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말씀 시간입니다.
요즘은 가던 길을 멈추게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카시아꽃 향기입니다. 아카시아꽃 가까이 다가가보면 수많은 꿀벌들이 꽃들 사이를 들락날락하면서 분주하게 꿀을 따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들도 꿀벌들처럼..., 꿀보다도 송이꿀보다도 더 달콤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편, 육십 팔편, 19절 말씀을 송이꿀보다 더달게 먹도록 하겠습니다.
19절 :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아 멘
짐 벗기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묵상하려 합니다.
옛날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짐보따리를 들거나 이거나 지고들 다녔습니다. 책가방도 없었습니다. 보자기에 책을 싸갖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뛰기라도하면 도시락안에 넣어둔 젓가락이 달그락 달그락 거렸습니다. 아이들은 달그락 달그락 소리를 구령삼아 더 뛰고 더 달렸습니다.
요즘 등교시간에 학교앞을 지나면서 보면 아이들마다 메고있는 책가방의 모양도 색상도 똑같은 것을 찾아볼수가 없을 정도로 책가방이 다양한 것을 보게됩니다.
옛날에는 보자기 크기가 다를뿐 모든 사람들이 보자기를 머리에 이거나 들거나 어깨나 등에 메거나 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보자기에 짐을 사갖고 들고 이고 지고 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항에가보면, 여행가방을 끌거나 밀고 다닙니다. 여행 가방의 크기나 색상이나 모양들도 다양합니다. 요즘의 여행가방은 가방의 역할만 하지 않습니다. 앉을 곳이 마땅치 않으면 의자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가방에 추적기가 부착되어 있어서, 가방이 나로부터 반경 몇미터를 벗어나면 자동적으로, 내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워치에서 경보가 울리도록 되어 있는 가방도 있습니다.
가방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하나의 결론을 말씀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짐을 지기 싫어한다는 사실입니다.
송강 정철의 훈민가에는,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으니 돌이라도 무거우랴.
늙기도 서럽거늘 짐을 조차 지실까.
인생을 3기로 나누면,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로 나눗습니다. 늙은이들은 젊어서 많은 짐을 지고 살다가보니, 어느듯 늙은 것입니다. 젊었을 때 졌던 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짐의 대부분은 자녀들을 위하여 졌던 수고와 고생과 눈물의 짐이었습니다.
그 짐을 늙어서까지 지고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수는 없었기에, 짐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가는 그 짐을 벗어 나를 주세요. 나는 젊었기에 돌을 지고간들 무겁겠습니까 하면서 짐을 대신 져주겠다라고 젊은이가 나섰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우리들은 누구할 것 없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내 짐을 대신 져줄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짐을 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의 짐을 대신 져주고 싶어도 대신져줄 수가 없습니다. 다같은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짐을 져주실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에수님은 "날마다 우리 짐을 져주시는 분이시라" 하였습니다. 하루 이틀만 져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께,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맡긴다는 말은 던져 버린다는 말입니다. 주님 앞에 던져버리시고 자유롭게 날아 오르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짐을 날마다 져주심을 감사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오라 주님 말씀하셨사오니 죄짐도 삶의 짐도 예수님 앞에 내려놓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멍에를 매고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며 살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