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광야에로의 초대
17세기의 위대한 지성이었던 파스칼은 『팡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들의 비참을 위로해 주는 유일한 것은 오락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우리들의 비참 중에서도 가장 큰 비참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주로 우리 자신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모르는 가운데 죽어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진정한 나를 만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무료함이나 고통,
그리고 나에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을 마주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을 직면하고 받아들이기란 여간 거북하고 우울한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이들을 회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상의 소소한 자극에 눈을 돌립니다.
곧, 갖가지 오락거리에 탐닉하거나
자신의 일에 기계적으로 몰두하며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어,
중요하지만 암울한 이런 주제들에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주변적인 것들에 몰두하여
삶의 무게를 회피하는 것이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마치 알코올중독자가 자신을 괴롭히는 삶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술에 의존하여 그저 잊어버리고
회피하려고만 하는 것이 결코 건강한 삶의 자세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때때로 광야에 홀로 서야 합니다.
광야는 메마르고 헐벗은 땅입니다.
먼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의 마른 입술을 축여줄 시냇물도,
주린 배를 채워줄 식량도 없고, 긴 여정의 지루함을 달래줄
꽃 한 송이 피어있지 않은 불모의 땅이 바로 광야입니다.
이 황량한 광야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됩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리며 자신이 얼마나 유혹에 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고,
헛된 교만에서 벗어나 자신의 유한함을 직시하며,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덧없는 삶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광야는, 이렇게 자신의 유한함을 깨달은 인간이
비로소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분께 진심으로 돌아서는 장소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는 그저 고통과 결핍의 땅인 이 광야가,
누군가에게는 하느님을 직접 뵈옵는 은총의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 광야가 꼭 특정한 장소일 필요는 없습니다.
삶의 여정 중 맞이하는 아득한 절망의 순간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상황들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광야가 아닐까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을 시작하며, 교회는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이 은총의 시기 동안 예수님과 더불어 광야에 머물도록 초대합니다.
결핍과 고통의 장소. 세찬 유혹의 시간.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 홀로 버려진 듯한 그 절망의 땅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과 함께 하는 이 광야의 여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를 만나고 참 하느님을 뵈올 것입니다.
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최규하 다니엘 신부
시간 속의 광야 사순절
‘슈퍼 블러드 블루문(Super blood blue Moon)’
지난 1월 31일 우리 하늘에 뜬 달을 일컫는 말이다.
평소 하늘을 살피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이날은 한 번쯤 하늘을 올려 뵀을 것 같다.
평상시 달에 관심이 없었는데 언론을 통해 그런 달이 뜬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뉴스가 있었지만 밤 10시 나를 움직인 것은 달이었다.
현대인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 매일 새로운 뉴스가 나오고,
새로운 정보를 인터넷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다.
이런 현실에 중요성을 더해 가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어떤 기준과 잣대로 무엇을 선택하는가? 성공인가? 돈인가? 명예인가? 권력인가?
보다 나은 인간다운 삶인가? 무엇이 우리 삶의 선택의 기준인가?
과연 그런 선택의 기준으로 사는 삶은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는가?
오늘 복음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광야의 거칠고 황량한 생활 그 자체가 하느님의 뜻과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어떤 뜻이 있었을까 상상해 본다.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 예수님께도 쉬운 일만은 아니었고,
또 식별이 필요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30년 동안 세상에서 어머니와 이웃들 속에 어울려 사셨던 예수님께는
삶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지혜들이 나름대로 가치 잇게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성공과 명예,
돈, 권력이 매력적인 가치로 세상을 통해 그분께로 전달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느님만 마주 대할 수 있는 광야에서
참과 거짓을 식별하는 과정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부족한 광야의 생활이지만
참된 기준을 세우는 그 자체가 예수님께는 천사의 시중이 되는 것은 아닐는지….
지난 수요일부터 시작된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초대하시는 것이다.
시간 속의 광야가 사순절이다.
비록 삶의 공간과 시간을 떠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기도와 자선과 단식으로 우리 삶의 결핍을,
빈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우리 내면의 기준을 다시 점검하는 것이다.
성공, 돈과 권력과 명예가 최고의 가치라 말하는 세상의 유혹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길을 묻고, 그 길을 걷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순절 광야를 살아가는 길이다.
글 : 대전교구 신안수(안드레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