게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로호 2단에 설치된 부품이 고도 177km 상공에서 분리되지 않은 탓에 속도가 떨어지며 위성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
안타깝고 속 쓰린 순간이었지만 현장을 지키던 저자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창립멤버인 조광래 전 원장(사진)과 당시 연구원이었던 고정환 현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장은 곧장 원인 분석에 착수했다. “로켓맨에게 포기란 없다”며.
올해 6월 21일. 대한민국은 드디어 독자적인 기술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를 우주로 띄워 보냈다. 전 국민을 환호하게 만든 크나큰 성과였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힘겨웠다. 1993년 한국 최초의 과학로켓 ‘KSR-Ⅰ’을 거쳐 나로호와 누리호 개발 책임을 맡았던 저자들은 이 책에 그 값진 ‘실패담’을 담담히 풀어냈다.
바깥에서 보기엔 실패였는지 몰라도, 사실 이들의 여정은 ‘대한민국 항공우주연구개발사(史)’ 자체다. 1990년대 한국은 항공우주 분야에서 미국, 일본은 물론 북한에도 뒤처진 후발주자였다. 처음 발사대 가동 연습 당시, 알맞은 장소를 구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대전에 있는 항우연 기숙사 옆 주차장에서 로켓 점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연구원들은 휴일에도 경북 영주와 울진, 경남 통영과 남해, 제주 모슬포 등 전국 방방곡곡을 뒤져야 했다.
미지의 영역을 향한 도전은 순간순간이 위기였다. “첫 발사를 시도하기 전까지 크고 작은 결함이 보고된 것만 1000건이 넘었다”고 한다. 1993년 6월 4일 한국 최초의 과학로켓 ‘KSR-Ⅰ’을 발사할 때도 성공보다 실패의 시간이 훨씬 길었다. 특히 첫 발사를 앞두고 추진기관의 결함을 확인하는 ‘X선 비파괴검사’는 저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해당 검사에서 추진기관 내부에 딱 “달걀 1개 크기인” 기포가 발견됐다.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우니 그냥 발사하잔 의견도 있었지만, 연구원들은 결국 모두 갈아엎고 다시 시작했다.
과학에서 실패는 당연한 일이지만, 세상의 잣대는 냉혹했다. 저자들은 “발사를 실패한 뒤엔 ‘형벌의 시간’이 돌아왔다”고 털어놓았다. 1997년 7월 9일 이륙 20.8초 만에 과학로켓 ‘KSR-Ⅱ’의 통신이 끊겼을 때다. 곧장 과학기술처 소속 조사단이 항우연 연구실에 들이닥쳤다. 당시 조사단은 로켓 시스템에 대해 이해하려 들진 않고 그저 연구원들을 ‘무능력한 죄인’으로 몰아세웠다고 한다. 2013년 1월 30일 나로호 발사 성공 뒤 조광래 당시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이 “너무 늦어 죄송하다”며 고개부터 숙였던 것도 그런 압박감 때문이었다.
역경이 끊이지 않았지만 로켓맨들은 굴하지 않았다. 패배자란 낙인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크고 작은 실패가 잇따랐지만, 그저 시도하고 연구하고 준비했다. 그 결과가 현재의 값진 항공우주기술로 이어졌다. 하지만 저자들은 현재의 성과에 결코 안주할 생각이 없다. 누리호의 성공조차 “우리에겐 반드시 가야 할 누리호 그 다음이 있다”고 다짐할 뿐이다.
‘우리는 로켓맨’은 고맙고 미안한 책이다. 머리로야 고생하는 걸 알았지만, “또 실패냐”며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예산도 인원도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데, 묵묵히 한길을 가는 그들이 놀랍기만 하다.
책은 어느 한 구석 버릴 게 없지만, 가장 감동적인 건 마지막 페이지다. 항공우주 개발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 234명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그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진 못해도, 그들이 대한민국이 우주로 나아가는 문을 열었던 개척자란 사실은 잊어선 안 되겠다.
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