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 까페 폐인들의 열정에
추위도 한 풀 꺾여버렸단 소식을 접했습니다.
드라마 종영 이후 그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도 하나둘씩 제집 찾아 돌아오듯
새로운 얼굴들이 속속 뤼벡을 들어서며,
발 디딜 틈 없는 속에서도 서로의 닉과
서로의 낯설지만 정겨운 얼굴들을 가슴에 들이부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저 멀리 영남에서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하였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 살가운 장소에 저도 함께 하고 싶었지만,
어머님 앞에서, 어머님의 생일상 앞에서 차마 관촌이란 단어를
제 이기적인 관촌의 말을 끄집어 내지 못했습니다.
형님!
형님과 덕삼옹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은
목순 건 무관촌협약 얘기도 들었습니다.
관촌은 관촌할 때의 가슴 저림보다 뒤 돌아선 그 모습속에서
아픔을 느낀다는 것을 형님도 알고 계셨군요.
어제밤 나직히 관촌했던 님들의 닉을 조용히 불러보고 싶습니다.
굼벵이, 나후져여, 노네임, 카오스, 시휘, 종애님...
팬더 분장으로 택시를 타고 관촌하신 파자마 누님...
서강대교를 쏘주팩에 빨대 꽂아 넘으며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던 신림의 가모살...
그런 관촌한 님들의 닉들을 밤하늘을 올려보며
하나 둘 씩 불러보고 싶습니다.
형님은 처음 관촌했을 때의 그 맘을 아시고 계십니까?
약간의 흥분과 두려움 그리고 나를 두고 무어라 얘기하지 않을까 하는
그 설렘과 초조함...
아... 그렇습니다 첫관촌이란 왠지 아쉬우면서도
머리 속에 남게 되는 아련한 기억...
어제도 많은 뉴페이스 분들이 그러한 첫관촌의 경험을 하셨다지요?
그 분들의 가슴속에도 이제 서서히 관촌의 아픔이 새겨질 듯 합니다.
어떤 이들은 관촌의 무서움에 몸을 사린다 합니다.
시현, 동바리, 봉석, 밥팅, 네모, 그리고 진... 이런 이들은 과거 관촌했었을 때의
아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 아련한 기억을 지워버리지 못하여
항상 관촌하지 못하고, 동방에 몸을 맞긴다 들었습니다.
아, 관촌하지 못하는 아픔 많은 그들이 어제는 서른명도 넘었다 들었습니다.
정녕 청춘의 덫 안에서 관촌의 아픈 기억을 접지 못하고
관촌을 부정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지요...
사실 저도 수 많은 관촌의 경험뒤에 밀려오는 허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많은 이들에게 관촌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을 하였답니다.
관촌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운명적인 관촌의 감정이 무르익을수록
다시 한 번 관촌의 아픔에 이끌리지 않으리라,
푝푝푝 뛰어 가는 발걸음을 보이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는
저를 발견하곤 한답니다.
아.. 전 또 다음 번 번개가 기다려집니다.
관촌형님!
다음 번 번개때 관촌의 아픈 감정을 추스리고 나올 우리의
뉴페이스들을 과연 다시 볼 수 있을지요?
그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이 젊은 날의 관촌에 대해
날을 새우며 논할 수 있을런지요...
형님! 어제 방석집에 쓰러져 주무시다 영남팀들 투어 같이
가신다고 애 쓰신 얘기 들었습니다.
암쪼록 나이 생각하셔서 몸 관리 잘 하시길
이 동생이 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