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6. 막고굴 220굴 ‘무량수경변도’ (‘서방정토경’①)
서방정토 왕생일념하며 아미타불 자비심 계승
정토삼부경 보급 후 신앙 확산 남조시대 아미타불 조성 급증
칠보로 장식된 연못 가운데 연꽃잎서 태어나는 왕생 동자들
시각화된 극락 모습 참배객에 각인되며 염불수행으로 이어져
막고굴 220굴 남벽 무량수경변. 중앙에 무량수불삼존과 왕생한 중생이 화생하는 칠보연못을 중심으로 허공, 지상, 좌우 누각으로 공간을 배치하였다.
어느 문화든 고유한 방식으로 형상화된 이상향이 존재한다. 사회적 모순과 관계 속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그 결핍과 모순을 극복한 완벽한 세계를 꿈꾸게 된다. 잠재된 이상향은 긴 역사의 호흡에서 인간사회가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이상세계가 ‘정토’ 혹은 ‘불국토’라는 이름으로 제시된다. 앞서 살펴보았던 미륵의 도솔천이나 용화세상 역시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장 사랑받고 신앙이 되어온 이상향은 아미타불이 주재하시는 서방정토라 할 수 있다.
경전에서 말하는 서방정토는 ‘극락(極樂)’, 즉 오직 지극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이며, 아미타불의 서원에 의해 건설된 청정무구의 불국토이다. 또한 그곳은 사람이 임종 후에 아미타불의 인도에 의해 왕생하는 불퇴전의 세계이며, 모든 것이 평등하고 뜻에 따라 자연히 성취되는 세계이다.
중국에는 2세기 무렵 ‘불설무량청정평등각경’이 한역된 것에서 드러나듯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정토계 경전이 전파되었다. 정토신앙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정토삼부경인 ‘무량수경’(3세기 강승개역), ‘아미타경’(402년 구마라집역), ‘관무량수경’(424년 강량야사역)이 번역된 이후의 일이다. 칭명염불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이행도(易行道)라는 측면과, 아미타불의 적극적인 가피를 받을 수 있는 타력신앙의 측면은 아미타불의 서방정토 신앙을 급속히 확산시키는 동인이 되었다. 수당시대에 들어서면 서방정토 신앙은 기존에 유행하였던 미륵신앙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추세를 보인다. 불상 조성 명문의 조사와 통계에 따르면(古騏瑛), 남북조시대에 미륵 155건 대 아미타불 37건이었던 비율이 수당시기에 이르러 40 대 183으로 완전 역전되었다.
그렇다면 돈황석굴은 서방정토경전의 신앙을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수나라 시기까지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의 삼존을 중심으로 구성된 설법도 형식이 주를 이루었다. 7세기 초 당대(唐代)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서방정토세계의 장엄을 표현한 변상이 출현한다. 그 중 이른 시기에 제작된 막고굴 220굴 남벽 벽화는 서방정토의 면모를 세세히 구현하고, 이후 서방정토변상의 형식적 틀을 마련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220굴 남벽의 변상이 어느 경전에 의거하여 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으나, 대체로 무량수경전의 내용을 따른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무량수경’에 의하면, 무량수(아미타)부처님은 10만억 국토를 지나는 서방에 계시는데, 그 세계를 ‘안락(安樂)’이라 한다. 이 불국토는 넓고 광대하여 끝이 없으며 산이나 웅덩이 바다 같은 굴곡이 전혀 없는 평지로 이루어졌다. 그곳은 금, 은, 유리, 산호, 호박, 차거, 마노의 7보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보물이 구별 없이 어우러져 만물을 이룬다.
변상을 살펴보면 먼저 화면의 중앙에 녹색으로 채색된 연못이 보이고 그 둘레를 방형으로 난간이 둘러싸서 외부의 칠보로 장식된 지상과 분리하였다. 연못의 상단에는 무량수불이 아름다운 연화좌에 정좌하고 설법인을 취하고 계신다. 그 양쪽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역시 연화대좌에 정좌하고 있고, 그 주위를 수많은 보살들이 둘러싸고 설법을 듣는다.
경전에 의하면 연못은 칠보로 장식되며 8공덕수로 채워졌다. 연못에는 하나의 뿌리에서 사방으로 뻗어난 줄기 끝에 연꽃이 피었는데 모두 꽃잎이 투명하다. 그리고 그 꽃잎 안에 동자들이 보인다. 이 장면은 무량수경의 서방정토를 상징하는 중요개념 중 하나인 ‘연화화생(蓮花化生)’을 표현한 것이다. 경문에서 서방정토에 왕생하는 사람을 상, 중, 하의 삼배(三輩)로 나누었는데, 그 중 상배자는 “칠보로 된 연화에서 자연히 화생”한다고 하였다. 경에서는 비록 상배자에 국한하여 화생을 설하였지만, 중생이 극락에 왕생하는 방식을 대표할 만하다. 벽화에서는 이제 막 왕생하여 화생한 사람을 동자로 표현하여 정토에서 난 순수함과 생동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연못의 좌우 양단에는 칠보로 이루어진 누각을 배치하였다. 2층으로 구성된 누각 안에는 보살들이 있어 마치 설법을 듣는 듯 무량수불 삼존을 향하고 있다.
화면의 상단은 허공의 공간으로 구성하였는데 먼저 곳곳에 궁전, 저택, 누각 등이 각각 높낮이와 크기를 달리한 채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경에서 칠보로 된 건물들이 “바라는 대로 생각에 따라 곧바로 나타난다”고 한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그 위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불보살들을 묘사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찾아와 무량수불과 서방정토를 칭송하고 찬탄함을 표현하였다. 바로 그 위에는 곳곳에 법고, 비파, 나팔 등등의 각종 악기가 스스로 떠다니고 있는데, 경에서 “저절로 연주되는 만 가지의 악기가 있으며” “그 소리는 천상의 소리보다 천억만 배나 더 수승하다”고 설한 내용이다.
칠보 연못의 하단은 불국토의 지상을 묘사하였다. 가운데 연못에 인접한 부분을 보면 칠보로 장식된 지면에 공작, 공명조, 선학 등의 상서로운 새들이 있고, 그 밑에 중앙에는 두 무희가 마주 보며 춤을 추고 양쪽에 악단이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이 장면은 지극한 즐거움만 가득한 서방정토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220굴의 벽화는 서방정토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여 참배자에게 각인된다. 그 효과는 교화와 예배의 차원을 넘어서 관상(觀想)의 염불수행으로 이어진다. ‘무량수경’에 의하면 이와 같은 불국토는 무량수불의 전신인 법장(法藏)보살의 48가지 확고하면서도 구체적인 서원에 의해서 구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이 정토변상 앞에서 선다는 것은 일념으로 자신의 극락왕생을 간구하는 동시에, 아미타불의 서원 속에 담겨진 중생 구제를 위한 대자비심을 계승함을 의미한다.
[1626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