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김학순 증언과 윤미향 재판
----일본군 위안부 모집----
10년여 전 한일 관계에 대한 세미나에서
한국 원로학자가 소년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일본 측 토론자 몇몇이 일본군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을 때다.
“일본군이 마을 처녀를 끌고 간다는 소문이 내가
살던 경상도 시골까지 들려왔다.
아버지는 누이들을 산속 깊숙이 피난시켰다.
마을 여자가 끌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누이를 안고 함께 떨었다.
강제가 아니라면 이 공포의 기억은 무엇인가.”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쌍용자동차 손해배상 관련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사실 한국에서도 답해야 할 질문이었다.
그런 경험을 했으면서 한국은 해방 후 반세기 동안
왜 이 문제에 침묵했을까.
한국 정부는 1965년 국교정상화까지 10년 이상
일본에 식민지 피해 배상을 요구했다.
징병과 징용에서 문화재와 곡물 반출까지
제기했지만 이 문제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 기준으론 직무유기다.
하지만 20세기가 끝나갈 때까지
‘전시(戰時) 성 착취’ 문제는 금기에 속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상이 그랬다.
----김학순 할머니 위안부 피해사실 폭로----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씨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국내에서 처음 공개했다.
성폭력을 공개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미국에서
시작된 게 불과 4년 전이다.
김씨는 물론 그를 지원한 30년 전 한국의 여성
인권운동가들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그의 증언은 1990년대 르완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일어난 성 착취 문제와
공명(共鳴)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게 자랑이냐”
는 시선에 맞서가며 1997년 세상을 뜰 때까지 증언
또 증언했다.
일러스트=김도원
▶1993년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는 이 증언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답변이었다.
‘일본군의 관여 아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고 했다.
‘많은 고통을 겪고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고 했다.
이 담화는 일본에서 수많은 도전을 받았다.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하겠다’는 다짐과 ‘교육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사실상
파기됐다.
30년 동안 일본은 퇴보한 것이다.
▶지난 11일 한국에선 정대협 대표를 지낸
윤미향씨 재판이 열렸다.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해 여성운동가로 득세하고
국회의원까지 올랐다.
----정대협과 윤미향----
그는 위안부 후원금을 횡령하고 위안부 치매
할머니의 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부동산 투기 의혹 국회의원으로도 지목됐다.
피해자의 고난을 팔아 영광을 독점했다.
윤씨는 재판 직전 소셜미디어 프로필 사진에
‘김학순 증언 30주년 기림의 날’ 문구를 넣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30년 동안 퇴보한 건 일본만이 아니다.
선우정 논설위원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