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차게 흐르는 한반도모양 물길
녹슨 철모, 지뢰 남북분단 생채기
분단, 고립, 통제 속 천혜의 원시림
코로나19 이후 3년여 만에 재개방
민통선을 넘어 들어가서 만나는 두타연은 '갈등과 적대의 긴장'과 '때묻지 않은 빼어난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한반도 모양의 물길이 힘차게 굽이치며 북에서 남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비무장지대(DMZ), 이곳은 분단의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DMZ에 인접한 강원 양구 땅에는 디딜 수 없는 땅, 건널 수 없는 물길, 오를 수 없는 산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곳곳에 겹겹이 쳐진 철책과 지뢰지대가 있고 출입을 통제하는 군작전 구역도 많습니다. 그만큼 국민들에게 양구는 멀게 느끼는 곳입니다. 하지만 고립과 통제 속에서 자연만큼은 더 깊어지고, 울창해졌습니다. 그 깊은 자연 속에서 인간들의 증오, 반목, 갈등 따위는 알 리 없는 멸종위기 식물들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 산양이 자유롭게 뛰놀고 2급 열목어가 서식하는 말 그대로 청정 지대입니다. 그곳으로 갑니다. 양구의 민간인통제선 안쪽. 북녘에서 흘러와 DMZ 일대를 굽이쳐 흐르다 남녘의 파로호로 들어가는 물줄기와 함께하는 숲길입니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금강산에 가 닿습니다. 바로 양구 전체를 통틀어 제1경으로 꼽히는 두타연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통제되다 지난 4월부터 다시 품을 내어 주었습니다.
두타연 가는길은 쉽지 않다. 아니, 쉽지 않다기 보다는 까다롭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두타연 길은 DMZ 안에 있기 때문에 우선 사전신청을 해야 한다. 개방 초기만 해도 방문 3일 전에 신청을 해야 했으나 지금은 하루 전에 만 신청하면 된다. 또 문화해설사와 반드시 동행해야 하며 개별입장은 불가다. 특성상 관할 군부대의 승낙을 얻어야 하기에 절차가 번거로운 것이다.
금강산가는길 안내소에서 신원확인을 마치고 육군 이목정부대 장병들의 차량점검까지 마쳐야 출입이 시작된다. 문화해설사, 군부대 관계자들의 안내로 두타연으로 향한다.
두타연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 두타교
생태탐방로에 있는 녹슨 철모와 철조망
초소를 지나면 비포장도로다. 길가엔 녹슨 철조망에 역삼각형으로 ‘지뢰’ 라고 걸린 푯말이 펼쳐진다. 누구나 분단의 현실과 전쟁의 깊은 상흔을 떠올리는 상념에 빠져들게 된다. 비포장도로를 조금 지나면 전방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인다. 전차 방어를 위해 만든 전차 방어선이다.
약 10여분 정도 달리면 두타연에 도착한다. 먼저 두타연이라는 지명의 유래부터 알아보자. 오래전 주민들은 드렛소(드래소) 또는 용소라 불렀다. 이곳의 예전 지명인 건솔리 드렛골에서 따온 이름이다. 현재는 1000년 전쯤 인근에 번성했던 절집 '두타사'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두타란 산스크리트어(범어)를 음역한 것으로 '일체의 욕망과 집착을 버린 수행'을 뜻한다. 두타연은 6ㆍ25전쟁 휴전 이후 50여년 만인 지난 2003년부터 제한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방됐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지금까지의 번거로움은 단박에 잊게 된다. 먼저 두타연 입구에서부터 시원스런 소리가 들린다. 계곡을 휘감는 물소리다. 두타연 계곡물의 발원지는 금강산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물이 이곳을 지나 파로호로 흘러 들어간다.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가는 물길이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다.
남북 분단 상황을 보여주듯 곳곳에 지뢰팻말이 붙어있다.
탐방로를 따라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열기를 더해 갈 때 쯤 우렁찬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투타연 폭포다. 20m 높이의 두타연 암벽 위에 세워진 전망대에 서면 한반도 모양으로 돌아가는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남과 북을 자연스럽게 잇는 물길이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던 물줄기는 암벽에 막혀 이리저리 용틀임하다 10m 아래 검푸른 웅덩이로 쏟아져 내려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장쾌하기 그지 없다. 물길이 흘러내린 웅덩이 둘레는 족히 50m는 넘어 보인다. 이즈음에는 여름비로 물이 불어 폭포의 위용이 대단하다.
서울에서 온 한 여행객은 “코로나 19로 그동안 막혀있다가 3년여만에 다시 개방된 두타연을 보니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며 즐거워했다.
두타연 물은 열목어의 국내 최대 서식지답게 맑고 차다. 냉수성 토종 어종인 금강모치, 쉬리, 버들치 등도 이 물길의 주인들이다. 물고기들은 북에서 흘러온 물줄기를 따라 오가며 살을 찌운다. 맞은편 암벽엔 커다란 동굴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보덕굴이다. 입구 지름이 10여m, 길이는 20m쯤 된다. 양구군청 자료는 '신라 헌강왕 때 금강산 장안사의 고승이 꿈에 남쪽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고 두타연 보덕굴에 들어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 이곳에 두타사라는 절을 창건했다.'고 적고 있다.
금강산 가는길, 생태탐방로를 걷고 있는 여행객들
두타연 폭포
여행객들이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다
두타연 주변엔 생태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총 3㎞쯤 된다. 탐방로는 대부분 흙길이다. 부분적으로 나무판자를 깔아 편안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참나무류와 당단풍 등 활엽수들이 대부분이다. 가을이 오면 이 일대는 울긋불긋한 단풍 옷으로 갈아입는다. 주민들은 두타연의 가을이 금강산에 못지않을 만큼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인적이 워낙 드물다 보니 천연기념물 산양도 주변 경계를 풀고 먹이를 먹는 모습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두타연은 열목어 서식지다
현수교인 두타교 출렁다리를 건너는 재미는 쏠쏠하다. 탐방로 좌우엔 철조망이 이어진다. 철조망 군데군데에 녹슨 철모와 포탄 탄피, 지뢰 등을 모아뒀다. 탐방로 조성 당시 실제 출토된 것들을 그대로 전시한것이다. 남북분단이 남긴 생채기들이다. 시원한 계곡 물소리와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분단,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과 맞닥뜨린다. 이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물길을 건너 버드나무, 오리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신나무들이 울창한 숲길을 걷다 보면 여행객들에게 주어진 1시간 10여분 남짓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 여행메모
▲ 가는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가장 빠르다. 춘천나들목에서 46번 국도로 바꿔 타고 계속 직진하면 양구로 이어진다.
▲ 예약=민통선 지역으로 양구안보관광지 통합예약사이트에서 사전 출입 신청 또는 당일 현장접수 가능하다. 방문 당일 금강산안내소에서 출입 신청서와 서약서를 작성하고 GPS 착용 후 인솔에 따라 금강산안내소에서 정시에 출발해 두타연주차장 -> 생태탐방로 -> 두타연주차장 구간인 생태탐방로를 약 1시간여 관광 후 복귀한다. 하루 세 번, 평일은 50명, 주말은 100명까지 입장한다.
두타연 평화누리길을 따라 '금강산 가는 길' 입구까지 걸어보는것도 있다. 계곡을 끼고 이어져 호젓하다. 두타연에서 1시간(3.6km)쯤 걸으면 옛 국도 31호선 종점인 하야교삼거리에 닿는다.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구름 모양 이정표 뒤로 아직은 굳게 닫힌 철문이 가로막고 있다. 여기서 내금강까지는 불과 32km, 곧 금강산 트레킹의 출발점이 되리라는 희망에 설렌다. 사전예약자에 한해서 트레킹이 가능하다.
▲ 볼거리=국토정중앙 한반도섬, 펀치볼, 박수근미술관,양구통일관, 을지전망대 등이 이름났다. 펀치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을지전망대는 올 연말까지 공사를 하고 있어 입장이 금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