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는 것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소종숙
내가 초등하교 2학년 싱그러운 어느 봄날이었다. 4월인가 5월쯤에 엄마는 나를 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에 대한 동경은 끝이 없다. 어머니의 체온을 그리워하며 밤마다 베개를 눈물로 적시며 잠이 들곤 했었다.
엄마가 병석에 누워계실 때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랐다. 철없는 나는 보랏빛 자운영 꽃이 활짝 핀 논바닥에서 친구 설자와 뒹굴며 놀았다. 그러다가 앓아누워 계신 어머니 곁에서 책을 펴놓고 글자를 물어보곤 했다. 엄마는 아프면서도 누워서 글을 가르쳐 주시곤 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 엄마가 돌아가신 거였다. 오남매를 두고 생의 끈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임종한 의사선생도 비통해 하시던 표정이 어렴풋이 스친다.
어머니는 익산군 용안면 중실리 임씨 가문에서 만석군 부잣집의 딸로 태어나셨다. 어느 날 갑자기 호열자로 온가족이 생명을 잃게 되었다. 그 후 어머니는 양반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부엌일을 잘못 하셔서 옆집에 사는 대양 댁 할머니가 일을 돌봐주셨다. 나는 그 할머니만 보면 좋아했다. 할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세세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한테 가면 그리운 엄마이야기를 실컷 들을 수 있었다.그래서 자주 놀러갔다. 어머니의 유품으로 화려한 함속에 보물들이 들어있었다. 빨강색 공단에 수놓은 수저집도 있고, 여러 가지 물건들도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요즘도 한옥마을에 가면 고풍스런 물건들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끌린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물건같이 느껴진다. 친구네 집에 갔을 때 친구엄마가 칭찬해 주며, 반겨주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부러웠다. 그러면서 속으로 무던히도 슬펐다.
내 유년시절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나날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하늘을 자주 바라보았다. 낮부터 떠있는 낮달도보고 상현달, 하현달과 쟁반같이 둥근 보름달도 보았다. 시골 밤하늘의 별들은 검은빛 우단에 보석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나는 별과 달을 보며 혼자서 달노래를 가만가만 불러보기도 했다.
산새소리 대나무들이 서로 부딪치는 밤바람소리, 봄이 되면 뻐꾸기 소리, 논에서 들려오는 뜸부기 소리, 5월이면 노란빛 옷을 입은 꾀꼬리가 깨죽나무에서 우리 집을 보며 노래했다. 참 듣기 좋은 소리였다.
아버지가 계셔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채울 수가 없었다. 위로 언니 세 분, 오빠 한 분이 있었지만, 나는 늘 외로웠다. 이유 없이 몸이 아파서 학교에 결석하는 날이 잦았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은 집으로 친구(선영이, 영자, 은심, 화국, 순규,홍 자, 문영, 유희, 설자)들이 찾아왔다. 그중에도 설자와 순규와 나는 친했다. 셋은 집에 오는 방향이 같아서 늘 붙어 다녔다. 봄날에는 성당 뜰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그늘에 앉아 질경이도 캐고, 공기놀이도 하면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순규는 교회 장로님 딸이었다. 한 번은 순규가 예쁜 그림카드를 보여주며 전도를 했다. 예수님 가슴에 십자가가 있고 밖에는 나쁜 동물들이 우글거리는 박군의 심정이라는 그림이었다. 교회에 오면 선물도 준다는 말에 설자와 나는 순규를 따라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옛날 교회는 종을 쳐서 예배당에 오라고 알리곤 했다. 초종을 치면 준비하고 재종을 치면 예배가 시작되었다. 교회마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나는 수다스럽게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 세월이 흘러 소녀가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잘 나가지 않았다. 내가 자라는 동안 언니들은 한 명씩 시집을 갔다. 나는 마음이 더욱 외롭고 허전했다. 나를 두고 결혼한 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금에야 짐작해본다. 둘째언니는 여러 번 선을 보더니 지금의 형부와 서로 마음에 들었는지 결혼해서 서울로 갔다. 그 언니 집에 가면 책이 많았다. 형부는 좋은 분이셨다. 교육청에 근무하시다가 나중에는 중앙청 문공위원장으로 계셨다. 서예와 화가시고 소설을 쓰셔서 집에 책이 무척 많았다. 형부는 불량도서를 보는 아이들에게는 책을 빼앗고, 대신 다른 책을 사서 보라고 돈을 주시기도 했다. 나는 한 번씩 언니네 집에 가면 오랫동안 머물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주 아팠다. 그렇게 아프면 고향으로 내려왔다. 형부는 편지를 보내주시곤 했다.‘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 이야기도 써서 보내 주셨다.
세월이 흘러 형부가 회갑이 될 무렵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형부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내 마음이 몹시 슬펐다. 의지했던 형부께서 떠나신 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약국을 하던 언니네 딸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줄초상을 겪었던 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2020.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