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궐이든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금천(禁川)과 만난다. 금천은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유지
한 창덕궁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궁궐을 배치한 뒤 인위적으로 물길을 조성한 것이다. 궁궐과 외
부세계를 가로막고 흐르는 이 금천을 어구(御溝)라고도 한다. 금천 위에는 정문에서 궁궐로 들어가는
다리가 놓여 있는데, 창경궁의 다리 이름은 옥천교다. 다리를 건너면 정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정전이 있다. 창경궁 정문은 명정문이고 정전은 명정전이다.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옥천교는 피해를 면하여 성종 14년(1483) 처음 다리를 놓을 때의 모습이 그대
로 유지되고 있다. 다리는 두 개의 홍예(虹蜺. 무지개 모양의 양식)가 떠받치고 있는데, 여기에도 어
김없이 잡귀의 범궐(犯闕)을 막기 위한 귀면(鬼面)이 돋을새김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리난간 양쪽 끝
에 새겨져 있는 동물 조각 역시 잡귀의 침범을 막기 위한 양밥인데, 저게 과연 귀신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귀엽기 그지없다.
명정문을 들어서면 정면의 명정전까지 화강암을 깐 어도(御道)가 나 있고 그 좌우에 품계석이 시립해
있다. 마당은 경복궁‧창덕궁과 마찬가지로 박석이 깔려 있어 배수가 잘되고 한여름 뙤약볕에도 빛을
흡수하여 눈이 부시지 않는다. 널찍하게 마당을 감싸고 있는 나지막한 회랑은 보는 사람에게 위압감
대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명정전은 경복궁 근정전이나 창덕궁 인정전보다 규모가 작은 정면 5칸, 측
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다. 월대도 한 단 낮은 2단이다. 근정전이나 인정전에 비해 격이 한 단계 낮
기는 하지만, 앞에서 밝힌 대로 연륜은 가장 길어 고전미를 간직하고 있다.
명정전 뒤쪽에 있는 문정전은 경복궁의 사정전과 창덕궁의 선정전처럼 임금이 국정을 처결하던 전각
이다. 사정전이나 선정전에 비해 규모도 작고 기둥도 원주가 아니라 네모난 각주다. 문정전 또한 왜
놈들이 창경궁을 놀이터로 만들면서 철거되었다가 1989년에 복원되었다. 문정전과 나란히 있는 숭문
당은 임금의 서재이자 신하들과 경연을 하던 곳이다. 숭문당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30년에 복원
된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지붕 아래 걸려 있는 현판은 영조의 친필이다. 문정전은 사도세자의 죽음
과도 관련이 있는 전각인데, 사도세자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다 나도 문중 13. 카페에 몇 번
소개한 적이 있어 생략한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회랑의 좌우에 있는 십자각 중 남십자각에는 조선의 마지막 주자소가 있었
다. 금속활자를 만들어 보관하던 곳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때 이미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을
정도로 인쇄문화가 발달해 있었지만, 금속활자는 고려 때보다는 조선조에 들어와서 헐썩 더 많이 활
용되었다. 태종 3년(1403) 처음 주자소가 설치된 이래 대를 이어 다양한 활자를 개발하여 인쇄에 활
용했던 것이다. 주자소의 직제는 조선의 종합법전인 『경국대전』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직제를 보면 조선 최고의 장인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전적을 부지런
히 찍어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한 뒤 전적 편찬 수요가 높아지자 창경궁의 옛 홍문관 자리에 새로이 주자소를
설치했다. 정조는 이 주자소에 ‘규영신부(奎瀛新府)’라는 편액을 내걸고 편찬 일을 계속하다가, 독살
당하기 2개월 전인 1800년 윤4월부터 주자소를 홍화문 남십자각으로 옮겨서 운영했다. 철종 8년(185
7) 10월, 화재로 주자소 창고가 소실되면서 정유자‧한구자‧정리자 등 정조 때 주조되었던 금속활자와
각종 인쇄도구 및 책자들도 함께 불타버렸다. 이듬해 한구자와 정리자를 다시 주조한 다음, 따로 보
관되어 있던 임진자와 함께 조선 말기까지 인쇄를 계속했다. 이 활자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
존되고 있다.
2006년 4월 26일, 문정전에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한 관람객이 발견하여 ‘불이야!’ 하고 고함을 지르
자 그 소리를 들은 다른 관람객이 근처에 있던 소화기로 불을 껐다. 불은 문짝을 다 태우고 서까래로
옮겨 붙기 직전에 진화가 되었다. 붙잡힌 방화범은 채종기라는 노인이었는데, 문화재 방화범으로 재
판에 넘겨졌지만 고령에 피해가 적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집행유예로 석방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
듯 채종기는 2년 뒤인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에 불을 질러 TV를 통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
보 제1호를 홀라당 전소시켰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손녀의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날 입니다. 여전히 영.수 과외는 그대로 이니 방학의 큰즐거움은 없는편, 아빠.엄마의 출근으로 오후 이모가 오는시간까지 혼자있는 손녀의 돌봄이 시작되었습니다. 말도 안하고 제방에서 책을 보고 있지만 그래도 보호자가 있어야 하니 일거리가 생겼습니다. 친가 할아버지.할머니도 요일을 할당하여 교대가 되니 1주 2번 정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