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광주의 5월은/김명화
입력: 2016.05.17 00:00(호남매일신문)
이팝꽃이 흩뿌려지듯 지고, 땅으로 떼죽나무 꽃이 피고, 하늘 향해 산딸 나무 꽃이 피고, 아카시아꽃이 만발하였다. 진초록으로 변해가는 산하에 흰점 얼룩으로 펼쳐진 하얀 꽃의 펼쳐짐이 세월의 변화무쌍함을 느끼게 한다.
5월에는 유독 하얀 꽃이 많이 피는 것일까? 하얀 꽃잎들이 산하를 뒤덮는 5월은 기억 속에 아픔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어린이날이 가고, 어버이날이 가고, 스승의 날이 가고 5월 18일이 돌아온다.
시대와 시대를 겹쳐서 살아가는 나는 광주라는 도시의 땅에 터 붙이고 산지 오래 되어서인지 5·18 주기가 되면 진초록의 나뭇잎에 수놓아진 하얀 꽃을 보며 깊은 슬픔이 밀려온다.
광주의 5월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는가? 5월이 되면 항상 의문을 가져본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광주는 5월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5월이 되면 망월동 공원묘지를 지날 때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푸른 하늘을 보며, 하얀 꽃을 보며 먼저 간 영혼을 위해 묵념을 올린다.
이렇게 광주의 5월은 1980년대의 상황들이 지금에까지 모두의 가슴에 흔적으로 남아 있어 우리들의 삶속에서 진행형인 것이다.
올해도 이 날이 가까워져 오면 5·18기념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대한 의견들이 많다. 그건 역사의 기억 앞에서 그날 희생했던 분들에게 아픔과 미안함을 사죄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몇 년 전부터 계속 이야기 되어 온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오는 18일 제창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계속 집중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이런 저런 기사들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올해도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기념곡 지정 및 제창 문제와 관련, 국론 분열의 문제를 이유로 현행대로 합창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가 하나가 된 모습으로 함께 노래를 불러 그날의 아픔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최광림 시인의 ‘오월, 아직 그 해법을 나는 모른다.’ 작가의 서문을 보면 ‘이맘 때 즘이면 삭신이 쑤시고 통증이 도지는 몸살을 주체할 수 없다. 자연의 법칙이나 순리를 역행하지 않는 이상 오월은 계속될 테고 나의 이 딜레마는 어쩌면 가속도를 동반하게 될지도 모른다.’ 라는 글을 보더라도 5월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해 오늘을 사는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 기억의 흔적들은 때로는 상처가 되어, 아픔이 되어, 자유를 위해 살았던 그분들의 삶의 몫까지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브레히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날 함께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위로를 준다. 그의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던 것을/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 애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는 시를 읽으며 나를 돌아다본다.
꽃잎이 휘날린다. 하얀 꽃들의 흔들림이 우리의 그날을 기억하게 한다. 필자가 아는 친구의 오빠는 쫓아오는 군인들을 피해 그날 밤 동명동의 낮은 담장을 두 개나 뛰어넘었다고 한다. 지금도 오빠는 군화 발자국 소리만 들으면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광주가 아닌 접변 지역에살았던 언니는 그해 중학생이었다. 하복을 입은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였다고 기억한다. 중간고사를 다음 주로 미루어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가방을 정리하는데 선생님이 이야기 하셨다. 집으로 돌아갈 때 혼자서 가지 말고 친구들끼리 함께 가라고 언니는 그날 선생님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으나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얀 찔레꽃이 자천으로 피어 있어 찔레꽃만 보면 그날이 떠오른다고 한다.
이렇게 5월의 흔적들은 우리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하얀 꽃잎을 보며 그날의 기억은 구름이 되어 먼 길을 여행하듯 돌아와 우리의 가슴을 한번 후비고 간다. 우리는 5월이 되면 그날을 기억하고 그날을 노래한다.
분다. 바람이 분다. 날린다. 꽃잎이 날린다. 우리는 5월의 흔적을 벗어나기 위해 트라우마를 지워내기 위해, 그날 희생했던 그분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5월의 꽃바람이 분다. 우리의 아픈 기억들이 사라지며, 우리의 기억들이 점점 아스라이 지워 질 때면, 우리의 머리와 마음에 광주의 5월은 어떠한 기억들이 머무를 것인가?
다시 5월이다. 다시 18일이다. 그 날로부터 36년이 되었다. 한 살이었던 아이도 이시대의 이끌어가는 어른이 되었다. 사랑의 달, 가족의 달, 찬란한 신록의 달 5월에, 광주의 5월은 또 하나의 기억을 안고 상처를 달래며 그날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