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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셋하면 간다. 원 투 쓰리!"
연습실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희민오빠의 새 곡을 듣고 싶다는 내 조름으로
세 사람은 나를 앞에 앉혀 놓고 라이브를 시작했다.
나는 곡을 들으며 발끝으로 오는 진동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언제나 발끝으로 오는 이 느낌이 좋다.
무대에서건 길거리에서건 연습실에서건..
"아침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했는데..
이런 기분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어쩌면 날 이상하다고 할 지 몰라."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인 곡.
기타와 함께 윤주언니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으으..나도 예전엔 저런 목소리가 부러웠었지.
갸날픈 미성..나는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하늘을 봐, 뭔가 달라보여.
거리를 봐, 뭔가 달라보여."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듣고 있으면 사람을 끌어당기는 멜로디..
그리고 윤주 언니의 목소리는 아주 예뻤지만..
왠지 곡과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희민 오빠가 보컬이 바뀌면 새로운 스타일의 곡을 쓸거라던 말이..
..왠지 사실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예전 스타일이잖아.-_-
..저 스타일은 내 목소리가 더 어울릴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꾹 참았다.
윤주언니가 들으면 서운해할테니까.
사실 윤주언니는 실력파 보컬이었다.
대학 4년 내내 밴드를 했었고,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내가 보컬을 그만두는 바람에 새롭게 우리 클럽에 영입된 것이었다.
기타와 보컬을 겸할 수 있는 보컬을 찾는 중, 오디션에서 윤주 언니를 찾았고
그리고..지안이가 제일 좋아하는 타입.
나와는 반대되는..미모에 미성을 갖춘 여자보컬...-_-
거기다 성격도 활달하고.
내가 남자라도 저런타입이 너무너무 좋을 것 같다.
"어때, 수아야?"
라이브가 끝나고 멤버들이 테이블로 내려와 앉았다.
나는 웃는 얼굴로 희민 오빠에게 말했다.
"베리 굿. 이거 언제 공연할거야?"
"이 곡 벌써 했다. 너 없으면 우리 공연도 못할 줄 알았냐?-_-"
"이눔 자식 왜 또 수아한테 시비야!-_-"
수아야, 니가 이해해. 너 보컬 관두구 연락도 뜸하니까 툴툴대는거야."
"내가 미쳤어?-_- 난 저 쇳소리 안듣게 되서 요즘은 밤에 잠도 잘와!-0-"
왠지 조금 심통이 난 지안이의 목소리.
나는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티격태격해도 이 녀석과도 2년동안 정이 많이 들었고..
내가 그만둘때 제일 서운해했던 녀석도 이녀석이라는걸 안다.
"근데 저번주에 공연 있었어요?"
"응? 어. 토요일에 새 멤버기념 공연했어.
상민이 형 그만두셨잖아. 새 드럼 멤버 영입 기념으로 토요일날 소콘서트 한시간 했지."
토요일이라면.
토요일이면..그럼?
설마..해성이가 토요일날 나오라고 했던데가 이카로스?
"..새로 들어온 애 어때요?"
"누구? 해성이?"
"..재수없어.-_-"
툭 잘라 나오는 지안이의 말.
그건 맞는 말이지만..너도 만만치 않아.-_-
나는 무시한채 계속 희민오빠에게 물어보았다.
"해성이 언제 들어온거에요?"
"어, 너 해성이 알아? 아 맞다. 같은 학교랬지.."
"왜 토요일날 공연있다고 연락안했어요? 나 이제 나갔다 이거지?-_-"
"아니..저 그게..공연준비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왠지 희민오빠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기분이 묘해진 나는 윤주언니를 돌아보았다.
윤주언니는 무대에서 내려와 풍선껌을 씹고 있다가 싱긋 웃었다.
"해성이 지지난주에 들어왔어. 상민 아저씨 그만두고 바루.
근데 이제까지 우리 밴드 넘버원 꽃미남이었던 지안이가..
해성이 들어오고 나서 밀렸지. 케케케^0^"
"밀리긴 누가 뭘!!!!-0-"
"이번에 콘서트할때도 지안이 팬보다 해성이 여자애들 팬이 더 많았지롱~^0^ 깔깔깔~"
"으악!! 누나 자꾸 이럴거야? 해성이 그 자식이 첫 콘서트니까 꿀릴까봐
지네 오빠부대 동원한거라고!!-0-"
지안이 얼굴이 열받은 나머지 빨갛게 되어 씩씩거렸고
윤주언니는 재밌다는듯이 "케케케" ,"깔깔깔" 등의 웃음소리를 낸다.
..언니. 제발 그러지마. 이미지 깨져.ㅠ_ㅠ
"아무튼 해성이 들어오고 나서 이카로스에 여자애들이 끓어요, 끓어."
"..좋기도 하겠네."
"호오. 수아 너 왜그러니? 혹시 너도 해성이 훼엔?+_+"
"..걔 말고 사장님 매출 올라 좋으시겠다구요.-_-
발음 좀 굴리지마요 언니. 느끼해 죽겠어."
보나마나 희정이와 그 일당들이겠지.
괜히 열이 받은 나는 구석에 놓인 내 어쿠스틱 기타를 집어든다.
토요일날 공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멤버들한테 배신감도 들었고
해성이가 제대로 말해주지 않은 것도 화가 났다.
"벌써 가게? 수아야 이따가 해성이 오면 보구가지.."
"됐어요. 뭐 볼거 있다구. 퇴출된 나는 사라져야지.-_-"
"야 민슝아. 말은 똑바로 해라. 니가 퇴출됐냐?
나가라고 나가라고 해도 안나가고 질기게 붙어있다 니 발로 나갔잖아."
"..지안아. 너 기타로 맞으면..많이 아프거든?-_-"
내 어깨에 맨 기타를 보고 조용해져서 또 궁시렁대는 지안이를 한대 쥐어박으며
희민오빠가 잠깐 기다리라고 한뒤 저쪽 구석에서 뭔가를 들고 온다.
자세히 보니 씨디였다.
"수아야. 이거 가지고 가."
"이거 뭔데요?"
"우리 신곡 데모. 연주해서 미디입혀논거야.
너 공연 못와서 서운해서..이거 갖구가서 들어보라구."
..서운하기 전에 좀 부르지.-_-
그래도 희민오빠의 진심어린 목소리에..나는 씨디를 받아들고 꾸벅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오빠."
"고맙긴 뭘..수아야. 너 그만뒀어도 여전히 우리 멤버인거 알지?
한번 멤버는 영원한 멤버야. 너 그거 잊어버리면 안된다."
여기가 무슨 해병대냐고 궁시렁대는 지안이와 윤주언니와도 인사를 하고
연습실 문을 나서는 내 뒤로 희민오빠가 작게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너무 작아서 끄트머리만 알아들은 말.
"..그 녀석의 D-DAY였는데."
***
집에 오니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냉장고에 늦게 들어올테니 밥먹으라는 메모를 남겨놓고 나갔다.
나는 가방과 기타를 내려놓고, 책상에 앉아 씨디를 컴퓨터에 넣었다.
씨디안에는 미디파일과 악보가 들어있다.
곡명이 D-DAY인 미디파일을 클릭해서 윈앰프에 넣고 재생시켰다.
"..어?"
파일이 재생되고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이상해서 파일을 조금 앞으로 돌려보니 그제서야 소리가 나는데..
드럼과 건반, 베이스만 나오고 있었다.
나는 악보를 아크로벳 리더로 열고 곡을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그 파일에는 정확히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 파트만 빠져있었다.
즉, 내 파트만 빠진 데모파일이었다.
왜 그런걸까..
희민 오빠가 날 생각해서 만든 데모파일인가.
희민 오빠는 항상 내 스타일에 맞는 곡을 써주었다.
발성 교정을 할때도 옆에서 다독거려 주고 곡 쓰는 스타일도 바꿔가면서까지
나를 써포트해준..친오빠같이 고마운 사람.
나는 자연스럽게 기타케이스를 열고 기타를 꺼냈다.
"..아침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쓰셨던 어쿠스틱 기타를 한번 쓸어내리고 기타줄에 손을 대었다.
기타를 연주하고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불러본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희민 오빠의 곡은 멋지다.
이카로스의 리더로써 손색이 없는 곡들을 만들어내면서도 늘 겸손했다.
기타에 맞추어 노래를 흥얼거리며 연습하다가 데모파일을 틀고 연주해본다.
문득 멤버들과 라이브를 했던 때가 그리워졌다.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던 그때가 너무도 그립다.
나는 어느덧 그때로 돌아가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러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질 시간이 되어 노을이 빨갛게 졌다.
답답해진 나는 기타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예전에도 나는 답답할 때마다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는 버릇이 있었다.
우리집은 주택가이긴 하지만 공장 근처라 늦은시간까지 집에 사람들이 많이 없다.
아이들만 하루종일 집을 지키는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공장 퇴근 시간이 되면 늦은 시작 가까운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이 퇴근하곤 한다.
그래서 저녁무렵이면 기타를 들고 가끔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문득 곡을 연주해 보는데, 슬픈 느낌이 마구 치솟아 오른다.
노래안에 나오는 D-DAY는 무엇을 위한 D-DAY일까.
사랑을 위한..아니면 이별을 위한?
희민 오빠가 쓰는 가사는 왠지 중독성이 넘쳐흐른다.
"민수아!!!!"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밑을 내려다보니 해성이가 오토바이에 탄 채 우리집 앞에 서있었다.
"..너 여기 왠일이야?"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해성이에게 말했다.
위를 올려다보면서 해성이가 소리친다.
"너 오늘 이카로스 왔었다며."
"응."
"이제 안아프냐? 대문 열려있네. 나 잠깐 올라간다-"
저 녀석이..내가 아팠던걸 어떻게 알지?
두근 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하는데 좀처럼 잘 되지 않는다.
곧이어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해성이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옥상 계단에 있는 문을 열고..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니네집은 왜 대문을 열어놓고 있어?"
"..아까 들어오면서 안닫았나봐."
"도둑아 들어라- 하고 있구만.
근데 너 왜 옥상에 기타는 들고 올라와 있냐? 광년이처럼.."
"..너 말 참 이쁘게 한다.응?-_-"
여느때와 다름없는 해성이의 목소리.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석을 보며 두근거리던 내 마음도 가라앉았다.
나도 어느새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있다.
해성이가 내옆으로 와서 나란히 옥상 난간밑에 걸터앉았다.
"희민 형이 너 데모씨디 들고갔다고 해서 와봤어.
니 친구말이 감기걸려서 죽어간다더니..괜찮은 모양이네?"
"친구면..민영이?"
"응. 이름이 그런것 같았는데 암튼."
"이제 괜찮아. 감기였어."
"넌 며칠 아프고 나니까 얼굴이 꼭 나만해졌다."
"그래그래. 너 얼굴 나보다 작아.-_-"
"얼굴 작아지려면 맨날맨날 아파야 되겠네."
"너.. 나 저주하러 왔냐?-_-"
"아냐아냐. 친구가 아프다는데 문병 왔어.
"빈손으로 오는 문병 사절이야."
"이게 날 뭘로 보고..위문품 가져왔어!"
해성이가 이윽고 주머니를 뒤적뒤적하더니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내려다보니 쬐끄만 목캔디였다.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야. 넌 문병오면서 양심없게 이거 달랑 한개 갖구 왔냐? 한통도 아니구.."
"저봐저봐. 그렇게 여자애가 뭐든지 질보다 양을 외치면 안돼.
넌 중국집 가면 짜장면도 곱배기로 먹지?"
"니가 언제 나랑 짜장면 먹어봤어?-_- 이게 문병와서 성질돋구긴.."
그날 왜 공연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냐고.
그렇게 물어보려다 그만둔다.
어차피 지나간 일..물어봤자 무슨 소용이람.
내가 들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를 내려다보며 해성이가 문득 물었다.
"그거..니 기타야?"
"응. 우리 아빠가 옛날에 쓰시던거야.
"마틴이네. 좋은 기타다."
"응. 좋은거야.^-^ 이상하게 일렉보다 어쿠스틱 기타가 더 정이가."
"말 그대로 어쿠스틱하니까. 곡 연습해봤지. 어때?"
"..어. 좋던데."
어느덧 땅거미가 완전히 내리고..어둑어둑해진다.
해성이와 나는 잠시 말없이 난간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왠지 이 침묵이 어색해서..나는 기타에 손을 살짝 얹었다.
"..아침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했는데..
이런 기분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어쩌면 날 이상하다고 할지 몰라.
하늘을 봐, 뭔가 달라보여.
거리를 봐, 뭔가 달라보여."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해성이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앉아 있다.
나는 처음으로 녀석의 옆모습을 보았다.
한번도 나란히 앉아있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직까진 아무도 모르고 있나봐.
아무렇지 않나봐 느낄 수 없나봐.
눈을 감아, 그대로 멈춰서.
잘 느껴봐, 하나 둘 셋 하면 눈을 떠.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상상도 하지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이런 날을 기다렸어.."
어느새 녀석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
드럼을 치고 있는 것이리라.
소리없는 드럼과, 한여름밤에 어울리는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심하게 허스키한 내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서 옥상에서의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첫댓글 우와+_+ㅋ 이거 진짜 재밌어요+_+ 다음편이요오오오오ㅋㅋㅋ
아주 재밌게 잘 읽었답니다. 좋은글 잼난글 많이 써 주세요.^^
잼있게 읽어주셔서 넘흐 감챠드려여^^
재밌네여~^^계속열심히 써 주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