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강력반 수사반장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근육질에 날카로운 눈, 어디선가 나타나서 악당들을 체포하는 드라마 속 ‘수사반장’이 생각나지 않는가?
구의역에서 조금만 더 가면 서울 동부경찰서다. 경찰서 입구를 지나 강력4반을 찾아가 안석호 수사반장을 만났다. 그는 날치기범 전문가로 이 분야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얼마 전에는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 역삼동 주류도매점 살인사건을 해결한 바 있으며 모범 공무원, 강도 베스트 경찰관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서 안에서 만난 안 반장은 동료들에게 사탕과 함께 조그만 쪽지를 나누어 주는 전혀 뜻밖의 너무나도 ‘친절한 수사반장’이다. 수요일마다 열리는 관내 예배에 직장동료들을 초청하기 위해서다. 사탕과 함께 전해준 쪽지에는 성경구절과 함께 예배에 초청하는 글이 쓰여 있다. 기자가 찾아간 날 왠지 이곳저곳에서 사탕을 먹는 경찰들이 많다 했더니 안 반장이 이미 한바퀴 돌고 난 후였다.
그의 자리 주변에는 박스가 많다. 범죄자들을 검거한 파일들일까? 아니다. 성경들이었다. 안 반장은 수년전부터 재소자들에게 성경을 권하고 복음을 전해 교화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여기 저기 입소문으로 이제는 몇몇 교회들이 안 반장의 사역을 후원하기도 한다.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서는 이들을 변화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재소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이고,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거듭나도록 도와주는 것이에요.”
그가 잡는 범죄자면 대부분 흉악범인데…. 안 반장의 날카로운 눈이 기자의 의구심을 읽어냈는지 곧 서랍을 뒤적거려 몇개의 편지를 건넸다.
“하루하루 참회하는 마음으로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묵상하며 적고 있어요.” “하나님이 저 같이 못난 사람까지도 사랑하신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사형만 당하지 않는다면 교도소 내 전도사가 되려 합니다.”
재소자들이 안 반장에게 보낸 편지였다. 자신을 잡아 감옥에 넣은 안 반장에게, 아니 안 집사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주님을 영접한 재소자들의 눈물이 묻어 있다. 안 반장은 범죄자를 잡는 것 보다 교화된 재소자들의 편지 한통을 받아 볼 때 더 큰 보람을 얻는다. 절도범, 강도범, 살인범에 이르기까지 각종 중범죄자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교화돼 적어 보낸 편지를 읽다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한다.
|
|
|
▲복음을 받아들인 재소자들의 편지는 안 반장에게 큰 위로가 된다. ⓒ 송경호 기자 |
|
| 지금은 경찰서의 유능한 수사반장으로, 명성교회의 집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역시 어릴 적에는 주먹깨나 쓰며 친구들과 사고를 치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소년원에 수감된 청소년들을 보면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매주 한번씩 소년감별소를 찾아 복음을 전한다.
1시간가량 주어진 시간 동안 성경을 가르치며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꺼낸다는 안 반장은, 한 번은 아이들의 처지가 너무 안쓰러워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반장님,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보이는 게 아니래요”라고 했다. 안 반장은 눈물을 닦아 내리며 “그래.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지. 그렇지만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눈물도 흘릴 수 있단다”고 했다. 안 반장은 지금까지 그때 그 숙연한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청소년 수감자들에게는 아버지가 되어서 영적인 진짜 아버지를 전하고 있다. 성경책을 선물하고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놓는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안 반장은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전화 한통을 위해 십수년 간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있다. 그는 얼마 전 검정고시를 봐야겠다는 전화를 받고, 공부에 필요한 모든 교재들을 사다 주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이 되면 안 반장은 기도원을 찾는다. 직장동료들과 재소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다. 기도 덕분인지 안 반장이 이끄는 강력4반은 지난해 상반기 서울지역 3백개 수사팀 중에서 베스트수사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안 반장이 하는 재소자 사역도 그들의 편지 속에서 하루하루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이제는 안 믿는 동료들도 안 반장의 기도의 힘만은 인정한다.
안 반장의 기도제목은 간단하다. “재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180도 변화된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죠. 이전에는 남의 것을 빼앗고 살았다면 나눠주는 삶을 살도록 말이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