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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영적습관 52
머리말
몇년 전 조카 하나(그를 케네스(Keneth)라 부르겠습니다.)가 거의 다 죽게 되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동산에서 가족이 재회할 때 케네스와 나는 가족 곁을 잠시 떠나 산책을 했습니다.
“케네스, 언제고간에 네가 죽으리라는 걸 잘 알겠지. 영생을 갖고 있니? 부모님이 무척 고민하고 계시더라. 알고 싶구나.”
“삼촌, 난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천국에 가게 될 거예요.”
케네스는 십대 초반부터 여러 해 동안 동성 연애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과 부모께 반항하여 유별나게 살았습니다.
“삼촌, 의사로부터 에이즈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참 어리석게 살았다는 걸 깨달았아요.”
“회개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제게 은혜를 베푸신 줄을 알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날 믿지 않으려고 해요.” 케네스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습니다.
“전 주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신 줄을 압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열었니?” “예, 삼촌, 열었어요!”
조카는 십자가에 달린 채 회개한 도적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은혜입니다.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입니다.
하나님은 한 시간만 일한 품군을 하루 종일 일한 품군과 같은 삯을 준 포도원 주인과 같습니다(마20:1-16).
하나님의 은혜는 엄청난 관대함이고 무한한 사랑입니다. 승천하신 예수께서 고뇌하시는 순간, 우리의 죄 곧 모든 죄는 예수의 피로 씻김을 받았습니다. 그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양자로 삼으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책에 기록된 원칙을 실천한다면 여러분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전혀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쪽을 넘기기 전에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활에 일으키실 수 있는 강력한 변화를 보게 될 겁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무슨 일을 하든 이 책을 읽은 뒤 그냥 덮고 말아서는 안 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머리말
제1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귐을 누림
습관 1. 기도할 시간을 냄 습관 2.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함
습관 3.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 습관 4. 기대와 감사를 가지고 기도함
습관 5. 하나님과 대화함 습관 6. 하나님과 사귐을 가짐
습관 7. 성경의 권위를 인정함 습관 8. 성경의 권위를 재차 인정함
습관 9. 생명의 말씀을 실천함 습관10.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약식을 읽음
습관11. 혼자서 성경을 공부함 습관12. 하나님의 말씀을 암기함
습관13.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성경 구절들
제2부: 순례자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움
습관14.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함
습관15. 상처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구함
습관16. 하나님이 왜 고난을 허용하시는지를 이해함
습관17. 바른 시각을 유지함 습관18. 죽음을 대면함
습관19. 죽음의 문을 넘어 습관20. 사는 이유
습관21. 엘리야 신드롬을 피함 습관22. 성적 반동혁명에 일조함
습관23. 사랑, 결혼, 성에 관해 배움 습관24. 중년의 위기를 극복함
습관25. 실직과 씨름함 습관26. 죄를 다룸
제3부: 하나님의 종으로서 순종을 연습함
습관27. 영적 바나나 껍질을 피함 습관28. 하나님의 사죄를 경험함
습관29. 항구적인 동요를 인정함 습관30. 죄책감을 말끔히 씻어 버림
습관31. 용서한다는 것과 잊는다는 것
습관32.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행함
습관33. 하나님이 자유를 위해 쳐 주신 울타리
습관34.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남
습관35. 울타리를 벗어남 습관36. 교제와 구혼
습관37. 데이트와 구혼에 대한 부연 습관38. 둘이 하나가 될 때
습관39. 하나님이 그려 놓으신 행복한 가정의 청사진
제4부: 하나님의 대사로서 승리를 추구함
습관40. 가정 예배를 드림
습관41. 누가 교회를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함
습관42. 늙은 떨기나무가 어떻게 해낼지를 깨달음
습관43.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 잘 증거함
습관44. 큰 전율을 경험함
습관45. 전도를 위한 비전을 품음
습관46. 부흥의 불을 붙임
습관47. 위대한 꿈을 꿈
습관48. 위대한 계획을 세움
습관49. 위대한 기도를 함
습관50. 대사명에 순종함
습관51. 미완료의 사역을 완성함
습관52.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림
저자에 대하여
루이스 폴라우는
빌리 그래함과 더불어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받는 복음전도자입니다. 많은 책을 지었고, 60여 개국에서 천 만이 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루이스 폴라우 복음전도협회(미국 포틀랜드 오래건 주 소재)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길상은
많은 기독교 양서를 번역한 전문 번역가입니다.
전문 번역회사 ‘온글’에서 일합니다.
제1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귐을 누림
습관 1
기도할 시간을 냄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완전히 바꿔 놓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가장 자주 가로막는 게 무엇일까요? 무관심일까요? 다른 그리스도인과 좋은 사귐을 갖지 않는 것일까요? 유혹일까요? 나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기도는 자전거 타기나 수영과 같습니다. 행함으로써 배웁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단사의 일은 옷을 만드는 것이고, 구두 수선공의 일은 구두를 수선하는 것이듯이, 그리스도인의 일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루터가 혁명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매일 시간을 내서 혼자 기도한 데 있었습니다. 기도를 위해서 하루에 특정 시간을 내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규칙을 세우고 열심히 지키십시오. 하지만 율법주의에 빠지지는 마십시오.
전도자 무디(D.L.Moody)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그분들과 같은 심정을 표현했습니다. “매일 아침 사람의 얼굴을 보기 전에 하나님의 얼굴을 봐야 합니다. 너무 바빠 기도할 시간이 없다면 그건 하나님이 뜻하신 것보다 일에 더욱 치중하는 셈입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할 수 있도록 일정표에 자리를 만드십시오.
예수님은 기도할 수 없을 만큼 자기가 바쁘다고 생각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할 일이 늘수록, 중대한 결단에 임할수록 한적한 곳으로 나가 기도하셨습니다.
습관 2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함
여러분은 성경의 약속 가운데 어떤 약속을 좋아합니까? 힘을 주신다는 약속입니까? 용기를 주신다는 약속입니까? 안전하게 지켜 주신다는 약속입니까?
내가 좋아하는 성경의 약속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중략,(요일5:14-15).
잘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성경에 자신의 뜻을 많이 계시해 놓으셨습니다.
기도로 무엇을 구할 때 그게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확신을 구하십시오. 깨우침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할 때 실수할까 봐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 중 하나가 기도할 때 실수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주권이 손상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예 기도하지 않는 게 더욱 큰 실수가 아닙니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아뢰기만 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따르는 열심, 기쁨, 활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습관 3
하나님의 들으시는 기도
무디는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기도는 양쪽 가장자리는 잘라 내고 가운데는 뜨겁게 타오르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타올라야 할 기도입니까?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입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기도를 기쁘게 들어주시는지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다음 원칙을 새겨 두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첫째,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실 능력과 마음을 갖고 계시다고 믿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건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불신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간구를 들어주실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도가 뜨거울 턱이 업습니다.
둘째, 구해야 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2)
셋째,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저자는 이렇게 씁니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66:18). 죄는 기도에 찬물을 끼얹습니다. 자백하지 않은 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도를 막습니다.
습관 4
기대와 감사를 가지고 기도함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
라”(골4:2).우리는 기대와 감사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는 징후를 예의 주시하지 않으면 기도 응답에서 얻는 즐거움을 놓칠 수 있습니다.
기도 수첩을 마련하여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관찰해 보십시오.
내 기도 수첩은 하나님께서 항상 신실하시다는 증거입니다. 어려움 상황을 만나면 하나님이 지난 날 내 생활에 어떻게 역사 하셨는지 되돌아보고서 그 신실하심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기도 수첩이 없으면 하나님이 내 기도에 기적적으로 해주신 많은 응답을 곧 잊기 쉽습니다. 기도 수첩을 기록하기 전에 먼저 아래 열거한 기도 연습표를 작성하십시오. 그런 다음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활에 친히 관여하시는 것을 경험하고서 기쁨을 얻으십시오.
기도 연습
1. 여러분의 삶에서 실제로 기도 응답이 필요한 분야를 생각합니다.
2. 그것을 기록하고 날짜를 적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도 수첩을 기록해 갑니다.
3. 성경을 펴서 기도를 가르치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공부합니다.:마7:7-11;18:19,20;막10:46-52;요16:24; 롬8:26,27; 엡 6:10-20; 약5:16-18.
4. 주님께 단순하면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합니다.
5. 주께서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고서 감사합니다.(빌4:6)
6. 기도 응답을 받으면 그것을 기록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골4:2).
7. 이 일을 반복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기도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슬픈 빛으로 자백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대와 감사를 가지고 필요한 것을 아뢰십시오.
습관 5
하나님의 대화함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사귐이다.‘라고 제임스 휴스턴 박사(Dr.James M.Houston)는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자녀인 우리가 나누는 대화입니다.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독백이 아니라 균형잡인 대화입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경배와 자백과 간구와 중보와 감사로 하나님께 반응합니다. 이 다섯 요소가 없다면 기도는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을 잃게 됩니다.
참된 기도의 첫째 요소는 경배입니다.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와 존경의 심정을 표합니다.
찬양 다음에는 자백이 따릅니다. 이사야는 영광 중에 나타나신 주님을 뵙고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사6:5).
기도할 때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이 사역이 얼마나 귀합니까? 선지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삼상12:23). 남을 위한 중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중요한 영적 책임입니다.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의 나머지 부분은 당연히 감사로 채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권고를 들어 봅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응답해 주신 것에 감사할 때 하나님의 기쁨을 체험합니다.
습관 6
하나님과 사귐을 가짐
앞에서 말한 대로, 기도는 두 친구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성경은 대화에서 하나님 측입니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 속으로 간구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내 영혼은 엎드려 경배합니다.
성경 해석가 그레이엄 스크로지(W.Graham Scroggie)는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아뢴다.”
성경과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긴밀한 사귐의 줄을 이루는 두 가닥 선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 성경 말씀을 생각나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여러분의 상황에 맞는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다시 아뢰십시오.
조지 뮐러는 역사상 소수의 사람들이 늘 해온 대로 하나님과 사귐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수천 명의 고아를 돌보셨습니다. 뮐러는 막대한 기금이 필요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재정난이 극심할수록 내면적으로 하나님과 기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뮐러가 혼자서 하나님과 나눈 시간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아침 일찍 신약성경을 묵상하기 시작합니다......몇십 분간 묵상을 하고 나면 내 영혼은 자연히 자백을 하거나 감사를 드리거나 중보를 하거나 간구를 하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보기에 내가 기도에 전념하지 않고 오히려 묵상에 전념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묵상은 즉시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뮐러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울려퍼질 때 자연스럽게 다시 기도로 하나님을 향했습니다. 그는 자기 주님과 친밀한 사귐을 누렸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십니까? 하나님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까?
습관 7
성경의 권위를 인정함
성경의 권위는 인류에게 가장 오래되고 가장 논란이 된 질문에 속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장 중요한 쟁점입니다. 사람들은 자주 성경에 대한 태도를 가지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살핍니다. 성경은 권위의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책도 이러한 하나님의 보증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완전한 책을 쓰실 수 없었다면, 여러분과 나는 왜 그런 하나님을 우리 구원으로 의지하는 겁니까? 영감에 대한 믿음이 필수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과 사귐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의 충분한 권위에 대한 믿음은 귄위 있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런 믿음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습관 8
성경의 권위를 재차 인정함
찰스 스퍼젼은 “하나님의 말씀은 변호한다고? 그건 마치 사자를 변호하는 것과 같다.” 성경은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점에서는 여러 시대의 성도들의 발자취를 확신 있게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논란이 되었을 만한 또는 “믿기 어려운”구절들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구약성경의 요나 기사도 인용하셨습니다(마12:40-41;16:4).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요나 이야기를 비웃고 아이들을 재울 때 읽어 주는 동화로밖에 여기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갖고 있는 과학 지식에 따르면 고래가 사람을 삼킨 뒤 사흘을 뱃속에 두었다가 토해 낸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것을 믿으셨다면, 우리가 왜 믿지 말아야 합니까?
성경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분명히 말합니다(딤후3:16).
성경 말씀 자체가 하나님께 영감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보 없이도 음악을 이해할 수 있고, 숫자 없이도 수학을 이해할 수 있듯이, 단어 없이도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영감은 성경의 모든 부분 그리고 성경 전체에 적용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성경의 가장 사소한 부분까지도 보증하신 것입니다.
습관 9
생명의 말씀을 실천함
성경은 왜 기록되었을까요?
성경의 제일된 목적은 하늘이 어떻게 운행되는지 말하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늘에 가는지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메시지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자기 자녀들의 삶을 변화시켜서 영광 가운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지내도록 준비시키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저주받은 죄인에서 구속된 신자로 변화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지위가 높든 낮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교육 수준이 높든 낮든 누구라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심지어 남아메리카의 어떤 나라 대통령을 포함한 국가의 수반들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보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 대통령은 내게 말했습니다. “팔라우씨, 나느 군인입니다. 당신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안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그걸 내게 말씀하시기를 원치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무슨 일을 하셨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같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는 신분이 높은 신사이지 계급이 높은 군인이었지만, 내게 깍듯이 인사를 한 다음 내가 찾아간 바로 그 대통령 집무실에서 즉시 주 예수께 마음을 열었습니다.
성경은 어디 사는 누구든 구원하여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시키는 역사를 가리켜 성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깨끗이 씻기고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함으로써 거룩하게 합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의 제단을 더럽힌 죄를 즉시 지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먼지가 끼면 생활에도 먼지가 끼게 마련입니다.
습관 10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을 읽음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 가운데는 아버지가 출근하시기 전에 무릎을 끓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모습을 잠옷바람으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어린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잠언을 한 장씩 읽으셨습니다. 잠언은 31장으로 되어 있고, 대부분의 달도 31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권하신 방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간에 성경을 공부하고 읽는 것을 제외하고, 하루를 잠언 한 장을 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무릎을 꿇고 말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고 권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건 그리스도인에게 내리시는 명령이요 의무요 특권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빛 안에서 살며 내주하시는 주님께 통제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삶을 변화시키는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과 정신을 채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매일 성경을 읽도록 스스로를 훈련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오늘 시작하십시오! 제 아버지처럼 잠언을 가지고 시작하십시오. 그런 다음 체계적으로 일년에 한 번 성경 전서를 읽으십시오.
왜 일용할 양식을 먹지 않은 채 하루를 덧없이 보내려고 하십니까?
습관 11
혼자서 성경을 공부함
그리스도인은 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데 게을러 집니다. 그건 성경 공부를 실생활에 활력소로 삼는 단순하고 실제적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규칙적으로 생명의 양식을 먹지 않으면 영적으로 성숙해질 수 없습니다.
성경 공부는 관찰과 함께 시작합니다. 성경을 포함하여 어떤 대상을 관찰하자면 자연히 공부할 대상의 본질에 초점을 두게 됩니다. 별은 밤마다 망원경을 통해서 바라봄으로써 관찰합니다.
동물은 그들의 서식지에서 오랫동안 그들의 활동을 지켜봄으로써 관찰합니다. 성경은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주의깊게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관찰합니다.
성경 가운데 여러분이 공부하고 있는 부분을 단숨에 읽으십시오. 처음에 시작하기 좋은 책은 요한복음과 고린도후서입니다. 책 전체에 대해 분명한 인상을 갖십시오. 장절 구분은 일단 무시하고 읽는 게 좋습니다. 반복해서 읽고, 뜻이 잘 통하지 않으면 다른 여러 번역 성경을 참조하십시오. 누가? 무엇을 ?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이런 질문으로 읽은 내용을 검토하십시오. 본문을 관찰한 다음에는 해석이 따릅니다. 지레 짐작으로 엉뚱한 해석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께 조명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성령이 조명해 주시지 않으면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요일 2:20, 27).
여러분이 해석하는 본문의 문맥을 살피십시오. 본문을 병행 본문과 참고 구절들과 비교하십시오. 가장 좋은 주석은 성경 자체입니다. 그러나 성경 핸드북과 성경 사전 그리고 좋은 성경 지도는 성경 시대의 지리, 관습,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말씀 공부는 반드시 생활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읽은 성경이 여러분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성경을 제대로 공부한 게 아닙니다.
말씀을 더 잘 이해하고 적용하려는 목표를 정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상함으로써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관찰, 해석, 적용, 이 세 가지 간단한 단계가 활기찬 성경 공부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습관 12
하나님의 말씀을 암기함
경고: 권위자들은 성경 암기가 영적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여러 해 전 러시아 칼로노바카 마을의 사제는 경건한 태도로 성경을 암송하는 들창코 소년에게 각별한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어느 날 교히에서 네 복음서를 줄줄이 외웠는데, 사제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그에게 네 복음서를 가르치려 고 애썼습니다. 성경을 그렇게 많이 외운 소년은 다름 아닌 소련의 서기장을 지낸 니키타 후르시초프(Nikita Khrushchev)였던 것입니다. "성경을 암기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보상이 되지 않는다. 굉장한 분량을 암기하고서도 무신론자가 될 수 있다.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데 성경을 사용할 만큼 많은 성구를 암기했다.
경고:권위자들은 성경 암기가 영적 활력을 크게 증진할 수 있다고도 결론지었습니다.
무엇이 피상적인 성경 암기와 유익한 암기 사이의 차이를 만듭니까? 나는 그것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는 묵상이라고 믿습니다.
암기 자체는 지적 능력을 연마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묵상을 목적으로 한 암기가 왜곡된 세상에서 사물을 똑바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루 종일 성경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구절을 항상 묵상할 수는 있습니다. 암기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권장할 만한, 성경 암기를 위한 다섯 가지 단계를 제안합니다.
1. 암기할 부분을 큰 소리로 적어도 열 번을 읽습니다.
2. 독서 카드에 그것을 적고 단어 하나하나를 생각합니다.
3. 암기합니다.
4. 하루 종일 묵상하고, 다음날 복습합니다.
5. 다른 사람과 그 부분을 가지고 대화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성경 암기와 묵상을 시작하도록 적극 권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바꿔 놓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습관 13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성경 구절들
성경 암기 계획을 세워둔 게 없다면, 아래 열거한 절들을 가지고 시작하십시오. 나는 이 절들을 모두 암기하고 묵상하고서 생활에 중대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이 절들이 여러분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거듭남
1. 구원-요한복음 3:16
2. 새생명-고린도후서 5:17
3.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요한일서3:1,2
4. 여러분 속에 사시는 하나님-고린도전서 6:19,20
5. 한 몸 안으로 세례 받음-고린도전서 12:13
하나님
6. 말씀이신 그리스도-요한복음 1:1,2
7. 하나님의 성령-요한복음 15:26
8. 보혜사-요한복음 14:16,17
9.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에베소서 6:10,11
가정
10. 아내-에베소서 5:22
11. 남편-에베소서 5:25
12. 자녀-에베소서 6:1,3
13. 부모-에베소서 6:4
성장
14. 유혹-고린도전서 10:13
15. 자백과 신앙고백-요한일서 1:9
16. 기도-요한복음 14:13,14
17. 함께 모임-히브리서 10:24,25
18. 서로 사랑함-요한복음 13:34,35
19. 율법주의에서 벗어남-골로새서 2:20,22
하나님의 말씀
20. 권위-베드로후서 1:20, 21
21. 목적-디모데후서 3:16,17
22. 정결을 위해-시편 119:9,11
승리
23. 성령 안에서 삶-갈라디아서 5:16,18
24. 헌신과 변화-로마서 12:1,2
25. 십자가를 통해 얻는 승리-갈라디아서 2:20
26.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22,23
27. 대사명-마태복음 28:18,20
28.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부활함-로마서 6:3,4
장래
29. 영원한 정죄-게시록 21:8
30. 하늘-요한복음 14:13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뿐 아니라 가슴에도 잘 간직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쓰셔서 여러분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시119:1).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전하려고 하시는 내용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구하십시오.
제2부
순례자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움
습관 14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함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암기하고 묵상할 때 어느 부분이 가장 믿기 어려웠습니까?
예언 부분입니까? 이야기 부분입니까? 교리부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들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점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근사하게 들리고 때로는 용기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게 사실인가 하고 의문을 품습니다.
무디(D . L . Moody)는 “하나님은 너무 신실하셔서 사실일 수 없는 약속은 하신 적 이 없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그 점을 생각합시다!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무위로 그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권위 있는 말씀을 통틀어 여러 번 태도를 분명히 밝히시면서 우리 이 세상을 지나가는 하나님의 순례자들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벧후: 1:4)을 주셨습니다.
많은 구약의 약속들은 감사하게도 신약에도 반복되어 있고, 오늘날 우리의 것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배움으로써(공부와 암기를 통해서). 그 약속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봄으로써(묵상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우리의 생활에서 실현하실 시간을 드림으로써(적용을 통해서) 그 약속을 우리의 것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에게 보증하시고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요 14:13, 14; 고후 1:20).
습관 15
상처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함
여러 해 전 대서양 북아메리카 해안 근처에서 잠수함 한 척이 모든 승무원과 함께 침몰했습니다.잠수함이 완전히 가라앉자 잠수함의 파손정도와 인양 가능성을 살피러 수중 탐사대원들이 투입되었습니다.
침몰한 잠수함에 다가간 탐사대원들은 잠수함 안에서 모스 부호로 쿵쾅거리며 보내는 신호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잠수함 안에 생존자가 있는게 분명했습니다. 포착한 메시지는 수중 무덤 벽을 치며 “희망이 있는가? 희망이 있는가?”하고 묻는 광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과 나도 어떤 문제나 비극이 우리를 강타할 때 그와 같은 질문에 빠집니다.
우리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옴짝달싹 못하고 잠겨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듭니다. “희망이 있는가? 정말로 이 문제를 극복할 희망이 있는가?”
사도바울은 유명한 로마서를 쓰기 전에 여러번 했던 그 약속을 주장했습니다.
이 세상을 지나가는 하나님의 순례자의 한사람으로서, 그는 고생하고 박해를 당하고 무관심을 당하고 배신을 당하고 고독하고 돌팔매질을 당하고 매를 맞고 파선을 당하고 헐벗고 긂주리고 잠을 못자고 막중한 압박을 당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그런 시련을 견디게 했습니까? 무엇으로든 우리를 유지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그가 철저히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있습니까? 다시 한 번 여러분을 주께 의뢰하십시오. 그런 다음 빌립보서 4:6,7 말씀을 되새겨 보십시오. “아무것도 염려하지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라.”
인생의 폭풍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완전한 평강을 경험하기 바라십니다.
습관 16
하나님이 왜 고난을 허용하시는지를 이해함
파리 출신 철학자는 “하나님은 죽었다. 마르크스는 죽었다. 그리고 나는 심기가 편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태도는 오늘날 우리 문화에 만연한 비관주의를 잘 보여 줍니다.
정말로 신이 있다면 왜 세상의 숱한 고통을 그대로 허용하는가? 사람들은 궁금해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도 그런 질문을 가지고 씨름합니다.
기본적으로 고통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 유형은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자연 재난의 결과로 오는 고통입니다.
이런 재난에서 오는 고통은 의인과 악인에게 모두 발생합니다(마 5:45).
고통의 둘째 유형은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는 비인도적인 행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전쟁을 이런 고통의 유형에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탐욕과 교만 때문에 사람들은 남을 해치려고 합니다(약 4:1,2).
고통의 셋째 유형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욥의 생애에서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사단이 그를 공격한 결과로 왔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 허락을 받은 뒤 욥과 그의 가정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일으켰습니다.
고통의 넷째 유형은 우리의 잘못으로 오는 고통입니다.
예를 들면, 사무실 옥상에서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삐었다면, 하나님의 중력의 법칙을 어겼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덕 법칙을 어길 때도 당합니다.
많은 고통은 그 원인을 우리가 내리는 악한 선택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고통은 하나님이 죄를 벌하시기 위해서 허용하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사람에게 자기 행위의 보응을 받으며 살도록 하십니다(갈 6:7,8).
고통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즉 적극적으로 맞이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우리는 기독교 순례자가 되기도 하고 세상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상화은 인격 형성을 돕기보다 인격을 들춰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시련에 적절히 대처하면 인내심을 기르고 인격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습니다(롬 5:3,4).
비관과 고통이 만연한 시대에 우리는 시편 저자와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내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시 118:6). 친히 큰 고난을 당하신 주께서 어려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십니다.
습관 17
바른 시각을 유지함
한 잔의 커피에는 사방의 이웃집을 40㎝의 두께로 감싸고도 남을 수분이 들어 있다는 걸 아십니까?
어떻게 그렇게 소량의 물이 얇게 퍼지면 시야를 온통 가릴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잔뜩 낀 안개가 순례의 길을 가로막으면 곧잘 당황하면서도, 태양이 아직 위에서 비치면서 안개를 말리고 있다는 사실은 잊습니다. 왜 당황할까요? 바른 시각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걱정하는 것 가운데 45%는 과거의 것이고 55%는 미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30%는 오로지 건강에 관한 걱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 가운데 1/10만 실현될 것이지만, 우리가 손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마 6:34)하고 말씀하신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빌 4:6)라고 말합니다. 걱정은 상황에 대한 바른 시각을 잃어버릴 때 생깁니다.
그러나 하늘에는 돌발 사태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잘 알고 계십니다(출 3:7; 벧전 5:7).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도록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지으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서 극적인 방법으로 자기에 대한 관심을 역력히 드러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1. 히스기야는 자기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37:1).
2.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문제에 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알려고 애썼습니다 (37:2-7).
3. 자기 시각을 왜곡시킬 어떤 일도 허용치 않았습니다.
4.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경배했고 다음에는 필요한 것을 구햇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구햇습니다(37:14-20).
어려움이나 시련을 만나면 이런 단계에 따라 행동해 보십시오.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습관 18
죽음을 대면함
우리가 대할 시련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입니다. 죽음이 가정에 닥치면 현실을 냉철하게 보기 힘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친척이나 친구가 죽을 때 우리는 신자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내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실 때 갑자기 침대에 앉으시더니 천국에 관한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베게를 베고 단정히 누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예수님과 함께 있으러 간다. 그게 훨씬 더 좋아.”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9년 전에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셨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영광으로 가실 때 나이 서른여섯살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열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황폐한 심정을 느꼈습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뒤죽박죽 된 듯했습니다. 모든 것 모든 사람에게 화가 났습니다. 이건 공정치 않아. 왜 우리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들처럼 노년에 돌아가실 수 없었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아버지 장례식 때 선교사 한 분이 설교를 했습니다. 그때에 비로소 나는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다는 분명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사별하면 슬픔이 일어나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신자들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만, 소망 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는 않습니다(살전4:13).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닌 줄을 알고서 소망을 가지고 죽음을 대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땅에서 하늘로 통하는 문을 여는 것일 뿐입니다.
습관19 죽음의 문을 넘어
유명한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죽음의 현실 앞에서 늘 괴로워했습니다. 지식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헤밍웨이가 청년이었을 때 자살을 했습니다. 그뒤로 헤밍웨이는 온 인류에게 자기가 삶도 죽음도 다 두려워하지 않음을 과시하고 싶어했습니다. 묘하게도 그는 예순한살의 나이에 분노와 무력감 속에서 자살했습니다.
성경은 육체적 죽음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히9:27은 “한번 죽은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종국에는 병에 걸립니다. 우리 생시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순례는 죽음으로 끝날 것입니다.
성경은 육체적 죽음(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맞이하는)과 영적 죽음(모든 사람이 날 때부터 경험하는)을 구분합니다.
성경은 영원한 죽음 또는 ‘둘째 사망’(계20:14)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단절되는 것입니다. 생시에 자기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이 영원한 죽음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육체적 죽음은 분명히 존재의 종말이 아닙니다. 문제는 여러분과 내가 어디서 영원이란 세월을 보내느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것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불신자 프랑스와 볼테르는 한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20세기에는 기독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열두 사도가 세운 이 건물을 나는 한 손으로 무너뜨릴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죽음 앞에 섰을 때는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하고 외쳤습니다. 볼테르의 주치의는 그가 영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서상의 격심한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서 크게 놀랐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죽는다는 생각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드린다면, 죽음의 문 저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찬란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습관 20
사는 이유
지난 24시간 동안 1만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유엔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그중 1천 명이 자살에 성공한다고 합니다. 자살하는 이들 가운데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여러 해 전 아들의 고등학교 친구 하나가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쐈습니다. 16살난 아이로서, 부유하고 저명한 의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특별한 스트레스의 징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몇몇 학급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살하겠다고 말하더랍니다.
자살에 관한 유명한 신화 한 가지는 만약 누가 자살하겠다고 이야기하면 실제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살하는 사람은 자살을 감행하기 전에 대개 열 명 남짓에게 그 뜻을 알립니다. 내 아들의 친구가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때로는 글을 남기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뜻을 먼저 말로 합니다.
자살은 모든 계층 모든 유형의 사람들 사이에서 놀라운 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자살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을 알립니다. 즉, 정신과 의사들이 다른 직업 조사자에 비해 자살율이 높다는 겁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희망을 잃은 이들을 도와 주는 이들로 공인된 사람들이 아닙니까?
자살을 생각하고나서 그리스도께 흔쾌히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친구나 친척이 자살의 징후를 보인다면 지체없이 그를 찾아가 만나십시오.
친구가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 말을 진지하게 듣고서 서둘러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에게 인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할까요? 관심을 끌려고, 죽은 가족을 만나려고, 치미는 분노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려서, 건강을 잃어서, 고독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려고 오셨습니다(요10:10). 삶의 의미와 목적을 조용히 그러나 진지하게 찾는 이들에게 주님께 관해, 우리가 사는 이유인 그분에 관해 말해 줍시다. 소외와 고독과 씨름하는 이들에게 어떤 분이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해 줍시다.
습관21 엘리야 신드롬을 피함
55살의 여인이 14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죽기 몇 분 전에 인부가 옆 건물의 유리를 닦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에게 이사를 하며 미소를 지었고, 그도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일하려고 돌아선 순간 여인은 몸을 던졌습니다.
여인은 깨끗하고 가진런히 정돈된 책상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겼습니다. “이 고독을 하루도 더 견딜 수 없다. 전화조차 울리지 않는다! 편지도 안 오고, 친구도 하나 없다!
우리 주위에는 고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도 고독에 면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경건한 사람도 때로는 이 세상을 순례하는 동안 고독을 겪습니다. 엘리야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고 강력한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비를 그치게 했고, 면저에서 왕을 질책했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했고, 거짓 선지자 수백 명을 처단하도록 명령했으며, 3년 가뭄이 언제 끝날지 정확히 예고했습니다.
엘리야는 네 가지 잘못된 단계를 밟음으로써 철저히 좌절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왕상18:46-19:4).
첫째, 육체의 기력을 다 고갈시켰습니다.
둘째, 감정이 뒤죽박죽 되었습니다.
셋째, 영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넷째, 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했습니다.
결국 그는 광야의 로뎀 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아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철저히 좌절에 빠져본 적이 있습니까? 위로할 사람이 아무도 없이 말입니다. 엘리야 신드롬을 경험해본 적이 있습니까?
위기에 처한 엘리야를 주께서 어떻게 붙드셨는지 눈여겨 보십시오. 육체적인 면에서, 하나님은 음식과 잠을 주셨습니다. 감정적인 면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나타나사 용기를 주셨습니다.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자기를 따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사회적인 면에서, 하나님은 엘리야가 사귐을 가족 더 큰 격려를 받을 수 있는 많은 수의 경건한 사람들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독과 좌절을 오히려 자신을 주께 새로이 드리는 계기로 삼으십시오. 절망의 나무 밑에 더 이상 앉아 있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는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하십니다. 다시 혼자라고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사귐을 갖고(히10:25). 혼자서 매일의 투쟁을 하려는 시도를 중단하십시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필요와 관심사에 관해 기도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발휘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협력할 때 승리를 맛봅니다!
습관22 성적 반동혁명에 일조함
어떤 여인이 내게 말했습니다. “남편은 해외에 나가 있어요. 나간지 9개월이 되었고, 앞으로도 7개월은 더 있어야 한대요. 참 외롭군요. 애정과 사랑이 필요해요. 난 그리스도인이지만, 내가 참 약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성적 유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지요?”
여러분이라면 이 여인에게 어떻게 조언해 주시겠습니까?
사랑과 애정의 욕구는 영혼 깊은 곳에 도달합니다. 고독도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성경은 결혼 밖의 성에 대해서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적 욕구는 때로 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됩니다. 성적 혁명은 성을 결혼 안에 가두어 놓는 성경의 가르침은 시대에 뒤지고 유용하지 못하다고 대담하게 주장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미혹을 당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갈6:7,8)
우리 사회가 난잡한 성 때문에 거두고 있는 파괴적인 결실인 에이즈, 포진, 그리고 그밖의 성병, 정서적인 상처, 절망, 영적 파산은 육체를 위해 심은 한순간의 쾌락에 대한 대가 치고는 너무나 큽니다.
성경은 여러분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사단적인 성적 혁명을 거부하라고 말합니다(약4:7).
여러분이 결혼했든 하지 않았든 하나님은 여러분이 겪는 독특한 유혹과 필요를 이해하십니다(너희 모든 쓸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의지하십시오- 빌4:19).
습관23
사랑, 결혼, 성에 관해 배움
나는 열두 살 때 남자라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시멘트 한 포를 져 나르고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스물한살 된 운전 기사는 친절해 보였고, 함께 걷는 동안 나를 치켜 세워주셨습니다.
그는 짐을 한쪽에 부려놓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루이스, 넌 이제 청년이 되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시니 인생에 관해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해.”
그러나 트럭 운전사는 내게 무슨 말을 해주는 대신 잡지를 펼쳐 보였습니다. 난 믿기지 않는 눈으로 벌거벗은 남녀의 사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메스꺼웠습니다.
그 뒤로도 잔상을 머리에서 지울 수 없었습니다. 죄책감과 수칙감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인간의 성에 관해 성경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배운 것은 스물세살이나 되어서였습니다. 성경이 성에 관해 얼마나 실제적으로 말하고 있는지 알고는 몹시 놀랐습니다.
이 세상을 여행하는 하나님의 순례자인 우리가 출산과 해부학 같은 신체적인 면만을 가르치는 사람과 기관에게 성 교육을 맡긴다는 건 죄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사랑, 결혼, 성에 관해 하시는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 결혼, 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합니까? 도덕이 뒤죽박죽된 시대에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건강한 성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을 공부하고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습관24 중년의 위기를 극복함
성경은 언제나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로 내게 충격을 줍니다. 불유쾌한 사실들을 숨기는 법이 없습니다. 성경은 앞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의 문제를 솔직히 논하기 때문에 우리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다루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 왕은 주님을 위해 출발을 잘 했습니다.
그러나 중년에 이르렀을 때는 방심하게 만든 세 가지 위기를 만났습니다(삼하11장).
제대로 처신하지 못하면 심리학자들이 ‘중년의 위기’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위기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연약해지는 위기입니다. 다윗은 직접 군대를 끌고 아모리 족속을 치러 갔어야 할 때에 따스한 봄볕을 즐기며 예루살렘 집에 안온히 거하는 편을 택했습니다(삼하11:1). 연약함은 직업 세계에서 10년이나 15년이나 20년을 보낸 뒤에 갑자기 다가옵니다. 결혼한지 그만큼 오래 됐을 수도 있습니다. 생활이 단조로워지고, 사람이 연약해져 변화에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둘째, 연약에 따라 오는 건 부주의함의 위기입니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고서 “어이, 나 오늘 결혼을 깨뜨릴 것 같아”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10년 20년 결혼 생활을 해오던 그리스도인 부부가 헤어지게 되었다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듣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부주의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부주의함 뒤에는 혼동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라는 나침반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어떤 여인을 연연해 했고, 밤이 임하기 전에 간음을 범했습니다(삼하11:3,4).
잠시 시간을 내서 디모데후서를 읽어 보십시오. 아주 짧은 서신입니다. 이 서신에서 사도 바울은 중년의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설명해 줍니다. “디모데야, 포기하지 마라. 버텨라. 청년의 정욕을 피해라. 흔들리지 마라. 네가 배운 대로 계속 행해라. 충실히 목회를 해라.”
중년이든 아니든 연약함, 부주의, 혼동의 위기를 맞이할 때는 쉽게 살 수 있는 길을 구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더욱 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
습관25
실직과 씨름함
주변에 실직한 사람이 있습니까? 가족이 실직했습니까? 친구입니까? 어쩌면 여러분이 최근에 실직과 씨름했는지도 모릅니다.
실직에 들어갈 때면 으레 결혼, 재정, 심지어 건강에도 독특한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실직을 당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나는 성경이 실직 문제에 여러 가지 구체적인 원칙을 제시해 준다고 믿습니다.
첫째, 비록 어렵더라도 실직을 현실로 받아들이십시오.
실직을 통해 오히려 선한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둘째,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최대한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십시오.
셋째, 여가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십시오.
실직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경 공부반을 만들고 함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넷째, 시간, 힘, 돈을 아끼십시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모자라는 것을 메꾸고 더 나아가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잘 생각하십시오.
자투리 땅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정원을 꾸며 보십시오! 여러분은 돈을 버는 데 쓰일 재능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사용하십시오!
생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실직의 충격이 닥칠 때 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도전을 던집니다. 위에 열거한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의지하십시오.
습관26
죄를 다룸
우리 사회는 일부 법률가들과 심리학자들이 개인의 책임과 죄를 비행에 대한 과학적 설명으로 대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죄를 보는 시각에 어떤 변화가 생겼습니까?
유명한 심리학자 호바트 마우러(Hobart Mowrer)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수십년간 우리 심리학자들은 죄와 도덕적 책임 문제를 큰 부담으로 여겨 왔고, 그것에서 해방되는 것을 신기원을 이룩하는 것으로 주장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기껏 발견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게, 즉 죄 대신 ‘질환’이라는 구실을 갖는다는 게 마찬가지로 상실될 위기를 자초한다는 것이었다.”
또다른 저명한 심리학자 렉스 줄리언 비버(Rex Julian Beab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연에서는 악의 세력이 사라졌다. 죄악은 더 이상 인간의 운명이 아니다. 사회학, 심리학, 정신의학 등 새로운 ‘과학’은 의지, 의지력, 악함, 게으름 같은 개념을 내던지고, 정치적 심리적 압박, 빈곤한 환경, 가족간의 대화 부족, 나쁜 혈통 같은 개념으로 대체했다. 인간의 잘못이 하나씩 질환으로 다시 이름붙여져 온 것이다.”
한 꺼풀만 벗겨내면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만 알고 있는 죄책의 짐을 지고 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죄책감을 마치 해골처럼 영혼의 헛간에 감추고 삽니다.
심리학자의 조언대로 그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것을 합리화합니다. 억누릅니다. 자기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것을 인정하기 전에는 죄책으로 가득찬 우리의 헛간이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잠언28:13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낙오와 포기와 사기와 방치가 만연한 이 시대에 우리는 정신적, 사회적, 영적 건강의 기본이 되는 원칙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 죄를 자백하고 버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제3부
하나님의 종으로서 순종을 연습함
습관 27
영적 바나나 껍질을 피함
성경에서 죄와 그 위험성에 관해 침묵하는 장은 처음 두 장과 마지막 두 장으로 전부 네 장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아래서 서로 벗은 줄을 안 이래로, 죄를 인류에게 최소 공통분모가 되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죄는 스스로 죄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살면 신앙 생활은 구멍이 나서 언제 무너지게 될지 모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만큼 지를 짓습니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인간 의지의 표현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과, 행동, 생각, 욕구로 나타내는 그 밖의 불순종은 결과를 빚어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성령께서는 슬퍼하시고, 사단은 입지을 얻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상실하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으로부터 단절감을 느끼고, 약한 신자에게 걸림돌이 되며, 수많은 슬픔과 근심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생각이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종일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님의 주권, 은혜, 그리고 그밖의 덕을 이해하고 감사하는지를 잘 나타냅니다.
습관 28
하나님의 사죄를 경험함
성경은 자백이 사죄의 조건이라고 가르칩니다. 구원을 받을 때도 그렇고, 매일 하나님 앞에서 살 때도 그렇습니다. 자백은 회개를 포함하고 필요할 대는 배상도 포함합니다.
자백하려면 때로는 배상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출22:1-15). 자백을 가르칠 때 이 면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어 다른 사람의 소유를 가로챘다면(물건이든 돈이든 정직한 작업량이든)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사과해야 할 뿐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배상해야 합니다.
성경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이 자기 죄를 올바로 자백하는 자들을 값없이 용서하신다는 좋은 소식에 나타납니다. 자백은 겸허한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이 말씀을 익히고 하나님께 자주 아뢰십시오.
습관 29
항구적인 동요를 인정함
적어도 1,5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세계 최초로 끝없이 작동하는 무동력 장치를 설계 제작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오늘날의 영구 작동 주장자들은 열역학 법칙을 어길 수 없다는 학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항구적인 동요’는 다시 기계를 다시 설계하게 만들고, 만들어 놓고 보면 지난 세대의 실패를 답습한 게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을 얻기 위해서 성경의 분명한 선언을 무시합니다. 헛되게도 선행으로 영생도 얻고 하나님의 호의도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얻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위해 완전히 치르신 속죄로 얻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건 일종의 영구 운동입니다. 이론만 번드르하지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한 표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행위에 기초해서는 도무지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에 기초해서만 얻습니다.
구원이 행위로 성취하는 게 아니듯이,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선행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확고한 약속에 근거를 둡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영구 운동은 아무리 그 노력이 진실하더라도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옥의 세력이 아무리 으르렁거리더라도 하나님이 한 번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확실함을 조금도 흔들 수 없습니다.
습관 30
죄책감을 말끔히 씻어 버림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한다는 것과, 우리 죄가 그분의 보혈로 영원히 씻음을 받았다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용서하지 않으려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몇 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신 적이 없는 이 무거운 짐을 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실은 정 반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의 죄책을 말끔히 씻어 버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가 지는 무거운 죄책의 짐은 거짓된 정죄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내 청소년 시절에 어머니는 만약 내가 무슨 영화든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면 극장 바닥이 입을 벌려 곧장 지옥 불에 떨어지게 될 거라고 굳게 믿으셨습니다. 극장 곁만 지나가도 기분이 으스스했습니다. 그건 거짓된 죄책입니다!
죄책감을 올바로 다루지 못해서 무거운 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짜 죄책감에서 부적절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적어도 세가지 있습니다.
첫째, 죄책감을 억누를 수 있습니다.
죄책감을 덮어버리고 존재 자체를 부인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마음의 평안을 잃고 육체적으로도 고통을 겪습니다.
둘째, ‘실수’를 후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잘못했구나”하고 말만 하고 만다면 우리 죄와 책임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죄에 대해 자책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하고 약속합니다. 유다는 그리스도를 배반한 뒤에 자책감을 느꼈습니다(마27:3,4). 그러나 성경이 회개라 부르는 것에는 한발짝 못미쳤습니다.
회개는 죄책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대로 올바로 처신하는 것입니다.
한 번 거짓된 죄책감을 씻어 버리고 죄를 올바로 다루고 나면 죄책의 짐에서 해방됩니다.
습관 31
용서한다는 것과 잊는다는 것
누가 여러분에게 무례하게 군 적이 있습니까? 배우자가 부부의 도리를 거스른 적이 있습니까? 자녀가 실망시킨 적이 있습니까? 사업상 사기를 당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의 영적 상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어려운 인생사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롬12:19). 하나님은 공의로 재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런 재판을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깊은 상처를 안고 있습니까? 원한을 품고 있거나 용서치 않으려는 태도를 갖고 있습니까? 요셉 이야기를 회상 시켜드리고 싶습니다. 창세기37-50장에서 그의 생애에 관한 글을 읽도록 여러분께 권합니다.
요셉은 여러 이유에서 원한에 사무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 그를 미워했고 노예로 팔았습니다. 이런 일들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자기 인생에 쓴 뿌리가 퍼지는 것을 방치해 두지 않았습니다(히12:15).
많은 사람들이 원한과 옹졸함 때문에 인생을 망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심신을 망가뜨립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3).
남을 용서한 뒤에는 잊어 버리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요셉은 맏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라는 뜻이었습니다(창41:51). 요셉은 형들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형들이 자기에게 저지른 모든 잘못을 잊어 버렸습니다.
습관 32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행함
90명이 넘는 사람이 눈 덮인 산비탈에서 실종된 8살난 소년 도미닉 드카를로를 밤새워 찾아다녔습니다. 도미닉은 아버지를 따라 스키 여행을 왔는데, 아마 새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스키를 타고 내려 오다가 자기도 모르게 코스를 벗어난 게 분명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탐색대와 가족은 소년의 건강과 안전이 점점 더 걱정되었습니다. 마침내 나무에서 소년을 찾아냈습니다. 소년을 즉시 병원으로 데리고 갔으나 의사는 소년이 정상이라고 하면서 입원을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실보는 소년이 매서운 추위에 밤을 지샜는데도 말짱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즉, 소년의 아버지는 실종될 경우의 행동 요령을 미리 알려 주었고 소년은 아버지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는 겁니다.
도미닉은 사랑이 많으시고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종으로서 순례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내게 많은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지나가고 마는 이 세상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상태로 하나님 앞에서는 특권을 누립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거룩하게 서 있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에게 매사에 거룩하라고 권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가 누군지, 왜 사는지를 잊는 셈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를 잊고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지으면 아버지로부터 사죄함을 받을 수 있지만(요일2:1,2). 죄가 우리 생활의 특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습관 33
하나님이 자유를 위해 쳐 주신 울타리
하나님의 계명이 여러분을 들뜨게 합니까? 계명을 공부하는 게 즐겁습니까? 그리고 순종하십니까? 예를 들어, 최근에 십계명을 진지하게 묵상한 게 언제였습니까?
주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십게명을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의 속박을 벗겨 준 건 너희를 옭아맬 또다른 속박을 만들라는 게 아니라 너희를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다. 만약 내가 너희에게 제시해 주는 영역 안에 남아 있으면 너희는 자유로울 것이다. 거기는 활동의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주는 모든 것을 누리라.”
하나님의 말씀에는 경고도 담겨 있습니다. “울타리 안에 남아 있는 한 너희는 자유롭겠지만, 일단 울타리를 함부로 옮기거나 타넘어가면 또다시 속박에 얽매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십계명을 우리 구원의 조건으로 삼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구주 예수 그리스도(롬5:8)를 필요로 하는 죄인입니다(롬3:23). 성경과 경험 모두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십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칩니다(롬7:1-8:4).
하나님이 계명을 주신 목적은 그것을 조건으로 구원을 주시려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기초를 놓아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랑과 순종의 삶을 살 수 있는 기초 말입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계명을 바라볼 때, 여러분은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증지시킬 적어도 네 가지 원칙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습관 34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남
나는 개인적으로 십계명을 공부하면서 우리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사랑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네 가지 원칙을 배웠습니다.
1.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의 성품을 비춰 줍니다.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 계시하는 측면이 내게는 가장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소유욕이 강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출20:3).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상 숭배를 미워하십니다(20:4-6).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존경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20:7). 우리가 예배의 신성함을 보존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배우기를 바라십니다(20:8-11). 가정을 보호하기를 바라십니다(20:12). 생명을 귀중히 여기십니다(20:13). 경건한 자손, 성적 순결, 거룩한 백성을 원하십니다(20:14). 선물을 주시기를 좋아하시며, 주신 것을 빼앗지 않으십니다(20:15). 100% 신뢰할 만한 분입니다(20:16).
각 사람의 마음의 깊은 곳을 지켜보십니다(20:17).
2. 하나님의 계명은 참된 자유를 줍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덕법을 깨뜨리는 게 자유로 나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경험하는 건 휠씬 더 심한 예속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덕법만이 참된 자유를 줍니다.
3. 하나님의 계명은 철저한 보호를 제공합니다.
십계명을 자세히 읽고난 다음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보호해 주시기 위해서 그 계명들을 마련하셨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4. 하나님의 계명은 참된 사랑을 보여 줍니다.
십계명을 전부 읽고서 각 계명이 사랑을 보여 준다는 것을 확인하셨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무한한 사랑도 나타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에 이를 길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습관 35
울타리를 벗어남
경계선은 고리타분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사라는 경계선을 밟고 서서 그 선을 넘어 가면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해졌습니다. 마침내 남자 친구 앤디에게 설득되어 경계선을 넘어섰습니다.
몇 주 뒤 16살된 사라는 자기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내신 혼전 순결의 표준이 사라에게는 시대에 뒤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라 자신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지혜와 사랑으로 울타리를 쳐 주셨다는 걸 몰랐습니다. 이제 사라는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결과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성적으로 울타리를 넘으면 어떤 결과를 겪게 될까요? 다윗 왕한테 물어봅시다. 다윗은 시38편에 그 죄가 몰고온 결과를 소상하게 적습니다. 밧세바를 범하고서 겪은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성적 순결을 위해 내신 표준은 비록 오늘날의 문화 규범과는 맞지 않더라도 시대에 뒤진 건 아닙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혼전 성경험이 무방하다고 말합니다. 미국 내의 어떤 표준 조사에 다르면 94%가 21살까지 순결을 잃는다고 합니다.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동료들이 당하는 것과 똑같은 유혹과 씨름합니다. 마귀는 건강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의 이성 교제를 사용하여 믿는 자를 넘어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습관 36
교제와 구혼
여러분(또는 결혼하지 않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성과 올바른 교제를 하도록 돕기 위해서 내 경험에 비추어 몇 가지 중요한 단어를 소개할까 합니다. 첫째 단어는 겸양입니다. 겸양은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표입니다.
두 번째 “좋은 습관은 작은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합니다. 겸손한 습관은 남에게 관심을 표시하는 작고 사소한 희생으로 이루어집니다.
기억해야 할 또 한 단어는 대화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4: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이처럼 적극적이고 복돋워 주며, 좋은 우정에 보탬이 되는 건 없습니다. 나는 패트와 결혼하기 전 서로 숱한 토론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습관 37
교제와 구혼에 대한 부연
이 구혼기에 우리의 관계는 두 단어로 성격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식입니다. 나는 패트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패트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패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느끼는지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방을 아는 정도 만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옳습니다.
처음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 낭만적으로 들릴는지 모르나 참된 사랑의 관계는 첫인상만 가지고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 법입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또 한 가지 단어는 영성(spirituality)입니다. 패트의 인격, 지성, 매력적인 외모는 내가 처음 만났을 때 분명히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좀더 알아가면서 패트가 그리스도를 깊이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려고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게 아주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나는 패트와 함께 주님을 섬기면서 나머지 생애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인 우리는 상대가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고전7:39) 결혼할 게 아니라, 장성하고 있는 그리스도인, 영적인 생활을 하는 상대와 결혼을 해야 합니다.
한 번 자문해 봅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주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자극을 줍니까? 아니면 때로 내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것을 발견합니까?
평생 함께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과만 교제하고 결혼하겠다고 주님 앞에서 결단하십시오. 그보다 더 흥미롭고 설레는 일은 없습니다.
습관 38
둘이 하나가 될 때
어떤 결혼은 하늘에서 이루어지겠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대부분 이곳 땅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커플은 결혼 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지도록 고안되었는지 전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결혼을 합니다.
너무나 많은 결혼들이 결국 이혼으로 끝납니다. 어떤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습니다.
“결혼과 가정 문제로 내가 상담한 사례는 모두 다음 세 가지 경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의 교훈대로 부모를 떠나지 못한 경우고,
둘째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성실하지 못한 경우고,
셋째는 결합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떠남. 성실. 결함. 모세와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훗날 사도 바울은 이 세 개념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결혼을 어떻게 작정하셨는가를 설명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막10:7,8)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사실 삼각 관계입니다. 남자, 여자, 그리고 그리스도로 이루어지는 관계말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로 하여금 결혼 관계를 통해서 서로를 보충하도록 영적으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의지적으로 사회적으로 신체적으로 보충하도록 구상하셨습니다. 친밀함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으로써 시작되고 결국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부부를 긴밀히 결합시킵니다.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 나가십시오. 배우자와 함께 문제를 그 분의 발 아래 놓으십시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배우자와 마주보고 앉으십시오. 성경을 펴고 함께 무릎을 꿇고 일정 분량을 읽은 다음 읽은 내용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상황에 뭐라고 하시는지 보십시오. 그런 뒤 기도 제목을 서로 알린 다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습관 39
하나님이 그려 놓으신 행복한 가정의 청사진
중국에는 “가정이 화목하면 나라에 질서가 설 것이다”하는 격언이 있습니다. 가정은 인간 사회가 버티고 서 있는 토대가 되는 단위입니다. 그러나 가정들이 무너지면 문화마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네 가지 사조가 사방에서 가정을 공격합니다.
세속주의는 “단 한 번 살다가는 인생이니 마음껏 즐기라”!고 부추깁니다.
물질주의는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구입하고 더 많이 지으라!”고 말합니다.
감각주의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부도덕과 도착으로 우리를 사정없이 폭격합니다.
세속적 휴머니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영광을, 신은 떠나라!”하고 결론짓습니다.
어쨌든 가정을 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배우자, 부모, 자녀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발견할 수 있도록 성경에 청사진을 실어 놓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부부가 서로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에베소서5:21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복종은 질서와 안정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가 무책임하게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둘중 어느 한 편이 열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남자와 여자는 동등합니다.
하나님은 가정이 한 명의 지도자가 있을 때 가장 적절한 기능을 발휘한다는 걸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 남자에게 지도자의 책임을 맡기시고 사랑으로 그 책임을 수행하도록 정해 놓으셨습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서로 복종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더욱 쉽게 존경하고 복종하게 됩니다(엡6:1-3). 특히 자녀들의 유익을 위해서 부모가 징계를 할 때 더욱 그런 태도를 갖습니다(히12:5-11).
제4부
하나님의 대사로서 승리를 추구함
습관 40
가정 예배를 드림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의 대사로서 늘 말하고 행할 아주 중요한 일은 가정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정은 자녀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교과 과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우리 자녀가 사용하는 시간을 평균 잡아 보면, 교회에서 1%, 학교에서 16%를 보내고, 나머지 시간은 가정과 가정 주변에서 보냅니다.
경건한 부모가 자녀에게 끼치는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우리 자녀들이 그리스도께서 부모의 삶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보지 못하고 분명하게 전달되는 복음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은 커서 거의 틀림없이 기독교를 배척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손자 손녀가 없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소년 때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말씀이 교육되고 실천되고 대대로 전수될 곳으로 마련하셨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을 전수하는 아주 중요한 방법은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여러분의 가정 생활에서 자연스럽고 즐거운 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도 짧은 성경 구절을 읽을 기회를 주고 무슨 뜻인지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독창적인 방법을 마련하십시오.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면서 지루하게 만드는 건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녀에 대해 청지기의 직분을 맡아 가지고 있습니다.
자녀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줄 만한 것들을 말하고 행동하는 데 우선권을 두십시오. 가정 예배를 드림으로 여러분 가정의 모든 면에 기독교 신앙이 고루 스며들도록 하십시오.
습관 41
누가 교회를 필요로 하는 지를 이해함
“전 요즘 교회나 종교 집회에 참석하지 않아요.” 어떤 여성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종교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에요. 거기에 아무런 도움도 필요 없어요.”
곁에 있던 대학생이 거들었습니다. “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선되게 보입니다. 내 눈에는 둔감하고 시대에 뒤지고 삶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제 한몸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내가 볼 때 교회는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시지만 교회를 필요로 하지는 않으십니다.”
오늘날 누가 교회를 필요로 할까?
나는 우리 모두에게 교회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믿는 자의 무리로서 함께 모여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행2:42)힘 쓸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란 건물도 아니고 교단도 아닙니다. 결국 교회란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 나라 전여게 흩어져 살고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오늘도 일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실망을 느끼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
주님은 감당할 수 없는 복을 쏟아 부어주시고 싶어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믿기로는 교회 안에서 섬기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사람들에게 전도해야겠다는 소명을 받은 대사로서 정신을 차려 자기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 몸의 지체에게는 지금도 그렇게 복을 내리고 께십니다. 우리 함께 그 목적을 위해 기도하고 일하지 않으시렵니까?
습관 42
늙은 떨기나무가 어떻게 해낼 지를 깨달음
그리스도인은 열심히 봉사하고 오래 기도하면 성공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게 바로 율법주의의 핵심입니다. 율법주의가 아무리 진실하더라도 만약 자기를 의지하면 두려운 구렁텅이를 향해 가고 있는 셈입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그는 히브리 노예를 구타하고 있는 애굽인을 죽였습니다. 의도는 진실했지만 자기 힘 곧 육체의 무기를 의지했습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1960년 성경을 더 공부하러 미국에 유학 온 때였습니다. 꿈이 컸고, 그 꿈을 빨리 이루고 싶었습니다. 조급한 나머지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내 자신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4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메이저 토마스는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음 사실을 깨우쳐 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나는 아름다운 떨기나무도 고도의 교육을 받는 떨기나무도 웅변력이 뛰어난 떨기나무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만약 너를 쓰려고 하면 나는 너를 쓸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 것이다.
나는 그 떨기나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해드릴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책을 읽고 질문을 하고 훌륭한 사람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모든 게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가 갈라디아서 2:20로 설교를 마칠 때, 환연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성공적인 대사가 되는 비결이 내주하시고 부활하시고 전능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데 있고 나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이 떨기나무를 장악하셨습니다.
우리의 자원은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했기 때문입니다(골2:9-15). 이러한 깨달음에서 자신의 가치에 대한 경건한 의식이 생깁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순례자다!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대사다!
습관 43
하나니의 아들에 관해 잘 증거함
프레데릭 아르놋(Frederick S. Arnot)과 그의 친구는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르 지나며 주정뱅이들에게 자기들의 믿음과 복음을 진실하게 전했습니다. 하지만 군중은 좀처럼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아르놋은 눈물을 흘리면서 실패를 자인했습니다. 그리고는 친구와 함께 그곳을 떠나려고 돌아섰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아르놋의 어깨를 붙잡았습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키가 훤칠한 노인이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계속 하시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기 아들에 관해 잘 증거하는 것을 듣기 좋아하십니다.”
두 스코틀랜드 청년은 용기백배하여 어깨를 펴고 오던 길을 되돌아 갔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난폭한 군중은 청년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여러 해 뒤인 1881년 아르놋은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의 활동에 감명을 받고서 스코틀랜드 목회지를 떠나 중앙 아프리카로 갔고, 그곳에서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데 그를 크게 쓰셨습니다.
신학교 교수 노먼 가이슬러(Norman L. Geisler)는 “변명”(Excues)이라는 제목의 솔직하고 도전을 던지는 글에서, 자기가 18년간 기독교 사역을 직업으로 삼아 왔지만 그리스도를 증거한 적은 없었다고 시인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그의 변명은 아주 낯익게 들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1. “내게는 전도 은사가 없습니다.
2. “나는 가르치는(그리스도인들을) 은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회심자를 얻는 건 너무 어려 웠습니다.
3. “나는 인격과 동떨어진 전도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교제 전도’를 하려고 했습니다.
4.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굳이 내가 없어도 친히 그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습관 44
큰 전율을 경험함
청년 시절에 나는 노방 전도, 어린이 전도, 일반 집회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아주 흥미를 느꼈습니다. 기도하고 연구하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내게 전도 은사가 없다고 단정하게 된 날이 찾아왔습니다. 너무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전도를 해도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마지막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만약 올해 말까지 제 설교를 듣고 회심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다면 저는 그만두겠습니다.”
새해가 나흘 지나서 맞이한 토요일에 내가 나가던 작은 교회는 교인의 가정에서 성경 공부 모임을 가졌습니다.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장로님들에 대한 예의 때문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나는 팔복에 관한 그레이엄 박사의 [행복의 비결](The Secret of Happiness)이 란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한 권 빌려서 마태복음5:1-12을 읽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구절에 관해 설명할 때 한 아가씨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마음은 청결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제가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누가 좀 말해 주세요.” 그 아가씨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때 그 기쁨은 참 큽니다. 졸업식 날이 기쁘고, 결혼식 날이 기쁘고, 첫아기를 얻을 때 기쁘지만, 가장 전율케 하는 건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건 전염성을 갖고 있습니다. 한 번 그렇게 인도하면 중단할 생각이 싹 사라집니다.
여러분에게 이렇게 기도하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귀하신 하나님, 저도 그런 기쁨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대사로서 섬기는 게 무엇인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습관 45
전도를 위한 비전을 품음
여러분의 비전은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우리 세대에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데 일조하도록 하실 수 있다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습니까?
주께서는 공적 사역을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한정하셨지만 온세상을 위해서 오셨고 사셨고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28:19).
바울은 세상 전부를 놔둔 채 한 작은 지역에만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 전역에 복음을 전할 전략을 가족 있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의 전도 여행을 설명해 갔습니다. 그는 마음에 로마로 가는 도중 들르게 될 대도시들을 하나씩 그려보았습니다. 그 유력한 제국의 수도에 사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내가 세계의 주요 도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보기를 갈망하듯이 말입니다.
바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대사들인 우리도 “세계 곳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겠다”는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전도는 기독교 생활에서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닙니다. 전도를 하든 기도를 하든, 세계를 두루 다니든 이웃집을 방문하든, 우리는 모두가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습관 46
부흥에 불을 붙임
사도 바울이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싶어했던 사실은 언제나 내게 도전으 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사역을 수행한다는 전략적 사고를 사용했습니다. 주요 도시들과 지방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공략하기 위해 전도 여행을 세심하게 계획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세대를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분명한 전략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에 얽매이지는 않았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민감하게 주시했습니다.
나는 이 일에 아주 큰 흥미를 느낍니다.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논리적이고 전략적인 계획을 세워서 대 사명을 이루기를 바라십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만약 우리가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다면 필요할 경우 우리의 계획을 재조정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계획을 세울 필요가 말살되는 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손길을 체험한 뒤에 개인과 군중을 다함께 감화하신다고 거듭 증거합니다.
웨일스 대 부흥 운동의 ‘과묵한 전도자’ 이반 로버츠(Evan Roberts)는 대중 설교를 할 때마다 하나님은 다음 네 가지 일이 생길 때에만 부흥의 불을 내려 주신다고 상기시켰습니다.
1.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함.
2. 알고 있는 모든 죄를 자백함.
3. 의심하는 모든 행위를 버림.
4. 즉각적이고도 철저하게 성령께 순종함.
습관 47
위대한 꿈을 꿈
내가 17살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할 때, 한 절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 절이 말하고 있는 뜻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요 14:12).
아주 환성적이고 믿기지 않는 약속이지만 틀림없이 거기에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자라던 십대였던 나는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천천히 내 마음과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는 비전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만의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비전이 말입니다.
내가 품은 비전 가운데 어떤 것은 너무 광범위해서 어머니에게 말씀드린 것 외에는 입밖에 내지 않았고, 심지어 어머니에게도 전부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격려해 주셨습니다. “얘야, 주님께 특별한 메시지를 받을 필요가 없단다. 이미 수 세기 전에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어. 그러니 가거라. 더 많은 지시를 기다리지 말고.”
그래서 우리는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30년 전에 우리가 꾸었던 거대한 꿈들을 주께서 어떻게 대부분 성취해 주셨는지를 되돌아 보고는 늘 놀랍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자신의 대사들인 여러분과 나를 불러 위대한 꿈을 꾸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리스도께서 하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합니까?
이 약 속의 열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리스도는 아버지께로 가신 뒤 성령을 보내사 우리 안에 계시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신자들 속에 거하시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약속을 하시면서 조건을 붙이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주께서는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계속 진행되는 믿음입니다.
습관 48
위대한 계획을 세움
처음 그리스도를 믿을 때는 하나님의 여러 약속들에게 전율을 느낍니다. 기도 응답을 받을 일에 마음이 설렙니다. 신앙 위인들의 전기나 관련 서적은 믿음대로 행동해야겠다는 도전을 줍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완고하고 냉랭해집니다. 신앙 생활의 기쁨을 잃고 피곤해 합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하고 계시다는 말을 들어도 “그러냐”하고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올바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시다고 믿으면서도 주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쓰시도록 하려면 우리는 이 불신을 자백하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 제 눈을 뜨게 하사 다시 한 번 주님의 권능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의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신케 하옵소서. 주님의 무궁한 자원을 다시 한 번 의지케 하옵소서.” 그런 다음 다시 꿈을 꿈고 계획을 세우십시오.
하나님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라는 짐을 우리 마음에 지워 주셨습니다. 먼저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다음에는 우리 나라에서, 다음에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그 일을 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온세상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하나님께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현실에서 안주하고 계십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여러 민족에 대사로 보내시고 싶어하시는 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소극적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습관 49
위대한 기도를 함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합니다. 주님은 단순히 우리에게 위대한 꿈을 꾸고 위대한 계획을 세우라고 도전하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14).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든 구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로 부르심을 받았으면서도 우물쭈물합니다.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내게 구하라”하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필립스 브룩스(Philips Brook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란 마지못해 하는 하나님을 손들게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를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꿈과 계획을 아십니다. “내게 판매해 보거라, 나를 확신시켜 보아라”하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구하라”고 하십니다.
습관 50
대사명에 순종함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첫 단계는 예수님이 주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롬10:9). 성숙해 가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시라는 것(딤전6:15)을 좀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따르는 그 다음의 모든 단계는 예수를 주로서 알고 순종하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주를 경외한다는 건 하나님을 깊이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그에 상응하는 순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12:1)
주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데에는 위대한 꿈을 꾸고 위대한 계획을 세우고 위대한 기도를 하도록 하시려는 뜻도 있을 뿐 아니라, 위대한 명령 곧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는 명령을 순종하도록 하시려는 뜻도 있습니다.
주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분은 만유의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주님으로서 우리에게 대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습관 51
미완료의 사역을 완성함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때 만나게 되는 가장 큰 위험은 냉소주의와 이기주의입니다. “그래요, 35억 인구가 그리스도를 모르지요. 참 불행한 일입니다.” 그 인구가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엡2:12)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임무는 시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하라”(마9:38). 성경은 바로 그 절에서 한 장이 끝나지만 거기서 멈추지 마십시오.
다음 장의 처음 다섯 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사 추수하도록 보내셨습니다. 열두 제자가 그들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사명은 아직 완료되지 않은 채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습니다.
습관 52
가장 중요한 결단을 내림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던 순간을 회상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중대한 결단을 아르헨티나의 산지에서 두 주일에 걸쳐 열린 어린이 여름 캠프에 참석했을 때 내렸습니다.
내가 속한 텐트의 상담자 성함은 프랑크 챈들러(Frank Chandler)였습니다.
여름 캠프가 진행되는 동안 매일 밤 챈들러 선생님은 소년을 한 명씩 깨워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손전 등을 들고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나는 내 죄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고, 그리스도께 헌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와 그 문제를 가지고 대면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돌아보셨습니다. “루이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니?”
“예, 믿어요”나는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구원을 받으려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까?”
챈들러 선생님은 팔로 나를 감싸 안고는 함께 기도했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통나무에 걸터 앉은 채 마음을 열어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려서 서둘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단했습니다. 그때 내 나이 12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구원 받은 줄 알았습니다.
텐트로 돌아와 누웠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 내 인생을 드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결국 이것이 누구든 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결단입니다.
영생을 받는 것과 비교할 때 다른 어떤 결단도 이것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