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진주 내려가서 오태식 교장한테서 <漢詩 모음> 책 한 권을 얻었다. 대학에서 동양철학 전공하고, 후에 삼성동 현대백화점 문화강좌에서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이병한 교수한데 漢詩 오래 배운 터라 관심이 많았다.
집에 와서 보니 천전 오교장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처음엔 대충 보다가 문득 태식 형의 공부가 깊다는 걸 깨달았다.
早春日暖
조춘에 따뜻한 기온은 강과 호수에 오르고(早春陽氣上江湖)
만물이 소생하니 즐거움 가득하네(萬物蘇生滿樂俱)
창 밖의 한매는 흰 꽃술 열었고(窓外寒梅開白蘂)
시냇가 드리운 버들은 노니는 오리 유혹하네(溪邊垂柳誘遊鳧)
뜬 인생 이건 바로 사로잡힌 헛된 꿈이라 (浮生寔是俘虛夢)
늙으면 언제나 지팡이 도움 원한다네(老叟何時請杖扶)
쟁반의 냉이 채소는 입맛을 돋구니(薺菜盤中輔口味)
자연이 베푼 은혜에 감사하네(自然布德感慈殊)
이 시에서 이른 봄 창밖 寒梅 흰 꽃술에 시선이 간 감각 탁월하다. 뜬구름 같은 인생의 헛된 꿈과 금방 늙어 지팡이 도움 받는다는 달관의 철학 돋보이고, 마지막 구절 쟁반의 냉이 채소에 입맛 돋군다는 구절은 절창이다. 비릿비릿한 현실 물욕에 사로잡혀 권력 금력이 제일인줄 알고 빌붙어 사는 사람은 절대 이런 경지 모른다.
그 다음에 거창 곽면우 선생 생가 복원 현장에 가서 쓴 한시 보고, 또한번 놀랬다. 곽면우 이야기 나오면 오교장과 한시 읊는 사람들 제대로 하는 분들이다. 나는 우리 동기 성증 부친 성환혁 어른의 문집을 진주 모 신문에 전면 한 페이지 소개한 적 있다. 거기 실린 곽면우 선생 이야기는 이렇다.
'구한말에 거창 가북산(伽北山) 다전(茶田)에서 큰 유학자가 나왔으니, 그가 면우(俛宇) 곽종석이다. 곽종석은 원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는데, 고종이 병서(兵書)를 즐겨 읽다가 어느 날 모르는 낱말이 있었다. 측근에게 물어보니 아는 자가 없어 왕이 크게 노했는데, 이때 한 신하가 '영남 선비에 곽면우라는 이가 있는데, 박학하여 모르는 것이 없사오니, 이 사람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였다. 그래 거창 다전(茶田)에 사람을 보내어 뜻을 물어보니, '그것은 이런 뜻이고, 어느 책 어느 구절에 있다'라고 즉석에서 대답했다. 이에 고종은 면우 선생을 서울로 불러 종 1품 벼슬을 제수했다. 종 1품은 정 1품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 정 2품 판서 사이 직책이다.
그 후 선생은 1905년 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을 파기하고 국적(國賊)을 죽일 것'을 상소하셨고, 1910년 한일합방 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울분의 시간을 보내다가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 2674자의 긴 글을 지어 137명의 선비의 서명을 받아, 문인 김창숙(金昌淑)을 상해로 보냈다. 이 글은 상해에서 영어로 번역되어 파리는 물론 중국과 기타 우방국과 국내 모든 향교(鄕校)에 우송되었으며, 이 사건으로 선생은 그해 4월 대구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때 선생은 '나는 살아서 돌아갈 기약을 하지 않고 여기에 왔다. 왜 종신징역을 선고하지 않고 하필 2년이냐?'라고 항의하셨고, 그해 7월 병보석으로 나왔으나, 24일 다전(多田) 여재(如齋)에서 72세로 별세하셨다.
면우의 학문을 계승한 학자가 회봉(晦峯) 하겸진(河謙鎭)이다. 회봉은 27세 때 거창 다전(茶田)에 나아가 면우 곽종석을 배알하고 천인 성명(天人性命)의 진수와 성현 심학(聖賢心學)의 오묘한 진리를 체득하고 마침내 평생 스승으로 섬겼다. 그는 진주 서쪽 50리 수곡산 가운데 있는 수곡면 덕곡마을에 ‘덕곡 서당(德谷書堂)’을 세우고 학문을 가리켰으나, 문장이 당송팔대가들의 문장과 비견될 정도로 뛰어났고, 서당 편액은 백범 김구의 글씨인걸로 보아 이곳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말해 주고 있다.
1946년 77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치니 많은 선비들은 국사(國士)가 세상을 떠났다 개탄하였다. 회봉의 문장에 관하여는 학자에 따라 일치하지 않으나 한결같이 높게 평가한 점에는 이론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회봉의 문장은 우리나라의 대표 고문(古文)이라 칭찬했고, 혹은 여한십가문(麗韓十家文)에 견줄 만하다 했다. 한말 대표 문장가인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은 '김농암(金農巖)과 장계곡(張谿谷)의 문장에 필적(匹敵)한다'하였다.
회봉(晦峯) 하겸진(河謙鎭)의 수제자가 우정(于亭) 성환혁(成煥赫)이니, 이 어른 막둥이 아들이 제기 잘 차고 키타 잘 치는 우리 933 동기 성증 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