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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가는 아니고, 개신교의 찬양성가이지만, 우리에게도 가슴에 와닫는 성가입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위 동영상의 화면에 소개되는 개신교의 미국 감리교 선교자로 1908년도에 한국에 파견 되었던 루비 켄드릭이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1909년)와 루비 켄드릭의 간단한 소개의 글을 올립니다. 이 곳 조선 땅에 오기 전 집 뜰에 심었던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루 종일 집 생각만 했습니다. 욕심쟁이 수지가 그 씨앗을 받아 동네 사람에게 나누어 주다니, 너무나 대견스럽군요..
아버지, 어머니! 이 곳 조선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이 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기 위해 20킬로미터를 맨발로 걸어 오는 어린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 지 일주일도 안된 서너 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는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오는 밤은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 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이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 하겠죠?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제가 조선을 향해 가지는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해 가지신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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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나이로 순교한 Ruby Kendrick 선교사님의 비석에 적힌 글입니다. 이 소식이 미국에 있는 그녀의 교회에 전해지자 눈물 바다를 이뤘고, 이후 그녀의 희생을 전해들은 많은 젊은이들이 낯선 땅 한국을 위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들 입니다. 서울에 있는 외국인 묘지에 가보면 거의 100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이 땅에서 심장을 묻었습니다. 그 중에는 대부분이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이었고, 부활을 소망하는 글 귀들을 비석에 새겨놓고 있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소망한 그들을 진정 이 한국을 예수께서 명령하신 땅 끝으로 알고 나아왔던 사람들입니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를 방문하면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묘비가 하나 있다. 24세 젊은 나이로 조선에 와서 불과 9개월도 지나지 않아 순교한 루비 켄드릭 (Miss Ruby Rachael Kendrick, 1883~1908)양의 묘비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의 묘비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다. "만일 내게 일천 생명이 있다면 그것을 모두 조선에 주겠노라."
미국 텍사스 남감리교회의 독실한 가정에서 태어난 루비 캔드릭은 꿈 많은 소녀 시절부터 불신자들에 대한 구령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해외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텍사스 여자고등성경학교에 진학했다. 1905년 6월에 졸업한 그녀는 선교사 파송 연령 제한에 걸리자 교사로 1년, 대학 학부 과정 1년을 수학하면서 해외 선교를 위해 착실히 준비했다. 그녀는 이 기간에 텍사스 엡윗 청년회 대표가 되었고,1907년 9월에 남감리 교회 여자 외국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조선으로 달려왔다. 텍사스에서 엡윗 청년회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던 중 조선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가득 담긴 그녀의 편지 한통이 도착했다. "만일 내게 일천 생명이 있다면 그것을 모두 조선에 주겠노라." 라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는 그곳의 수많은 사람의 심령을 감동시켰다.
그런데 엡윗 청년회 컨퍼런스 이튿날에 조선으로부터 갑자기 비보가 날아들었다. 루비 캔드릭이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녀는 1908년6월9일에 맹장염에 걸려 수술을 받았지만 열흘 후인 그 달 19일 만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조선 선교의 꿈을 이루지도 못한 채 25세의 꽃다운 나이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만일 내가 죽으면 텍사스 청년들에게 가서 열 명씩,스무 명씩, 오십 명씩 조선으로 오라고 일러주십시오.”
그녀의 말은 텍사스 엡위 청년회 컨퍼런스에 전달 되었고 그 자리에 참석한 수 많은 젊은이의 가슴에 선교의 불씨를 지폈다. 그들 중 20여명이 은둔의 나라 조선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텍사스 엡윗 청년회는 해마다 헌금을 모아 조선에 사역하던 선교사들의 사례비를 지원했다.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교회의 기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헌신과 순교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제 우리 차례다. "복음에 빚진 자의 사명" 그것은 값싼 구호로 끝나지 않고 대가를 수반한 실천적 행동이어야 한다.
[출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회사 교수, 박용규 P,S 내일도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고 방송미사로 대신해야하는 아쉬움으로, 지난 3월에 서울의 한 성당에서 신자들이 없이 텅빈 성당에서 성가대지휘자 혼자서 사순시기 1주의 특송을 부른 "사명" 동영상이 있기에 아래에 올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