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강순
손가락이 운다 손목이 따라 운다 우는 줄기를 따라 꽃잎이 쓰러지며 운다 우는 것들은 주위를 달래며 운다 감염된 것들은 감염된 줄 모르고 운다 우는 것들은 왜 울음을 선택했을까 세상에 남은 모든 접속사들이 우는 사물들을 따라 운다
바다가 울자 단어가 따라 운다 하늘이 울자 문장도 따라 운다 우는 TV를 달래려고 했더니 플라스틱에 파묻힌 지구가 펑펑 운다 고래도 울고 새끼 상어도 울고 해파리도 울고 모든 관형사들도 운다 울음의 세상에서는 창문을 조금도 열 수가 없다
별들조차 얼굴을 묻고 우는 밤, 당신과 내가 백 년 전에 이별할 때처럼 울음은 울음을 부른다 새가 울고 벌레가 울고 당신이 울더니 백 년 전의 내 두 손이 울고 바람이 울고 치마가 따라 운다
마을들이 따라 운다 집들이 물에 떠가며 운다 붕어 입처럼 지붕을 세상 밖으로 내밀고 운다 지상의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붕 위에서 손을 흔들며 운다 가축들은 우는 하늘을 따라 울고 새들은 우는 허공을 따라 운다 식물들도 뿌리를 들썩이며 운다 울음이 더 필요한 사람들은 멜로드라마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운다
하현달이 구름 뒤에 숨은 이유는 자신의 살을 깎아 먹는 울음을 지상에 전파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손가락이 향하는 모든 곳이 울음으로 전염되는 밤, 나는 달을 찾던 손가락을 비로소 거두었다 백 년 후의 당신이 벌써 등 돌리며 운다
계간 『창작21』 2019년 겨울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