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무슨 이유로 이 장엄을 건립하기로 발원하였는가? 어느 여래의 권속을 보니, 타방세계 한량없는 부처님들께 공양하고 싶거나, 혹은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려고 한다면, 먼저 이곳에서 사라졌다가 저곳에서 나타나야 하고, 먼저 남쪽으로 갔다가 다시 북쪽으로 가야만 했다. 한 생각 사이 동시(일념일시)에 광명을 놓아 남김없이 비추면서 시방세계에 두루 가서 중생을 교화할 수 없었으니, 출몰의 현상과 전후의 현상이 있는 까닭이다. 그런 까닭에 법장보살이 발원하기를 “원컨대 내가 부처가 될 적에, 나의 불국토에 있는 모든 대보살은 일념일시 동안 시방세계에 두루 가서 각종 불사를 짓게 해주소서.”라고 한 것이다.
(극락국토에 일시변지공덕장엄을 성취한) 까닭에 “ 때묻지 않은 장엄한 광명, 일념 및 일시에 모든 부처님 회상 두루 비추며, 일체중생 이롭게 하네”
묻기를: 위 장에서 말하기를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시방세계에 두루 이른다.”라고 하였는데,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른다(不動遍至)”란 일시의 뜻이 아닌가? 여기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답하기를: 위 장에서는 다만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른다”라고 했기에, 어쩌면 (시간상의) 전후가 있을 수 있으나(‘움직이지 않으면서 이른다’란, 공간적인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 후에 이를 수도 있다), 여기서는 (시간상의) 전후가 없는 “일시(동시)에 이른다”라고 말한 것이 그 차이다. 동시에 이것 또한 위에서 말한 “움직이지 않음”의 뜻을 성립해 준다. 만일 일시가 아니라면 시간상 선후가 있어 먼저 여기에 있다가 나중에 저기에 있는 것이 곧 왕래이고, 왕래가 있으면 “움직이지 않음”이 아니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움직이지 않음”의 뜻을 성립하기 위하여 반드시 일시(모든 걸 일시에 완성함)를 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