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에서 피는 꽃
안영식
어머니!
오늘은 비가 내립니다
봄비 치고는 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공사장 인부들은 비가 오면 모두 일찍 퇴근합니다만
저는 오늘 굴착기 안에서 후드득 거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씁니다
여럿이 사용하는 숙소 생활이라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나는 글을 쓸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가 이렇게 오는 날이면 붉은 황톳물을 따라 어린 시절로 돌아가곤 합니다
국민학교 4학년 여름이었지요
학교를 갈 때는 가랑비가 조금 내려서 우산도 없이 학교를 갔는데 낮에 천둥소리가 유리창을 흔들고 번갯불이 번쩍 거리며 쏟아는 자드락 비가 움푹움푹 패인 운동장에는 금세 붉은 황톳물이 고이고 유리창에는 쉬지 않고 후드득거리는 빗소리가 들렸지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야 하는데 비는 계속 내려서
이제나 저제나 언제 비가 그칠까
친구들이 모두 비가 그칠 때를 기다리면서 장난을 치다가 비가 뜸 한 틈을 타서 집이 가까운 친구들은 하나 둘 모두 집으로 가고
집이 먼 나는 가장 늦게 책보를 머리위로 올려 작은 빗방울을 막으면서 집으로 향했지요
반야골과 석개천에서 내려오는 두 물머리에는 붉은 황톳물이 무서울 정도로 많이 내려왔고 아침에 건너온 외나무다리는 물살에 견디지 못하고 한쪽으로 쏠려서 개살구 나무에 묶어놓은 밧줄에 의지 한 체 물가에 둥둥 매달려 있었지요
다리를 건너야 집에 가는데 다리가 없어졌으니 갈길이 없었지요
돌아서 이모네 집으로 갈까 하다가 사람들이 기차가 다니는 철다리를 건너길래 나도 철다리를 건너기로 하고 철길로 올라섰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아래서 쳐다볼 때는 별거 아닌 것 같았는데
막상 철다리 위에 올라오니 저 아래가 까마득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철교 위에 침목을 하나, 둘, 세면서 건너는데 거의 다 건너 왔을 무렵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려왔지요
기차가 나를 멀리서 발견하고 기적을 울려주었지 싶습니다
급하게 발을 옮기다 그만 넘어지면서 책보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수십 길 철다리 아래로 떨어질 뻔했습니다
재빨리 일어나서 철다리는 무사히 건넛지만 책보를 잃어버려서 시뻘건 흙탕물이 용트림하는 강가로 내려갔습니다
다행히도 책 보는 물가에 떨어져서 강버들에 걸려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다리가 아파서 바지를 걷어 보니 무릎 아래 정강이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습니다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오들오들 떨면서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께서 부엌에 장작불을 지피고 책보자기를 풀어서 물에 젖은 책을 솥뚜껑에다 펴서 말리시면서 왜 이런 날은 이모네 집에 가라 했는데 비를 맞고 왔느냐고 나무라셨지요
타닥타닥 소리를 내면서 활활 타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젖은 옷을 말리면서 어머니께 차마 철길을 건너온 얘기는 못 했지요
무릎이 아프다는 것도 숨겼지요
물에 많이 젖은 책장은 서로 붙어서 낱장으로 일일이 떼어야 했고 누렇게 얼룩이진 책장은 다리미로 곱게 다려 주셨지요
이 책은 한 해 선배가 쓰던 헌책을 사다 주신 책이였지요
새책 살 돈이 없어 콩이나 팥 또는 김장철에 무 배추를 머리에 이고 가셔서 헌책으로 바꿔다 주시곤 했지요
헌책을 사다 주시면서 항상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이셨지요
소장수를 하신다고 집은 하숙집 들리듯 하시던 아버님은 책 한번 안 사주시고 기성회비 한번 안 내주셨지요
아버님이 집에 오실 때는 항상 소를 앞세우고 오셨지요
숙제라도 할라치면 "책 속에서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누구네 집 자식들 보니 공부시켜놨더니 저그 어미 아비만 우습게 본다더라!"
당장 가서 소꼴 베어오라고 호통을 치셨지요
그럴 때마다 어머님은 한숨으로 답했지요
그 시절에도 어떤 친구들은 전과나 수련장이란 책도 책가방에 넣어 다니고 방학 때가 되면 방학 숙제란 문제집도 있었는데 나는 단 한 번도 사보질 못했지요
기성회비를 못 내서 학교에서 벌을 서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어린 내가 장작을 지고 가서 팔기도 하고 학교에서 옥수수 죽을 쑤는데 장작을 지고 가면 소사 아저씨가 기성회비 카드에 도장을 찍어주기도 했지요
농사철에는 농사일 거들고 소 먹이느라고 학교는 가는 날보다 못가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몇 번의 우등상을 받았지요
지금도 비 오는 날이면 물에 젖은 헌책을 말려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떻게 든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어머님과 "공부가 밥 먹여 주느냐"는 아버님의 대립 속에 항상 어머님이 지고 말았지요
4년 전 순천으로 일하러 가서 순천 동강 강변을 거니다가 강변도로 아래 시멘트 벽에 시와 그림이 있어 오며 가며 읽기 시작했지요
나도 시가 쓰고 싶어 졌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중고책 서점이 있어 몇 권의 헌 시집을 샀습니다
그 책들 중에 건설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면서 쓴 김혜화 님의 '인부 수첩'이란 시집을 읽게 되었지요
힘든 공사장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시심으로 살아간다니 부러웠습니다
그 날부터 많은 시집을 읽었습니다
인쇄 냄새가 나는 새책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는 헌책이 나에게는 더 좋았습니다
어린 시절 헌책으로 공부하던 그 습관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들의 시를 베껴 써 보기도 하고 몇 문장만 바꿔 보기도 했습니다
집 떠나 있는 외로움을 문자메시지로 혹은 카톡으로 시 처럼써서 아내와 아들 딸에게 보냈습니다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여보, 당신 시인 같네!"
아이들은 엄지를 치켜든 이모티콘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렇게 시는 나에게 찾아왔습니다
매일매일 몇 편의 시 같지도 않은 시를 쓰다가 평가를 받고 싶어 문학 공모전에 응모를 했습니다
몇 달 후 태안 화력 발전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문학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의 시가 많은 응모작 중에 이번 공모전에서 시조 시인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꿈인가 했습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선생님이란 말도 거짓말 같았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떠 올랐습니다
고맙습니다
남들처럼 많은 학교는 다니지 못했지만 한글이라도 깨칠 수 있도록 헌책이라도 구해 주려고 콩, 팥을 이고 다니시던 어머니가 그리워서 한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어머님 돌아가셨을 때 보다 더 많이 울었습니다
시를 쓰는데 용기가 났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몇 편의 시가 요행으로 당선되었나 싶어
또 다른 문학사에 자유시로 응모를 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신인 문학 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사연을 엠비시 라디오 여성시대에 보내어 방송에 나오는 영광까지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필을 써보고 싶어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수필로 적어 응모했습니다
수필도 등단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제6회 소월문학상도 받았습니다
어머니!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세요
돌아가실 때까지 공부를 못 시켜 한으로 남으셨던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비록 헌책으로 공부했지만 여러 문학지 새책에 제 글들이 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어머님께 보답하는 길은 많은 사람들이 감동할 수 있는 글을 써서 나처럼 못 배운 한이 서린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겠지요
못 배운 나보다 못 가르친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라도 공부는 계속할 겁니다
올 추석 성묘 때는 내 글이 실린 새책들과 상패들을 어머님께 보여드릴게요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