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으로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서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동촌 유원지에 주차시켜 놓고 지하철 동촌역으로 향하는데 봄비치곤 제법 굵어 트렁크에 넣어두었던 우산을 꺼내 들었다.
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방사능비일 수도 있다는데...오늘 검단산에서 만날 내 친구들은 하루 온종일 이 꺼림칙한 봄비를
쫄쫄 맞을 수도 있겠다. 정말 반갑지 않은 봄비다. 그래도 길을 멈출 수는 없다.
우정이라고 불리어지는 친구들 간의 사랑, 그 끈끈하고 소중한 가치를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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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섯시가 첫 차인 동서울 행 고속버스에 올랐을 때, 맞은 편 동대구역이 바라다 보이는 차창밖에는 제법 굵직한 빗방울이
흩날린다. 하남에도 비가 내리면 오늘 산행이 무척 어려울 텐데...
산악회 등산 때는 늘 꼭두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 주는 아내지만, 워낙 일찍 떠나는 여행이라 친구들이 다 마련해 올 테니 푹
자라고 말해놓고고 김밥 집에 들려 도시락을 세 개 샀다. 하나는 고속버스 안에서 먹을 아침이며 하나는 점심, 나머지 하나는 친
구들의 점심이 부족할까봐 마련한 여분의 김밥이다.
고속버스에서 심심하면 보려고 소설책도 한권 넣고, 산행후기라도 긁적거려 볼까싶어 메모지도 넣어 뒀지만 간밤에 워낙 늦게
(새벽 한 시 반쯤)잠든 터라 잠깐 깨어 아침을 먹고, 친구들과 통화 몇번 한걸 제외하곤 서울까지 가는 내내 거의 잠을 자다시피
했다.
산대장 봉균이는 잘 오고 있는지 몇 번 전화를 했으며 그가 사는 제천은 비가 내리기는커녕 화창한 날씨니 걱정하지 말란다.
봉균이를 비롯하여 오늘 만날 친구들은 초등학교 동창생들인데 33회답게 삼삼한 친구들이다.
오전 10시에 집결하기로 했는데 9시 20분에 동서울에 도착하여 잠실까지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로 검단산 아래의 에니메이션 고
등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10시 반이나 되어 있었다. 기다림에도 짜증내지 않고 먼 데서 와 주어 고맙다며 환한 웃음으로 정겹게
손을 잡아주는 내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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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은 훌쩍 넘길 것으로 기대했는데 여덟 명, 다소 아쉽지만 만남의 기쁨만큼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넘친다.
산행 때마다 절대 빠지지 않는 홍천 사는 매월이, 매포의 정숙이, 서울 사는 산대장 계수, 제천의 산대장 봉균이, 원주 사는 응주,
경기도 안산의 해용이, 고향 황둔의 동수, 그리고 대구의 나 쎄꼴리앙. 정말 전국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한마음 되어 뭉쳤다.
시골 출신들이라 삶의 터전을 찾아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다보니 이렇게 만난다는 게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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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 정상으로 가는 길, 아직은 파릇한 새싹들이 앞 다투어 피어오르진 않지만 화창하고 따사로운 봄 날씨다.
하남이란 곳이 지도의 어느 곳에 붙어 있는지 막막하고 워낙 먼 거리라서 간다는 게 막막했는데 정말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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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역이라 대구에서 만난 봄 보다는 많이 뒤쳐져 있지만 두터운 나무껍질과 마른 가랑잎에서조차 활기찬 생명의 기운이 느껴
진다. 표피 속에 잉태되어 꿈틀거리고 있을 연두색이거나 분홍빛이거나, 혹은 아지랑이의 그 아른거림 같은 것일 수도 있는 봄이
태동하는 소리...
헐벗고 추웠던 고난의 겨울을 감내하며 무던히 키워온 희망이라는 이름의 봄이 드디어 실현되는 감동과 환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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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찍느라 늘 찍히지도 못하잖아, 언능 와!"
나야 뭐 그저 찍는 걸 좋아할 뿐, 찍히는 걸 좋아할 인물도 못되는데, 친구들의 배려 가득한 재촉에 지나가는 이에게 카메라를
부탁하고 무리 중에 끼어들었다.
햇살은 더 할 나위 없이 청명하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푸른 봄 강은 멈춰진 그림처럼, 그러나 유유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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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식애들끼리(50이 넘었지만,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애들이다.) 한 판 꾹 눌러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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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뒤질세라 머스마들끼리 폼 한 번 잡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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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사나이 봉균이, 측면도 한 번 잡아주고...산대장 봉균이는 산행날짜 잡아놓고 전화는 수시로~ 문자는 타스로~
정말 애 많이 썼다. 그 지극정성이 천리 길 나를 검단산으로 끌어올렸다.
오늘따라, 아니 언제나 그렇듯~ 어느 산행에서나 늘 꼴찌를 도맡아하고 기진맥진하는 부실한 내 배낭을 열어 무게 될 만한 것은
죄다 자기 배낭에 챙겨 넣고 끄떡없이 걸어가는, 형처럼 믿음직한 친구.
산대장보다 더 높은 건 뭘까? 담엔 산 두령이나 산적두목- 뭐 그런 걸로 진급시켜줘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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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무지 좋다! 이런 게 행복이란 걸, 안 온 친구들 어찌 알랑가-
만끽하는 봄, 우정, 그리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친구들이 있어 든든히 살아 갈 자신 있는 봄 닮은, 봄 빛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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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가 열리기 이전까지 너무나 보고 싶었던 친구 응주, 해용아!
요즘 몸이 좋질 않아 어려운 걸음을 한 고향 친구 동수야. 다들 고마워! 봉균이는 말 할 나위도 없이 고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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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검단산 올 설레임에 잠을 설쳤다는 정숙아.
서방님 따라 다른 데 가잘까 봐 노심초사했다는 여 산대장 계수야.
그리고 산에 사는 메아리라고 많이 놀렸던, 예뻐서 쫄쫄 따라다니며 놀렸던 매월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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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시락을 펼쳤을 때 발생한 또 다른 감동!
새벽 2시에 일어나 떡 만들고 김밥 싸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옥수수를 삶아, 바리바리 싣고 온 홍천의 매월이.
뼈없는 닭 발, 오렌지, 딸기, 포도를 실컷 먹도록 싸 온 계수.
이 많은 짐들을 다 짊어지고 온 우량한 산대장 봉균이...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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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란 이런 거지?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으면 서로의 가슴속으로 따듯한 무언가가 흘러들어오고 감싸주고 싶고, 가끔은 기대도 될 것 같고 문득 어깨동무를 하고 싶은 그런 느낌...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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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의 뒤풀이 장소인 시인과 농부.
오는 중이냐고 물었을 때, 방금 병원을 다녀오는 중이라며 가랑가랑한 목소리로 대답하던 감기 걸린 동렬이와 옥화 부부.
멀리서 온 친구 쎄꼴리앙을 생각해서라도 꼭 와야 했다며 뒤풀이 장소에 쨘~하고 나타나 주었고...
점심으론 오리 훈제가 나왔는데....산에서 너무 잘 먹은 탓에 오리 훈제는 그만 울고 가고 말았다.
나중에 들은 슬픈 전설에 의하면 오리들은 자기들을 두 번 죽이는 꼴이었다며 방성대곡을 했다나 뭐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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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있어서 늦게 왔다는 영숙이, 옥순이가 점심값 내주어서 산행자금은 또 남았네.
담엔 대구 팔공산이나 비슬산으로 와라! 늬들 친구 쎄꼴리앙이 한 턱 쏠께.
뒤풀이 까지 끝내고도 오후 시간은 많이 남고, 헤어지기 못내 아쉬워 식당 마당가에 또 전을 폈다.
그러나 친구들의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산행후기 너무 늘어뜨리면 읽는 님들 지겹고...
결국 이렇게 엉거주춤하게~ 왠지 바지 지퍼를 덜 올린 것 같은 찝찝함으로 허~무하고 긴급하게 끝내버리고 만다.
첫댓글 맞아요
거운모습 아름답습니다
나이는 아무리 먹어도
어린시절 칭구와 모이면 동심으로 돌아가지요
자연과 함게 산행하며
검단산이 높지도 않아서 가볍게 등산하기는 정말 좋은 곳이죠.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임이니 기쁨이 배가 되셨겠습니다.
각지에서 온다는게 참 쉽지 않을텐데 친구라는 끈이 대단해요.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