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매운탕
김유성
오징어 매운탕이란 것도 있나? 혹시 반문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송사리 매운탕, 미꾸라지 매운탕은 있어도 오징어 매운탕은 생소한 느낌이 든다.
엊저녁부터 몸살 기운에 끙끙 앓던 아내가 저녁 하기가 싫은지 물오징어와 재료를 꺼내놓고 대뜸 오징어 국을 끓여보라고 하였다.
가끔 아내가 해주는 오징어국은 멀건 국물이지만 시원한 국물 맛이 그런대로 해장국으로 먹을 만한 것이었다. 그동안 아내가 해주어 먹던 기억을 떠올려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어 보지도 않고 주방으로 가서 음식 준비를 하였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먹어 본 음식에는 어떠한 조미료가 들어가고 어떻게 조리하는 것인지는 통 밥으로도 알 수가 있다. 평소에 요리를 제법 하는 편이라 아내에게 이것저것 조리 방법에 훈수를 둘 정도이다. 처갓집에서도 5자매 중 아내는 제일 음식 맛이 뛰어나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듣고 있다. 다 입이 까다로운 서방님을 둔 탓이랴. 술안주가 되는 요리는 닭 똥 집부터 해서 오리 주물럭에, 안 해 먹던 것도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꼭 한번 직접 해먹어보고 아내에게 전수를 해준다. 아마 내가 요리사가 되었어도 꽤나 솜씨 있는 요리사가 되었을 것이다.
조리대 위에는 물오징어와 호박, 양파, 무 토막이 올려져있었다. 양파를 다듬으며 요리사가 꿈인 중 3 학년인 딸을 불러서 일장 연설을 하였다.
“ 김도예 ! 요리사가 꿈이지?”
“ 녜 !”
“ 요리사가 되려면 먼저 기본이 있어야 돼, 먼저 설거지부터 배우고, 칼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음식 재료를 칼로 썰 때는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썰어야 하는지, 그리고 음식의 간은 어떻게 맞추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아빠의 말에 히죽 히죽 웃는 딸은 아빠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 항상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 평소 아빠가 지 엄마에게 요리를 가르쳐 주기도 하니 이번에는 아빠가 무슨 요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아들과 딸은 아빠가 요리하는 것을 꼭 들여다보곤 한다.
“음식이 익었을 때 모양이 어떻게 나올지를 생각 하면서 음식 재료를 썰어야 해. 보기에도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하지? 그만큼 음식 재료는 어떻게 썰어야 하는지도 생각해서 썰어야 해, 알았지?”
"녜 !“
“ 그리고 음식은 양념의 특성을 알아야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다. 양파의 역할은 설탕대신 단맛을 내는데 쓰이고, 무는 국물 맛을 시원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니까 탕 종류는 이 재료를 적절하게 잘 써야 음식 맛이 제대로 난다.”
그러면서 나는 양파 써는 법, 무를 써는 법, 기타 법, 법을 설하며 음식을 냄비에 담아갔다. 양파1개 , 무1/3토막 , 대파 1개, 애호박 반 토막, 오징어 한 마리 등을 착착 썰었다. 음식 재료가 냄비에서 소복소복 쌓여갔다.
“이 재료를 넣고 매운 고춧가루 한 숟가락, 고추장 한 숟가락 넣고, 다시다 반 숟갈 넣고, 굵은 소금 반 숟갈 넣고, 자 이제 물만 부으면 끝이다. 찌개로 먹으려면 물을 자박하게 붓고, 국으로 먹으려면 물을 낙낙히 부어 끓이기만 하면 땡이다.
물을 붓고 양념이 잘 섞이도록 저어서 끓이기만 하면 되는데, 끓고 나서는 마지막 간을 볼 때 다시다와 소금으로 입에 맞게 간을 더하면 된다.“
한번도 끓여 보지도 않은 오징어 국이다. 아는 척을 해가며 딸에게 오징어 국 끓이는 것을 알려주고, 끓지도 않은 맹국을 한 숟갈 떠서 맛을 보니, 오~ 제법이다. 끓지도 않은 국물 맛이 제법이면 끓었을 때는 더 기막히게 맛이 날 것이다.
딸에게도 맛을 보라고 조금 떠주자 딸도 맹국을 맛보더니 ‘오~ 짱이다 !’ 하는 것이다. 보글보글 끓인 오징어 국을 다 끓여서 떠놓고 저녁 찬을 내놓아 식구가 모두 모여 앉았다. 각자 국물 맛을 보더니 ‘모두 짱이다!’ 하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나도 직접 맛을 보니 국을 끓이려다 매운탕이 되어 버린 맛이 일품이었다. 설탕도 안 넣었는데 국물 맛이 달착 찌근하다. 이것은 호박과 양파에서 우러난 맛이다. 시원 한 맛의 주인공은 오징어와 무의 맛이고, 여기에 얼큰함을 담당하는 고추장과 고추 가루가 열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데는 그만인 것이었다.
얼큰한 국물 맛이 이건 완전히 통 추어탕에 견줄 만한 오징어 매운탕이었다.
우리 40-50 대 이후 사람들은 시골에 살았다면 아마 추억이 다 있을 것이다. 옛적에는 마을 앞 개울가에는 붕어들이 떼로 몰려 다녔다. 내가 어렸을 적 일이다. 그물을 들고 마을 앞 개울가로 나간다. 붕어 잡이를 하면 붕어도 정말 빠르기도 하지만 영리해서 잡기 힘들었다. 요것들은 몰이를 하면 몰이 하는 쪽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 반대로 도망가기 때문에 그물을 들어 올려도 매번 허탕이다. 그래도 붕어들이 사람의 머리를 따를 수야 없다. 붕어들의 그 약아 빠진 전술을 역 이용해 거꾸로 몰아쳐서 들어 올리면 붕어들이 한 사발씩 그물에 담긴다. 이건 어떻게 하냐면, 도망 갈 쪽에다 그물을 꼽아놓고 그물을 등지고 몰이를 해 나가면 붕어들은 그물 있는 쪽으로 도망을 간다. 그럼 재빠르게 그물 쪽으로 후당탕 하고 뛰어가서 번쩍 들어 올린다. 그럼 한바가지는 그물에 붕어들이 펄떡인다. 여기서 왜 후당탕 하는가 하면, 영리한 붕어들의 정신을 빼앗아 버리기 위해서 이다. 그렇게 후당탕 하며 붕어를 잡아오면 어머니가 국수를 넣은 매운탕을 끓여 주셨다. 어머니가 끓여 주시는 붕어 매운탕 맛은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치 끝내주는 것이었다. 매운탕을 먹고 나면 말 그대로 얼큰한 맛에 열이 펄펄 난다. 얼굴에는 진땀이 쏟아지고, 코에서는 콧물이 그렁그렁 빠져 나오고, 얼굴은 벌건 해진다.
또한 봄이 오기 직전 겨울에 마을 앞 웅덩이의 물을 퍼내서 피라미에 미꾸라지들을 잡기도 하였다. 잡은 고기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씻고 들통에다 양념들을 대강대강, 마구마구, 숭덩숭덩 잘라 넣고 끓여서 먹는다. 그럼, 크 ! 세상에 이런 맛이 또 어디 있으랴. 잊지 못할 환상적인 그 맛과 느낌은 이제 경험해 보기 어려운 시대에 지금 살고 있는 것 같아 아쉽게만 느껴진다.
옛날의 그 시골에서 맛보던 매운탕의 맛을 오늘 저녁에 생각지도 않은 오징어 매운탕이 그 맛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닌가. 얼큰한 맛에 얼굴은 진땀이 나며 콧물도 쏟아지고, 이건 뭐 붕어 매운탕, 피라미 매운탕이나 다름없다.
생각지도 않은 오징어 매운탕으로 식구들 모두가 진땀을 흘리고 콧물을 흘려가며 맛있게 먹었다. 몸살 기운이 있는 아내도 얼큰하게 국 한 그릇을 다 비운다. 나도 입안이 얼얼하여 찬물에 세수 한번 하고나니, 아~ 상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