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유가 모자라요. 유빈이랑 혜인이는 우유 못 마셨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
우유가 부족할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우유 당번인 성민이와 민기는 정확하게 확인하고 우유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계속된 소고 연습으로 아이들은 모두 목이 말랐나 봅니다.
학예회 무대에 올리게 될 우리반 전체 경연 종목은 소고춤이었기에
우리는 매일 참 많은 연습을 합니다.
"창영이와 세진이가 두 개 먹었대요."
다행히 두 녀석은 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것질할 돈이라고 합니다.
나는 두 녀석에게 우유값을 변상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빈이와 혜인이에게 그 돈으로 가게에 가서 우유를 사 먹으라고 합니다.
우유.
살아가다가 가끔.......우유 급식 시간이면,
그리고 오늘처럼 이렇게 우유로 인해 어떤 작은 일이 발생하면
나는 미안해 하면서 그 아이를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과 함께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그 아이의 여동생 이름을 발음하면서 내 손바닥에 손가락 연필로 적어 보곤합니다.
박성일. 박소영.
성일이는 이제 서른 두세 살의 청년이 되었을 겝니다.
그 아이의 소원대로 돈을 많이 벌게 되었는지......
그랬다면 좋겠습니다.
돈.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돈이 얼마나 절실한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세상물정을 모르는 철부지 아이에게 있어서 돈이 그토록 절실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성일이를 통하여 처음 알았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
그래서 아주 아주 많이 벌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동생 소영이에게 새우깡을 많이 사주고 짱구도 사주겠습니다.
우리 소영이가 아픕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머리가 아파서 웁니다.
그래도 우리집에는 돈이 없어서 소영이는 병원에 못갑니다.
그래서 소영이가 머리가 많이 아파서 울 때마다 엄마는
돈 100원을 주면서 새우깡을 사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영이는 새우깡을 먹을 때는 울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새우깡이 먹고 싶지만 소영이 머리가 아플 때 먹으라고 참습니다.
그래서 소영이가 울지 않고 먹으라고 참습니다.
그리고 어쩔 때는 짱구를 사옵니다.
그리고 짱구는 새우깡보다 맛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짱구는 새우깡보다 빨리 먹어버린다고 나를 꾸중합니다.
그리고 나는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
그래서 아파서 맨날 누워서 병원에도 못가고 새우깡만 먹는
우리 소영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소영이를 낫게 해 주겠습니다.
그리고 우유도 돈 내고 먹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공부가 중요합니다.
그래도 나는 공부를 하지 않고 돈을 벌어서
우리 소영이에게 새우깡과 짱구도 많이 사주고
병원에도 데려가고 우유도 돈 내고 먹겠습니다.
그래서 돈을 아주 많이 많이 벌겠습니다.
학급문집을 만들면서 반아이들의 원고를 정리하던 중이었습니다.
성일이의 글을 읽던 나는 그만
열려있는 줄 알고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닫혀있는 유리문과 부딛힌 듯 한동안 망연해졌습니다.
천천히 문장의 처음 부분에 적혀 있는 그리고, 그래서의 접속사들을 지우고,
아이가 잘못 쓴 글자들을 고쳐주다가 <우유도 돈 내고 먹겠다>는 부분에 와서
그동안 <아이지만 참 철이 없고 뻔뻔하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면서
성일이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너무나 미안해서 내 자신이 참 미워졌습니다.
어느 대도시의 외곽지대.
첫 발령을 받았던 지리산 자락의 산골 학교에서 대도시로 발령이 났을 때,
참 기뻤습니다.
그동안 집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새 학교에 부임하면서 제 심경은 무척 착잡하였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공단 주변의 학교였습니다.
문득 대도시의 외곽지대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는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는 늘 공장에서 뿜어내는 매연과 이상한 냄새로 매캐했습니다.
공해지역이라서 몇 년 후에 폐교를 계획하고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 곳에서 3년을 근무했습니다.
그 마지막 해에 성일이는 우리 반이 되었습니다.
우유급식이 희망자에 한해서 실시되던 무렵이었습니다.
우리 반 우유가 매일 한 개씩 모자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학급 담임이 우유값을 받았기에,
우유 회사에서는 선생님들에게는 우유를 무료로 주었습니다.
저는 우유 알레르기가 있어서 우유를 마시지 않습니다.
치즈, 버터, 아이스크림과 요플레등의 우유로 가공한 식품은 엄청 좋아하지만
우유를 마시면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탈이 납니다.
뱃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여 화장실에 뛰어가면,
창자를 날카로운 유리조각으로 휘젓는 듯 아프면서 어느 순간 왕창 쏟아냅니다.
한 번은 너무 목이 말라 우유를 마셨다가 화장실에서 그대로 실신한 적이 있습니다.
오물 바닥에서요.
그 이후로는 아무리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도 우유를 입에 대지도 않지요.
내가 우유를 마시지 않기 때문에
교사에게 무료로 지급되는 우유 한 개를
다른 누군가가 먹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하면서
무심하게 몇 개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우유를 먹지 못했다는 아이가 생겼습니다.
"선생님은 우유를 먹지 않으니 그것이라도 먹으렴."
나는 무심코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유도 없어요. 우유 상자에 모두 빈 곽 뿐이에요."
그렇다면 두 개의 우유가 없어진 셈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내 눈길이 성일이에게로 향했습니다.
지난 해에 성일이를 맡았던 선생님께서
반 아이의 생활기록부를 넘겨주시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의 성일이 담임 선생님은 내 친구였습니다.
성일이 때문에 속 많이 상했어.
늘 아이들을 두들겨 패고 말썽 피우는 것까지도 이해한다고 해.
그런데 아무리 아이지만 얼마나 뻔뻔한지 몰라.
맨 처음에 우유 신청할 때, 우유를 먹겠다고 손을 들었어.
그런데 우유값을 내지 않는 거야.
내 돈으로 물었어.
한 달 우유값을 내지 않은 아이가 또 다음 달 신청 받을 때 손을 드는 거야.
너는 우유값을 선생님이 물었으니 우유값 낼 자신이 없으면 신청하지 말라는 말을
차마 어떻게 할 수 있겠니?
그렇게 넉 달을 내 돈으로 그 아이 우유값을 물어내고 나서야 단호하게 말했지.
이제 우유값을 미리 가져 와서 우유를 먹으라고.
친구의 말이 기억났습니다.
그러나 3월 첫 우유 신청을 할 때,
성일이는 손을 들지 않았기에 나는 이내 친구의 말을 잊어 버렸습니다.
설혹 성일이가 손을 들었다고 해도,
"성일이 너 우유값 낼 수 있니?"라고 물을 수는 없었을 겝니다.
다음 날, 우유 급식 시간에 유심히 성일이를 살폈습니다.
우유 급식을 하는 아이들의 뒷꽁무니 부분에 섞이어
성일이도 태연하게 우유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모른 척 하였지요.
며칠 후,
문제를 모두 푼 사람은 우유를 먹고 나가서 놀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우르르 우유상자 앞으로 가서 우유를 마시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성일이도 물론 줄 뒷부분에 섞이어 우유를 마셨구요.
교실에는 두 세명만이 남아서 아직 풀지 못한 문제를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우유를 다 먹었지만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교실을 맴 돌던 성일이가
우유상자로 가더니 우유 하나를 찾아내어 얼른 가방에 넣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성일이를 따로 불러서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네가 그동안 선생님 우유를 몰래 먹은 것까지 선생님은 알고 있었지만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나 네가 조금 전에 가방에 넣은 것은 친구의 우유다.
너는 네 우유도 아닌 선생님 우유를 이미 마셨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친구의 우유까지 가져 가느냐?
앞으로도 선생님 우유는 네가 계속 마셔라.
그러나 다시는 친구의 우유를 몰래 가져가서는 안 된다.
성일이는 그렇게 하기로 나와 단단히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우유급식 시간에 성일이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이 나한테 선생님 우유 먹어도 좋다고 하셨어."
성일이는 큰소리치면서
우유를 먹으려고 줄을 선 아이들을 헤치고선 맨 앞줄에 의기양양하게 섰습니다.
아무리 아이지만......
그런 아이가 참 밉게 느껴졌습니다.
우유급식을 하지 않은 다른 몇 명의 아이들에게 몹시 미안했습니다.
성일이만 이뻐해서 선생님의 우유를 먹게 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어떤 날은 그 우유를 먹으면서 급식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너도 먹고 싶지? 너도 먹고 싶지?" 하면서 약까지 올리는 겝니다.
당시에는 학교 급식이 실시되지 않았기에 우유급식에는
정부에서 상당부분을 보조해 주었습니다.
급식 우유는 시중의 우유 가격의 1/3 쯤 되었다고 기억합니다.
어느 날 이 녀석이 그 우유를 자신이 먹지 않고,
친구들에게 가게보다 조금 싸게 판다는 것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기에
성일이가 먹던 우유를 다른 아이에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성일이의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라는 글을 읽게 된 것입니다.
학급 문집을 만들던 시기가 12월 말이었기에
나는 성일이에게 2월 한 달밖에 우유를 먹일 수 없었습니다.
3월이 되자 그 곳을 떠났으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신문에서 그 학교가 폐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때도 잠깐 성일이와 성일이의 글 속에서 만난,
늘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새우깡을 먹는다는 그 아이의 동생
소영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우유 때문에 작은 일이 발생하면 꼭 그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성일이가 잘 자라고 있기를,
소영이의 병이 다 나았기를 바라곤 합니다.
이제 헌헌장부가 되었을 성일이.
나는 성일이가 그 아이의 소원대로 아주 많은 돈을 벌었기를,
소영이도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서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을 갔기를,
그리고 공부를 하지 않고 돈을 벌겠다고 철 없는 결심을 했던 성일이가
기왕이면 남들만큼 공부도 하였기를 다시 바랍니다.
(2005. 11. 23)
위의 글 속에서 성일이는 실명이 아님을 밝힙니다.
2005년에 쓴 교단일기입니다.
성일이는 30년 전에 우리반 아이였으니, 이제 41살이 되었겠네요.
잘 자라서, 좋은 아빠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요?
돈도 많이 벌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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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떠난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카키그린님.
참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선생님이시네요.
그린님처럼 다정한 마음을 가지신 선생님이 학교든 교회든 많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힘이 될 거예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