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영우(10·가명)는 아빠가 싫다. 아빠 때문에 엄마가 슬퍼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 2014년 3월 아빠와 이혼한 엄마는 부쩍 짜증이 늘었다. 늘 다정했던 엄마는 이제 영우가 학교에서 돌아와도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엄마를 두고 외할머니와 이모는 “모든 게 네 아빠 탓”이라고 비난한다. 한 달에 한 번뿐인 아빠와 만날 때면 엄마는 “네 아빠가 또 널 늦게 보낼 게 뻔해”라며 신경질을 부린다. 아빠를 만나도 즐겁지 않다. 영우는 결국 “XX새끼야, 너 왜 자꾸 나랑 엄마 괴롭히는데”라며 아빠한테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얼마 뒤 영우는 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사례2. 지난 3월 A(6)군과 B(4)군의 부모는 이혼했다. 네 식구가 함께 살던 시기에도 교수인 엄마는 논문을 쓰느라 지쳐 두 형제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탓하기만 했다. 아빠가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더니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급기야 아빠는 A군과 B군을 데리고 일방적으로 집을 나왔다. 엄마를 못 본 지 7개월째에 접어든 요즘 두 아이는 아무 때나 성기를 만지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이처럼 이혼 가정 자녀들의 정신적 결핍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8월16일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2014년 1∼6월 448명에 불과했던 ‘자녀양육 안내’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이혼 부부 수가 2015년 같은 기간에 1358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등에 따라 본인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이혼을 ‘선택’ 하는 부부가 크게 늘면서 역설적으로 남은 미성년 자녀에 대한 고민이 커진 셈이다. 2013년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의 이혼 건수는 5만9000건으로 전체 이혼의 51.2% 수준으로 절반 이상의 가정이 미성년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해체’ 수순을 밟는다. 전문가들은 “이혼 과정에서 당사자인 부부 못지않게 부모의 갈등을 지켜본 미성년 자녀도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아이들, 상실감에 고통… 결별 결심했다면 6개월 내 알려야 “행복하려고 이혼했는데 우리 아이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최근 아내와 이혼한 강모씨는 아홉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강씨의 아들은 평소에 책도 많이 읽고 아빠 말도 잘 듣는 착한 아들이지만, 이혼 후 부쩍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강씨가 “왜 그러냐”고 물어도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상담기관을 찾아간 강씨는 자신이 아들에게 “나간 엄마 얘기는 왜 하느냐”고 전처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며 심하게 다그친 적이 있다는 점을 깨닫고 아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8월16일 경남과기대 사회복지학과 한복연씨의 석사학위 논문 「이혼 의사 영향요인의 남녀 차이와 부모교육 참여 효과 및 설득요인의 조절 효과」에 따르면 협의이혼 숙려기간에 있는 부부 152명을 상대로 이혼 의사 표현 후 누구와 살고 있는지 조사한 결과 ‘본인 혼자’ 31.6%(48명), ‘본인과 자녀’ 31.6%(48명), ‘부부와 자녀’ 2.3%(37명), ‘본인·자녀·부모’ 11.8%(18명), ‘본인·자녀·형제’ 0.7%(1명)로 한쪽 배우자가 자녀를 데리고 사는 경우가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나 때문이야?”… 부모 아픔 함께 겪는 아이들 부모의 이혼은 미성년 자녀에게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큼 충격적인 사건이다. ‘부모의 갈등을 함께 겪는 우리 아이’라는 주제로 지난 5월 서울가정법원에서 대중 강연을 연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은 “이혼은 너무나 흔하지만, 흔하다고 해도 아이에게는 심각한 사건”이라며 “이 과정에서 자녀는 ‘내가 말을 안 들어’ 부모가 이혼까지 갔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서 소장은 “자녀는 부모의 이혼 이후 버림받았다는 상실감과 ‘부모 중 누가 날 데려갈까’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힘들어 한다”며 “이혼을 결심한 부모의 아이만큼 부모가 필요한 아이는 없다”고 덧붙였다.
보통 이혼 과정을 겪고 있거나 이혼한 부부 상당수는 자신이 겪는 감정에 파묻혀 자녀를 돌볼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혼으로 인한 불행을 상대방 탓으로 돌리고 자녀에게 부정적 감정을 강요하거나 전 배우자에 대한 비난을 쏟아 붓기도 한다. 또는 일에 몰두하는 형태로 자기 감정을 추스르는 동안 아이들은 고립감과 자존감 저하로 인한 문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부모의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자녀에게 섣불리 이혼 사실을 털어놓는 것 역시 아이에게 막대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지난 3월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부장판사 이수영)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혼 후에도 한 집에서 살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술김에 “우리 이혼했다”며 자녀에게 이혼 사실을 알린 남편을 상대로 아내가 위자료를 청구한 사건을 심리했다. 재판부는 남편의 잘못을 인정해 “아내에게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혼 후 ‘골든타임’은 6개월”… 개입 나선 법원 전문가들은 부모의 이별과 가정의 해체로부터 자녀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모의 이혼 절차가 표면화된 뒤 적어도 6개월이 넘지 않는 기간 내에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은 “이혼 소송까지 온 부부는 이미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주고받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로 장기간 이혼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혼을 결심했다면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는 1∼6개월 내에 우리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고 이해를 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때를 놓치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으로 자녀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서울가정법원은 이혼 조정 과정에서 상담 및 자녀양육 교육 강화를 골자로 한 새로운 가사소송 모델을 2014년 9월부터 적용하고 있다. 이혼 후에도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혼이 ‘진흙탕 싸움’이 아닌 당사자 모두에게 생산적인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소장(訴狀)에는 최소한의 정보만 기재하고 미성년 자녀의 정보나 배우자의 부정·폭력 등 구체적 내용은 별도로 만들어 제출하도록 했다. 이후 가정법원의 전문 가사조사관이 부부의 갈등 초기 단계에 개입해 가족별로 최적화된 사건진행 방향을 모색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혼으로 배우자로서의 역할이 끝난 뒤에도 자녀의 부모 역할은 계속할 수 있도록 자녀양육 교육과 면접교섭센터도 운영한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과거 부부관계의 법률적 복리에 치우쳤던 이혼 사건의 무게중심이 지금은 미성년 자녀 보호 쪽으로 이동했다”며 “사건이 끝난 후에도 법원이 사실상 자녀에 대한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자녀 연령에 맞는 맞춤형 상담 필요" “엄마, 아빠는 따로 살 수밖에 없지만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단다.”
서천석 행복한아이연구소 소장은 “이혼을 고민 중인 부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아이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혼한 후에도 부모로서의 역할은 계속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혼 자체가 자녀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역할을 예상하고 “‘우리는 헤어지지만 너에게는 변함없는 사랑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자녀는 얼마든지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 에너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소장은 “이미 이혼을 결심한 부모라면 이혼 절차가 다 끝나길 기다리지 말고 아이에게 현재 상황을 조금씩 이야기해야 한다”며 “아이들의 잘못으로 이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화를 내거나 문제 행동을 보인다고 해도 회피하지 말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은 자녀의 연령에 맞는 ‘맞춤형 상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등학생 자녀는 자신이 놀림감이 될까봐 부모의 이혼을 숨기는 경향이 있다”며 “이 친구들에게는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게하고, 공감해주고, 원하는 부모의 모습을 얘기하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재결합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깨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절대 너희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이혼이 오히려 갈등 해결의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고등학생 자녀는 자신을 ‘부모 잘못 만난 피해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에게 다친 마음을 표현하게 해주고, ‘꿈 찾기’ 작업을 진행하면 ‘부모 이혼과 나는 별개’라고 여겨 평정을 되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영유아를 둔 부모에게 ‘돌 잔치에 전 배우자 가족을 불러야 하는지’, ‘한 부모 가정의 가장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에 관해 생활설계사처럼 설명해주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이혼은 할 수 있지만 건강한 이혼이어야 한다는 점도 알려준다”고 말했다. <精吾 문윤홍·칼럼니스트·moon4758@naver.com>
판례:[친권양육] 이혼 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친권과 양육권이 항상 동일인에 귀속되어야 하는지 이혼 등 [대법원 2012.4.13, 선고, 2011므4719, 판결]
[판시사항] [2] 이혼 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친권과 양육권이 항상 동일인에게 귀속되어 야 하는지 여부(소극) 및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이혼 후 자(子)에 대한 양육권이 부모 중 어느 일방에, 친권이 다른 일방에 또는 부모에 공동으로 귀속되는 것으로 정할 수 있는지 여부(적극)
[
판결요지] [2] 민법 제837조, 제909조 제4항, 가사소송법 제2조 제1항 제2호 나목의 3) 및 5) 등이 부부의 이혼 후 그 자의 친권자와 그 양육에 관한 사항을 각기 다른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혼 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있어서 친권과 양육권이 항상 같은 사람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혼 후 자에 대한 양육권이 부모 중 어느 일방에, 친권이 다른 일방에 또는 부모에 공동으로 귀속되는 것으로 정하는 것은, 비록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한 허용된다고 할 것이다. 출처 : (법제처)국가법령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