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 여행 2 - 고베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는 메리켄 파크 공원에 가다!
2024년 9월 21일 손주등 7명 가족은 오사카 텐노지 동남쪽에 있는 호스텔에서 아침밥을 지어먹고
렌터카에 올라 텐노지역을 지나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고베로 가서는 지진 박물관을 구경합니다.
지진 박물관을 보고 나와서는 고베 시내로 들어가서는 점심을 먹기
위해..... 딸이 구글 지도에서 검색했다는 일본 식당을 찾아갑니다.
냐와 딸이 먼저 내려 식당으로 들어가니 마침 두 테이블이 비어 있어 8명
수용이 가능한지라 우리 7명이 점심을 먹기에는 안성 맞춤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구과 달리 일본은 도로에 무단 주차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니.... 이 식당에는 주차장
이 없는지라 인근 사설 주차장에 차를 넣으려고 하니 2군데 모두 월차 주차장이라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식당에 말을 하니 종업원 할머니가 나오더니 앞장서 갈려 가는데 저만치 주차장이 보이더니
우리가 도착하는 새에 다른 차가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만차가 되어 주차가 불가능해 졌다는......
사위는 차를 도로변에 오래 정차하지도 못하는지라 차를 몰고 다른 주차장을 찾으로 가버리고,
그래서 식당으로 되돌아오니 다른 손님 두 팀이 왔으니 이제 자리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해서 다른 식당을 알아보고 있는데 사위가 멀리 차를 주차장에 넣고는 손주들과 함께 도착
한지라 이 식당은 이미 틀렸다고 말하면서 보니 주인이 나와서는 안으로 들어오랍니다?
아니 조금 전에 2팀이나 왔었는데.... 그러고 보니 식당에서 우리 다음에 온 저 손님들을 식당에 입장을 시키지
않고 만석이라며 웨이팅을 받으니 바깥에 노트에 저 사람들이 이름을 순서대로 적고는 기다리고 있네요?
우리나라라면 식당 주인이 어떻게 했을지 참으로 궁금한데.... 어쨌든 7명 대가족이 두 테이블을 차지하니
점심은 고정 메뉴라며 일본식 정식으로 나왔는데..... 1,200엔으로 모두들 맛있다고 만족을 합니다.
이 집에서 후식으로 나오는 배는 입에 넣으니 바로 살살 녹아버리는데....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간혹 섬유질이 많은 배도 있지만 이 집의 배는 그냥 녹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카드를 받지 않는다기에 현금으로 지불하고는 다시 걸어서
렌터카 차에 올라서는..... 해변이자 부두인 "메리켄 파크" 로 갑니다.
그러고는 다시 렌터카를 타고 부두이자 해변인 메리켄 파크 メリケンバ-ク에 도착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주차장이 엄청 넓은지라 차를 주차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이 도시 고베(神戸 신호) 는 효고현의 현청 소재지인데 1868년에 개항을
했으니.... 서양의 배와 서양인들이 대거 몰려오는지라 한적한 작은
어촌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갑자기 거대 도시로 발전을 했읍니다!
1868년 이라면 조슈번과 사쓰마번에 히젠번과 도사번의 존왕양이론자 무사들이 일왕(천황)
을 받들고 260여년 내려온 도쿠가와 에도 막부를 타도하려는 메이지유신
무진전쟁이 일어나던 해인데... 아마고베 개항은 막부에서 결정하고 실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양인들은 처음에는 16세기에 규슈 서북부 히라도항으로 찾아왔는데 1549년 10월 스페인
예수회 소속 선교사 프란시스 자비에르가 말레이시아 말래카의 저팬타운에 머물던
안지로의 안내로 중국 배를 타고 가고시마에 상륙하면서 일본에 예수교 전도가 이루어 집니다.
이후 계속 찾아온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예수교 신자 들이 급속도로 불어났으니.... 임진왜란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 와 제3군 구로다 나가마사등 다이묘와 병사들은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였으니 1592년에 십자가 군기을 앞세우고 유교의 나라 조선의 부산에 상륙해 북진합니다.
규슈에서는 천주교 신자가 늘어나고 우상을 타파한다며 신사와 절을 공격하니 일본 정부는 이러다
가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처럼 일본도 서양 식민지로 전락할까 염려해 선교사
들을 죽이고 일본인 신자들에게 배교를 강요하는등 천주교를 박해하고 쇄국 정책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해외 선진문물과 상품은 탐이나니 베트남과 태국이며 말레이시아등 동남아여러나라에 진출해 저팬
타운을 건설한 일본인들에게 귀국을 금지시키고는 나가사키 앞 바다에 인공섬 데지마를 만들고는
포교에는 관심이 없고 무역만을 원하는 네델란드인들을 거주시켜서 중국 및 유럽과의 무역에 종사시킵니다.
1853년과 1854년에 미국 페리 제독이 군함 7척을 이끌고 도쿄만에 나타나 개국을 강요하니
도쿠가와 에도 막부는 미국 군함의 함포 사격으로 도쿄가 불바다가 될 것을 염려해
굴복하고 요코하마와 하코다테를 개항하니 전국의 무사들이 일본의 수치라며 궐기 합니다.
신(神)의 나라(?) 일본이 저 야만적인 서양 오랑캐에게 굴복했으니 일본의 혼을 더렵혔다며
일왕(천황)을 받들고 서양 오랑캐를 쫓아내자는“존왕양이론” 을 들고 나오니
그 중심인 조슈번(야마구치현) 을 에도 막부는 15만 대군을 동원해 1차 진압
했으나.... 조슈번에서 요시다 쇼인의 제자인 다카스키 신사쿠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그런 중에 사쓰마번(가고시마현) 은 영국함대와 전쟁 을 벌였고.... 조슈번(야마구치현)
은 영국, 미국, 프랑스 및 네델란드 4개국 함대와 전쟁을 벌려 시모노세키가
서양인들의 군홧발에 짓밣히니 에도 막부는 다시 10만 대군을 동원하는데...
도사번(시코쿠섬) 출신 사카모토 료마가 원수지간인 조슈번과 사쓰마번을 중재 시킵니다.
해서 조슈번은 사쓰마번의 이름을 빌려 나가사키의 영국 상인에게서 대포와 신식총을
구입해 무장하니 10만 막부군을 맞아 4천 조슈번은 다카스키 신사쿠와 야마가타
아리토모에 이토 히로부미 및 사카모토 료마의 해군 지원을 받아 규슈 고쿠라성 을
함락시켜 방어에 성공한후 4개번이 힘을 합쳐 1868년에 무진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요코하마나 하코다테 보다는 10년이 늦은 1868년에 개항한 고베 는 푸딩에 와인과 커피 및 양과자 등이
일본 최초로 등장했는데 일본 6번째 도시이자 3번째 무역항으로... 1995년 1월 17일 진도 7.2 대지진
이 고베를 강타해 오래된 목조가옥이 촘촘하던 고베는 제대로 된 건물이 없을 정도로 무너져버렸습니다.
어린 시절을 이 도시 고베 에서 보낸 인기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지진후 고베를
“빈터에 짙푸른 여름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그것은 친밀한 사람의 흰 피부에
남겨진 외과 수술 자국을 연상시킨다” 라고 상처 입은 도시의 아픔을 이야기 했습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 도시 고베에서 서양인들의 거주지였던 "이진칸" 이 유명한데 스타벅스
기타노이진칸점은 1907년 지어진 건물로 유형 문화재였으나 1995년 한신 대지진
으로 훼손되면서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고베시는 건물을 해체한뒤 건물 자재를
보관했는데 이후 민간 사업가가 기존 자재로 고풍스럽게 건물을 올렸으니 고베 명물 입니다!
고베 산노미야역 은 아주 복잡한게 여러 역이 있기 때문인데 국철인 JR 말고도 오사카로
연결되는 한큐 전철과 한신 전철에 포트아일랜드 섬으로 들어가는 포트라이너
ポ-トライナ 에다가.... 2개의 지하철 산노미야역 까지 무려 6개 역이나 몰려 있습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한국에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5,200엔 하는 3일짜리 간사이 쓰루패스 를
4,680엔에 구입했기로 처음 사용하는데 역의 개찰기 에 넣으니 뒷면에 오늘 날짜 가
찍히는데 패스는 연속이 아니어도 가능하니... 3일만 필요한 날에 나누어 사용할수 있습니다.
여기 바다를 넘나드는 대형 선박들을 보노라니 문득 떠오르는게 있으니 몇 년전에 신문에 “1915년에
하와이로 간 ‘사진신부’”라는 기사가 실렸으니 한복을 차려 입은 옛날 사진을 보자니....
인천에서 배로 하와이 로 가는 도중에 바로 이 도시 고베에 내려서 잠시 쉬는 중에 찍은 사진 들 입니다.
“하와이 사진 신부 란 20세기 초 미국 하와이에 노동이민을 간 남성과 서로 사진만 교환한뒤 혼인한 조선
여성 을 일컬으니 1910, 20년대에 1000명 가까이 이렇게 조선을 떠나 하와이로 갔는데... 그런 사진
신부였던 천연희 여사(1896∼1997) 자전적 기록이 담긴 ‘하와이 사진 신부 천연희의 이야기’ 가 출간됐다.”
“나는 소설가도 아니요, 작문가도 아니다. 우리 한국 여자 사진 혼인해 온 이들이 대단히 일찍 깨었고 살기를
원했지만 남편들은 나이 많고 재주 없고 일도 잘 못하는데다 아이들은 많아서 여자들이 살길을 찾아서
빨래숍 도 내고 바느질도 하고 장사는 하려도 밑천이 없어 큰 회사나 청국 사람에게 헌집을 몇해 세내어…”
“‘하와이" 는 천 여사가 1971년부터 1984년까지 남긴 노트 7권을 현대 말투로 옮기고 해제
를 달았는데..... 진주의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천여사는 1915년 마우이섬의
사탕수수농장 노동자 길찬록 에게 시집을 왔는데,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어머니의 허락과 지원 이 있었고 일제강점기란 식민지 현실 이 있었다.”
“모든 것이 압박과 압제 를 주었다. …제국 정치의 반대자라거나 도모자 라고 하고 옥에 가두고 추달하여
병신 을 만들어 정신병자 모양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등신을 만들어 버렸다. 그와 같이
자유 없는 나라 백성 은 참으로 불쌍하였다.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상처가 되어 자유 세상을 찾게 되었다.”
“천 여사는 노트와 함께 구술 녹음테이프 24개와 사진, 편지도 남겼으니 소중한 기록을
남긴 하와이 사진신부는 2명뿐 인데 천여사의 자료는 이덕희 하와이 이민연구소장
주선으로 미국 하와이대 에 기증됐다가 2014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부두를 뒤로하고 돌아오다가 30층짜리 고베시청 전망 로비를 찾으니 수위가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어 神戸 市役所 展望 ロビ(고베시청 전망로비) 24층 전망대에 올라서는 도시의 야경 을 구경합니다.
롯코 산에 “KOBE" 라고 글씨가 새겨진게 특이해 보이는데 무슨 전구 를 설치해 불을 밝히는 것
인지..... 주변 고층 빌딩 은 물론이고 왼쪽으로는 포트 아일랜드 섬 ポ-ト アイランド 입니다.
항구에는 오른쪽으로 붉은색 포트타워 를 넘어서.... 그 뒤편에 중앙 부두 터미널
에 모자이크 빌딩 이며 대관람차 색깔이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것이 볼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