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의 천성산(千聖山 922m)은 산형이 부드러운 육산(陸山)인데 이 산의 고소(高所) 평원과 습지를 화엄벌 혹은 화엄늪이라 부른다. 천성산은 원효(元曉 617~686)의 산이며 성인(聖人)들의 산이다.
천성산과 관련한 설화(說話)는 원효가 신통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인데, 이런 내용이 옛 전서에 ‘소반을 던져 많은 사람을 구했다(擲盤而求衆)’고 기록되어 있다. 원효의 구중(求衆) 설화는 그가 불광산 척판암에 머물 때 당나라 태화사에 수도하는 1,000명의 대중이 여름 장마로 뒷산이 무너져 내릴 것을 알고 ‘해동원효척판구중((海東元曉擲板求衆)’이라는 글을 쓴 나무판자를 태화사 상공으로 날렸다. 대중이 이상히 여겨 일주문 밖으로 나와 공중을 쳐다본 순간 뒷산이 무너지면서 전 사찰이 파괴되었다.
그 후 목숨을 건진 1,000명의 당나라 수도자들은 신라의 원효를 찾아왔다. 이에 원효는 현재의 천성산에 89개 암자를 지어 천명의 대중을 수도케 했다. 대중을 산상 벌에 모아 <화엄경>을 가르쳤으므로 그곳을 화엄벌이라 했다. 또한 산내 모든 곳에 잘 들리도록 북을 달아서 암자에 흩어져 머물던 대중을 모았는데 현재의 집북재이다.
원효가 세상에 머물다 간 큰 뜻이 ‘화쟁(和諍)’인데 화쟁은 화이부동(和而不同)과 통한다. 천성(千聖)의 이야기는 세상사람들이 원효를 내세워 만든 허구이거나 구전되어온 설화일런지 모른다.
화엄벌은 25만평 정도이고 이 중에서 약 3만7천평의 화엄늪이 있다. 늪의 주인은 억새가 아니고 '진퍼리새'라는 풀이다. 화엄늪 일대는 대부분 진퍼리새고 억새는 바깥쪽을 차지하고 있다. 화엄늪에는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등 235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멸종위기동물인 삵과 참매, 수리부엉이, 항조롱이 등이 살고 있는데 이곳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화쟁(和諍)이 아닐까. 산의 정상 아래에 원효암(元曉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