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단순히 비우기만 하는 계절이 아니다. 한 걸음 전진을 위해 한 발짝을 늦추거나 멈추는 것이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것은 비우기보다 새봄을 준비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다각적인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혹독한 훈련으로 고난에 몸을 다듬으며 튼튼한 디딤돌을 놓는 과정이다. 가을에 미련 없이 낙엽이 지면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추운 겨울 너머에 따스한 봄이 있음을 확신하며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성장을 위한 기운을 모으며 북돋아 새봄을 기다리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멈추고 움츠린 것 같아도 뿌리는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안일한 현실을 벗어나 엄청난 시련을 겪어봐야 신체가 단련되고 튼튼해져 훌쩍 자랄 수 있다. 어쩌다 기껏 비바람에 시달려보는 것과는 또 다른 모험이다. 자연 속에서도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체험하면서 보여준다. 참을 만큼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성깔을 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자연대로 순리가 있다. 이를 이겨내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무언의 질서가 있어 잘 교육을 받고 훈련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새싹 돋고 꽃이 피고 단풍 들면서 낙엽이 지는 것을 보면 사전에 굳게 약속을 해도 어려울 텐데 같은 시기에 같은 모습은 그저 신비스러울 뿐이다. 자연은 잔꾀를 부리지 않는다. 직접 경쟁하며 모함하지 않고, 새치기에 앞지르지 않고, 모자란다고 얕잡아보며 뽐내지 않는다. 태어난 자리에서 한 발짝 움직이지 않아도 굽이굽이 산자락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기르듯 대범한 모습에 오로지 나 자신을 충실하게 가꾸면 된다. 같은 무리가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숲이 되고 풍경이 되어 사람들의 눈길에 띄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간섭 없고 시시비비를 몰라 조용하다, 잘나고 못남이 없어 그만큼 여유롭다. 한 줌 햇살에 감사하고 몰려드는 바람은 몸을 틀어 빠져나가게 한다. 자연은 자연을 즐기며 외부와 다툼보다 자신을 끌어안고 탓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