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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무대 부산국제락페스티벌에 서다!!
부산 국제락페스티벌은 당시 꽤많은 인기를 얻는 규모 큰 행사였다. 매년 국내외 많은 밴드들이 3일 동안 출연하여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다. 게다가 무료였으니.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람객이 다대포해수욕장으로 몰려들었고 난 당시 그동네 살고 있던터라 스레빠 질질 끌고 내려가 구경 잘했다. 2007년도 열린 부산락페에 참여할 밴드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공식적으로 초대되어 오는 밴드들 말고 경연을 통해 딱 두 팀을 선정하여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 한팀씩 오프닝으로 부산락페에 오르는 것이다. 밑져야 본전,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경연에 참여한다.
경연은 사전 서류심사를 통해 선정된 팀들을 대상으로 부산대정문앞 거리에 설치된 특설무대에서 라이브 심사를 했다. 전국에서 많은 팀들이 지원했고 라이브 심사는 세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바크는 1집 수록곡중 ‘젊은 인생’, ‘Killer’, ‘Welcome To The Barkhouse’ 세곡을 연주했다. 며칠후 통보된 결과는 합격! 멤버들 모두가 꿈꾸던 무대였고 그중 진하가 제일 좋아했다. ‘행님, 우리 이제 부락 올라가는거요?!’하면서... 멤버들은 연습에 몰두했고 그렇게 운명의 부산락페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부산락페 출연날짜는 8월 5일 일요일.
* 이하 스토리는 당시 바크하우스 다음카페에 올라왔던 글들로 대신 합니다.
- 부산락페 참가후기 (2007. 08.13 20:28) 치훈
지난 2002년부터 작년인 2006년까지 다대포에서 열리는 부산락페에 매년 빠지지 않고 관람했습니다. 크리에이터, 레이지, UFO 등등 나열하기 힘들만큼 많은 유수의 해외밴드들을 바라보면서 정말 이런 곳에 산다는 것에 행복해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다대포 바다가 보이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런 세월을 뒤로하고 올해는 밴드로서 행사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틀간 오프닝으로 오르는 두개의 밴드를 사전홍보공연을 통해 선정한다는 이벤트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행사에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마음으로 욕심없이 신청을 했었죠. 6월말이 장마기간이라 부산대앞 야외무대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비를 맞으며 세곡을 연주했습니다. 이후 운이 좋았던지 60여개의 지원한 밴드 중에서 서울의 엘사와 함께 바크하우스가 선정되는 기쁜 소식을 접합니다. 젊은 친구들도 많은데 우리를 뽑아줬다는데 대해 미안한 마음과 함께 부산출신으로는 유일의 밴드라는 책임감에 다소간의 부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지역방송국에서 취재문의도 있었습니다. 부산K**방송에서는 부산해변축제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해 취재를 해가서 방영이 되었죠.
저희가 말한 주된 내용은 아쉽다.. 락페가 락페가 아니다... 내년엔 이러지말자... 다소 쓴소리를 뱉았습니다. 부산락페의 협찬방송인 M**에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만 할말은 하자였죠. 그리고 공연 3일전에 M**방송국에서도 취재요청이 있었습니다. 공연전 연습하는 모습부터 공연까지..
그런 내용으로 취재를 하자는 거였는데 결국 못하게 됩니다. 자세한 얘기는 뒤에..
제가 2일부터 휴가를 얻어 가족과 여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3일 오후 다섯시경 경주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멤버인 웅이로부터 전화를 받게 됩니다. 기타리스트인 진하가 세상을 떴다는... 아무생각 없었습니다. 앞뒤 정리도 안되고...뭐가 뭔지 모르겠더군요. 내일모레면 그토록 고대하던 부산락페 공연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공연따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이런일이 일어났는지..이건 사실이 아닐거야 라는 마음밖에는... 부랴부랴 울산으로 가게 됩니다. 병원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안납니다. 제가 제일 먼저 도착한 것 같더군요. 빈소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웅이가 왔구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멤버들에게 연락을 다 했습니다. 다들 반신반의...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일단 주최측에 연락을 해서 공연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이 지나고...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보면 미친것 아니냐고 하겠지요. 지금 이런 상황에 공연이라니... 먼저 웅이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웅이는 별 말이 없었습니다.(이말에 나를 바라보는 웅이의 표정은 ‘이행님이 미쳤나??’)
이번 만큼은 내 의견을 따라 달라고 말했습니다. 앞뒤없이 공연을 반드시 해야만 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진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부산락페 공연을 해야만 진하를 맘편히 보낼 것 같다는 생각 밖에는... 그렇게 다시 전임 기타리스트인 노진이에게 전화를 하게 됩니다. 전후상황을 얘기한 다음 ‘노진아, 형이 부탁하나만 하자. 곡 좀 준비해주라’ 노진이도 뜬금없는 부탁에 말문이 막히는 눈치더군요. 일단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노진이가 만든 Red One과 For My Crazy Life과 커버곡 두곡을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다시 노진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그렇게 선곡하면 공연에 의미가 없다면서... 진하가 만든 곡을 하겠다더군요. 그래서 Welcome To The Barkhouse를 연주하게 됩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주최측에 다시 연락을 해서 공연을 하겠다고하자 너무 잘 하셨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게 고인을 위해 맞는 것 같다시면서.... 이어 M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시 취재할 수 없냐면서... (이미 그 소식을 듣고 연락이 온거였습니다) 좀 짜증나더군요. 지금 분위기에 무슨....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다음날인 토요일 울산의 모 장례식장에서 진하를 보내고 저녁에 멤버들은 모여서 연습을 하게 됩니다. 진하가 쓰던 앰프와 이펙터, 기타에 아직 진하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밀려오는 울음을 참은게 몇 번 인지... 그렇게 토욜밤을 연습으로 보내고 일요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락페 당일인 일욜 오전엔 날씨가 좋았습니다. 10시로 예정된 리허설도 무사히 잘 끝냈구요. 이후 12시경부터 폭우가 쏟아집니다. 과연 오늘 공연은 가능한건지... 오후 3시경이 되어도 비가 내리자 주최측에서 통보를 해옵니다. 비가 계속오면 저녁6시부터 시작하는데 팀별로 러닝타임을 10분씩 줄인다더군요. 세상에 배정받은 타임이 20분인데 그걸 10분으로 줄이다니.. 1시간 배정받은 팀은 10분 줄여도 50분이지만 고작 20분인 저희는 10분이라니... 정말 때려치고 싶게 만들더군요. 사실 처음 계약을 맺을때 저희가 받은 시각은 40분이었습니다. 그걸 행사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20분으로 줄이더니 다시 10분이라니... 정말 황당할 뿐이었습니다. 주최측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메인으로 올라오는 팀들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힘없는 밴드는 무조건 따라야하는 게 옳은건지...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행사를 진행하는지 알 수 없더군요.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밴드를 끌어온 게 9년. 이까짓게 무슨 대수라고...
결국 예정되었던 4시 30분이 다가오자 비가 뜸해졌습니다. 무대에서 콜 사인이 나오고 저흰 올라갑니다.
먼저 진하의 유골함과 그가 쓰던 선글라스 그리고 기타를 무대 위로 올리고 향을 피웠습니다. 그렇게 진하는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부산락페 무대에 넋이 되어 오르게 됩니다. 공연을 시작하기전 화면으로 진하의 생전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렇게 진하가 먼저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저희와 공연을 함께 합니다.
친구였던 웅이는 드럼에 앉아 연신 눈물을 닦아내고 홍일이와 승환도 침통합니다. 다섯명은 화이팅을 외치고 무대로 나갑니다.
한두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첫곡인 Heaven And Hell이 시작되자 굵은 비로 변합니다. 이어서 Dokken의 Kiss Of Death, 자작곡 Red One을 이어서 연주하고 마지막곡인 Welcome To The Barkhouse를 시작하기전 제가 진하가 남긴 유작이라는 소개를 합니다. 이 곡에서 비는 폭우가 되어 쏟아졌고 마이크를 잡은 홍일은 ‘지금 진하형이 하늘에서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를 외치고 저흰 최선을 다해 끝까지 연주합니다. 물론 저희와 함께 열심히 공연을 즐겨준 많은 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했지요. 무대를 마치고 나서 조금 있다 비가 그칩니다. 그렇게 진하의 눈물이 쏟아지고 나니 저희도 속이 후련해집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정말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해 부산락페. 내년에는 정말 제대로 된 밴드들 모아서 제대로 된 "락페"가 열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락이 뭔지 모르는 밴드들은 이제 제발 여기 부산락페에는 오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헤비메탈의 힘이 뭔지 다같이 힘을 합해 2008년에는 제대로 된 부산락페가 되도록 다같이 힘을 모읍시다!!!
늦었지만 힘든 결정 기꺼이 따라준 멤버들 웅, 홍일, 승환과 흔쾌히 기타를 잡아준 노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또한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와서 빗속에서 함께 해주신 동호회 ‘메탈리안’, ‘위락’에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알립니다. (Bark Bass, 2007.08.04. 01:33) 치훈
바크하우스 카페 회원님들 안녕하십니까. 먼저 이런 소식을 알려드리게 됨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다른 곳을 통해 아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앨범 발매 전부터 저희와 동고동락해 온 기타리스트 배진하君이 어제 새벽 불의의 사고로 고인이 되었습니다. 정말 믿기 어렵고 통탄할 일입니다만 이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저희 멤버들 모두 슬픔에 잠겨 있으며 저희와 진하를 아시는 모든 분들 또한 그 슬픔 엄청날 것입니다. 부산락페참여를 이틀 앞둔 시점에 이런 일이 발생해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떤게 옳은 선택인지 어떤게 맞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부산락페측에 공연불참의사를 전해드렸고 저희는 사태수습에만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번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러 내는게 진하를 위한 길임이 퍼뜩 떠오르더군요. 저희 음악을 사랑해 주시고 저희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바크하우스의 일원으로서 바크하우스의 사운드의 핵심에 섰던 진하도 그걸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공연을 하기로 말입니다. 진하를 대신할 기타리스트로는 전임 바크하우스의 기타리스트인 노진군이 흔쾌히 응해 주었습니다. 이번 공연이 다소 미진하고 부족하더라도 많은 응원 당부 드립니다.
진하는 바크하우스의 기타리스트로서 이번 무대에 같이 오른다고 생각합니다.
진하를 맘편하게 떠나보내기 위해서도 이번 공연은 반드시 치뤄져야 한다는 마음입니다.
비록 그의 육신은 저희 곁에 없지만 그가 보여주었던 음악과 연주는 언제까지나 바크하우스에 남아있을 것 입니다.
진하를 추모하며 이번 공연은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많은 응원과 격려 당부 드립니다.
진하의 명복을 빌면서 두서없는 글 마칩니다.
Rest In Peace 진하
- 권웅 입니다... (Bark drum 2007.08.05. 01:40)
망설이다가 용기 내어 두서없이 몇 자 적어봅니다.. 방금 진하와 연습실 갔다가 집에 같이 왔습니다...
따뜻히 진하를 맞아주는 집사람보고 또 울컥해서 맘이 아프네요..
락페 참가한다고 좋아하던 진하 스트랩도 사고 튜너도 좋은 걸로 사고...
진하유골을 수습하여 지금 제방 제 옆에 있습니다. 오늘 밤 같이 보내고 내일 진하의 마지막 공연을 멋지고 신나게 같이 하겠습니다... 유족의 뜻이기도 하고 분명 진하의 뜻이기도할 것 입니다... 혹 공연이 다른 의도로 곡해를 할까봐 밴드 내부적으로 망설였는데 유족과 여러분들에 응원에 큰 힘이 됩니다.. 내일 공연 후 다대 바다에 산골할 예정입니다... 진하와의 마지막 공연 혼신에 힘을 다하고 훨훨 날려 보내겠습니다.. 부디 편안한 곳으로 가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진하를 아껴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진하야 내일 빡세게 헤비메탈 하자!!!!!!!!!!!!
-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Bark Synth 2007.08.05. 21:43) 승환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공연장을 찾아주시고... 지켜주시고 환호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시지 못했더라도 진하형을 생각해주신 많은 분들께 정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진하형도 여러분 덕택에 맘 편히 좋은 곳으로 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도 흔쾌히 진하형 대신 무대에 올라준... 노진이에게도 정말 고마움을 전하고 싶네요...
요 며칠 멤버들은 정말 힘들고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로써는 무엇보다 더 이상 진하형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제 형의 사진을 정리하면서... 우리의 곡을 다시 들으며 많은 눈물을 흘렸고... 오늘 무대에서는 무엇보다 북받히는 감정을 삭히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으며... 그런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하늘은 비를 내린 것 같습니다... 그런 저희들에게 힘을 주신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항상 저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럴때 깨닫게 됩니다...여러분의 힘이 저희에게 닥친 시련과 상처를... 큰 탈 없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될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진하형은 비록 먼 길을 떠났지만... 마음만은 항상 저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형은 영원한 바크하우스의 멤버이며... 언제나 저희와 함께 무대에서 연습실에서 웃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잘가세요... 형...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슬퍼 않을께...
No more cry... no more tears...
- 노진입니다. (Reb Beach 2007.08.06. 10:14) 노진
글을 올릴까 말까 며칠전부터 망설이다가 몇자 적어봅니다. 제가 팀을 떠날때는 엘범 작업에 들어가던 시점이라 미안한 마음 금할길이 없었는데... 진하형이 그자리를 채워 주셔서 정말 든든했고 그리고 최근까지 바크하우스가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 멤버였던 저로서도 많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딱 일주일전 형님들 마지막 연습인 월요일 연습때에 락페준비를 어떻게 하고 계시는가 하는 호기심에 놀러 갔더랬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행님들의 포스에 다시한번 놀라고 진하형과도 이펙터나 기타 등 장비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리허설 할때 사운드 봐주겠다고 하고...... 그게 마지막 이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날 연습실에서 진하형 유골을 엠프 옆에다 두고 저로서는 단 한 번의 연습을 했습니다. 시간도 부족 하였고 마음도 정리가 안되는 상황 이었지만 진하형에게 도와달라고 혼자말을 계속 하기도 했구요...
드디어 공연에 들어 갔습니다. 당일에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드센 비를 맞으면서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진하형도 무대에 함께 했구요. 'Welcome to the Barkhouse' 만큼은 잘하자고 그렇게 다짐 했는데... 실수도 있었지만 진하형이 예쁘게 봐주었기를 바랍니다. 치훈형 말씀대로 그 비는 진하형의 장난이었는지 아니면 눈물이었는지... 공연을 마치고 조금 있다가 거짓말 같이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 했습니다.
이래저래 정리하고 식사하고 갑자기 몰려오는 피곤에 다른팀 공연을 조금 보다가 귀가 했습니다. 형님들 다들 무사히 출근 하셨는지요? 그리고 무대에서 보니 익숙한 얼굴들의 우리 패밀리들...^^;
모두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공연을 하고나니 저도 마음이 조금더 편안해지는 느낌 입니다.
진하형님 다음에 꼭 다시 만나서 그때는 저랑 트윈기타로 꼭 한번 합시다!!!
편히 쉬세요...
- 진하 형에게 보내는 편지... (Bark Vocal 2007.08.06. 21:31) 홍일
저 멀리 갔으니...이제 반말좀 해야 겠다...^^
화 내지 말고....^^ 난 형이 이렇게 무책임 할 줄은 몰랐다....
올라가서..곤장 100대 좀 맞아야 쓰것다...이제 좀....... 뭐..........댈라 카는데.......혼자 도망가나.
우리 두고 가면 위에서 상 준다나.......아님, 위에서...웅형닮은 코지 하고 만나기로 한거 아이가...
너무 하다......진짜로....그래...행님....누가 잘 되나 함 해보자...^^
너무 아쉽다 아이가...졸나게 고생해서 앨범 내 놓고....씨.......뭐 하는 짓이고...
왜.........남자 눈에 눈물 나게 만들고 그라노.....정을 줬으면 끝까지 지키는게 남자의 약속인데...
정말 야속하네....
난 그렇게 생각한다..행님...우리 바크...더 열심히 해라는 뜻으로...생각한다...
위에서...웅형 닮은 코지하고...앨범하나 내고...잘 되면 하나 내려 보내도......
씨........얼마나 잘 되는지 함보게......바크 함 지켜봐도......행님...
또 형이 지켜주라~~ 치훈햄...웅햄...승환햄...그리고 나...건강하고...바크 잘 될 수 있도록 말이다..
까칠한 홍일이가...편지 쓴다...
- 맘아프지 않은 곳에서 항상 웃으면서 지내거라.. (광일 2007.08.07. 15:44) 홍일 셋째형
며칠을 멍하니 지냈습니다. 술도 많이 마시고,.. 진하의 마지막 공연에 못내려가서 정말 아쉽습니다.
홍일이 한테 전화 받고 한참 멍하니.. 머리가 하얗게 되더군요.
많은 시간, 많은 얘기들은 못했지만 친동생처럼 생각했던 놈인데..
홍일이의 락페때 사진을 보니 눈물이 나서 어쩔줄을 모르겠더군요..
다들 정말 힘든시간을 진하를 위해서 수고하셨습니다.
진하 그놈 하늘나라에서 멤버 모을라면 힘들텐데.. 바크하우스 같은 팀들이 있을라나..
치훈행님 .. 어깨가 많이 무겁겠습니다. 다들 마음 다 잡게 행님이 다시 한번 힘을 넣어주세요
멀리서 나마 항상 제 가족처럼 생각하며 응원하겠습니다.
진하한테 멋진 음악 선물 해 주세요.
바크의 음악이 저 멀리 하늘나라에 있는 진하에게 들리고 들려, 먼저 간거 후회 좀 하게요.
다들 힘내세요..
-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Bark Bass 2007.08.06. 16:17) 치훈
진하를 멀리 떠나보내고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어제 공연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셨던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어제 무대에 오르기까지 정말 열심히 노력한 진하가 없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밴드의 리더로서, 맏형으로서 공연강행결정을 단독으로 한 것에 대해 멤버들이 원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번 공연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어제 공연 직전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마지막 곡인 웰컴투더 바크하우스에서 폭우로 변해 쏟아지는 비가진하의 눈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갈망하던 무대에 비록 그의 육신은 함께하지 않았지만 비로 변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덮은 것은 아닌지... 진하의 모습이 떠오를때마다 울컥 밀려나오는 눈물을 참은 것이 수십번... 진하를 기억하시는 여러분들의 마음도 같으리라 여겨집니다.
어제는 바크하수스 9년의 세월 동안 최고의 연주였고, 최고의 무대였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가슴에서 나오는 뜨거운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오늘 다대포 파도소리 들리는 편안한 곳에 진하의 넋을 보내고 왔습니다. 그의 넋은 항상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 함께 할 것입니다. 이제는 진하를 놓아줘야 진하도 더 좋은 곳에서 아름다운 연주를 하지않겠느냐는 마음으로 이제는 보냅니다. 이제 바크하우스는 진하의 좋은 모습만을 기억한채 더욱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척박한 환경이나 주변의 여건 따위에 굴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것은 진하의 바램이자 여러분의 바램일 것입니다. 바크하우스 계속 지켜봐주시고 많은 응원 당부 드리겠습니다. 카페글로, 전화로, 문자메세지로 위로의 말씀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진하야.
너의 연주는 정말 아름다웠고 최고였다. 이제는 너의 그 수려한 멜로디를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크지만 너를 대신해 우리가 열심히 할게. 좋은 곳에서 편안히 눈감고 쉬려무나. 정말 고마웠다.
잘가거라.
- 2007년 8월 16일(목) 부산일보 문화면 입력시간: 2007. 08.16. 09:30 최혜규 기자
- '록페' 유일한 부산 인디밴드 '바크하우스'
- "최상의 무대에 동료를 묻었다…"
- '촌스런 헤비메탈' 하는 열정적인 직장인 밴드
- 꿈의 무대' 앞두고 기타리스트 배진하씨 사망
지난해 11월, 결성 8년 만에 자체제작한 1집 음반 '웰컴 투 더 바크하우스'를 위해 카메라 앞에 섰던 멤버들. 왼쪽부터 이달 초 불의의 사고로 숨진 배진하씨, 그리고 정홍일, 이승환, 권웅, 최치훈씨.
14일 늦은밤 부산 사상구 감전동 한 공장 지하 연습실에서 부산의 인디 밴드 '바크하우스'의 멤버 다섯 명을 만났다. 원래 매주 금요일이 연습일인데 이 날은 휴일인 광복절 전날이라 모였다. 퇴근하고 마산, 창원에서들 오느라 밤 9시를 넘겨야 다 모이고 보통 음악 듣고 사는 이야기하다 자정께 연습을 시작하면 새벽 서너 시에 집에 돌아간다고 했다. 악기를 내려놓은 그들은 사회복지사, 전자회사 연구원, 군무원, 사무용품 유통업, 학원강사. 남들은 그들을 '직장인 밴드'라 부른다.
'바크하우스'는 지난 5일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을 달궜던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둘째날 오프닝 무대에 섰던 유일한 부산 밴드다. 지난 6월 부산대 앞 거리무대에서 가진 페스티벌의 사전 공연에서 전국 14개 인디밴드들이 겨룬 결과 두 팀이 뽑혔는데 자칭 "록 중에서도 제일 촌스러운 헤비메탈을 한" 그들이 그 안에 들었다. 페스티벌 조직위 관계자는 "심사단 사이에 이견이 없을 정도로 잘했다"고 했다. 정작 그들은 "'잘 보이겠다'거나 '쪽팔리면 어떡하나'하는 부담 없이 공연한 게 좋았던 모양"이라고 했다. 그것은 1998년 창원에서 같은 직장에 다니던 최치훈(39, 베이스)씨와 정홍일(31, 보컬)씨가 4인조 밴드를 시작한 날로부터 9년째 음악을 지켜올 수 있었던 힘이었다. 몇 차례 멤버 변동 끝에 2000년 권웅(33, 드럼)씨, 2005년 말 이승환(32, 건반)씨, 지난해 4월 배진하(33, 기타)씨가 합류해 라인업을 꾸리고 지난해 11월 드디어 정규음반 '웰컴 투 더 바크하우스'를 내놓았을 때에도 '스트레스 받지 말고 하자'는 밴드의 모토는 변하지 않았다.
6월 말,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오프닝 공연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고도 주 1회 연습은 칼같이 지켰다. 물론 "늘 그랬던 것처럼 점심 빨리 먹고 1시간 더 연습"했던 권웅 씨처럼 각자의 개인 연습도 있었기에 공연 준비는 문제없었다. 하지만 "올라가서 박살나게 놀자" "다 죽어봐라" 하던 각오는 공연 이틀전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무색해졌다. 지난 3일 새벽 기타리스트 배진하 씨가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최치훈 씨는 "곧바로 공연을 취소하고 웅이랑 멍하니 앉아 있는데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진하를 잘 보내는 길인 것 같았다. 전 기타리스트에게 부탁해 딱 한 번 맞춰보고 진하가 치던 기타와 그의 유골, 선글라스를 올리고 향을 피운 뒤 무대 위에 올랐다"고 정신없던 사흘간을 기억했다.
5일, 부산에는 비가 내렸다. 눈물을 닦고 무대에 올라 고인이 만든 마지막 곡 '웰컴 투 더 바크하우스'를 부를 때는 폭우가 쏟아졌다. 멤버들도 울었다. "전적으로 진하 형을 위해 무대에 오르자"던 모두의 마음이 최상의 무대로 빛났다. 오프닝 밴드 선정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던 고인은 그렇게 멤버들의 가슴에 묻혔다.
그들은 지난 14일 밤 새로운 기타리스트 현재봉(26)씨와 첫 연습을 한다고 했다. 이승환 씨는 "'직장인 밴드'라는 말은 '직장인'이니까 못해도 된다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것, 내가 선택한 것" 그 자체가 곧 목표인 '그냥 인디밴드' 바크하우스의 음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그 비를 수증기로 바꿀 만큼의 열정과 열기를 내뿜은 부산 헤비메탈의 자존심 바크하우스를 공연이 끝난 직후 만났다.
[BIRoF 기자단] 취재 박정환 방미혜
Q. 바크하우스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희는 98년 결성후 지금까지 9년 정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헤비메탈을 하고 있고, 부산을 위주로 활동중입니다. 다들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공연을 하지는 못하지만 기회가 되는대로 공연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Q. 오랜 기간 동안 활동하시고 작년에 첫 앨범을 발매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A. 밴드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음반을 만든다거나 하는 욕심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던 중에 음악을 하면서 우리의 음악에 대한 결과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취지에서 기획사를 통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음반을 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Q.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사전행사에 참가하여 치열한 경쟁 끝에 록페스티벌에 참가하시게 되었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A. 우리 멤버들은 각자가 아닌 하나로 움직이기 때문에 공연이 있으면 되도록 참가하려 해요. 이번에도 사전행사라고 참여하지는 않았고 그냥 공연이라서 참가했는데 좋게 봐주셔서 여기까지 오게되었네요. 오늘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는데 공연을 한 지금 많이 홀가분 하네요.
Q. 바크하우스라는 밴드명이 특이한 것 같은데 바크하우스의 뜻이 뭔가요?
A. 바크하우스라는 밴드명을 만들 당시에 큰 의미를 두고 만들지는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의미가 있게 만들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설명을 하자면 바크는 짖는다의 의미도 있고, 마시는 바카스의 의미도 있어요.
Q. 80년대의 헤비메탈 장르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아무래도 80년대라고 하면 음악의 멋보다는 음악의 본질을 깊게 파고들었던 시기가 아닌가 해요. 사운드나 다른 쪽으로도 음악을 멋 내고 꾸미기보다는 음악을 하면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이고 음악을 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80년대 헤비메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이고 그 힘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우리가 헤비메탈을 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에서가 아닌가 합니다.
Q. 오늘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오프닝 공연을 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A. 많이들 응원하러 와주셔서 좋았어요. 모든 것을 잊고 무대에 집중할 수 있어서 편안했고 이 것이 헤비메탈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즐거운 무대였습니다. 사고 없이 무사히 록페스티벌이 마무리 되길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각오 한 말씀 해주세요
A.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음악을 하고 싶어요. 비록 멤버를 잃었지만 그와 우리를 사랑하는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2021.3.13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written by STE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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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힘든글이셨을텐데 공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아무 많이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크하우스의 음악이 끝나지 않는 한...
언제나 함께 하실겁니다~
지금 읽어도 마음이 멍합니다
힘들고 마음 아픈 가운데서도 공연 무사히 마치신 밴드분들게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