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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 인생의 열쇠 원문보기 글쓴이: 전명훈집사.cr-3
(고난주간) 골고다의 십자가
이사야 53장4절-6절 말씀: 임철수목사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고난없이 부활은 있을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없이 | 부활은 없다 |
마태복음 27장22절과 누가복음 23장18절과 요한복음19장6절에
유대인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많은 유대인 백성들은 예수님을 대대적으로 환영을 했습니다
자기의 겉옷을 벗어서 예수님이 지나가는 길앞에 펴놓고
또 종료 나무가지를 베어서 길에 펴놓고
나무가지를 흔들면서 소리를 지르며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21:9.막11:9)
그 나무가 바로 팜츄리(Palm Tree) 종려나무입니다
또 이 종료주일과 더불어 한주간의 주간이
바로 고난주간(The Agony)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한주간 동안 사역 하실때에
어느때 보다도 고통이 많았고
어느때 보다도 고난이 많았던 한주간 이었읍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3장35절에 보면
지나가는자란 말을 빼고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그래요! 그들은 구경하기 위하여 찾아온 사람들 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들이 보고싶은 그 광경을 보고 싶어서
잔인하게
아주 악랄하게
아주 지독하게 죽어가는 그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 이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의 죽으시는 그 광경을 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당시에 심히 많았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그 모습은
공짜 구경이었고
돈이 들어가지 않는 무료 구경거리 였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자들이 아니라 많은 백성들이
돈안드는 공짜 구경을 하기 위해서 십자가 주위로 몰려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구경거리를 좋아합니다
어느집 불나면 불구경하고
쓰나미로 재해를 만나면 홍수난 물구경하고
눈이 많이 와서 집이 눈속에 파묻히면 눈구경하고
가을이 되어서 오색단풍이 들면 단풍구경하고
거리를 지나다가 자동차 사고나면 사고나서 망가진 차구경하고
옆집에 부부 싸움하면 말리지는 않고 싸움 구경하고
하여간에 구경거리를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고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였습니다
왜냐면 기적과 이적을 행하였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예수님을 구경하기 위해서 몰려들었어요
예수님이 배를 타고 설교를 하면
사람들은 물가에 모여서 예수님의 설교를 경청하는것이 아니라 구경했습니다
벳세다 들판에서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을 먹일때에
그들은 예수님이 떡을 만들어서 먹여 주는것을 구경하면서 받아 먹었습니다
그들은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읍니다
마가복음 2장5절에 보면
지붕을 뚫고 내려오는 중풍병자를 보고
예수님이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면서
그 죄사함 받은 발로 일어나 돌아가도록 만들었을때
그들은 박수를 치면서 신기해 하고 만족해 하며 구경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장소마다 언제나 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예수님을 관심의 대상으로
자기들의 호기심을 채우고
다른 사람이 못하는것을 하니까
신기해서 예수님을 3년을 쫓아다니면서 구경하다 보니까
십자가 밑에까지 구경하려고 온것이예요
저 예수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한 이야기도 있고
또 많은 이적을 행하였는데
마지막 십자가에서 어떻게 죽나 한번보자
십자가에 죽는 예수님을 구경하기 위해서
그들은 십자가 주위로 몰려들은 거예요
그들이 예수님을 사모해서가 아닙니다
다시 못볼 구경거리
놓치지 않고 자세히 보려고 십자가 밑에까지 온 사람들을
성경은 지나가는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애 2장15절)
잠깐 본것이 아니예요
지나가다가 힐끗 한번 쳐다본것이 아니라
자리에 서서 귀를 기울이고
눈을 부릅뜨고 십자가 상에서 피 흘리시는 예수님을 그들은 구경했습니다
그들은 계속 십자가 가까이 가면서 넋을 잃고 예수님을 구경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거기서 흥분하고 즐거움을 얻고 또 전율 하면서 즐거워 했습니다
요한복음19장26절-27절에
자신은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시면서도
육신의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시는 것을 봅니다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행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나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육신의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드리는 모습을 볼수 있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믿는 모든 크리스챤들은 한 형제,자매임을 십자가 상에서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들이란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 요한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장에서
자신이 낳은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슬퍼하고 있는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처럼 섬기라고 부탁하시고
마리아인 어머니에게는
요한을 아들처럼 여기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낳아준 마리아에게 어머니라고 하지 않으시고
여자여! 라고 불렀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써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때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성령으로 태어나셨으므로
육적으로는 마리아가 어머니가 될수있겠으나
영적으로는 어머니라고 부를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로서 말씀 하실때에는 육적으로 나아주신 동정녀 마리아가 계셨으나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을때에는
다시 말씀드려서 창조주 하나님의 위치에서는 어머니가 될수없기에
이러한 맥락에서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하지않고 여자여! 라고 표현한것 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바로 예루살렘의 딸들을 위한 고통이었읍니다
주님은 이 예루살렘의 딸들을 위해서 이땅에 오셨고
이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서
예수님에게 용서받고 살아난 간음녀가 예루살렘의 딸중에 있으면서
아마도 그 순간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꺼예요
유대땅 수많은 간음녀 중에서 주님을 만나 구원받은 여인
악몽과 같았던 그날 수많은 구경꾼과 심판자들 속에서
이제 곧 닥아오는 죽음과 두려움속에서 오열해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이 여인이
주님께서는 돌에 맞아 죽어야할 나같은 여인도 살려주셨는데
죄없으신 주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고 비참하게 죽어야만 합니까? 하면서
울면서 십자가를 따라 올라갔을 꺼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달려서 피를 흘리고 계신데
울다가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그 눈이 열리면서 내가 벌거벗김을 당하고 돌에 맞아서 피를 흘리며 죽어야될 그 죄값을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치루고 계시는 거예요
"웬말인가 날위하여" (새141-통143)
1절-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위해 큰 해 받 으셨나
2절- 내 지은죄 다 지시고 못 박히 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헨가 그 사 랑 크셔라
3절- 주 십자가 못 박힐때 그 해도 빛잃고 그 밝은빛 가리워서 캄 캄 케 되었네
4절- 나 십자가 대 할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들고 눈 물 흘 리도다
5절- 늘 울어도 눈 물로써 못 갚을줄 알아 몸 밖에 드릴것 없어 이 몸 바 칩니다
아마도 십자가 주위에는 나사로도 있고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은 자들도 있고
중풍 들렸던 여인 소경 바디메오
이 모든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저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구나
내 눈 열어주시고
주님 피흘리시면서
눈 감으시는구나
돌에 맞아 죽을나 살려주고 주님 대신 죽으시는구나
나의 문등병 고쳐주시고 주님 온몸에 피투성이가 되시는구나
그 주님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위해서 우는거예요
우리들이 십자가 밑에가야 내가 추한 죄인인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이들을 위해서 오셨고
주님은 이들을 위해서 이적을 베푸셨고
주님은 이들만을 위해서 심판을 받으셨고
이들을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이들을 위해서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가야바 뜰에서 고난받으시고
빌라도 법정에서 모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때
죄없으신 주님을 채찍으로 때리는 로마병정들
그 주위에 예루살렘의 딸들이 서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 주님 고난받는 그모습을 보면서
한마디의 말도 못하고 울고만 있었습니다
주님 잘못한것이 없잖아요
불쌍한 사람 도와주고
병든자 고쳐주고
먹을것없는 사람 먹을것 주고 하시면서 좋은 일만 하셨는데
왜 십자가를 지셔야 됩니까?
주님!우리는 이해 할수가 없습니다
왜! 주님이 피를 흘리고
벌거벗김을 당하고
멸시와 모욕과 천대를 받으시고
그 고통의 십자가의 길은 죽음의 길인데
주님 왜 그길을 가셔야 합니까?
그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십자가 지고 올라가시던 주님이 걸음을 멈추시고
울면서 무언으로 질문하는 이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누가복음 23장28절에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서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자기들은 지금 죄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채찍 맞으시면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는데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울지말고 너와 내 자녀를 위해서 울어라
왜! 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거냐
내가 너희들의 동정을 받으려고 십자가를 지는줄 아느냐
내가 너희들의 눈물을 보려고 십자가를 지는줄 아느냐
내가 왜!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되는지 너희들이 알고나 있느냐
십자가에서 죽으실 만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53장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우리의 죄악?
여러분 우리의 죄악이라는데
우리란 말속에서 우리를 묻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은 나를 위함이요
그가 상함은 나를 위함이요
그가 매를 맞음은 나를 위함이요
그가 손에 못이 박힘은 나를 위함이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이 나를 인함이라.
나 때문 이라는것!
우리들이 먼저 나에 대한 철저한 신앙의 고백이 없이는 그 손 못자국에 대한 감격이 생기지 않습니다
주께서 죽으심이 나의 죄를 인함이라
나 때문이라는것
그냥 모두 다 우리 죄때문에
나에게도 죄가 조금있지만 별거 아니야
그냥 숨어버리려고 해요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죄악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나자신이 우리란 말속에 숨어버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나 때문이라는것!
우리는 그 손의 못자국을 어느정도로 생각했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서 죽었다가 아니라
그 손의 못자국을 생각할때
우리들이 십자가를 생각할때 마다
그 유대인들 때문에가 아니라
우리 때문에가 아니라
나 때문에
여기서 먼저 나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왜! 하나님이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고통을 당했을까?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했기 때문에
하는수 없이 빌라도의 허락을 맡아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엇어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 입니다
진정 우리가 신앙의 고백을 해야 할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은 바로 나의 죄를 인하여서
내가 영원히 죽을수 밖에 없는 그 사랑에서 나를 건져내시기 위해서
그분이 나를 위해서 희생 당하셨기 때문에 내가 살아났고
그의 못자국은
그의 옆구리의 창자국은 나를 위해서 생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뉴저지 사랑의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구경만 하지 않으셨는지요!
지금까지 신앙생활 해오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구경꾼 마냥 구경만 하지 않으셨는지요?
이 시간 주님을 만나야 돼요!
구경꾼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만나기를 사모해야 돼요
찬송가 311장(통185) 을 보면
예수님이 나를 향하여 책망하시는 모습을 볼수가 있읍니다
내 너를 위하여
너희가 나를 주라 부르나 내 말을 따르지 아니하고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부르나 내말을 듣지 아니하고
너희가 나를 신이라고 부르나 나를 의지 하지않고
너희가 나를 생명수라 부르나 마시지 아니하고
너희가 나를 생명떡 이라고 부르면서 나를 영접하지 않는구나
나는 너를 위해 높이 달렸거늘 너는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
하시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하실것 입니다.
마태복음 27장37절에
그 머리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좌패를 붙였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6시간 동안
십자가 위에서 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
혼탁해져가는 그 의식속에서도
자신을 버린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희미하여져 가는 기억속에서 남겨놓은 가상칠언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23장34절에
자신을 처형한 자들을 위해 용서를 비는 사랑의 기도를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는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여기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에서
저희란 당시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으며 희롱하는 자들뿐 아니라
예수를 영접하지 못하고 어둠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온 인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구경꾼들속에 예루살렘의 딸들을 두어서
우리 주님이 그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으시고
그 시대를 위한 일을 그들에게 맡기셨읍니다
바로 오늘날의 주의 종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는 두종류의 교회가 있는데
첫째는 지나가는 교회가 있고
둘째는 예루살렘의 딸들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면 현재 내가 섬기는 교회는
지나가는 구경꾼 교회가 되지말고
우리 주님이 바라시는
예루살렘의 딸들이 모인 교회가 된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재림이 심히 가까이 닥아오는 이때
우리는 십자가 밑에서 주님 발밑에서
십자가 붙들고 주님과 함께 예루살렘의 딸이 되어서 천국의 기쁨을 맛볼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시간 한번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신앙은 나의 믿음은 지나가는 구경꾼 신자는 아니였는지
왜! 나의 기도는 응답이 없는지
왜! 나는 찬송에 감격이 없는지
왜!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는지
혹시 나는 지나가는 구경꾼처럼
십자가 밑에까지 구경하려고 따라가는 구경꾼은 아니였는지
이 시간 다함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시는 마음으로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시면서
사랑의 교회 성도님들 한분도 빠짐없이
자복(自服) 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천국에 입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첫댓글 💖아무도 알수 없는 내일이 있기에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질수 있는것 같아요. 오늘 하루도 즐거운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