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에서 이스탄불까지...터키를 중간에 가로질러 한바퀴 돌아 이스탄불로 회귀한다.
트로이를 보고 이스탄불로 출발하는 길은 왼쪽에는 유럽 대륙의 끝자락에 맹장처럼 기다랗게 달려 있는 반도와 터키의 본토인
아나톨리아반도의 서쪽사이에 있는 해협을 보면서 버스를 타고 간다.
트로이 주변의 들판들
좌측에 이런 바다를 보면서 간다.
해협을 건너기 위해서 가는 길로 도로가 구불구불해 보인다.
건너 보이는 곳이 유럽 대륙의 끝자락이고 화물선이 건너 보이는 것이 유럽이고 버스가 가고 있는 곳이 아시아라는 사실이 신
기하다.
사실 유럽이나 아시아를 구분한 것이 사람들로 필요의 의해서 구분한 것이니 이상해 할 것도 없다.
차낙칼레와 다르다넬스 해협과 겔리볼루(갈리폴리)
다르다넬스 해협은 차낙칼레와 겔리볼루 사이의 해협으로 이 곳은 기원전부터 동서양 교통의 요충지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1차세계 대전에서 연합군과 터키가 겔리볼루에서 전쟁을 한 곳이다. 차낙칼레는 알렉산더대왕이 페르시아 정벌떼 이곳을 건넜
다고 한다.
우리가 지나치고 가는 차낙칼레....아쉬워서 사진 몇 장...
차낙칼레..."Çanakkale" 지명은 예로부터 도자기가 유명하여 "Çanak"(차낙-항아리) 와 "Kale"(칼레-성)이 합쳐져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트로이 목마가 있다고.... 트로이에 있는 것은 사람이 들어가서 관광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고 이것은 관상용인 셈
이다.
그리고 이곳 차낙칼레는 한국의 대림산업이 세계에서 제일 긴 현수교의 완공을 앞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탑의 높이가 334
미터로 에펠탑보다 높고. 주탑간의 거리가 2,023m로 지금까지 제일 긴 현수교였던 일본의 아카시 대교의 1,991m보다 길다고...
주탑간의 거리가 2023m인 것은 2023년이 터키 공화국 수립 100주년이 되기 때문이라고...그런데 조기완공으로 2022.1월에 완
공예정이라고 한다.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서 랍세키라는 조그만 항구에서 배를 타고 건너편에 있는 겔리블루라는 곳으로 해협을 건너간다.
우리가 배를 탄 랍세키라는 조그만 항구...아시아쪽이다.
세계의 어느 항구에서나 볼 수 있는 위층에는 사람이 타고 아래층에는 차량을 싣는 그런 배다.
이 해협은 지중해에서 흑해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에 대형화물선들도 보인다.
터키는 자기네 바다를 통과하는 배들에 대해서 통행료를 받지 않는데 이는 터키는 영해(領海)가 아닌 공해(公海)이기 때문이다.
여객화물선..랍세키항
건너 유럽쪽이 보인다....저곳도 터키의 땅이다. 가운데 바다는 다르다넬스 해협
뱃머리에 앉아서 구경도 하고
아시아와 유럽의 대륙이 동시에 보인다.
화물선이 지금은 공짜로 다니지만 곧 로잔조약이 끝나서 영해로 되돌아 오기 때문에 통행료를 받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오스만터키가 1차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면서 본래 터키의 영토가 아니었던 부분과 터키 영토의 대부분
을 연합군이 분할통치하거나 독립을 시키는 세브르 조약을 체결하였으나, 터키의 초대대통령인 케말이 갈리폴리(겔리볼루)에서
14,000명의 군대로 20만의 연합군을 격파하면서 로잔조약을 통해서 터키의 영토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에게 해의 모든 섬들을
그리스에 넘기고 영해를 포기하는 대신 터키의 영토를 지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터키인들은 케말 초대대통령은 아타투르크(터키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신처럼 받들고 존경한다고 한다.
로잔 조약(Treaty of Lausanne)은 1923년에 터키 공화국이 수립된 후에 스위스 로잔에서 터키와 연합국이 세브르 조약에 대한
제약을 없애기 위해서 다시 체결한 조약이다. 터키는 이로써 1894년 당시 소유했던 영토인 스미르나, 콘스탄티노플, 동트라키아 등을 회복하는 대신 영해를 포기 하였다.
① 전 오스만 제국 대신에 수립된 터키는 이 조약이 인정한 국경선을 계속 유지한다.
② 터키는 전에 소유했던 아랍의 여러 지방에 대한 소유권을 다시 주장하지 않고 키프로스를 영국 소유로, 도데카네스를 이탈
리아의 소유로 각각 인정한다.
③ 연합국 은 터키· 이라크·이란에 걸친 고원 지대인 쿠르디스탄의 자치와 아르메니아에게 터키 영토를 할양해야 한다는 주장
을 철회함과 동시에 터키 안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포기하며, 터키의 재정과 군사력에 대해서도 아무런 통제를 가하지 않는다.
④ 에게해와 흑해 사이의 터키 해협은 모든 선박 에 개방한다.
⑤별개의 협정을 통해 그리스와 터키는 상대국의 소수 민족을 의무적으로 돌려 보낸다
관광객들에게 키를 잡게도 해준다.
사진도 찍어주고...
이제 서로 얼굴도 익어서 일행들의 사진도 찍어준다.
건너편에 겔리볼루(갈리폴리)가 보인다.
겔리볼루는 이스탄불 남서서쪽 203㎞ 지점, 다르다넬스 해협이 마르마라 해와 연결되는 곳의 좁은 반도에 자리잡고 있다.
비잔틴의 중요한 요새였으며 오스만 제국이 유럽에서 처음으로 손에 넣은 지역으로(1356경), 이스탄불 방어를 위한 전략적 중
요성 때문에 해군기지로 쓰였다. 또한 루멜리아(발칸 제국에 있는 오스만 제국의 영지)에서 아나톨리아에 이르는 무역로의 중
요한 중계지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다르다넬스 작전때 연합군과 이에 치열하게 대항한 터키군이 맞붙었던 곳으로, 이때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
다. 로마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6세기)의 창고와 오스만 술탄 바예지드 1세의 것으로 짐작되는 14세기의 사각 성곽, 트라키아
왕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고분이 아직 남아 있다.
신도시는 어업과 정어리통조림 제조 중심지로 개발되었다. 도로 또는 정기여객선으로 이스탄불과 연결되며, 도로로 에디르네와도 이어진다.(다음백과)
갈리볼루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는 점심만 먹고 이스탄불로 출발을 하게 된다.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안나는 것을 보니...기억에 남을 만한 식사가 아니었을 것
후다닥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러 간다. 이 때가 12시로 이스탄불에서 소화해야 하는 일정 때문이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은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난 전쟁의 현장인지를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간다.
겔리볼루에도 목마가???.....구글 사진에서
https://youtu.be/RRoSJF4foZU(겔리볼루 유투브)
겔리볼루(갈리폴리) 전투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오스만 제국 다르다넬스 해협의 겔리볼루 반도(갈리폴리 반도)에서 벌인 일련의 상륙
전투이다.
연합군은 1915년 2월 19일과 2월 25일, 3월 25일에 각각 다르다넬스 해협의 터키군 포대를 포격했으나 터키군의 반격과 기뢰 등으로 인해 3척의 함대가 격침되고, 3척이 대파되었다.
이로 인해 총책임자 윈스턴 처칠이 총관직에서 물러나고 영국 해군의 피셔 제독도 사임했다. 이에 연합군은 새로 임명된 영국의 I. 해밀턴 장군의 지휘 아래에 4월 25일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주축으로 한 영연방 및 프랑스군 7만 명을 갈리폴리
에 상륙시켰다.
하지만 독일 제국의 오토 리만 폰 산더스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과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휘하 터키군의 공격으로 실패했
다. 또 터키군의 병력을 잘못 파악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병사가 8,587명이나 전사하고 1만 9367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연합군 총
사상자는 25만 명에 달했으며 터키군도 21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과정에서 모즐리의 법칙을 발견했던 물리학자 헨리 모즐리도 전사했다.
결국 상륙 작전의 실패로 연합군은 6개월 뒤에 갈리폴리에서 철수했다.
이 전쟁에 참여한 호주-뉴질랜드 군단을 앤잭 군단(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ANZAC)이라고 부르는데, 1915년
4월 25일 반도에 상륙했지만 작전을 지휘하던 영국 장군의 무능한 리더십 때문에 많은 병력을 잃었고, 영국이 결국 그 작전을
실패로 결론지은 1916년에 철수했다. 이후 갈리폴리반도에 상륙한 날을 기념하는 '앤잭의 날(4월 25일)'은 호주에서 가장 중요
하고 감성적인 국경일이 되었다.(사전에서)
“여행자여 멈추어라. 당신이 무심코 밟고 있는 이 땅은 한 시대가 묻혀있는 곳이다.” 라고 한다.
전사자 묘역
호주-뉴질랜드 군단을 앤잭 군단 기념석...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