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아아앙'. 흡사 우는 것처럼,탄식하는 것처럼,그러나 하염없이 무엇을 쓰다듬는 것처럼…. 대하소설 '혼불'에서 작가 최명희가 묘사한 호성암의 저녁 예불 종소리는 이제 더이상 들을 수 없다.
암자조차 노적봉 기슭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지금도 그의 혼과 채취를 맡기는 어렵지 않다.
오히려 '손 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며 글쓰기의 힘겨 움을 호소한 그의 생전 고백처럼 '혼불'의 주요 장면과 주인공은 곳곳에서 마주친다.
그 중심에 전북 남원의 노봉마을이 있다.
'아소 님하,꽃심을 지닌 땅'. 장승 몸체에 깊숙이 패인 글귀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 옆으로 '최명희 문학비'가 낮게 걸터 앉았다.
황금빛 들판과 코스모스 꽃길도 무척 정겹다.
벌써부터 마음을 수 습하기 힘들다면 곧바로 '혼불' 기행을 시작해도 좋다.
하지만 아무래도 '혼불문학관'부터 둘러보는 것이 순서일 듯 싶다 . 이제 막 개관식을 치른만큼 새롭기도 하겠지만 작가의 채취와 작품세계를 감지할 수 있을 듯해서다.
문학관은 '노적봉의 나붓이 드러난 발등' 위로 생각보다 훨씬 넓게 터를 잡았다.
무려 6천여 평. 다른 문학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규모다.
분수를 담은 연못과 잔디밭,물레방아,높고 웅장한 청기와의 전시관은 숫제 공원을 연상시킨다.
작가의 작품 일지와 유품,소설속의 주요 장면도 입체 인형극 형식의 디오라마로 엿볼 수 있다.
지난 4년간의 긴 공 정도 이 때문일까. 어쩌면 너무 크고 넓은 것이 실망의 이유가 될 법도 하다.
강당의 대청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무척 아름답다.
소설의 중심 무대였던 노봉마을이 눈 아래로 펼쳐지고,작가의 표현처럼 ' 산도 들도 아닌' 다랑논이 황금빛 만추로 화답한다.
멀리 남원의 주봉인 천왕봉과 임실의 성수산,진안의 운장산,장수의 팔공산도 시야를 가득 채운다.
문학관을 나서면 소설 속 장면이 책 넘기듯 하나 둘씩 펼쳐진다.
먼저 찾을 곳은 '청호'저수지. 문학관 옆으로 살며시 누웠다.
작 가의 설명과 달리 크고 넓지는 않지만 가을을 온전히 담은 물빛만 으로도 남자를 대신해 종가를 지켜야 했던 청암부인의 기상을 상 상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조선이 망했다고 하지만 결코 망할 수 없는 기운을 갊아서 여기 우리 매안이 저수지에다 숨겨둔 것이 라고…(중략)…밖으로 난 숨통을 왜놈이 막았다면 한가닥 소중한 정기는 땅밑으로 흘러서 예 와 고인 것이라. 나는 확신했었네'. 작품 속의 대사가 시나브로 오브랩된다.
작품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종가도 문학관에서 가깝다.
문학관 에서 곧장 내려와 첫 삼거리에서 방향을 꺾어 다시 오르면 고샅 끝자락에 종가의 솟을대문이 걸린다.
종가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종손자 '강모'의 바람 때문이었을까. 종가는 더이상 당대 의 위엄을 보여주지 못한다.
노봉마을을 벗어나면 이번에는 '옛 서도역'이 살며시 눈길을 준다 . 종손 며느리인 '효원'이 종가로 시집 올 때,그리고 그녀의 남편 인 '강모'가 길을 떠난 문학적 공간이다.
역사는 가동을 멈춘 채 정지된 화면으로 서 있다.
고속철 개통에 따라 전라선을 옮기면서 길 건너편에 새 역이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 뒤 쪽으로 돌아가면 옛 모습 그대로의 녹슨 철로와 수동 신호기가 어김없이 사진기 속으로 빨려든다.
남원시는 이곳에 조만간 영상촬영장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반촌의 외곽지대를 형성했던 '거멍굴(최하층 계급의 거주지)'과 ' 고리배미(민촌)',소설 줄거리의 또다른 한 축을 제공한 매안 이씨 의 집성촌인 상신마을,그리고 효혈각(소설에서는 열녀비)도 함께 둘러볼 일이다.
이 중 거멍굴과 고리배미는 지금 무산과 인화마을로 이름을 바꿨 다.
거멍굴은 작가가 '소쿠리 안에 들만치 도래도래 모여 앉은 납 작한 초가집들의 마을'이라고 했는데,초가는 커녕 마을 흔적도 사 라지고 없다.
천민촌이었다는 사실이 이곳 사람들을 떠나보내게 했다는 것이다.
청암부인이 민촌에 있기에는 아깝다고 말했던 고 리배미의 황장목 숲은 지금도 여전히 푸르고 기운찬 자태를 뽐낸 다.
'진홍빛의 꽃잎이 물소리에 섞여 떠내려가면 그 밤에 온 산에는 소쩍새가 그렇게도 음울하게 울었다'고 묘사했던 마을은 어느새 ' 벗어놓고 온 신발처럼 어둠을 쓸어 안으며' 귀갓길을 재촉한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조급해질 이유는 전혀 없다.
느긋하게 '혼불' 을 읽으면서 돌아가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