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정은 여행을 좋아한다. 단순히 시공간의 이동이 아닌, 삶에 있어서 균형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정신적 여행’을 즐긴다. 개인전 전시(일우스페이스, 3월 2일까지) 이후 복잡한 사고를 내려놓고 다시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로서 마음을 가다듬으며 새로운 ‘여행길’에 오른 이헌정. 2004년 이후 줄곧 그의 베이스캠프가 되고 있는 ‘캠프 A’, 그의 양평 집에서 함께했다.
에디터 신혜원 | 포토그래퍼 임태준
1 이헌정 작가가 직접 지은 캠프 A. 그의 집과 작업실, 갤러리가 함께 모여 있는 곳으로 이곳은 지하에 마련한 갤러리 공간이다. 이헌정의 작품과 회색빛 콘크리트,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어우러져 멋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2 작업실 위 2층에는 미팅을 할 수 있는 사무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멋 부리지 않고 무심한 듯 시크해 보이는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 공간이다.
3 2004년 캠프 A를 지을 때 함께 지은 장작 가마. 작품의 90% 이상이 이 가마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4 작업실에서 테이블을 만들고 있는 이헌정 작가. 타이틀을 규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대부분 도예 작업이 기본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5 이헌정 작가의 도예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갤러리. 건축을 할 때부터 선반을 만들 생각으로 집을 지을 때 안쪽으로 들어가는 철근을 길게 빼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헌정은 흙으로 그릇을 빚기도 하고, 조명과 가구를 만드는가 하면 그림도 그리고, 설치 작업도 하고, 얼마 전에는 소규모 디자인 집단으로 ‘BADA’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까지 하고 있다. 요즘엔 예술의 경계도 사라지고 디자인과 공예의 경계도 무너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헌정의 활동 영역은 참 넓디넓다. 그래서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이름 앞에 무슨 타이틀을 붙여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저는 그런 게 좋아요. 이렇게 경계에 서는 걸 즐깁니다. 어느 패거리에 속해서 안심하며 있는 것보다 경계에 서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쪽 저쪽 들고 나는 게 좋더라고요.” 이헌정의 이런 성격과 성향 때문인지 외부에서 그의 소식을 접하는 에디터가 보기에 그는 어떤 젊은 신진 예술가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현재 오른 자리에서 안주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재미있는 컨셉의 전시를 펼치며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깊은 공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술가의 길을 걸으면서 절대 이렇게는 되지 말자고 결심한 게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작가를 빙자한 건달, 그리고 또 하나는 동정 받는 예술가예요. 그러니 건달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작품 활동에 투자해야 하고, 동정 받는 예술가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역시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전시도 해야겠죠.” 이헌정은 일생의 반은 육체노동이고, 디자인의 본질 역시 노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다. 그리고 그는 이 노동을 기분 좋게 즐긴다. 이곳 양평에 집을 지을 때도 포천 작업실에서 오고 가며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작품을 구상하고 만드는 노동을 즐겼다고 한다. 모형을 100개나 만들며 직접 설계를 하고 시공에 참여하는(시공 책임자 역할은 물론, 난간 용접을 비롯해 인테리어의 대부분을 그가 직접 참여하는 등 기술자 역할까지 했다) 일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노동 그 자체인 피곤한 일인데 밤에는 쉬지 않고 열심히 도예 작업을 했었다니 집과 일에 대한 지나친 애정 없이는 할 수 없지 않았을까 싶다.
1 일우스페이스에서 3월 2일까지 열리는 이헌정의 개인전 . 예술가가 생각하는 건축, 건축을 즐겁게 볼 수 있는 법을 32점의 작품에 담았다.
2 전시 작품 중 축소판으로 만든 도시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의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기차는 앞쪽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 도시의 모습을 이 박스 안에 보여준다.
3 마치 다양한 집이 모여 있는 마을을 보는 듯한 작품이다.
4 전시장에 설치한 높이 4m에 이르는 집 형태의 조형물. ‘공예가의 방’ 또는 ‘건축가의 그릇’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이 작품 안에는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명상 체험을 해볼 수 있도록 했다.
“수중에 쥔 돈도 별로 없이 우연한 기회에 땅을 사 계약하게 됐고, 여기에 집과 작업실을 지어야 하니 열심히 작업해서 돈을 벌어야 했죠. 동정 받는 예술가는 되지 말아야 하니까요.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에서도 알아주고, 여러 곳에 소개도 되며 좋은 결과가 따랐던 것 같아요. 이곳을 짓는 데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관여했으니 그 애정도 남다를 수밖에요.” 그의 노력으로 2004년 완성한 이곳은 크게 집과 작업실 두 채로 나뉘어져 있고, 지하에는 전시장을 마련해놓았다. 세 공간을 이동하는 데는 외부로 나와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가고, 약간 걷는 노력도 필요하다. 불편한 움직임을 통해 그에게 노동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곳이다. 건물이 계단식으로 설계된 이유는 경사가 있는 땅의 지형을 그대로 살리고 싶어서였고 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용한 재료가 갖고 있는 메타포를 그대로 전하기 위해 집 내부도 콘크리트나 거푸집으로 사용한 나무틀 등을 벽과 천장에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작가 이헌정에게 집이란? 집 구경을 하다 문득 궁금해져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행을 생각하고, 여행을 준비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곳의 이름을 ‘캠프 A’라고 붙인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그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여행은 단순한 시공간의 이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 균형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정신적 여행’을 말한다.
그와 집 지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이번 전시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건축으로서의 모델’) 이야기로 이어졌다. 건축에 관심이 많아 지난해 건축학 박사 과정을 마치기도 한 이헌정은 예술가가 생각할 수 있는 건축, 건축을 즐겁게 볼 수 있는 법을 전시에 담았다. 빛, 색, 공간, 물성 등 건축의 요소를 테마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흥미롭게 펼쳐져 있다.
1 전시 오픈 후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그만의 고요한 시간을 누리고 있는 이헌정 작가.
2 초벌구이 전 건조 중인 이헌정 작가의 그릇.
3 집 안, 눈이 시리도록 파란 벽에는 그가 2000년에 작업한 작품이 걸려 있다.
4 집 현관에는 그가 만든 세라믹 타일이 깔려 있다. 이 자체가 작품인 셈이다.
5,6 이헌정의 집과 갤러리, 작업실에는 그의 멋진 작품들이 무덤덤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자연스런 질감과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들.
7 캠프 A 사무실에 놓인 이헌정의 테이블 작품.
“작품에 대해 제목이며 작가의 의도, 자세한 설명 등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작가가 50~70% 를 제공했다면 나머지를 채우는 건 보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의도와 달리 작품을 봐줄 때 더 재미를 느낍니다. 그릇이나 가구도 마찬가지예요. 사용자가 원칙 없이 사용해주길 바라죠. 예를 들어 내가 만든 스툴을 의자로 쓰기도 하고, 단지 오브제로 놓기도 하고, 파티에서 스탠드형 그릇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죠.” 이헌정 역시 타인의 작품이나 처음 보는 사물을 접할 때 작가의 의도를 애써 찾는다거나 그것을 이해하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고 편안히 눈 안에 담아둔다고 했다. 이헌정은 2011년 첫 번째 개인전의 문을 열고 이제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그만의 고요한 시간을 누리는 중이다. 복잡했던 생각을 모두 비우고 흙과 불 앞에 차분히 명상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그릇을 만들고자 한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여행’이라고 표현한다. 그에게 여행은 작업의 원천인 동시에 작품 활동의 목적이 되는 행위며 좀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그 고행을 토대로 다음 작업에 완전하게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과 여행 사이를 시소 타듯 오르락내리락하며 균형 맞추기 또한 즐긴다. 이헌정은 늘 새로운 도전과 시도로 보는 이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훌륭한 여행가다. 그의 행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 베이스캠프에 머무는 그의 작은 움직임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 메자닌 구조로 된 이헌정의 집. 침실이 있는 2층에서 본 실내 전경이다. 그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벽을 칠해 마치 바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헌정 작가가 파란색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2 2004년 처음 집을 지었을 때와 가장 많이 달라진 공간이다. 2층 침실 맞은편, 설치 작품만 놓여 있던 곳에 책장을 놓아 벽이 되도록 해 방을 만들었고 침실에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도 놓았다.
3 집 안 중간에 서서 2층 침실 쪽을 올려다보니 1층의 부엌장과 2층의 수납 선반이 모자이크처럼 눈에 들어왔다.
4 2층 다리 옆 설치해놓은 책장. 마치 공중에 띄워놓은 듯 보인다.
5 2층 다리 옆 설치해놓은 책장. 마치 공중에 띄워놓은 듯 보인다.
6 노출 콘크리트로 된 이헌정 집 외관. 경사진 땅을 편평하게 만들지 않고 지형을 살려 계단식으로 집을 지었다.
![](https://t1.daumcdn.net/cfile/143937364DABD6EB28)
신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