樊遲問仁 子曰 愛人 問知 子曰 知人 번지가 인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번지가 지혜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아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愛人 仁之施 知人 知之務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仁을 베푸는 것이고, 사람을 아는 것은 지혜의 일이다.
去聲 下文知也 知者言知仁知並同 거성이다. 아랫문장의 知에서 知라는 것은 仁과 知가 나란히 동등함을 안다는 것을 말한다.
問愛人知人是仁知之用 聖人何故但以仁知之用告樊遲 却不告以仁知之體 朱子曰 體與用 雖是二字 本末未嘗相離 用卽體之所以流行者也 누군가 묻기를,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는 것은 仁과 知의 用인데, 성인께서는 무슨 이유로 그저 仁과 知의 用으로써 번지에게 알려주었을 뿐, 오히려 仁과 知의 體로써는 알려주지 않은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體와 用은 비록 2글자이기는 하지만, 근본과 말단이 일찍이 서로 분리된 적은 없었으니, 用은 곧 體가 유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樊遲 未達 번지가 그 뜻을 파악하지 못하자,
曾氏曰 遲之意 蓋以愛欲其周而知有所擇 故疑二者之相悖耳 증씨가 말하길, “번지의 뜻은 대체로 사랑은 그것이 두루 미치기를 바라고, 지혜은 고르는 바가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두 가지는 서로 어긋나는 것이라고 의심한 듯하다.”라고 하였다.
曾氏名幾字吉甫 河南人 증씨는 이름이 幾이고 자는 吉甫이며 하남 사람이다.
朱子曰 愛人則無所不愛 知人則便有分別 兩箇意思自相反了 故疑之 주자가 말하길, “사람을 사랑하면 사랑하지 않는 바가 없고, 사람을 알면 곧 분별함이 생기니, 두 개의 뜻은 저절로 상반되기 때문에, 그것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 위에 올려놓으면 능히 굽은 것을 곧게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擧直錯枉者 知也 使枉者直 則仁矣 如此 則二者不惟不相悖 而反相爲用矣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에 놓는 것은 知이고, 굽은 것을 곧게 만드는 것은 仁이다. 이렇게 하면 이 두 가지가 단지 서로 어긋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서로 활용이 되는 것이다.
朱子曰 每常說仁知 一箇是慈愛 一箇是辨別 各自向一路 惟是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方見得仁知合一處 仁裏面有知 知裏面有仁 주자가 말하길, “매번 항상 仁과 知는 하나는 자애이고 하나는 변별이니, 각자 다른 하나의 길을 향해 있다고 말하는데, 오직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 위에 놓으면 능히 굽은 것을 곧게 만들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로소 仁과 知가 합일되는 부분을 알아볼 수 있으니, 仁의 이면에 知가 있고, 知의 이면에 仁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愛人知人 自相爲用 若不論直枉一例去愛他也不得 大抵唯先知了 方能頓放得箇仁 聖人只此二句 自包上下 後來子夏所言 皆不出此兩句意思 所以爲聖人之言也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는 것은 저절로 서로 用이 되어 준다. 만약 곧고 굽음을 논하지 않고서 일률적으로 가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아마 안 될 것이다. 대저 오직 먼저 알아야만 비로소 능히 仁을 安頓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의 단지 이 두 구절은 저절로 상하를 모두 포괄하였다. 나중에 자하가 말한 것도 모두 이 두 구절의 뜻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성인의 말씀이 된 것이다.
雙峯饒氏曰 樊遲問仁知 是二者平說 夫子亦平答之 及再答以使枉者直二句 方是串說仁知 問夫子之言 何獨歸重於知 曰 雖歸重在知 然此心所以擧直錯諸枉 依舊是從仁上發來 蓋直者 此心天理之公 能擧直則是發此天理之公 是亦仁也 直枉專指人而言 諸衆也 謂衆人之枉者 卽下文選於衆之意 쌍봉요씨가 말하길, “번지가 仁과 知를 물은 것은 두 가지를 균등하게 놓고 말한 것이고, 공자님 또한 역시 나란히 늘어놓고 대답하셨다. 재차 굽은 자를 바르게 한다란 두 구절로 대답함에 이르자, 바야흐로 仁과 知를 하나로 꿰어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공자님의 말씀은 왜 그저 知에만 중점을 돌리신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비록 知에 중점을 돌리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이 마음이 곧은 사람을 기용하여 굽은 사람 위에 놓는 것은 예전처럼 仁으로부터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다. 대체로 곧은 사람은 이 마음이 천리의 공정함이니, 능히 곧은 사람을 기용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이러한 천리의 공정함을 발현하는 것으로서, 이 역시 仁인 것이다. 直과 枉은 오로지 사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諸는 곧 衆이니, 衆人 중의 굽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곧 아랫 문장의 ‘選於衆’의 뜻이다.”라고 하였다. 樊遲退 見子夏曰 鄕也 吾見於夫子而問知 子曰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何謂也 번지가 물러나 자하를 보고 말하길, “조금 전에 나는 선생님을 만나서 知에 대하여 물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 위에 놓으면 능히 굽은 것을 곧게 만들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무슨 말인가?”라고 하였다.
遲以夫子之言 專爲知者之事 又未達所以能使枉者直之理 번지는 공자님의 말씀을 오로지 知라는 것에 관한 일로 여겼고, 또한 굽은 것을 곧게 만드는 이치를 이해하지도 못하였다.
未曉能使枉者直之兼言仁 能使枉者直이 仁도 함께 겸해서 말한 것임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子夏曰 富哉 言乎 자하가 말하길, “말이 참 풍부하구나!”라고 하였다.
歎其所包者廣 不止言知 그 말이 품고 있는 것이 넓어서 단지 知를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음을 감탄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一言而該仁知 故曰富哉 신안진씨가 말하길, “한 마디 말이면서도 仁과 知를 갖추었기 때문에, 풍부하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舜有天下 選於衆 擧臯陶 不仁者 遠矣 湯有天下 選於衆 擧伊尹 不仁者 遠矣 순임금이 천하를 갖고 계실 적에 무리 중에서 선발하여 고요를 들어 기용하니 불인한 사람들이 멀어졌고, 탕임금이 천하를 갖고 계실 적에 무리 중에서 선발하여 이윤을 들어 기용하니 불인한 자들이 멀어졌다.
選息戀反 陶音遙 遠如字 選은 발음이 식련의 절반이고, 陶자는 발음이 요이며, 遠자는 원래대로 (3성으로) 읽어라.
伊尹 湯之相也 不仁者遠 言 人皆化而爲仁 不見有不仁者 若其遠去爾 所謂使枉者直也 子夏蓋有以知夫子之兼仁知而言矣 이윤은 탕임금의 재상이다. 불인한 사람들이 멀어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교화되어 인을 행하여 불인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이는 마치 그들이 멀리 떠나간 것과 같다는 것으로서, 이른바 굽은 것을 곧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하는 대체로 공자님이 仁과 知를 겸하여 말씀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慶源輔氏曰 子夏一聞其說 便歎聖人之言所包者富 不墮於一偏 不滯於一隅 卽知人之中以見愛人之實 推乎知之用以極乎仁之功 其於仁知之體用 蓋已深體而黙識之矣 不然何其言之明決精審 沛然無疑 而暗與聖人之言相發乎 경원보씨가 말하길, “자하는 그 말씀을 한번 듣자마자, 곧바로 성인의 말씀이 포함하고 있는 바가 매우 풍부하고, 어느 한 편에 치우침에 떨어지지도 않았으며, 어느 한 모서리에 막혀 있지도 않았으니, 곧 사람을 아는 중에 사람을 사랑하는 실질을 보이셨고, 知의 用을 미루어나감으로써 仁의 功에 이르렀음을 감탄하였던 것이다. 그는 仁과 知의 體用에 대하여 대체로 이미 깊이 체득하여 묵묵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그가 말함에 있어 밝게 결단하고 정밀하게 살펴서 조금의 의문도 없이 도도히 흘러가듯 할 수 있으며, 저절로 성인의 말씀과 더불어 서로서로 드러내어 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選於衆而擧皐陶伊尹 此知人之知 所謂擧直錯諸枉也 不仁者皆化爲仁 卽愛人之仁 能使枉者直矣 夫子二語已包子夏之意 子夏之言益發明夫子之旨 遲問於師又問於友 其問之弗知弗措者歟 신안진씨가 말하길, “무리 중에서 골라 고요와 이윤을 기용하였는데, 이것은 사람을 아는 지혜로서, 소위 擧直錯諸枉이라는 것이다. 不仁者를 모두 교화하여 어진 사람으로 만들었다면, 곧 사람을 사랑하는 仁이니, 소위 能使枉者直이라는 것이다. 공자님은 두 마디 말로 이미 자하의 뜻을 포괄하였고, 자하의 말은 공자님의 취지를 더욱 드러내어 밝혀주었다. 번지는 스승에게 묻고 다시 친구에게 물었으니, 그는 질문에 있어서 알지 못하면 그만두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라고 하였다.
○ 程子曰 聖人之語 因人而變化 雖若有淺近者 而其包含 無所不盡 觀於此章 可見矣 非若他人之言 語近則遺遠 語遠則不知近也 정자가 말하길, “성인의 말씀은 사람에 따라 변화하니, 비록 마치 천근한 것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것은 극진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은 이 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말이 가까우면 먼 것을 빠뜨리거나 말이 멀면 가까운 것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지는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此章愛人知人是仁知之淺近處 包含無所不盡 則深者遠者亦在其中 深遠卽枉者化爲直處 쌍봉요씨가 말하길, “이 장에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아는 것은 仁과 知가 淺近한 부분이다. 포함하는 것에 다함이 없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깊은 것과 원대한 것도 역시 그 안에 있는 것이다. 깊고 원대한 것이란 곧 굽은 자가 곧게 된다고 하는 부분이다.”라고 하였다.
尹氏曰 學者之問也 不獨欲聞其說 又必欲知其方 不獨欲知其方 又必欲爲其事 如樊遲之問仁知也 夫子告之盡矣 樊遲未達 故又問焉 而猶未知其何以爲之也 及退而問諸子夏然後 有以知之 使其未喩 則必將復問矣 旣問於師 又辨於友 當時學者之務實也 如是 윤씨가 말하길, “배우는 자가 질문을 할 적에는 단지 그 말을 듣기를 바랄 뿐만이 아니라, 또한 반드시 그 방법을 알고자 할 것이다. 단지 그 방법을 알고자 할 뿐 아니라 또한 반드시 그 일을 행하고자 할 것이다. 번지가 仁과 知를 물었을 때에 공자께서는 그에게 모두 다 알려주었지만, 번지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다시 물었지만, 그래도 그가 어떻게 그것을 행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물러 나와 그것을 자하에게 물은 연후에,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였다면, 반드시 장차 다시 물었을 것이다. 이미 스승에게 묻고서 다시 친구에게 분별하였는데, 당시 배우는 사람들이 실제에 힘쓴 것이 이와 같았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知人愛人 是分言知仁之用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是合言知仁之相爲用 蓋仁包義禮知 仁之中 自有知 知藏仁義禮 知之中 自有仁 知仁本相爲體用 故見於擧錯之際 知仁又自相爲體用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사람을 알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知와 仁의 用을 나누어 말한 것이고,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은 知와 仁이 서로 用이 됨을 합하여 말한 것이다. 대체로 仁은 義와 禮와 知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仁의 가운데에 저절로 知가 있고, 知는 仁과 義와 禮를 감추고 있기 때문에, 知의 가운데에 저절로 仁이 있는 것이다. 知와 仁은 본래 서로 體와 用이 되어 주기 때문에, 기용하고 버려두는 즈음에 발현됨에 있어서도, 知와 仁은 다시 저절로 서로가 體와 用이 되어 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