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전쟁
공통자원 기반 급진 민주주의 프로젝트
장훈교 지음
나름북스 l 140*200 l 380쪽 l 17,000원
발행일 2016년 3월 17일
ISBN 9791186036105 93300
주제어 : 송전탑/765kV/밀양송전탑/이계삼추천/김현우추천/에너지/민주주의/자본주의/시초축적/공통자원/탈핵/울력/인민/국가전력망/한국전력/
국내도서 > 정치/사회> 사회학 > 사회과학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한국사회비평/칼럼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운동 > 사회운동일반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운동 > 시민운동/NGO/NPO
국내도서 > 사회정치 > 사회학 > 사회학일반
국내도서 > 사회정치 > 사회비평/비판 > 한국사회비평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일반 > NGO/사회단체/시민사회
[책 소개]
2014년 6월 밀양 행정대집행 이후에도 밀양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국가 폭력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으며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마르크스의 시초 축적 개념을 토대로 한국 자본주의에서 국가 전력망의 지리 정치학을 분석하고 밀양에서 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여다본다. 밀양 투쟁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와 한국전력의 대응방식을 파헤치는 한편 사회적 연대, 나아가 밀양 투쟁에서 비롯되어 진화하는 단계의 운동인 공통자원을 향한 민주적이고 탈식민적인 대안 패러다임을 모색한다.
[추천글]
이 책은 학술적 분석틀을 가지고 밀양의 아픔과 연대를 해석하려 하고, 또 그 해석의 적절성과 유용성을 나누어 보고자 하는 최초의 시도이며, 게다가 과감하고 용감한 시도다. 저자 스스로 밀양의 눈물을 나누고 연대하는 데 소홀하지 않았기도 하거니와, 학술적 접근을 통해 밀양이 갖는 더 큰 보편성을 발견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밀양의 투쟁을 더욱 넓고 깊게 확장하는 싸움이기도 할 것이다. 밀양과의 조우를 통해 한국 사회의 여러 차원과 대안의 정치학에 대해 이만큼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이는 요즈음 보기 드문 성실하고 정직한 학술 작업이기도 하다.
_ 김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지난 10년간 밀양 주민들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전쟁을 걸어온 세력은 ‘내부 식민지’를 구축하려는 대자본과 국가권력이었고, 전장으로 끌려나온 이들은 ‘지금 이대로’ 살고 싶어 했던 시골 노인들이었다. 재산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뛰어들었던 이들은 10년의 세월 동안 폭력과 회유, 죽음들을 겪으며 서서히 이 싸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내 재산만이 아닌 우리 공동의 재산, 내 건강만이 아닌 우리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 저항했고, ‘울력’으로써 이 땅의 민주주의자들과 손잡았다. ‘밀양 전쟁’은 화탕지옥 같은 세상에 쏘아 올려진,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사회적 삶을 대낮처럼 드러낸 ‘민주주의의 예광탄’이 되었다.
_ 이계삼(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지은이: 장훈교]
2014년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에서 공통자원 기반 대안 운동과 안토니오 그람시의 조절사회 개념을 결합하는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개념 체계를 매개로 한국 민주주의 급진화를 위한 대항헤게모니 프로젝트를 탐구 중이며, 이를 위해 한국 대항운동의 경험을 ‘독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현실과 결합하지 못한 채 추상적 담론으로 현실의 갈등과 모순을 대체해 온 지난 연구과정의 반성과 함께, 현실의 고통과 분리되어 수인의 언어를 생산하는 학문의 장소가 더는 존재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비판사회과학의 모든 임무는 인민의 역사와 현장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조수’ 역할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동료들과 스승님들의 오래된 비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자 한다.
[책 속으로]
밀양 투쟁은 투쟁의 장기성과 격렬함뿐만 아니라 그 전개 방식이 한국에서는 앞선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고유성을 지닌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다른 지역에 비해 장기적이고 강렬하게 진행된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의 원인을 일관되게 환경단체 등과 같은 외부 세력의 ‘개입’에서 찾거나 밀양 주민들의 송전 선로에 대한 무지와 이로부터 비롯된 심리적 불안감으로 파악한다. 이런 접근은 밀양 투쟁의 원인을 밀양 주민과 한국전력 및 정부와의 ‘내부’ 문제보다 ‘외부’와의 관계에서 찾는 동시에 이 투쟁을 이치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 행위로 정의한다. p.19
그렇다면 ‘시초 축적’의 개념은 자본주의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인민 자신이 창출한 집합적인 가치로부터 인민을 분리시키는 모든 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밀양에서 발생한 ‘장소로부터의 인민의 분리’는 한국 자본주의의 자본 축적 확장 과정에 내재된 시초 축적의 한 유형으로 통합할 수 있다. 이런 분석의 또 다른 장점은 밀양을 고유한 사례가 아닌 한국 자본 축적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또 다른 시초 축적 사례들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확대재생산된다면 자본주의 발전의 국면마다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밀양 투쟁을 발생시킨 갈등의 구조는 언제나 반복된다. p.27
민주주의의 급진화란 민주주의의 뿌리인 인민의 능력이 인민의 전체 사회에 대한 자기 조절로 실현될 수 있는 조건과 다원적이고 분산적인 인민들의 집합 능력을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공통자원 기반 대안은 인민들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인민들의 집합적인 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효과적이고 유의미한 대안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인민에게 자신의 일상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환원하기 때문이다. 밀양 문제가 한국 자본주의의 과거에서 잉태된 것이라 할 때, 밀양 투쟁이 한국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의 미래를 예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33
한국의 국가 전력망은 전력계통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부터 국가에 의해 위로부터 만들어졌다. 국가의 계획에 의해 지역으로 투입되는 과정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는 국가와 지역 그리고 각 지역에 귀속된 인민들과의 갈등을 발생시킬 수 있었는데, 군사주의는 이 모든 갈등에 대한 대응방식을 결정했다. ‘개발’은 군대의 운영 원리를 통해 이루어져야만 했다. 곧, 갈등은 부정되고 인민과 인민이 귀속된 장소의 모든 자원은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가에 의해 동원 가능해야 했다. 갈등이 발생한다면, 이는 군사적인 상황 정의 내에서 파악되었다. 곧, 군대의 명령에 대한 부정과 갈등이 동일시된다. 따라서 갈등은 국가가 인민의 협력을 조직하는 방법을 발전시키도록 강제하지 못했다. p.52
‘입지선정자문위원회’라는 절차 안에 제시된 권력의 공유 없는 주민 대표의 ‘참여’가 한국전력의 밀양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입지 선정’이란 말이 한국전력의 본질을 드러낸다. 입지란 “인간이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 선택하는 장소”를 말한다. 이 개념에는 그래서 장소 선택을 위한 ‘척도’의 권력 문제가 결합되어 있다. 왜냐하면 경제 활동이란 관점에서 다양한 장소의 조건을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입지’가 선정되기 때문이다. 장소마다 고유한 조건들은 이 과정에서 오직 경제 활동을 위한 계획의 집행이란 관점에서만 평가된다. 전체 국가 단위에 대한 예측과 전망을 수립하는 계획주체인 정부와 한국전력은 이 과정을 공학기술과 합리성 그리고 효율성이란 관점에서 수행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선정한 특정 장소를 ‘입지’로 전환하기 위한 일련의 절차들을 진행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해당 ‘장소’의 고유성은 소멸한다. p.81
국책 수행 과정은 모든 장소와 모든 인민에게 똑같은 규칙으로 무차별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국가의 필요 충족을 위해 인민을 자신의 생활 세계가 구축되어 있는 장소로부터 분리하는 이런 과정은 ①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대도시권인 ‘수도권’과 서울 이외의 지역을 의미하는 ‘지방’의 위계, ② 그리고 도시와 농촌의 위계라는 이중 척도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런 국책사업의 전개 양식은 밀양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격렬한 갈등을 동반했던 새만금 개발, 평택 미군기지 건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한미FTA 추진 등은 모두 ‘국책사업’이다. 방법으로써의 군사주의와 장소의 불균등발전은 이 모든 국책사업에서 발견되는 공통의 요소다. p.98
분신까지 불러온 송전탑 건설 강행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밀양 주민들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의 반성 능력이 송전탑 건설과 핵발전소 건설의 연관성에 대한 인식을 심화하는 단계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곧, 밀양 송전탑 건설의 배후에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건설뿐만 아니라 신고리 3호기의 원전 수출이 존재하고, 고리 1호기를 폐기한다면 더 이상의 송전 철탑 건설이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과 밀양의 송전탑 반대 투쟁이 조우한 것이다. 이는 밀양 투쟁의 내부 동력을 만들어내는 인식의 프레임이 송전 철탑으로부터 발생하는 직접적인 피해와 나의 생활 세계 파괴에 대한 문제로부터, ‘탈핵’이란 또 다른 프레임과 조우하는 과정이었다. p.154-155
국가는 교환될 수 없는 밀양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다원적인 가치들은 보상의 범위 외부로 배제하고, 교환될 수 있는 경제적인 가치는 경제 외적 수단을 통해 부등가교환을 강제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환될 수 없는 일상생활의 가치들이 보상 범위 자체에서 원천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밀양 주민과 한국전력의 교환 과정에 ‘교환정의’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 자체의 “부등가교환”의 속성이 소멸하지는 않는다. 보상의 대상은 재산의 손해일 뿐이기 때문이다. “삶”은 교환될 수 없다. 삶을 비교할 수 있는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척도가 없기 때문에 모두의 삶은 고유하다. p.172
타자의 고통 없는 전력의 대안 관리 방식이 전력의 공통자원으로의 전환을 통해 충족될 수 있다는 이런 발상은 공통자원의 재생산이 또 다른 유형의 공통자원과 만나는 순환을 통해서만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공통자원으로 관리하는 방식을 통해 전력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킬 때만 또 다른 공통자원의 파괴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78
해방정치의 전통은 전체 사회의 총체성에 대한 인식은 존재했지만, 이의 변형을 위한 생활정치의 문제설정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생활정치 없는 해방정치는 민주주의에 대한 참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과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국면에서 정치적 열정의 동일시 대상이 될 수 없었고, 동시에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대안으로 인정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해방정치와 분리된 생활정치는 인민의 생활에 대한 사후적인 교정으로 존재할 뿐, 인민의 일상생활의 변화를 위한 개혁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런데 공통자원 기반 민주주의의 급진화 프로젝트는 해방정치와 생활정치의 이런 분리를 매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p.339
[출판사 서평]
2001년 5월 밀양은 국가 전력망의 송전 선로 경과지, 즉 송전탑 건설지로 선정됐다. 밀양 상동면 옥산리 주민들이 한국전력 밀양 지점 앞에서 첫 집회를 가진 2005년 12월 이후로 밀양의 투쟁은 2016년 현재 11년째 진행되고 있다. 오랜 투쟁 과정에서 100명 이상의 마을 주민이 병원으로 응급 후송됐고, 70명 이상이 사법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2012년 1월 16일 이치우 할아버지가 분신자살했고, 2013년 12월 2일에는 유한숙 할아버지가 농약을 마시고 음독자살을 시도해 12월 6일 숨졌다.
고령의 밀양 주민들이 장시간 완강하게 투쟁을 전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무엇이 시민들로 하여금 이들의 투쟁에 연대하게 만들었으며,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에서 탈핵 운동으로까지 나아가게 했을까. 애초에 정부와 한국전력이 송전탑 건설을 강제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비판 사회과학 연구자인 저자 장훈교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밀양의 현실과 일상의 괴리를 체험한 후, 밀양의 ‘진실’을 좇기 시작한다. 저자는 1년여의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전력망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와 밀양 이전에도 있었던 ‘장소’를 둘러싼 갈등 사례, 밀양 투쟁의 간략한 역사를 검토한 후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의 의미와 전망을 밝힌다.
이 책은 학술적 분석틀과 이론을 동원해 밀양 투쟁을 분석하고 있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과 관련된 여타 기록물 못지않게 밀양의 아픔과 연대에 천착한다. 현대 한국의 정치, 사회, 에너지,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권력, 그리고 투쟁의 여러 양상이 밀양을 통해 얼마나 전형적으로 드러나는가에 대해 보편적인 설명이 제시되며 저자가 마르크스부터 여러 이론가들에게서 빌어 와 살피는 것들, 예컨대 자본주의 시초 축적과 국가를 통한 억압은 밀양을 통해 생생하게 재발견된다. 또한 공통자원이나 ‘울력’이라 불린 대안으로부터 새로운 민주주의 급진화까지 조망한 성실하고 예리한 연구 작업이다.
국가를 위해, 국가에 의해 강제되는 장소의 약탈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결합한 한국의 전력산업
밀양 투쟁은 단지 그 지역이 송전 선로의 경과지로 선정됐기 때문에 발생한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밀양의 갈등은 2000년대 이후 발생한 것이지만, 국가 전력망 구축 사업의 행위자인 한국전력 및 중앙정부와 밀양 주민 사이의 갈등 구조가 ‘권위주의적 산업화’ 과정에서 이미 만들어졌다고 본다. 한국의 전력사업은 권위주의 군사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출발했고 이때 구축된 한국 전력 산업의 특성이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국가 전력망 구축과 같은 자본주의 산업화의 필수 조건을 위해 전체 사회가 계획과 규율에 따라야 한다는 ‘군사주의’가 지배한다. 또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은 한국전력의 위상을 공기업에서 이윤을 위한 전력자본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밀양의 갈등을 밀양 이전의 갈등과는 다른 갈등으로 만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이윤 중심의 공기업’을 표방하면서 나타난 전력산업 민주화의 부재는 곧 ‘군사주의’가 해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민이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전력산업이 범죄와 이윤이라는 목적을 공통으로 보유한 전력산업 동맹에 의해 해외 전력시장 수출을 위한 산업으로 재편됐음을 의미한다. 밀양 투쟁은 바로 이런 맥락 위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원전 수출에 차질을 빚고 싶지 않은 한국전력과 정부는 밀양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양 송전 선로 건설 공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인민과의 협력을 조직하는 ‘민주주의’의 방법이 아닌, 군사주의를 통해 조직화된 폭력으로 갈등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방법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란 이유로 정당화되었다.
이 책에서는 또 국가 전력망의 입지 선정 과정에 ‘지리-정치학’이 작동한다고 본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장소 선정이 아닌 현재 작동하는 권력관계에 의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 주민의 의견은 형식적으로만 수렴되거나 무시되고 국가와 한국전력은 모든 문제를 보상금 문제로 치환하며 사업의 정당성을 획득하려 할 뿐이다. 저자가 중시한 고유한 ‘장소의 정체성’은 입지 선정 과정에서 부정되고 만다. 전력 수요 예측에 따른 적절한 공급책인가의 문제로 접근해 보아도 송전탑 건설 계획에 한계가 드러난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미래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하며, 이의 송전을 위해 전문공학적 기술을 동원해 합리적으로 계획했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제기되는 다양한 의문은 배제되고 고유한 장소로부터 추방당한 주민에게는 순응이 요구될 뿐이다.
밀양은 모든 개인과 연결된다
생활 세계와 일상을 되찾기 위한 ‘삶-장소’의 투쟁
정부와 한국전력은 밀양 주민의 반대 투쟁을 두고 환경단체와 같은 ‘외부세력’의 개입에 의한 것, 또는 송전 선로에 무지한 주민들의 심리적 불안 때문으로 치부해 왔다. 주민에게는 재산의 ‘약탈’과 다름없는 토지 강제 수용이 법에 의한 정당한 행정 집행으로 포장되는 것을, 이 책에서는 ‘교환정의’가 무너진 부등가교환으로 본다. 공권력을 동원해 토지를 징수할 수 있는 국가와 달리, 밀양 주민에게는 ‘삶’을 방어할 법적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토지에 애착이 있고 장소를 곧 자아로 인식하는 밀양 주민들에게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은 당연한 것이었다.
강제된 부등가교환과 삶을 부정당하는 모멸감은 밀양을 전장으로 만들었다. ‘국가’라는 존재로부터 소유자로서의 권리 주체, 최소한 인격적으로 인정받기 원했던 주민들의 기대가 무너지자 경제적 보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생사를 건 투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때 ‘치안’이 인민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밀양을 정치적 적대와 군사적 적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치안-전장’으로 개념화한다. 이런 전장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일상’에 대한 복귀 열망은 밀양에서 ‘할매’들이 투쟁의 주체인가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상의 재생산을 담당했던 할매들의 투쟁 경험은 권리와 인격의 감각을 부여했다는 분석도 등장한다.
밀양에 대규모의 경찰이 투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국가로부터 배제된 존재이자 국가에 반대하는 ‘적’으로 치안의 대상이 되었음을 깨달은 밀양 주민들은 스스로 안전을 찾고자 장소 탈환을 시도하게 된다. 이 진지 구축은 곧 연대와 이어진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밀양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고자 했으나 저자의 지적대로 밀양의 송전 선로 사업은 단지 밀양 지역 주민과 한국전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력망에 접속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개인의 정치적인 책임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밀양의 ‘내부’에 접속해 생활 세계를 방어하고 이의 민주적 확장을 위해 개입하는 모든 사람은 내부가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밀양 주민들이 외부와 연대하며 고립감을 극복했고 밀양은 성장과 내부 식민화를 비판하는 공통 장소가 되었다.
밀양 투쟁은 밀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통자원이라는 대안 패러다임과 민주주의 급진화를 위해
국가 전력망 구성 원리와 밀양 주민들의 투쟁의 의미를 분석한 이 연구는 대안 모색으로까지 나아간다. 밀양 주민들과 연대운동은 투쟁 과정에서 무조건적 ‘반대’를 넘어 정부와 한국전력의 기획과 경합할 수 있는 대안 패러다임의 ‘요소’를 창안했다. 이는 밀양을 살아가는 이들의 장소로 전환하는 것, “밀양에 산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요구 안에 존재한다. 저자는 장소 기반 인민들의 일상생활 방어와 존속이 국가 전력망의 운영과 관리보다 우선적인 지위를 보장받아야만 하며 이런 요구가 실현되려면 해당 장소의 고유한 필요에 적합한 장소 기반 전력망의 운영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밀양이 ‘시장’과는 다른 방향에서 한국의 국가 전력망을 민주적으로 변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그 핵심은 국가 전력망의 분산과 협력의 네트워크를 매개로 한 분산 전원으로의 전환을 특정 공동체를 통해 실현하는 전력의 ‘공통자원’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저자는 오직 공동체 전체의 소유, 곧 공통 소유를 근거로 자원의 생산자와 이용자가 일치하거나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 결정으로 접근하는 공통자원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이 개념이 밀양 주민들의 투쟁에 내재된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바탕 위에서, 저항과 대안을 연결해 실천할 가능성을 증폭할 수 있다고 서술한다. 이는 ‘마을’이라는 공통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협력해 우리의 ‘공통자원’을 지키는 공동 소유양식으로부터의 패러다임과도 일치한다. 더불어 국가의 조직화된 ‘폭력’에 뭉쳐 대항하는 ‘울력’을 발현하기도 한다.
이제 밀양은 “공통자원의 약탈 없이 전력에 대한 우리의 필수적인 필요가 충족될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이는 생태위기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 에너지 기반의 지속 가능한 경제 체제로 전환 과정에 노동운동이 적극 참여하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 비용과 고통이 노동계급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지 않는 전환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의로운 전환’의 발상으로 나아간다. 공동체에 의한 공통자원 관리나 에너지 자급 운동과 같은 실험도 이미 진행중이다. 장소를 둘러싼 공통자원과 공적 자원의 갈등은 이런 공통자원 기반 대안 창출을 위한 국가 내부의 민주적 변형과 국가 외부에서 공통자원을 관리할 수 있는 공동체의 능력 확장이라는 이중전망을 통해서 민주적인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밀양 투쟁은 이미 밀양만의 투쟁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한편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을 마르크스의 시초 축적 개념을 빌어 설명한다. 농촌의 부 약탈을 통한 도시 발전, 여성 노동 무급화나 자연 자원 파괴와 같이 시초 축적을 확장하기도 한다. 이는 다시 약탈을 통한 축적이 야기한 ‘장소와의 분리’를 겪은 인민이 ‘점거’를 선택하는 과정의 당위성을 보여준다. 점거 안에는 ‘그들’의 권리에 대항하여 ‘우리’의 권리를 창안하고 이에 대한 권리 인정을 획득하기 위한 권리와 권리의 투쟁이 존재한다. 따라서 점거 투쟁은 장소를 인민과 분리된 국가의 소유나 인민과 분리된 자본의 소유로의 전환, 곧 인민을 배제하는 배타적인 독점 상태로 전환하는 것에 반대하며 이에 대항한다.
공통자원에 대한 권리가 민주주의 그 자체를 근본으로부터 사유하고 이의 실천을 조직하는 민주주의의 급진화 과정의 일부라고 해석한 이 책에서는 결론적으로 둘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강력한 대안을 위해 대항실천과 운동을 조직하며 전체 사회의 변형 및 일상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곧, 밀양의 전쟁은 다른 세계를 위한 투쟁인 동시에 다른 일상을 위한 실천이기도 했다. 밀양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차례]
추천의 글 _ 공통의 밀양, 더 많은 민주주의
책을 펴내며
서론
1장 한국 자본주의와 국가 전력망
1. 자본주의 산업화와 전력계통
2. 한국의 산업화와 국가 전력망
3. 한국전력의 자본화
2장 국가 전력망의 지리-정치학: 입지와 장소
1. 입지와 객관적 외부성
2. 장소의 내부 식민화
1) 전 국토의 송전 선로 입지로의 전환
2) 토지 수용과 장소의 ‘약탈’
3장 밀양 이전의 ‘밀양들’
1. 1990년대
2. 2000년대
4장 간략한 역사: 2000~2015
5장 밀양 전쟁: 삶-장소 투쟁
1. 인정투쟁: ‘현장’에서 ‘전장’으로의 전환
2. 삶-장소 투쟁
1) 소유의 이전: 합의
2) 점유를 통한 투쟁: “점거-야영”
3. “전쟁”: 치안과 안전의 분리
4. 점령과 내부 식민화: 점거에 대항하는 식민국가의 지배
6장 고립과 연대
1. 고립: 혹은 일반 다수 시민의 자기 면제
2. 연대
1) 연대의 구성 원리
2) 모두의 공통장소: 밀양
3) 연대의 공통성: 성장의 비판과 ‘외부’의 탈식민화
7장 공통자원: 밀양 투쟁의 대안 패러다임
1. 소유양식의 경합: 사유, 국유 그리고 공동 소유
2. 울력: 권리의 새로운 맥락
3. 전력과 공통자원의 결합
8장 운동들의 운동: 전 지구적 공통자원 기반 대항 운동의 출현
9장 공통자원에 대한 권리: 공통자원 기반 민주주의의 급진화
결론 정치적 책임의 공유와 탈식민화
[부록] 밀양 송전탑 관련 경과 일지
주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