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1]열친척정화…가화만사성
가는 세월은 ‘내란內亂’도 못말립니다. 정확히 내일 모레이면 양력으로 2024년이 가고 2025년 1월1일이 밝아옵니다. 여느 해보다 몇 천 배 다사다난한 한 해가 갑니다. 흔히 새해 첫날 아침을 ‘원단元旦’이라고 하지요. 원단을 새 마음으로 맞기 위해서는 심호흡을 하고 올 한 해를 되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정의正義와 상식常識의 사전적 정의가 분명히 있는데도, 세상이 온통 뒤범벅이 된 것같아 혼란스럽습니다.
올해 6월 4일부터 지난 12월 22일까지 <찬샘별곡 Ⅲ> 108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6개월 18일만에 108편을 쓴 것이지요. 200자 원고지 2000장이 훌쩍 넘더군요. 저도 참 어지간한 놈입니다. 어쩌면 한심한 놈이기도 합니다. 9살 손자가 정색을 하고 “할아버지는 글쓰는 걸 왜 좋아해?”라고 묻더군요. “글쎄” 답변이 좀 궁했으나 곧 “하루하루 사는 것은, 산다는 것은 기록記錄의 연속이어서 쓰는 거야”라고 말했지요. 이로써 귀촌귀향한 후 쓴 졸문들이 모두 972편입니다. 108편 시리즈가 9회에 이르렀으니 계산은 간단합니다. <고독시평>이라는 정치칼럼 25편을 합하면 1천편에서 3편이 부족합니다. 이제 졸문 108편 시리즈의 문패를 바꾸어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려 합니다. 문패 이름을 <찬샘별곡>에서 <찬샘통문通文>으로 바꾼 까닭은 저를 아는 지인들이 알음알음 통문처럼 돌아가면서 제 졸문을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입니다. 1968년 74년만에 발견된 1894년 동학혁명의 <사발통문>을 기억하시겠지요? 혁명을 결의하면서 주모자(전봉준)를 숨기기 위해 사발모양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돌려가면서 쓴 역사적인 문건입니다. 뭐 거창하게 동학의 사발통문을 들먹이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 지인들이 읽어줬으면 하는 귀촌귀향 보고서같은 글들입니다. 혜량해 주시면 고맙겠지요.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넷플릭스 화제작인 <오징어게임 2> 7부작을 모두 감상했습니다. 감독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왜 이렇게 심난하고 무지막지하게 잔인무도한 영화를 만드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군요. <오징어게임-시즌1> 9부작은 솔직히 영문도 모르고 재밌게는 봤습니다. 우리 아이들의(아니, 우리 세대라 해야 맞겠지요) 전통놀이, 즉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가전놀이(오징어게임)> <비석치기> 등을 전세계적으로 알렸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보여졌습니다. 하지만 ‘시즌2’는 아닌 것같았고, 내년에 ‘시즌3’로 마무리할 거라는 것도 못마땅했습니다.
어쨌거나, 오늘은 저를 비롯한 우리 4남3녀 7남매 대가족에게 크게 경사慶事스런 날이었습니다. 막내여동생(1963년 섣달 그믐날 출생)의 둘째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게다가 막내 외삼촌인 제가 주례를 봤거든요. 그것만도 좋은 일인데, 모처럼 친척들이 모이니 절로 기분이 좋았지요. 조카들의 소생들을 처음으로 만나는 것은 또다른 기쁨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 <열친척지정화 悅親戚之情話:친척들끼리 만나 정겨운 얘기꽃을 피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으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한 가정이 바로서야 나라가 산다는 뜻>을 확인했으니 말입니다. 몇 년만에 정통 한복에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주례석에 앉으니 조금 긴장이 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들을 위하여 준비한 작은 선물이 옥돌에 새긴 <커플 인감도장>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전각篆刻예술가가 커플도장 옆면에 새긴 문구가 <비익연리比翼連理>입니다. 비익조比翼鳥라는 전설 속의 암컷과 수컷 새는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더군요. 그러니 두 몸이 한 몸이 되어야 하늘을 날 수 있고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겠지요. 또한 연리지連理枝는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어느 때 한 나무의 가지처럼 합쳐져 자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비익연리>라는 문구는 부부간의 금실이 영원하라는 축원입니다. 커플도장과 의미가 쓰여 있는 액자를 하객들에게 보여드리니 박수가 나올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어서, 이 신혼부부를 위해 한지에 붓펜으로 정성스레 쓴 축시 아닌 축시를 낭송하며 주례사를 갈음했습니다. 주례사 전문을 전재하는 까닭은 주례로서 박수를 많이 받았기도 하고(주례사가 5분을 넘기지 않아서였을까요?), 내용도 좋다고 생각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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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신성한 혼인식에 주례를 서 영광입니다.
먼저 추운 날씨와 바쁜 연말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 와주신
일가 친척과 지인 선후배 동료 친구분들께
양가 혼주를 대신하여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개인적으로나 우리 가족에게 아주 경사스런 날입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시지요?
저는 여동생이 세 명 있는데, 막내동생이 신랑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섯 살 되던 섣달 그믐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버지께서 금줄새끼를 꼬아 숯덩이를 꽂고 계시더군요.
빨간 고추는 없었습니다. 그날 막내여동생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는 36세에 4남3녀를 둔 가장이었답니다. 요즘으로 치면 격세지감이지요.
그것이 제 인생에 생각나는 최초의 기억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신랑의 네 번째 외삼촌이고, 신랑은 저의 생질입니다.
일주일 전 조카며느리인 신부를 처음 만나 점심을 했습니다.
170센티 헌칠한 키에 빼어난 외모, 말까지 시원하게 잘해 제 며느리나 되는 양 흐뭇했습니다.
교동도 섬처녀 이 채윤 양은 프로농사꾼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라나 부천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되었습니다.
빛날 채에 윤택할 윤, 이름까지도 예뻤습니다.
논산 머스마 윤지섭 군의 이름은 지혜로울 지자에 불꽃 섭자입니다. 지섭 군 역시 훌륭한 교육자 부모 슬하에서 성장, 이름처럼 지혜롭게도 강동대 간호학과를 나와 하얀 가운을 입었으니, 이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아름다운 간호사부부입니다.
여담이지만, 호주에 사는 제 둘째아들 내외도 간호사입니다. 하하.
이름과 같이 빛나고 불꽃같은 연애를 2년여 하고
결혼에 골인한 이 땅에 아름다운 젊은이들입니다.
신랑은 32살, 신부는 28살, 반짝반짝 얼마나 빛나는 나이인가요?
모두가 부러워할 결혼 적령기,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시죠?
하객여러분은 이 신혼부부를 위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례이자 외삼촌인 제가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세계적인 전각예술가 친구가 새겨준 신랑신부의 인감도장입니다.
커플도장에 새겨진 ‘비익연리’는 부부의 금실을 축원하는 문구입니다.
눈과 날개가 하나뿐인 비익조라는 새는 암 수 두 마리가 한 몸이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고 볼 수가 있답니다. 그러니 하루인들 떨어져 살 수 있겠습니까?
연리지가 무엇인지는 모두 아시지요?
뿌리가 다른 나무가 자라면서 어느날 가지가 합쳐져 함께 성장하는 것이 연리지입니다.
오늘의 주인공들이 ‘비익조연리지’처럼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한 보금자리 둥지를 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뜻깊은 선물을 마련한 주례를 위해서도 박수 한번 쳐주시죠?
고맙습니다.
끝으로 제가 이들을 위하여 ‘혼인덕담’이라는 축시를 짓고 썼는데, 이를 낭송하며 주례사에 가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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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윤지섭군과 신부 이채윤양을 위한 <혼인덕담>
다사다난한 한 해 지나가고
내일모레 희망찬 새해 밝아오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제대로 된 혼인의식
양쪽집안 큰 경사가 아니던가
날씨마저 축복하는 듯 눈 개이고 화창하네
몃진 신랑 윤지섭은 나의 생질
예쁜 신부 이채윤은 나의 질부
백의의 천사, 간호사 부부
“요조숙녀 군자호구” 중국고전 시경 말씀 하나도 틀림없네
어와 벗님네야, 이보다 더 좋은 일 어디 있으리
‘제2의 인생’ 결혼생활
오늘로써 문을 활짝 여니
앞으로의 기나긴 삶
사랑으로 충만하시게
아들 딸 주렁주렁 나라사랑 실천하게
남들보다 앞에 서서
아름다운 사랑 펼치시게
양가 부모 깎듯 공경
부부사랑 알뜰살뜰
연년세세 잊지 말고
하늘의 복, 사람의 복
크고 많이 누리시게
억지로는 안되는 일
공연하게 힘 쏟지 말고
남 흉내내기 하지 말며
가슴 속에 효도의 씨
마음 속에 사랑의 씨
진심으로 키워가고
눈이 부신 햇살처럼
아름다운 달빛처럼
자연스레 꽃 피우고
효도사랑 이루시게
이 충고를 잘 들으면
어른나이 되었을 때
후회할 일 전혀 없고
주위 사람 칭찬 속에
온가족 웃음꽃이 피어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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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웨딩, 모두모두 해피 뉴 이어입니다.
고맙습니다.
부기: 주례를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비극적인 비행사고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179분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