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으로 간 여자.
전국이 평창동계 올림픽으로 떠들석하고
살아 생전에는 볼 수 없을것 같던
북쪽 사람들도
내려 와서 개회식에 참석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원래 스케이트 같은,
동계 스포츠는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 이런게 없을 때인데도
허벌나게 추웠다.
입을것도, 먹을것도 좀 많이 부실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그 대신에 공기는 한없이 청정했고 그래서인지 겨울이되면 수성못도
동촌 금호강도 완전히 꽁꽁 얼어붙었다
(딱 겨울방학기간에 맞춰서..)
동계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비싼 발스케이트를 구해서
(전승현,세이버..뭐 이런 메이커..) 얼음들을 탓었는데,
강변에는 한시적 직업으로 스케이트날을 갈아 주는 사람도 있었고
오뎅이며 ,군고구마(야끼모= 焼き某 라고도 함.)를 파는 사람도 있어서
마치 무슨 겨울강변 축제의 현장 같았는데
아직 어렸던 우리는 스케이트를 살 돈들이 없어서
돈을 모아서 스케이트를 빌려서 탓는데
나한테는 차례가 오지도 않았다.
내가 제일 잘 못타니까 돈주고 빌린 시간이 아까워서 엿을겄이다.
언젠가는 겨울에 아들녀석이 아직 고등학교에 다닐적에
나에게 "겨울방학이니까 冬季에 맞는 개인사업을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사업자금을 低利로 좀 빌려달래서
경험도 쌓을겸 하라고 자금을 조금 빌려줬는데
업종?이 무슨 군고구마를 판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어느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는
평리동 무슨 호텔앞으로 한번 가보고 집에 갈려고 같이 동승한 친구에게
내가 자랑 비슷하게
"우리 아들은 나랑은 아주 달라서 아주 착해서
친구들도 착하고 좋은애들 하고만 사귀는겄 같아.."하고 폼뿌를 한다음
아들이 장사를 하고있는 쪽으로 코너를 돌자마자
드럼통으로 만든 군고구마 통이 실려있는 리어카 주변에
한 대~ 여섯명의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놈들이
입에는 담배를 하나씩 꼬나물고 군고구마 판매
호객 행위를 하는데
이건 장사가 아니라 얼추 강매 비슷한걸 하고 있어서
슬슬 접근해서 자세히 보니,
맨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게 우리 아들놈이고
(꼴에 업주라고...호객행위에서 제외되는듯..)
주변의 몇 놈들은 지나가는 행인중 특히 젊은여자들을,
집중 공략해서 고구마를 팔고 있어서
동승한 사람에게 왕창 쪽 팔렸다..
그 친구도 내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않다가 그 현장을 벗어나 한참을 갔을때에야
"너 아들이 되게 착하다고 내게 그러지 않았냐?"
묻길레
나는 속으로 이건 우리 어릴때에 비하면 약과다 생각하고
쪽 팔리지만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갔다.
그리고 보니 겨울방학때 예전에 내가 어릴때 동네에서
석유 말통 기름장사를 한다니까
(업소마다 배달,주유 수금까지..)
단체로 집까지 나와서 나를 도와주던 동네 후배들 생각이 났는데
어쩌면 데쟈뷰도 아니고 아들놈 친구들도 단체로 집을 나온듯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공부하기도 싫고 어울려서 맘껏 놀 수 있고
또 술 담배를 마음놓고 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라고 할까?)
며칠 후 새벽에 일을마치고 들어오다
아들놈 방을 슬며시 들여다 보니까 비슷한 또래놈 5~6명이 들어 앉아
담배들을 피우고 꼴에 내가 좀 무서웠는지 화장실을 안간듯
1리터 피티병에 꽁초며 오줌이 가득 하길레..
(가끔보면 "휩쓸려 맨" 이라고 친구가 집을 나오면 아무 이유도 없이 휩쓸려 집을 나오는놈도 꼭 있다.)
애들을 모두 거실로 불러내어 아무것도 묻지않고
양주 큰거 한 병을 따서 같이 마시고 마침 친구에게
얻은 야한 비디오도 실컷 보라고 던져주고 해서
나에게 감동과 존경의 눈빛을 날리는 놈들에게
걱정말고 놀다가라하고 나는 들어가서 잤는데,
그때 아들놈과 같이 어울리던 놈들과는 아직도 만나고 있는것 같더라..
안경낀 그놈이 그때의 휩쓸려 맨인데
되게 착하게 생겼고 나머지 애들도 착하게는 생겼던데
왜 하필 군고구마 장사 같은걸 했는지..
(그래도 다행히 대학교는 다들 들어갔다)
그애들을 보니 예전의 우리들 생각이났었고
이추운데 갈 데도없는 놈들을 길거리에 그냥 내 보내는 겄보다는
차라리 집에 있게 놔두는게 훨씬 돈이 덜 든다는걸 나는 안다.
(내 보내면 바로 사고침.. 삥 뜯고....싸우고..)
그러던 아들도 이제는 40초반이니 벌써 準영감의 대열에 합류 했고
지금쯤이면 가장의 무게며 인생의 쓴맛이며
책임감, 따위를 제대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도 지 아들이 커서 겨울방학때나 또는
집나온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와도 아무말 없이 받아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나는 진짜로 손자가 여자친구를 방학때 집에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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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에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많은 사람이 죽고
전국이 떠들썩 할때 나는 마산에서 일했다.
내가 일하게된 마산의 업소사장은 그쪽에서는 좀 알아주는 건달이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정통 주먹건달은 아니고 술 장사를 좀 잘하는,
그냥 동네 Yang a chi 인데
사업수단은 진짜 좋아서
늘~ 나훈아, 이미자,설운도,김국환, 심수봉등
당대의 스타들이 며칠 간격으로 내려오곤 했다.
이 건달 출신사장이 자기가 그곳 마산교도소 출신이라며
우리를 데리고 위문공연을 교도소로 자주 갔는데
나는 그전에도 교도소 공연은 많이 해본지라,
요즘 드라마 "슬기로운감방생활"이
현실과는 좀 동떨진 (환경설정)이라는걸 안다.
교도소는 일단 범죄들 중에서도 엘리트들?만 있는곳인데
먹는게 같으니 변 색갈도 거의 같더라..
단지 묽으냐 단단하냐의 차이뿐..(죄송합니다.)
나는 그 곳에 공연을 몇번 갔었고
금새 그곳에서 친해진, 강도죄로 5년의 징역을 살고 있던
한 재소자의 부탁을 못이겨서 그토록 보안과장이 부탁하던
교도소의 규칙을 어겨버렷다.
(그는 내게 "형님 담배를 좀" ...하고 부탁했다)
지금은 안 그러리라 생각하지만 당시 교도소에는 담배(흡연)가
최고의 죄악쯤으로 치부 됐고
재소자가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독방에 가거나 큰 벌을 받았는데
교도소내에서는 담배가 엄청 비싸다고..
(당시에 한갑에 10만원..정도)
그런데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어떻하든지 담배를 사서 피우는데
뭐 경제사범이나 마늘밭에 수 십억을 묻어둔 사람한테는 껌값이었겠지..
교도소 내에서 담배를 누가,어떻게 판매하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에 고가에 거래된다더라.
그래서 나는 죽은놈 소원도 들어주는데
하물며 5년짜리 강도범의 소원정도야...하면서
담배를 한 보루나 사서 악기케이스에 넣어서 다음
교도소 위문공연때 가져 갔는데,
과연 각종 엘리트?범죄자들의 집단이라 그런지
내가 아주가볍게, 거의 0.1초 정도의 시간으로 내 케이스를 눈짓하고
(뭐가 내 케이스에 있다..는 사인)
그 뒤 나는공연 준비를 했는데
와~~~!!진짜 거짓말처럼 3분후에
그 한보루의 담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재소자는 끽해야 한갑정도의 담배를 내게 기대 했겠지만
나는 아예 한 보루를 갖다줬다.. 후훗 ~우리는 통이 큰 사람이야...
흠.. 특히 지금처럼 돈이 별로 안들어간다면...
그 후, 업소사장이 내게 혹시 교도소에 담배를 줬냐고 물었고
당연히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로 교도소 공연은 아예 없어졌고 들리는 소문에는
교도소에 엄청난(1보루면 엄청난 양이라고함..)양의 불법?
담배가 풀리는 바람에 자체의 內收市場이 위축되어서
담배를 판 재소자를 비롯, 짧은시간에
그 걸 처리한 소매치기 출신
신공을 보인 재소자까지 모조리 독방, 이감 등의 호된 곤욕을 치렀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내 책임도 있다는데 일말의 가책을느낍니다...
지금은 모두 건실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착하게 잘들살고 계실,
그때 그분들 죄송합니다...
내가 담배를 너무 많이드렸지요 ?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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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론...
그 마산의 업소에서 일하던 그때의 어느 늦여름..
거의 파장이 되어가는 업소에 어떤 여자가 들어왔다.
(이런장면 익숙하죠? 내가 늘 무대 중앙에 서있고 입구와 무대가 정면일 경우가 많아서 그렇슴..)
여름인데도 비록 늦은 밤이지만 짧은 밍크 쇼울에,
검은 선그라스 그리고 짧은 검은색 미니원피스,
굽높은 하이힐에...이건
완전 영화배우 이거나 모델 포스였다..
그 업소의 위치가 바닷가의 시장통이라 그런 스타일의 여자손님은
거의~안오고 대개가 중년의 마산 오동동의 시장상인,같은
그런 분들이 주로 오시던, 극장식쑈가 전문인 업소였다.
(허X청이라면 다들 아실래나.).
모든 남자손님, 웨이터, 무대의 악사,
전부다 당연히 그 여자쪽으로 시선이 쏠렸는데,
키도, 몸매도, 머리스타일도 걸친것도
완전 모델수준이라서 더욱 그랬는데...
하~~~시바.. 웨이터가 와서 말하기를 그 손님이 또 나를 찿는단다...
(제 글을 몇번 읽으시는 분들은 이새끼가 자가당착이다,
자뻑이 심하다,주작이다 하실지 모르지만 절대 NO!!!)
끝까지 읽어 보세요..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이런 여자는 관리비나 유지비가?가
엄청 많이 들텐데 하고 가보니
아!!... 아는 여자였다. 이전에 잠시 같이 일도한,
자기 말로는 한때 다리 라인이 이뻐서 무슨 스타킹 다리모델도
잠시 했다는 전직 디스코 걸 아가씨 였는데
(8~90년대, 그때는 무대 옆에서 늘씬한 여자들이
별도의 조그만 스테이지를 만들어 놓고 음악에 맟춰서 디스코를 추던 때도 있었다..)
나는 무용하는 아가씨들과는 별로 안 친했는데,
왜냐하면 애들이 몸매가 좀 되고 그러니까
늘 껄렁한 남자들이 그들 주변에 들끓었고
또, 걔들 자체도 약간 껄렁한 애들도 있었다.
그러나 걔랑은 우연히 같이, 쉬는 시간이 겹치게되어,
그때 마침 대기실에서 포카판이 벌어져서
나처럼 포커를 안 하거나 오링이된 사람은
( *오링=노름팜에서 밑천 다 털림..)
자리가 밀려서 같이 앉다보니 어떻게 나란히 앉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애가 도박을 좋아하더니만,,그 날도 쫑됨,,,)
그 여자가 내게 말하기를,
사실 자기가 지금하는 이 디스코걸은 궁지여책으로 하고 있고,
진짜로 자기가 하고싶은 일은 가수인데 길이 없다...
라고 이야기해서
내가 너를 나중에라도 만나면 가수로서의 가능성이나,
일자리 또는 레슨을 알선해 주겠노라...하고 헤어 졌는데..
그러다가 얼마뒤에 내가 다른 업소에 들어 가게되면서
여자싱어를 구하는데 누가 내게,
" 노래는 조금 약하지만 뽀대는 심히 좋은 애가 있는데
싼 맛에라도 한번 써 보지않겠느냐?"
해서,그럼 오디션이라도 보게 데리고 오라 해서
여자가 왔는데 보니 바로 그때 그 디스코걸 이였다.
세상에는 사람도 많고 여러가지 신기한 일이 있지만
인연이랄까? 그런게 있기는 하는가보다..
그래서 전에 내가 그에게 했던 이야기도 있고,
또 그때 그여자는 일본으로 한국으로 왔다갔다 하며
일을해야 하기때문에 한국에서 일을 할 수 있는기간이
길어야 한텀에 3개월 이라고 하길래 채용?했다.
그녀의 집이 도시의 외각인 저멀리 동촌 어디여서 버스를 타고
도시 끝에서 끝으로 일을 다닌다고 하며
택시비만 해도 엄청나다 하여 당시 팀내에서 유일한 차주이며
같은 東區거주자인, 신천동에 살던 내가 태워다 주기로 했다.
(걔네 집이 택시비가 야간할증까지 하면 2만원 이상 나오는 거리..)
그래서 내가 그를 출퇴근을 시켜 드리고? 했는데
예상대로 노래는 평범한 수준이였는데도
뭐 워낙에 뽀대가 되고
우리가 좀더 신경을써서
잘 반주하고 해서 그럭저럭 넘어갔다.
어느날, 우리홀에 일본남자가 둘이나 왔는데 얼핏봐도 때깔이 좋아 보이고
돈도 좀있어 보였는데 나이는 나보다 위로 보였다..
(그때만해 일본인들이 우리랑 조금 때깔이 다를때 였다.)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 일본인이 나를 자기 테이블로 불렀다...
그래서 가보니 우리 여자싱어와
그 일본놈은 서로 애인사이 인듯 했고
그 일본인이 내게 자기 여자를 잘 부탁한다며
정중히 부탁도 하더라...
하...안중근의사의 집안인 내가 일본인한테
한국여자인 자기 애인 케어를 부탁 받다니..
나는 속으로는 "니네어미 조시다"지만 겉으로는 그래 그러겠노라...하고
나는 일부러 Never mine! no problem!! 이렇게 대답했는데
왜냐하면 일본애들은 영어실력도 별로이고
특히 발음이 안 좋아서
한국사람이 영어로 이야기 하면 기가 좀 죽더라...ㅎㅎ
그때는 그게 그 옛날,언젠가 내가 새벽에 벌린 한일전에 대한
일본측의 準복수?가 될줄은 몰랐는데
*(22화 한일전 수중전편 참조)*
나중에 걔가 나더러 그 일본사람이 나를 카르키며
"고노 히또가 아부나이"
(저 사람이 위험한데..라고 하더라고 한다)
(그때는 일본사람이 봐도 자기애인이 위험해 보일정도..ㅋ )하더라고..흠..
그녀는 일본에서 알뜰히 일해서 돈을벌어서 자기집으로 부치고
(홀어머니와 둘이서 단칸방에 살더라...)
그여자의 비자가 취업이나 학생 비자가 아니라
관광비자라, 일정기간 체류후에는
일단 출국후 다시 입국해야 하는 시스템인 모양인데
한국에 있는 3개월 ,그 동안을 놀 수는 없어서 일을 한다고 하니
마음 약하고 착한? 내가 한푼이라도 그녀의 지출을 줄이라고
내차로 출퇴근시키고 나중에 일본에서도 좀 더 좋은 업소로 가라고
낮에 홀에 나오라고 해서 피아노로 노래 레슨도 해줬는데,
그녀가 고마워 하면서 한번은 낮에 자기집에 놀러 오래서
가보니 좀...짠할만큼 .. 지나 나나 뭐 그렇게 살더라..
(아버지가 영화관의 영사기사였는데 일찍...)
그래서 젊은 홀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 한계가 있었을 것이며
그 딸도 키도 크고 인물도 이쁘지만
홀어머니가 경제적 여건상 공부를 많이 시키지 못해서 그런지
그녀가 좋은 직장도 못 구하고....
그래서 어떻하든지 빨리 돈을 벌어야 해서
이쪽 연예계로 발길을 돌린듯..
그래서 둘이 급속도로 친해져서 거의 매일을 낮에 만나서
놀러도가고 노래레슨도 하고했는데 데이트장소는
주로 그여자가 가자고 하는 장소로만 갔다..
(뭔가 의도적이던데 마치 나도 이런 애인이 있다..는걸 과시하는듯..)
나중에 알고보니 그동안 사귀던 남자한테
집안이 가난하다고 해서 차였다는데
우리가 가던 데이트 코스가 그때 그남자랑
데이트 다니던 코스 였다고..
내가 그때 비록 마이킹이지만 남들이, 그때만 해도 한국사람들도 잘 모르던
최신형 뉴 프린스를 좀 무리해서 뽑았고
뭐 내 나이가 그때만 해도 한창 외모에도 신경을 쓸 나이라
옷도 좀 뭐.. 깔삼.. 그렇게 입어서 악기만 들고 있지 않으면
좀 돈 많은 청년실업가로 보인다고는 카더라...ㅎ
그렇게 한 두달을 나와 일하다가 그녀가 다시 일본에 가면서
"오빠야 뭐 필요한가 없냐?"해서 그때 내가 한창 카메라에 꽂혀 있을때라
내가 부탁하기를 카메라를 사오는데,
반드시 몸체위에 산 같이 불룩한거 있는거
(그게 고급기종. 리플렉스 카메라..)를 사오라고 했는데
어느날 애가 국제전화로 "오빠 여기 일본 카메라 가계인데 열나 비싸다..
오빠가 찿는거는..." 하기도 했다.
(애도 나따라 다니면서 욕이 많이 늘었다..ㅋ)
당시는 국제전화가 감청될때였다..
그래서 그거 사 갖고 오면 내가 그 돈을주마 했는데
이 의리 좋은 여자가
나에게 그카메라를 가져 오기전에 그 카메라를 자기와 같이 일본에
일하러 갔던 동료, 여자싱어의 애인집에 먼저 들고 갔다가,
(바로 그, ..여자를 여인숙에서 보름 간격으로 무슨 티셔츠 처럼 바꾸던 그 놈.. 드럼치던놈.
그놈이 제대를 하고 나서도 역시 여자를 잘 바꾸는데 거의 신의 경지?)
원래의 내 고급 카메라는 그 자식이 가져가고
그 보다 좀 못한것을 내게 가져 오기도 했다..
(하여간에 이 드럼치던 새끼는 일평생에 도움이 안되는 놈인데 얼마나 잘 살살 거리는지
한번은 내가 그놈을 박살 내 버리려고 데리고
골목에 갔다가도 내가 웃으며 나오게 만드는 능력자 였음)
어느날 내가 다른업소에서 일 할때인데 걔가 진지한 얼굴로
"오빠야 나 인제 일본 들어가면 다시는 한국에 못 나온다,,,"
그래서 가기전에 우리 딱 한번만 찐?하게 만자자고 해서
진짜로 큰맘벅고 낮에 둘이서 숙박업소에 까지는 갔는데..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있는지 몰라도 진짜로 어떻게 하고싶은 생각이 전혀 안났다.
(측은지심+일본놈생각+다시 못본다는이별의 슬픔..등등..)
그래서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까..
걔가 갑자기
"진짜 오빠가 지금 나를 잡아주면 나 못살아도 한국에서 오빠랑 살고 싶은데,,"
하면서 펑펑우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걸 걔도,나도 알기에 더욱 내가슴이 아렸다.
그래서 그날 그렇게 그녀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다시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 몇년이 흘렀는데 바로 그녀가 딱!!!
여름에 밍크숄을 어깨에 걸쳐도 어색하지 않을정도의
삼빡, 섹시한 자태로 내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 동안 그일본인 하고는 헤어지고
(그 대가로 일본체류자격을 얻은듯..위장결혼?)
"오빠 나 이제 노래 그딴거 안하고 찌마마상이다 호홋..하고 웃었다..
(찌마마=작은마담 즉,술집의 중간세를든 주인을 말하는듯,
일본은 가계세가 엄청 비싸므로 세의 중간세를 얻기도 하는듯..)
즉, 자기는 이제 어엿한 술집주인이 되어서, 이제는 돈도 좀벌고 하니
한국에도 한번씩 오는데,
그래도 먼저 오빠를 한번 찿아봐야 겠다..
해서 수소문 해보니 마산에서 일한다고 해서 나를 찿아 왔다고..
근데, 히얀하게 어떻게 나랑 좀 썸을 탈려던 애들은
전부 나중에 좀 잘 되긴 되는데 어째 하나같이 술집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팔자도...참..
어쩌면 하찮은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는 이를 악물고 돈을 벌어야하는
동기부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대구로 돌아가며 그녀가 자기는 동대구 호텔에 숙소를 잡았으며
체크아웃은 내일낮 12시라고 알려주고 갔다.
(찿아오라는 사인..)
컴컴한 구마고속도로를 달려서 가는 그녀를를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었다..
그녀는 며칠후면 동쪽으로, 일본으로 가겠지...
~~~~~~~~~~~~~~~~~~~~~~~~~~~~~~~~~~~~~~~~~~~~~~~~~~~~~~~~~~~~~~~~~~~~~~~~~~~~~~~~~~~~~~~~~~~~~~~~~~``
그 뒤로 그여자 소식은 모르는데,왜냐하면
하여튼 나는 그 다음날 그 호텔로 가지 않았다.
두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새로운 인연의 끈을 만들어 서로 괴로워지지 않기 위해서 였고,
두번째는
우리집안인 안중근의사님이 "지난 한일전에서 승리한 네가
어찌하여 승부가 예측되지도 않는 불리한 게임에 임하려 하느냐"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22화를 잘 읽어보세요)
진짜 진짜 이유는
그날" 오빠가 나를 붙잡아만 주면 일본 같은데는 다시는 안 가고 싶다"던
그 울음소리가 자꾸 들리는듯 하고
또 그때 그걸 어쩌지도 못한
내자신이 하찮고 미워져서
그녀의 마지막 초대에도 응하지 못했다.
이제 일본에서 노년의 어귀에 들어섰을 그녀...
계속해서 이쁘고 건강하기 바란다.
그리고 "나 진짜 고자 아니야..." 나.. 아주 잘 가동 된다....진짜..아직도"
걔가 생긴게 007 영화에 자주 나오는 동양인 여자 킬러랑
거의 비슷하게 생겼는데,
눈 양끝이 좀 치켜 올라가고 얼굴이 약간 갸름하면서 코가 오똑한데다
피부도 희고 키도 커서 둘이 같이다니면
선배나, 모르는 사람이나 다 부러워 했는데,
가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007 영화가 나오고
또 그녀랑 닮은 그여자 킬러가 나오면 그때 그녀가 생각납니다.
~~~~~~~~~~~~~~~~~~~~~~~~~~~~~~~~~~~~~`
그대신 한가지, 위안이 된다면 그때,
그 가난한 모녀가 살던 좁은 골목에
내가 최근에 뽑은 신형 프린스에 선물을 왕창싣고
그녀의 집을 방문을해서 동네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일,,
(그녀의 연출?...나는 조연 출연 ㅠㅠ)
아마 그녀가 돈많은 일본사람의 후처로 시집간다는
소문이 당시에 그동네에 쫙 났었는데 의도적으로 내일 저집 사위가 온다고 소문을 내놓고
"자 ...보세요 동네사람들.. 똑똑히들 보세요 내신랑은 일본놈이 아니잖아요...
내 신랑은 국산이에요!!"
하고 그 동네에서 그 모녀의 체면을 조금이나마 세워줬던 일.
나 그때는 좀 새신랑 같았어..흠..
아무튼,이제 이쁘거나 안 이쁘거나 간에
우리나라 여자가 일본으로,
돈 때문에 할수 없이 가는일은 더 이상 없으면 한다.
또 그러면 지하의 안중근 의사님이 화내신다.
~~~~~~~~~~~~~~~~~~~~~~~~~~~~~~~~~~~~~~~~~~~~~~~~
어때? 나 파란만장하지??
또 더 많다...나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