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우리 사회에서 부패를 추방하려는
‘김영란법’(부정의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9월 말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을 공개하자
농수축산, 외식업계 등은 상한액이 너무 낮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식사대는 1회 3만 원, 선물은 5만 원, 경조사비는 10만 원이 한도이니
고가의 한우 갈비나 고급 과일을 사는 데 턱없이 부족해 매출이 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부정부패의 추방에 이 법의 통과가 필수적이라고 외치던
매스컴들은 자신들도 적용 대상이 된 이 법 시행이 다가오자 다시 위헌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헌법재판소가 빨리 헌법소원을 결정하라고
촉구합니다.
우리나라에 아무리 정(情)의 문화가 뿌리 깊다고 할지라도 선물이 뇌물과 일맥상통할 때는 막을 도리밖에 없습니다. 일의
보상을 세금으로 받는 공직자들에게 선물까지 줘야 한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죠. 조선시대부터라는 탐관오리의 적폐를 시정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일부의 반대에 움찔할 게 아니라 직종 간의 형평성도 갖춰서 가차 없이 밀어붙여야 할 것입니다.
때만 되면 재벌에게서 떡값을 받은
검사들은 국민들로부터 ‘떡검’이라는 조롱을 들었지만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국회의원만 그 직을 잃었습니다. 성 접대 의혹도 있었죠. 향응은
대가성이 없다는 편리한 구멍으로 빠졌습니다. 병원 의사들은 제약업체나 의료기 업체로부터 거액의 로비를 받아 입건되었지만 결말은 모릅니다. 그런
대가는 의사들이 복용해 보았을 리가 없는 특정 약품명의 집요한 처방으로 나타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뇌물은 국가라는 기계를 경쟁력 있게 돌아가게
하는 기름칠이 아니라 광란하게 만드는 모래 뿌리기입니다.
김영란법의 형평성 상실은 가장 부패하기 쉬운 집단인 무소불위의 국회와
시민단체에 예외를 두고 사회적 강자인 의사(대학병원은 법 적용), 변호사, 대기업 등은 뺀 채 언론인, 교사 등만 옥죄기 때문입니다.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은 공익을 위한 민원 들어주기라는 편리한 구실로 부정청탁의 예외로 인정해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거죠.
그럼 언론인은 공익 아닌 사익을 위해 기사를 씁니까? 처음 만드는 법은 제대로 만들어야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는 부패 잠재 세력의
발호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일례로 4조 원대의 천문학적인 투기이익을 실현하고 튄 론스타에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8억 원을 받은
투기자본감시센터라는 시민단체의 전 대표는 며칠 전 징역2년의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부패가 심한 나라입니다. 청렴도는
2014년 말 국제투명성기구(TI) 조사로 175개 조사 대상 국가 중 43위입니다. 뇌물로 실형을 받은 국회의원들이 즐비하고 학교명을
바꿔달라는 입법 로비의 정치자금 수수도 있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진정으로 ‘특권 내려놓기’를 원한다면 김영란법을 예외 규정 없이 적용받으면
됩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현금영수증 없이 오간 뇌물은 지하경제와 세금 탈루로 연결되었을 겁니다.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는
최대치로 국내총생산의 약 4분의 1, 400조 원 규모라고 합니다. 유럽과 미국에선 지금 지하경제를 줄이려고 500유로(약 67만 원)와
100달러(약 12만 원) 지폐를 각각 없애자고 하는 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5만 원권 발행액의 누적 환수율은 42퍼센트 정도라고 하죠.
나머지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사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김영란법에 대해 “이대로 되면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많이 했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던 게 내수까지 위축시키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토로했습니다. 경제가 침체하니
대통령으로서 큰 걱정일 것이지만 멀리 보면 이 법의 적용으로 인한 침체는 단기적이고 부정부패 추방 효과는 장기적일 것입니다.
이
법안의 기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이 법 시행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에 대해 "부패는 불평등과 불공정을 낳으며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왔다. 부패를 없애는 것은 경제적으로 더 큰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밝혔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더치페이 법’이라는
이 법의 정신대로 공직자도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내면서 로비당하지 않고 소신껏 일해야 나라가 발전할 것입니다.
경기 침체 문제는
명절마다 공직사회의 이해 관계자들에게 주는 선물 대신에 자선단체나 불우이웃에게 선물을 하자는 운동을 벌인다면 풀릴 수 있다고 봅니다. 오래전에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파트의 자기 앞집은 명절이 되면 선물을 계단과 복도에까지 쌓아놓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참 궁금했는데 그 사람의
직업은 공공기관인 무슨 원의 국장급이었답니다.
선물은 꼭 뇌물은 아니고 선의의 눈도장 찍기일 수도 있지만 발전하면 뇌물로 되죠.
기업의 선물이 정당한 절차를 생략하고 세금이나 비용을 감면해주는 부정의 대가로 연결되면 그만큼 국고의 손실을 가져오고 지하경제를 창궐하게 한다고
봅니다.
김영란법은 후퇴할 게 아니라 균형있게 전진해야 합니다. 언론인도 그렇지만 이 사회의 강자들을 모두 포함시켜 부패 감시
대상으로 삼아야 이 나라는 발전한다고 봅니다. 공직의 영향력을 사고파는 것은 가장 큰 부패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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