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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렌트카 사업해요?"
"렌트카?"
"어제 이 차 아니었잖아요. 어제 그 차는 좀 이상하던데, 장애인 스티커도 붙어있고."
"훗! 시력이 아주 좋군."
"시력이 아니라 눈썰미가 좋은거죠. 아저씨 부자예요?"
"부자? 음....부자는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 부자지."
"엎어치나 매치나 그게 그거지. 어차피 나중에 다 물려받을거잖아요."
"글쎄..... 물려받을수 있을까?"
"왜요? 부모님이 재산 안 물려주고 기부한대요? 아니면 사회에 환원하겠대요?"
"글쎄....."
"뭐가 맨날 글쎄야."
희진은 예매하게 대답을 흘리는 윤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 놈의 비밀이 그렇게들 많은건지, 어제부터 뭐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하는 게 없다. 등장부터 심상찮던 형 윤성도 그렇고, 갑자기 나타나선 무조건 자기를 믿고 따라오라며 사람을 끌고 온 이 사람도 그렇다. 영문도 모른채 그저 이 윤성이란 이름을 대며 막무가내로 자신과 함께 가자는 윤호를 보며 망설였던 희진이다. 윤성과 많이 닮은 얼굴이 아니었다면 절대 따라오지 않았을거다. 그렇게 윤호를 따라 그가 몰고 온 차에 올라탔을때 눈에 띄는 장애인 스티커때문에 또 한번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장애인 스티커가 떡 하니 붙어있던 그 차는,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개조된 차량이었다.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 차를 몰고다니는건 분명 불법이라고 알고있는 희진이다. 혹시 어디가 불편한가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아파보이는 곳은 없어보였다. 그런 그가 오늘은 다른 차를 몰고 나왔다. 더구나 오늘 윤호가 몰고 나타난 차는 너무도 멀쩡한 스포츠카였다. 역시 어젠 누군가의 차를 빌려 온 것이 분명한데, 그게 불법이라는걸 알고나 있는건지. 하여튼 뭔가 비밀이 많은 형제임이 틀림없다.
"아저씨는 하는 일이 뭐예요?"
"하는 일?"
"큰 아저씨는 검사라는데, 아저씨는 직업이 뭐냐구요?"
"난.........그냥.......컴퓨터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
"게이머예요?"
"가끔 기분전환으로 하지만 게이머는 아니야. 컴퓨터 게임은 사람의 뇌를 단순화 시키는 경향이 있거든."
"게이머도 아니면 컴퓨터 관련 일이 뭔가 있지?"
"뭐.....이곳저곳 주식 관련해서 정보도 모으고 받은 정보를 분석하기도 하고 또........"
"그러니깐 결론은 하루종일 집에서 할일없이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다 그 말이네요."
"할 일 없이는 아니지만 그런 셈이지."
"좋은 말로 컴퓨터 관련 업이고, 나쁜 말로는 백수네요."
"백수? 백수는 아닌데......백수가 맞나?"
"치! 어째 대답들이 신통한게 하나도 없네."
형은 검사씩이나 되는데 동생은 겨우 놀고먹는 백수라니, 쬐끔 실망스럽다. 입을 삐죽이며 차에서 내리는 희진을 보며 윤호는 괜시리 머쓱해진다. 백수가 맞기는 하지만 돈은 잘 버는데, 윤호는 왠지 희진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차에서 내려 그 뒤를 쫓아갔다.
"야! 너 은근 사람 무시한다. 공인된 직업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돈은 잘 벌거든. 형보다 내가 돈은 더 잘 벌어."
"누가 뭐래요? 왜 발끈 하실까?"
"와~ 얘 진짜 어이없네. 나는 굳이 돈을 벌지 않아도.......으악!!!"
씩씩하게 걸어가는 희진의 앞을 가로막으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던 윤호가 갑자기 머리통을 감싸쥐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희진은 주저앉은 윤호의 뒤로 빗자루를 들고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선 기절이라도 할 것처럼 놀라 펄쩍 뛰었다.
"아...아버지!!!"
"너 이년!!! 며칠간 집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년이 이 늦은 밤에 왠 놈팽이를 동네까지 끌고 와!!!"
"아버지! 그거 아니야!!! 진정하고 내 말 좀....엄마얏!!!"
"이 년이 어딜 도망 가!!! 당장 이리로 튀어오지 못해!!!"
"아버지, 제발 진정하시고...."
"너 이노무 자식! 너 누구야!!!"
"네? 저...저요?"
가차없이 휘둘러대는 빗자루를 요리조리 잘도 피하는 희진을 보고 서 있던 윤호는 갑자기 자신에게로 날아온 질문에 어쩔줄을 몰라 쩔쩔맸다. 안그래도 갑자기 머리통을 얻어맞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다 한밤중에 아버지라는 사람이 휘두르는 빗자루를 피해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희진을 보며 도대체 정신을 차릴수가 없는데 누구라니, 누구라고 설명을 해야하는건지, 도무지 꿈에서조차 생각해보지 못했던 상황에 윤호는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아무리 엄하기로서니 어떻게 스무살이 넘은 딸 자식에게 이 년, 저 년 거침없이 욕지꺼리를 하며 빗자루를 휘둘수가 있는건지 그저 근엄하기만 하던 아버지 이 태성을 떠올리며 윤호는 지금의 상황이 도대체 이해가 되질않는다.
"너 누구냐구!!! 뭐 하는 놈인데 이 오밤중에 내 딸년이랑 같이 다니냐구!!!"
"저는 그냥.......친구.......친굽니다."
"친구? 뭐하는 친구야, 어디서 만난 친구야!!!"
"그...그게...."
"학교 친구야? 아니면 아르바이트 같이 일하는 친구야?"
"그...그게...."
"이놈이!!!! 학교 친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같이 일하는 친구도 아니면서 이 시간까지 싸돌아 다녀!! 너 뭐하는 놈이야!!!"
"그....그게.....나...남자친굽니다!"
"남자 친구?"
윤호는 자신의 대답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대답이 궁해 얼떨결에 남친이라 말을 해놓고도 스스로도 놀랐다. 아버지의 빗자루를 피해 이리저리 몸을 숨기던 희진 역시 뜻밖의 윤호의 대답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저 아저씨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보다. 여지껏 시연이 집에서 지냈다고 그렇게 알고있는 아버지께 남자친구라니, 아무래도 오늘이 내가 이승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인가보다.'
<아저씨, 미쳤어요? 어쩌자고 아버지한테 남자친구라고 말을 해요?>
"그럼 뭐라고 대답을 해? 어제 처음 만났고, 급한 사정때문에 보호차원에서 같이 다닌다고 그렇게 말해?"
<좀 더 융통성 있고 성의있는 대답, 없어요?>
"그 상황에서 참 많이도 바란다. 니네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서 빗자루를 휘둘러대면서 정신을 쏙 빼놓는데 내가 무슨 정신으로 융통성을 발휘하고 성의있는 대답을 찾을 수 있겠어?"
<아무리 그래도 남자친구는 아니잖아요.>
"그 상황에선 그게 최선의 대답이였어. 아닌 말로 이 시간에 남자랑 단둘이 차를 타고 집 앞까지 왔는데 남친말고 더 그럴듯한 대답이 있어? 니네 아버지가 이해하시고 넘어 갈 수 있는 대답이 있으면 말해봐."
<아무리 그래도 남친이라는 건.......>
"난들 오늘 처음 본 여자의 남친이 되고 싶겠니? 나도 보는 눈은 있거든."
<지금 그거 무슨 뜻이예요?>
"아무튼 이렇게 되서 미안하다."
<이게 지금 미안하다고해서 될일인줄 아세요? 앞으로 어쩔거냐구요?>
"잘 생각해봐. 어쩌면 잘된 일이지도 몰라."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예요?>
"너도 그렇고, 시연씨도 그렇고 당분간 조심해야하는데 차라리 남자친구라 그러면 오가기가 편하잖아."
<그건.......그렇긴 한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당분간만 남자친구라고 그래."
<하여튼 내가 미친다니깐.>
"아무튼 내일 가게로 데리려 갈께."
<알았어요.>
전화 속 희진의 목소리는 잔뜩 풀이 죽어있었다. 그런 희진을 달래며 전화를 끊는 윤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긴장이 풀린건지 스르르 몸이 저절로 시트 깊숙이 파묻혀지는 기분이다. 25년, 길다면 긴 시간이건만 여지껏 살아오면서 오늘처럼 무섭고 긴장해보긴 처음인 것 같다. 형 윤성과 함께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놈 저런 놈, 깡패고 양아치고 별별 희안하고 상식에서 벗어난 놈들을 많이도 만나봤지만 희진의 아버지처럼 무서웠던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친 아버지가 맞기는 한건지, 아니 어떻게 한 두 살 먹은 애도 아닌데 그렇게 무식하게 빗자루를 휘둘러 댈 수 있는 건지, 더구나 사내 자식도 아닌 스물 두살 다 큰 여자애한테 말이다. 윤호의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혹시 입양을 했다면 모를까.
윤호는 바로 길 건너에 아직도 불이 켜져있는 동물병원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바로 그 곳, 다짜고짜 윤호의 뒷덜미를 잡은 희진의 아버지에 의해 내팽겨쳐져 무릎 꿇었던 동물 병원을 보고 있자니 어이없는 한숨 밖에 나오질 않는다.
"그러니깐 지금 니놈이 내 딸, 희진이랑 만나는 남자친구란 말이야? 언제부터, 언제부터 남자 친구야?"
"그게.......며......며칠 안됐습니다. 만난건......"
"이름이 뭐야? 몇살이야? 군대는?"
"이 윤호라고 합니다. 올해 25살이고, 군대는 면제를......."
"면제? 왜?"
"그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지금은 괜찮습니다."
교통사고? 교통사고로 인해 군대를 면제 받았다는 윤호의 대답이 뜻밖이라는듯 희진은 그를 쳐다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게만 보이는데 어디를 얼마나 다쳤길래 군대까지 면제를 받은건지 희진은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윤호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래서 그의 차에 장애인 스티커가 붙어있었던 거구나.
"어디서 어떻게 만난거야!"
"에? 그게.......그러니깐...."
"시연이!!! 시연이가 소개시켜줬어!"
"시연이가?"
"응. 시연이 같은 과.......선배의 동생이래. 그렇죠?"
"으......응!! 동생.......동생이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채 우물쭈물 거리는 윤호를 보자 희진이 대뜸 대답을 가로챘다. 울그락불그락 인상을 쓰고 있던 희진의 아버지 얼굴이 시연이라는 이름을 듣자 조금은 누그러지는 기색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심쩍은듯한 표정은 남아있었다.
"시연이 과 선배 동생이라구? 그럼 니놈도 법대를 다니는겨?"
"아.....아닙니다. 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야!! 프리랜서라서 집에서 혼자 일해!! 돈도 잘 벌어!!"
"이것이 버릇없게 어디서 중간중간 끼어들어서 애비 말을 반토막을 내고 있는 거야!!! 누가 너한테 물어봤어!! 지금 이 놈한테 묻고 있잖아!!"
"마......맞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도......돈도 잘 법니다."
"그래? 시연이처럼 똑똑하고 야무진 얘가 허튼놈을 소개해주지는 않았을거고........."
"아버진.......나도 공부는 잘했는데......."
"공부만 잘하면 뭐하냐! 천방지축 선머슴아보다 더 날뛰고 다니면서 똑바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버지......."
"영 연애도 못할 줄 알았더만 그래도 시연이 덕분에 연애는 하는구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시간이 몇시야! 일을 하는것도 아니면서 이런 시간까지 애를 끌고 다녀야 되겠어!!"
"그게 희진이가 일이 늦게 끝나서 그래서 늦었습니다."
"엉? 너 일하는 시간 바뀐거냐?"
"학기 시작됐잖아요."
"아~ 그렇지."
윤호는 뭐가 싶다. 원래 귀가 시간에 맞춰 온 것 뿐인데 괜한 욕을 먹었단 말이 아닌가. 어이없다는 듯 자신을 보는 윤호와 시선이 마주친 희진의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린다. 시연이와 함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 딸 아이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었는데 며칠만에 본 딸이 왠 남자와 함께 차에서 내리는걸 보고 이성을 잃었었다. 생각해보면 학기가 시작되면 아르바이트 시간이 늦춰져 항상 이 시간이 귀가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체면을 구길수는 없다.
"너, 여태 시연이 집에서 지낸다고 했던거 맞는거야? 혹시 이놈이랑...."
"아휴~ 아버지는, 시연이랑 있었다니깐. 말했잖아요. 길에서 다 죽어가는 개를 시연이가 주워다가 치료해달라고 해서, 그래서 같이 있었던거야. 이 사람은 알바 끝나고 나 데려다 주려고 온 거야. 시연이한테 물어봐. 시연인 아직 일 안 끝나서 가게에 있어."
"증말이지?"
"당근 정말이지. 아버지한테 거짓말 했다간 어떻게 되는지 내가 잘 아는데."
"젊은 것들 연애질하겠다는데 굳이 말릴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 늦게 돌아다니는건 볼쌍사나워. 앞으론 일찍일찍 다녀! 알았어!!!"
"네.....넷! 아버님!"
"그리고 내가 계속 지켜볼테니깐, 혹시나 헛튼 맘 먹거나 하면 알지?"
"네!!!"
윤호는 아직도 시큰한 무릎을 두어번 문질러본다. 25년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무릎을 꿇어봤다. 익숙치 않은 경험이었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다. 그리고 앞으로 희진의 남친 노릇을 하다보면 꽤 재밌는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첫댓글 시연이 경찰들 한테~의심받는건가요? 김형사님 예리하시네요~ㅎㅎ 윤성이가 지켜 주겟지요?
윤호랑 희진이가 사귀는 사이가 되엇네요~희진아버님 덕분에 둘이 잘 맞을거 같아요~ㅋ
근데 윤호가 휠체어를 타고 잇엇잔아요~걸을 수도 잇는건가요?ㅎㅎ 회가 거듭할 수록 더더욱~재미잇어요~^*^
미루님! 회가 거듭할수록 재밌있다는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이제 중반으로 들어서는데 이야기가 잘 안풀려 고민이네요. 파이팅을 외쳐주세요.^^
윤호 다리 멀쩡한거예요?? 그런데 왜 휠체어 타는 연기를 하는거죠??? 몇회전부터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뭘까요? 뭘까요???
2초동안님! 적은 내부에 있다는 말......아시죠?^^
재밌는 일들이 오겠지요
하채경님! 아마도 그렇겠죠?^^
파이팅요~~~!!!
쌔끈여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