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8일(토)
* 시작 기도
(마 8:32b-34)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주님...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들린 사람 둘이 있는데 너무 사나워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를 못하였습니다.
이 때 마침 예수님을 만나 그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차라리 여기 있는 돼지 떼에 들여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허락하자 돼지 떼들이 바다에 들어가 몰사하였습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시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이 사는 그 지방에서 떠날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생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오직 자기들의 재물이 손해를 입은 것에만 집중하였습니다.
물론 가축인 돼지 떼가 몰살된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귀신에게 매여 있다가 해방된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나야말로 재물에 손해를 입고 예수님을 우리 지방에서 떠나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재물의 다소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에 있음을 압니다.
하여 오늘도 그 뜻을 따라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지기를 원합니다.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나의 뜻을 이루고자 예수님을 이용하는 악한 자가 아니라 주님의 뜻에 복종하여 주님과 연합하는 자 되게 하소서.
하여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82:1-8
제목 :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아삽의 시)
1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2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을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
3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5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 나의 묵상
본시에서 시인은 불의한 재판관들에 대한 고발과 이들에게 임할 절대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 경고를 통하여 사회의 정의를 구하고 있다.
1절은 절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세상 재판장들을 판단하기 위하여 법정을 개최하신다.
2-7절은 절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악인을 비호하고 약자를 억누르는 세상 재판관들의 불공평한 재판 행태에 대하여 책망하며 심판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8절은 시인이 하나님을 향하여 종말론적 심판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중에 힘이 있는 재판장들의 모임에서 회의를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들이 재판을 불공평하게 하고 있구나.
언제까지 악한 자들의 변호를 해주고 그들의 편을 들어 줄 것이냐?
가난한 사람이나 고아를 위하여 바르게 재판할 것이며 곤란을 당한 자와 궁핍한 자들에게 공의를 베풀어라.
핍박을 당하는 가난한 자나 궁핍한 자들을 악한 자들의 손에서 구원해 줄 것이다.
재판장 너희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재판을 하고 있다.
마치 깜깜한 밤에 다니는 사람처럼 흑암 속에서 재판을 하고 있으니 너희들 때문에 땅의 질서가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다.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 재판장들을 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너희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죽을 것이다.
일반 지도자들처럼 죽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셔서 이 땅을 심판하소서.
왜냐하면 모든 나라가 다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재판장들이나 고위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나라를 바르게 통치하고 재판하도록 세우신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공의롭게 행하지 않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대로 재판하거나 악을 비호하는 모습에 대하여 참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서 재판하시는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왕이 될 때만 해도 정말 겸손한 사람이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러 와서 온 이스라엘이 너를 왕이 되기를 사모한다고 했을 때 사울은 이렇게 대답한다.
(삼상 9:21)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또한 그가 왕으로 뽑혔을 때 부끄러워서 감히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숨어있었던 것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삼상 10:21-23)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그들이 달려 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이랬던 그가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리치고 난 다음 여인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꼭지가 돌아버린다.
(삼상 18:7-8)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이때가 사울이 왕이 된 지 약 3년 여 정도 되었을 때다.
사울은 이때부터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다윗을 죽이는데 혈안이 된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갈 태세다.
게다가 하나님의 명령은 안중에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울을 버리신다.
그리고 사무엘로 하여금 사울 대신 다윗에게 기름을 붓도록 하신다.
(삼상 16: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이처럼 사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버린 카드가 되고 만 것이다.
물론 그는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왕이다.
그는 무려 40년간 왕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겨우 3년 정도만 왕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살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오직 자기의 탐욕만 이루고자 혈안이 되어 자신의 정적인 다윗을 쫓아다니기만 했을 뿐이다.
하나님은 이런 지도자들을 심판하신다.
이런 지도자들을 심지어 神이라 불러주신 것은 그에 걸 맞는 삶을 살기를 원하셔서이다.
신이라 불리운 재판관 등 최고 지도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 뜻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지위를 유지하고자 온갖 탐욕과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이는 보통 사람들처럼 죽을 것이며 일반 지도자들처럼 넘어져 죽을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긍휼 없는 심판이 임할 것을 의미한다.
나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처음부터 마귀에게 속하여 속이는 자로 살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본성으로 태어나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속이고 넘어뜨리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아왔었다.
내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재판관이 아니던가?
내가 바로 하나님의 버린 카드였던 사울이 아니던가?
나의 삶을 돌아보면 정말이지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죄로 인하여 죽는 것이 마땅한 자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툭하면 하나님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며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려고 했던 자가 바로 나란 자이다.
이런 내게 주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주셨다.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주셨다.
주님은 나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자기 몸을 십자가에 버리기까지 사랑하셨다.
배은망덕도 유분수라고 하였던가?
나와 같이 배은망덕한 놈이 또 있을까?
내 안에, 본문에 나오는 악한 재판관의 모습이 고스란히 있다.
내 안에 권력에 대해서 눈멀어 다윗을 죽이고자 혈안이 된 사울이 살아있다.
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주님 앞에서 말이다.
이런 주님 앞에서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겠는가?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죽음에 처할지라도 그 자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라면 내게 주신 무덤으로 받아 주님과 함께 교제와 사귐을 가지는 것, 그것이 주님의 뜻이 아닌가?
생명까지 다 주시는 주님의 사랑 앞에서 나의 마음이 무너진다.
이제는 내가 주님께 나의 생명을 드릴 차례이다.
지금 이 자리가 바로 주님과 함께하는 영생의 자리임을 믿기에 결코 이 자리를 그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
사실 가장 하기 싫은 것이 말씀묵상이다.
나가기 싫은 곳이 말씀묵상의 자리이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나의 영이 죽는 것을 알기에 나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나갈 때는 의무감으로 나아갈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비록 의무감으로 나아갈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기쁨으로 이끄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영광을 보는 자리로 나를 친히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복음으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주님과 이 교제를 놓칠 수 없다.
그래서 의무감이라도 가지고 나아간다.
그런 나를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품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이다.
주님의 영광이 임하는 주님의 품속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가 뭐라고, 죽기에만 합당한 자인데, 이런 나를 어찌하여 당신의 생명으로 살리셨나이까?
그것은 창세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인함입니다.
나는 부정하고 패역하나 지옥의 땔감으로 쓰지 않으시고 당신의 품속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당신은 나를 神이라 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주신 직분이지요.
또한 지존자의 아들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아들의 생명 곧 아들의 영을 나에게 보내셔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 아빠, 아빠, 아바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이렇게 불렀다고 유대인들에게 신성모독죄에 걸려 십자가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아무리 불러도 그 누구하나 걸고넘어지는 사람이 없나이다.
무엇보다 아들의 영을 허락하셔서 깨닫게 하시고 복음을 듣고 생명을 마음껏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이라 불리는 이 시간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