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스님의 금강경 핵심 강좌 2강 1부 대한불교조계종 부산연합회 2011.10.31
上講禮 (상강례)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제불 지극한 일심으로 온 시방삼세의 거룩하신 모든 부처님께 예를 올립니다.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존법 지극한 일심으로 온 시방삼세의 존귀한 모든 불법에 예를 올립니다.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일심정례 진시방삼세 일체현성승 지극한 일심으로 온 시방삼세의 어질고 거룩하신 스님들께 예를 올립니다.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아제자등 강론삼장 유원삼보 위작증명 저희 제자들이 삼장을 강론하고자 하오니 오직 바라옵 건데 삼보님께서 증명을 해주시옵소서!
南無 本師 釋迦牟尼佛 나무 본사 석가 모니불 근본 스승이신 석가모니불께 귀의합니다.
南無 本師 釋迦牟尼佛 나무 본사 석가모니불
南無 本師 釋迦牟尼佛 나무 본사 석가모니불
개경게(開經偈)
無上甚深微妙法 무상심심미묘법 최상으로 깊고도 오묘한 불법의 진리
百千萬劫難遭遇 백천만겁난조우 억만년을 지나도록 만나기 어려워라
我今聞見得受持 아금문견득수지 저희들이 지금 보고 듣고 지녀
願解如來眞實意 원해여래진실의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알기를 바라옵나이다.
스님께 삼배올림.
(입정) (출정)
상강례는 처음에 삼정례는 대중처소에서 예불할 때 선창, 후창 하듯이 그렇게 하고, 부처님 명호, 그다음에 무상심심미묘법, 이 두 가지 하고 그 다음에 하강례는 선창이 먼저 끝난 뒤에 후창이 새로 시작해서 하고 그렇게 합니다. 의정스님이 잠깐 멘트를 했는데 그런 식으로 그게 이제 강원에서 익숙한 사람들은 으레 그렇게 하는 걸로 아는데 하도 이제 오랫동안 안 해봐가지고 고런 것들도 딱 각당이 딱 지게 깔끔하게 고렇게 하는 것, 그것도 교육이에요. 어찌 보면 그런 게 더 좋은 교육입니다. 그것이 뭐 아무렇게나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냐 할지 모르지만 전통적으로 우리 한국불교에서는 수백 년 동안 전통 강원에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여러 수백 년 동안 하면서 내려오면서 다듬어진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그렇게 판명이 된 법요식입니다. 그냥 하는 게 아니에요. 어디는 선창이 있고, 선창을 따라서 창불 하듯이 그렇게 하고, 그 다음에 끝나고 그 다음에 나무 본사 석가모니불, 나무 본사 석가모니불, 고건 또 이제 선창이 딱 끝난 뒤에 그 다음에 또 우리가 하고, 선창이 끝난 뒤에 하고, 무상심심미묘법도 그렇게 하고, 하강례 할 때 간경공덕수승행, 고것도 이제 딱 선창 끝난 뒤에 딱 하고, 이게 아주 여러 수 백 년 동안 우리가 해보고 나서 받들어지는 그런 그 법요식입니다.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그렇게 했을 때 모양이 난다는 거지. 모양새입니다. 의식은 특히 모양이 중요하니까. 그런 것들도 우리가 예를 들어서 통일성 있게 해놓으면 각자 개사찰에서 이런 행사를 하면은 또 그 법에 따라서 통일되게 할 수가 있는 거죠. 第五 如理實見分 제오 여리실견분
第五 如理實見分(一. 斷求佛行施住相疑) 제오 여리실견분 (攝跡斷疑 : 二十七 )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不可以身相으로 得見如來니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何以故오 如來所說身相은 卽非身相이니이다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하면 卽見如來니라 불 고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은 6쪽에, 6페이지에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제 5’, 32분 중에서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입니다. 第五 如理實見分 제오 여리실견분
제5. 그러한 이치를 사실대로 보다[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여리실견(如理實見)’이라, 같을·여(如)자 이치·이(理)자, 이치와 같이, 이치대로, 이치대로 실답게 본다. 사실대로 본다. ‘이치를 이치대로 그대로 본다.’ 요걸 이제 다른 말로 하면 ‘존재에 대한 바른 견해, 존재에 대한 바른 안목, 모든 존재, 존재에 대한 정견’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제 금강경의 4개의 사구게 중에서 제1사구게가 이제 등장을 합니다. 글은 아주 짧죠. 여리실견(如理實見), 모든 유형·무형의 존재를 사실대로 본다, 바르게 본다, 정견(正見), 이건 어디까지나 물론, 진리에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마는, 그러면서 또한 금강경에서 보는 정견이다, 이렇게도 또 볼 수가 있어요.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몸으로써, 이 육신이죠. 육신으로써 여래를 보는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不可以身相으로 得見如來니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그랬어요. ‘신상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득(得)’자는 얻는다는 뜻 아닙니다. 볼 수, 가능성을 말하는 거죠. ‘볼 수 없습니다.’ ‘여래(如來)’라고 하는데 대한 우리 관념이요, 참 다양하죠. 조금 불교를 아는 이들은 아, 이것은 진리 당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제 생각을 하고, 또 우리 신앙적으로 부처님, 그 부처님이 역사적인 석가모니가 됐든, 아니면 법신불이 됐든, 막연하게 우리에게 어떤 가피력을 주는 그런 부처님이 됐든 간에, 그런 여래로 생각하는 경우가 아주 많죠. 그러나 금강경 입장에서는 이렇습니다.
何以故오 如來所說身相은 卽非身相이니이다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여래가 말하는, 여기 이제 말씀하신 분도 여래예요, 사실은, 왜냐? 역사적인 부처님 아닙니다, 분명히, 금강경에서는. 그리고 뭐 우리가 빌면 복을 주고 죄를 소멸하게 해주는 그런 여래도, 그런 그 아주 신격적인, 신격화된 그런 부처님도 아니에요, 여기는. 그러면서 여기선 여래가 말하신 육신, 신상이라고 하는 것. 여래가 말씀하신 신상, 이렇게 여래가 말씀하신 신상이라고 하니까, 이게 이제 또 헷갈리는 거야. 아, 진리 당체인 것 같으며서도 무슨 진리 당체가 뭐 우리처럼 말하는 그런 경우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도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승경전은요 우리 아함부 경전하고 전혀 달라가지고, 사람이면서 그 사람은 곧 진리를 깨달은 사람인 까닭에, 그 사람이 진리야, 또.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냥 그대로 진리야. 진리이면서 또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야. 이게 모든 걸 포함하고 있으면서 또는 어떤 역사적인 실존 인물처럼도 등장하기도 하고, 아니면 진리 자체로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다 융합된 그런 존재로서 등장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대승경전에 있어서의 부처님이라고 하든지, 여래라고 하든지, 세존이라고 하든지 그것이 아주 그 명확하게 선이 착착 이렇게 그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것을 총 포함해서 폭 넓게 이해해야겠죠. 아무튼 진리를 깨달으신 그 어떤 인물은 곧 진리자체이면서 사람인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은, 신상이라고 하는 것, 육신이라고 하는 것은 ‘즉비신상(卽非身相)’이다, 신상은 곧 신상은 아니다, 그랬어요. 여기 ‘즉비(卽非)’라고 하는 말이 금강경에서 제일 많이 나오고, 제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자 하는 낱말입니다. ‘즉비(卽非)’, 곧·즉(非)자, 아닐·비(非) 마이크는 곧 마이크가 아니다. 차는 곧 차가 아니다. 책은 곧 책이 아니다. 모든 이 세상 만물을, 그리고 심지어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깨달음까지도, 부처님의 설법까지도, 먼지에서부터 삼천대천세계까지도, 중생, 부처, 모든 것을 저 뒤에 가면 그렇죠.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이 이름이 중생이다, 시명 중생이다 이 세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존재, 뭐 중생세간(衆生世間)이나, 기세간(器世間)이나, 깨달음의 세계,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주1)의 명제야. 모~든 것을 전부 금강경의 안목은 ‘즉비(卽非)’로 봅니다, ‘즉비(卽非)’!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곧 아니다!’이게 ‘즉비’예요, ‘즉비’의 논리야. 그래 보이는 대로 그대로 이해하면은 속는다, 이거야. 귀에 들리는 대로 그대로 이해하면은 속는다. 그것이 곧 아니라고 하는 그런 그 안목을 가지고 봐야 된다. 그렇습니다. 안경을 하나 끼라는 거예요. 뭐 색안경을 끼라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투명안경, 모든 존재를 투시하는 투명안경이 ‘즉비’의 안경입니다. 그렇게 알아야 돼요. 투명안경! 투명안경이 있으면 근사하겠죠. 가끔 뭐 신문에 ... 그렇게 광고한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마는 투명안경이 있다고 그렇게 하긴 합디다. 테러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 투시하는 그런 그 투시안경이 있었죠. 그래봐야 그 별로 투시되는 건 아니더라구요 보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투시하는 투시는 못해. 이 ‘즉비’라고 하는 것은 모든 존재를 정말 투시하는, 꿰뚫어 보는 그런 안경입니다. 이것 뿐이에요. 사실은 금강경에 뭐 여러 가지가 있지마는 한 마디로 딱 표현하면 이 ‘즉비(卽非)’라고 하는 이 두 글자뿐이지 다른 거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즉비(卽非)’라고 하는 낱말이 제일 많고, 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먼지 하나에서부터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중생에서부터 부처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깨달음에서부터 부처님의 설법에 이르기까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지식은 다 등장시켜놓고 그것은 전부 즉비의 투시 안경으로 꿰뚫어봅니다. 이것은 깨버린다, 로도 볼 수가 있지만 깨버리는 것이 아니고 투시하는 거예요. 꿰뚫어보는 거예요. 아주 참 금강경은 내용이 다양하진 않습니다. 아주 단순한데, 명쾌해요. 아주 명쾌합니다. 이 투시안경을 하나 제대로 낄 수 있다면은 금강경을 통해서, 그럼 뭐 인생은 정말 행복하고 평화롭게 어떤 문제에도 우리가 걸리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아주 참, 경전이, 많은 경전이 있어서, 능엄경이라든지, 이런 것 참 아주 그 이야기가 다양하죠. 법화경도 또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주 금강경은 참 단순해요. 그래서 선사들이 좋아했습니다. 불교전반으로 볼 때 이걸 사실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볼 때 부적합하다, 너무 단순하기 때문에. 불교라고 하는 것은 이건 참 대단한 그 종교인데, 요렇게 어떻게 즉비의 논리, 이것 하나만을 가르치는 이 금강경을 어떻게 소의경전으로 할 수 있나, 좀 부족하다는 그런 주장도 있습니다. 사실 그럴 만도 해요. 그러나 우리에게 이 하나의 이치만이라도 철두철미하게 이해하라하는 이것만 이해하고 나면, 거기에 보살행도 나올 수가 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의 열쇠도 있다, 이 뜻이에요. 그래서 이 ‘즉비(卽非)’를 우리가 눈여겨봐야 합니다. 계속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우리 육신이 육신이 아니다’, 일단 아닌 걸로 보자 이거예요. 그게 ‘정견(正見)’이라는 것입니다. 바른 견해, 바르게 보는 안목이다 이거죠. 우리가 49재를 지낼 때, 으레 금강경을 독송하는데 그 돌아가셔서 이제 마지막에 이제 이생을 하직하고, 다음 생을 맞이하는 그 사람에게 일러줄 수 있는 최고의 어떤 그 진리의 말씀, 아직도 이 육신의 생명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그 육신에 집착을 한 나머지 그 주변을 맴돕니다. 그래서 공동묘지에는 그 말하자면 귀신이 많은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자기 몸이 거기 가 있으니까 자기가 아직도 살아있는 줄 알고 이미 썩어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있는 거야. 육신에 대한 집착이 그래 강합니다. 왜냐? 사람이 사는 건 육신 뿐이니까. 그래서 금강경에서 이것이 나온 거야. ‘육신에 대한 집착하지 마라’라고. 그래 49재 때 읽어주는 건 아주 좋은 그런 제도예요. 안 그렇습니까? 만약 육신에 집착하고 있어가지고 시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 서성거리고 있다면 그게 무슨 꼴입니까? 지 갈 데로 얼른 가야지. 인연따라서 빨리 가야지. 그럴 때 이 아주 참, 촌철살인과 같은 무서운 독약이 되거든요, 이건. 그런 집착을 파괴해주는 아주 무서운 독약이 바로 금강경입니다. 그러니까 몸이 몸이 아니다 이거야. 육신이 육신이 아니다, ‘즉비신상(卽非身相)’이다. 그러고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하면 卽見如來니라 불 고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제1사구게주2) 그러죠?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까지 그리고 즉견여래, 이렇게 네 구절로 된 게송, 그래서 경전마다 금강경 전체거나 아니면 사구게 만이라도, 이런 말이 종종 나오잖습니까? 그러고 우리가 시식할 때 시식문에 뭐 좋은 사구게들 다 모아놨죠. 처음에 금강경 사구게부터 나옵니다. 그러고 법화경 사구게, 화엄경 사구게 주욱 그냥 이 세상에 최고 좋은 법문, 고급법문만 다~ 들려주죠. 거기에 이제 이 사구게가 나오는데,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이 다 개시허망(皆是虛妄), 다 허망한 것이다. 만약에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본다면 그게 정견이죠. 투시안경을 가지고 보라. 그 투시해서 봐란 말이야. 그냥 이렇게 가려진 안목으로 보니까 눈에 보이는 일차원적인 그런 것 밖에 안 보이잖냐, 좀 더 다른 차원으로 보라 이거지. 그 말입니다. 若見諸相非相하면 卽見如來니라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다.
곧 여래를 본다, 그랬어요. 여기서 ‘여래를 본다’라고 하는 말은 물론 ‘부처님’도 됩니다. ‘존재의 실상, 존재의 실상을 이해한다’, 이 뜻입니다. 유형· 무형, 유상· 무상, 무엇이든지 간에 모든 존재의 실상을 볼 수가 있다. 그랬을 때, 부처님도 물론 그 속에 포함되고, 나 자신도 포함되고, 내 생명도 포함되고, 내 명예도 포함되고 그 속에는 모든 것이 전부 포함됩니다. 내 육신, 내 수명 이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즉견여래다, 실상을 제대로 보게 된다. 참, 이 사구게 이건 정말 뛰어난 법문이죠. 뭐 하루 종일 읊조려도 부족한 그런 그 내용입니다. 金剛般若波羅密經(금강반야바라밀경)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五 如理實見分(제오 여리실견분) 金剛般若波羅密經 금강반야바라밀경 구마라집(鳩摩羅什) 한문 번역 무비[如天無比]스님 한글 번역
第五 如理實見分 제오 여리실견분 제5. 그러한 이치를 사실대로 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육신으로써 여래(如來)를 볼 수 있겠는가?”
不也니이다 世尊하 不可以身相으로 得見如來니 불야 세존 불가이신상 득견여래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육신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何以故오 如來所說身相은 卽非身相이니이다 하이고 여래소설신상 즉비신상 왜냐하면 여래께서 육신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육신이 아닙니다.”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불 고수보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하면 卽見如來니라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虛妄)하나니,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느니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第六 正信希有分 제육 정신희유분
第六 正信希有分 (二. 斷因果俱深無信疑) 제육 정신희유분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수보리 백불언 世尊하 頗有衆生이 得聞如是言說章句하사옵고 生實信不잇가 세존 파유중생 득문여시언설장구 생실신부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莫作是說하라 불 고수보리 막작시설
如來滅後後五百歲에 有持戒修福者가 於此章句에 能生信心하야 以此爲實하리니 여래멸후후오백세 유지계수복자 어차장구 능생신심 이차위실
當知是人은 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에 而種善根이라 당지시인 불어일불이불삼사오불 이종선근
已於無量千萬佛所에 種諸善根하야 聞是章句하고 乃至一念生淨信者니라 이어무량 천만불소 종제선근 문시장구 내지일념 생정신자 須菩提야 如來가 悉知悉見하노니 是諸衆生이 得如是無量福德이니라 수보리 여래 실지실견 시제중생 득여시무량복덕
何以故오 하이고
是諸衆生이 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며 無法相하며 亦無非法相이니라 시제중생 무부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무법상 역무비법상 何以故오 是諸衆生이 若心取相하면 則爲著我人衆生壽者니 하이고 시제중생 약심취상 즉위착아인중생수자
何以故오 若取法相이라도 하이고 약취법상
卽著我人衆生壽者며 若取非法相이라도 卽著我人衆生壽者니라 즉착아인중생수자 약취비법상 즉착아인중생수자
是故로 不應取法이며 不應取非法이니라 시고 불응취법 불응취비법
以是義故로 如來가 常說호대 汝等比丘가 知我說法을 如筏喩者라하노니 이시의고 여래 상설 여등비구 지아설법 여벌유자
法尙應捨어든 何況非法가 법상응사 하황비법
第六 正信希有分 제육 정신희유분
그다음 제육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입니다.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참, 우리보고 뭔가 마음에 새기게 하죠.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 그렇습니다. 참 바른 믿음은 쉽지 않습니다. 내가 그동안 이렇게 주욱 살아오면서 보니까 뭐 수십 년 불교에 몸 담고, 불교 경전도 아주 잘 알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가르쳐. 저를 포함해서입니다 이거는. 딴 사람에게 많이 가르쳐. 경전번역도 많이해. 그러면서 정작 불교를 아느냐, 불교를 아느냐 라고 생각했을 때 이건 또 아닌 거야. 이 정신(正信)이란 말은 제대로 된 불교를 아는 사람, 이건 뭐 유식무식하고 관계없습니다. 또 이제 뭐 승랍이 낮다 높다 이거 하고도 관계없고, 승속에도 관계없어요, 사실은. 관계없이 제대로 정말 불법에 대한 그런 그 마음이 있는가? 불법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는가? 불법을 정말 애착하는가? 불법을 진정 사랑하는가? 이런 문제가 딱 봉착하면요 그 사람 경력하고 아무 상관없어요. 그 사람 지식하고도 아무 상관 없는 문제더라구요. ‘정신희유(正信希有)’, 차암!~ 바른 믿음은 희유하다!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第六 正信希有分
제육 정신희유분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수보리 백불언 世尊하 頗有衆生이 得聞如是言說章句하사옵고 生實信不잇가 세존 파유중생 득문여시언설장구 생실신부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莫作是說하라 불 고수보리 막작시설
須菩提가 白佛言하사대 世尊하 수보리 백불언 세존 수보리가 석가모니부처님께 사뢰되, “세존이시여!
‘파유중생(頗有衆生) ’파(頗)자 이게 별 글자도 아닌데 늘 걸리죠. 많은 중생들이 있어서,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자못· 파(頗)자인데 ‘약간’, 또 경전에서 ‘약간’이란 말은 ‘많다’는 뜻이에요, 보면은. 대개 그런 뜻이라. ‘작은’ 뜻으로 우리 국어에는 약간하면‘조금’이런 뜻인데 ‘많다’는 뜻이에요, 대개 보면은. 頗有衆生이
파유중생 이것도 많은 중생이 있어서,
得聞如是言說章句 득문여시언설장구
如是言說章句 여시언설장구하고 ,
이와 같은 언설, 이걸 말씀으로 했을 때에는 ‘언설’이고, 글로 써놨을 땐 ‘장구’예요. 그런 뜻입니다. 이와 같은 뭐 부처님 설법하시면 ‘언설’이고. 이미 이것이 성문화 됐기 때문에 그래서 ‘장구’라고 하는 말을 붙였습니다. 부처님 뭐 글도 없고, 글로 기록도 안 할 그런 시절같으면 그냥 ‘언설’이라고만 했겠죠.
이와 같은, 이게 뭡니까?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하면 卽見如來니라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第五 如理實見分(제오 여리실견분)> ‘若見諸相非相하면 卽見如來(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5.如理實見分(여리실견분)>’ 이말 말입니다. 모양 떠나서, 모양 떠나서 여래를 본다라고 하는 이 사실. 우리가 천불 만불을 조성하잖습니까? 천탑 만탑을 조성 하고, 그저 부처님, 잘 생긴 부처님 있으면 그냥 껌벅 넘어가고. 어디 뭐 저기 뭐 무석에 영산대불 근사하게 조성해놨다 하면 그 그냥 갔다 와서 신심이 나가지고 그냥 칭찬을 막 늘어놓고, 그럼 또 가서 보고, 또 가서 보고. 이게 우리 중생이라. 보통 사람의 심성이라구요. 상견중생(相見衆生)이야. 상을 봐야 속이 시원한 그런 속성을 가진 그런 인간이 우리거든요. 그런데 이 부처님이 상이 아니라니, ‘상(相)을 상(相)으로 보지 않아야 여래(如來)를 볼 수 있다’니, 이런 말을 듣고, 여시언설장구를 듣고,
生實信不잇가 생실신부 (진실한 믿음을 내겠습니까?”) 진실한 믿음을 내겠느냐, 이말이야. 진실한 믿음을.
아, 이건 자신없어요, 저도. 솔직하게 자신없어.
어느 날 부처님 좋은 형상이 있으면, 옛날에 나 건강할 때 중국 여행을 가면은, 뭐 저기 인도나 이런데 가면 불상 사오다가 볼일 다 봤어요. 여행 경비, 콜라 하나 사먹을 거 안 사먹고 전부 불상만 다 사왔어. 그 얼마나 무겁습니까? 동으로 된 것. 그런데 인도 같은데 가면 티벳에서 만들어진 불상, 우리 돈으로 예를 들어서 뭐 한 2~3만원만 주면은 우리나라에서 수십만 원 줘도 조성을 못할 그런 불상을 사오는 거야. 우리 같은 사람은 막 그냥 환장하는 거지. 그래서 무거워서 어떻게 감당도 못하면서 막 샀어. 그렇습니다. 그런 믿음 가지고 진실한 믿음 내겠느냐 이거예요. 뭐 그때 이 범소유상(凡所有相)이거 안 읽어서 그런 것도 아니야. (일동웃음) 生實信不(생실신부)잇가 참, 수보리도 이런 말 못 받아들이겠다, 이거야.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莫作是說하라 불 고수보리 막작시설
佛이 告須菩提하사대 불 고수보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莫作是說하라 막작시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말이야. 그럼 희망이 없잖느냐,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어요, 이게. 사실은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불성인간인 까닭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한 생각 돌이키면 다 뭐 석가모니 부처님 못지않은데,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또 희망을 가져야 된다.
如來滅後後五百歲에 有持戒修福者가 於此章句에 能生信心하야 以此爲實하리니 여래멸후 후오백세 유지계수복자 어차장구 능생신심 이차위실
그랬어요. 이것으로써 진실을 삼는다[이차위실(以此爲實)].”
후오백세(後五百歲), 이거 이제 우리가 흔히 이제 오백 년, 오백 년, 오백 년으로 이렇게 잘라서 이야기를 하는데 왜 오백 년이란 말이 이 금강경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많아요. 대승경전에는 많습니다. 다른 경전에는 별로 없는데 대승경전에는 오백 년이라는 말이 많아요. 이게 이제 부처님 열반하시고 오백 년 전후를 해서 대승불교 운동이 제대로 일어났어요. 불교다운 불교가, 오백 년, 부처님 열반하시고 오백 년 경에서부터 비로소 대승경전이 막 곳곳에서 탄생하고 그리고 정말 승단중심의 어떤 권위주의에 떨어져 있던 그런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게 되고, 또 이제 재가 불자들이 그런 어떤 그 권위주의에 떨어져 있던 승단을 배격하고, 또 무시하기도 하고, 그래서 유마경 같은 것이 그냥 기라성 같은 십대제자들이 유마거사에게 사정없이 박살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그게 우정 그거는 이제 ‘대승불교운동의 선언서’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우정 그런 그 대승경전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십대제자가 어찌 그 유마거사에게 무슨 소견이 그렇게 부족하겠어요? 부족할 까닭이 없는데 우정, 유마거사라고 하는 세속 거사를 등장시켜가지고 출가한 승단의 그 권위주의적인 그런 사람들의 어떤 그 아집, 이것을 깨뜨리는 그런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그것 때문에 그런가 틱낫한 스님[ Thich Nhat Hanh 베트남 스님 1926년 10월 11일~ ] ‘유마경을 안 좋아한다, 나는 ’, 그런 글이 있어요. 보면
後五百歲 후 오백세,
‘해탈견고(解脫堅固)’, ‘선정견고(禪定堅固)’, ‘다문견고(多聞堅固)’, ‘탑사견고(塔寺堅固)’, ‘투쟁견고(鬪爭堅固)’, 이렇게 하잖아요? 이걸 이제 나는, 아, 사실은 뭐 우리 같이 이렇게 말세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이런 말을 들을 때 별로 아닙니까? 우리는 뭐 2500년 이후니까 ‘투쟁견고(鬪爭堅固)’하고도 남는 그런 시대인데, 물론 그런 시간적인 관계도 없는 것은 아니야, 사실은. 있지마는 그것보다는 저는 역으로 그래 생각해요.
‘투쟁견고(鬪爭堅固)’라고 하는, 제 5 오백년 ‘투쟁견고(鬪爭堅固)’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냐? 세속적인 관념이야. 세속적인 상식이라. 우리가 세속에 있을 때 세속의 그 관계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게 갈등과 투쟁 뿐 이라. 그러다 어느 날 절에 왔다 말이야. 절에 와 보니까 아, 건물도 근사하고, 탑도 근사하고, 불상도 좋고, 여러 가지가 뭐 선경 같거든. 그게 뭔고 하니 ‘탑사견고(塔寺堅固)’야. 제 4 오백년. 거기에 신심을 내는 거야. 그 전에는 어떤 그 세속의 시시비비 갈등, 투쟁, 이것만 관심을 갖고 있다가 사찰에 와 보니까 사찰의 어떤 그 성스런 그런 그 도량이 너무 근사해 보인다. 거기에 일단 마음이 한번 움직이게 돼요. 그런데 이것 뿐 인가? 그건 아닐 거다, 이거지. 그 다음에 여기에 무슨 가르침이 있느냐? 불교는 뭐냐? 이렇게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행자 때부터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꼭 맞습니다. 세속에 있다가 행자로 들어와서 행자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것. 그게 ‘다문견고(多聞堅固)’야. 불교 공부, 이런 공부하는 것이죠. 아, 불교는 이러한 것이고 저러한 것이고, 어떠한 경전이 있고 어떤 공부가 있고, 이러한 것들을 불교 상식을 전부 공부하는 게 그게 ‘다문견고(多聞堅固)’라구요. 그리고 다문만 이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대로 이제 수행정진해야 된다, 그게 ‘선정견고(禪定堅固)’아닙니까? 그래 선정이 깊어지면 해탈로 나아가는 건 이건 당연한 일이라. 그래서 해탈 [해탈견고(解脫堅固)], 선정[선정견고(禪定堅固)], 그 다음에 다문[다문견고(多聞堅固)], 탑사 [탑사견고(塔寺堅固)], 투쟁 [투쟁견고(鬪爭堅固)], 이렇게 이제 5백년으로 주욱 내려가게 되어있는 것을 세속의 어떤 상식에서부터 해탈에 이르기까지의 우리의 정신적인 그 역정을, 정신적인 여정을 그렇게 이제 거슬러서 해석을 하면 아주 너무 딱 들어 맞아요. 시간적으로 너무 하면은 문제가 또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세간 [loka, 世間]주1) 보통 세간이라고 할 때에는 세간에 속한 것도 포함하며 세상의 사물과 번뇌에 얽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존재의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세친(世親)의 〈불성론 佛性論〉에 의하면 '세'에는 부정되고 없애버려야 할 것(對治), 옮겨가는 것(不靜住), 진리에 어긋난 거짓(虛妄) 등의 3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세간은 일반적으로 3가지로 구분되는데, 이를 삼종세간이라고 한다. 천태종(天台宗)에서는 오음세간(五陰世間)·중생세간(衆生世間)·국토세간(國土世間)으로 삼종세간을 구분한다. 오음세간이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오음(五陰), 즉 5온 (五蘊)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세간이고, 중생세간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만들어낸 세간이며, 국토세간은 중생을 수용하고 세간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산하대지(山河大地) 등을 말한다.
이에 대해 화엄종(華嚴宗)에서는 기세간(器世間)·중생세간(衆生世間)·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의 삼종세간을 말한다. 기세간은 국토세간과 같은 것이며, 지정각세간은 부처가 세간과 출세간(出世間)의 법(法)을 치우침 없이 모두 깨달아 얻은 세간이다. 세속이라는 의미의 세간에 대해 세간의 번뇌를 뛰어넘은 열반의 세계를 출세간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고(苦)·집(集)·멸(滅)·도(道)의 사성제 (四聖諦)에서 고·집의 2제(諦)는 세간에 속하고, 멸·도의 2제는 출세간에 속하는 진리이다.
출처 브리태니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2s1025a
사구게 주2)
金剛經 四句偈 금강경 사구게
5. 이치대로 실답게 볼 것이요 [제5.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則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즉견여래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일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6. 바른 믿음은 희유하고 [제6.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
知我說法 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지아설법 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나의 설법을 뗏목으로 비유함과 같음을 알 것이니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할 것이거늘 하물며 법 아님이겠는가!
10. 정토를 장엄하고 [제10.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而生其心 제보살마하살 응여시생청정심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이생기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같이 청정한 마음을 낼 것이니, 응당 형상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 것이요, 마땅히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낼 것이다.
23. 청정한 마음으로 선을 행할 것이며 [23.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是法平等 無有高下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無我無人 無衆生無壽者 시법평등 무유고하 시명아뇩다라삼막삼보리 이무아무인 무중생무수자
修一切善法 則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막삼보리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한다. ‘나’라거나 ‘사람’이라거나 ‘중생’이라거나 ‘목숨’에 대한 생각도 없이 온갖 선한 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26. 법신은 형상이 아니요 [26.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만일 형상으로써 나를 보려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
29. 위의가 적정하며 [29.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 여래자 무소종래 역무소거 고명여래
여래란 오고 감이 없기에 여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32. 응화신은 진실한 것이 아니다 [32.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일체의 유위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으며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할 것이다.
2강 1부(2011.10.31)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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