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목) 시편 16:1-11 찬송 503장
(다윗의 믹담)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개역 개정)
- 죽음을 초월한 의인의 확신과 기쁨 -
본시는 비탄시가 많은 시편 제 1권(1-41편)에서
그리 흔치 않은 메시야 예언시 중 하나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축복과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부활과 영생을 확신하여 죽음의 위협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다윗의 신앙고백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만세대 중에 택한 성도의 죄를 대신 지고
그들의 구속을 위하여 심지어 하나님에게서조차 버림받는
십자가 수난의 고통과 공포를 감당하심은 물론
가장 먼저 부활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예언적으로 노래한 것이다.(2,5,10,11절)
그렇다고 하여 다윗이 평안하고 축복된 상황 속에서 본시를 지은 것은 아니다.
본시는 심지어 다윗이 죽음조차 각오해야 하는
어떤 위기 상황에 처하여 지은 것이다.(1절)
고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이렇듯 기쁨과 소망에 찬
노래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의 믿음이
얼마나 확고하고 분명한 것이었는가를 증거해 준다.
이러한 본시의 내용을 개요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절은 다윗이 이 노래를 읊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저절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구원의 간구를 보여 준다.
다음 중반부 2-6절은 다윗의 여호와 유일 신앙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축복의 근원이요 기업이 됨을 노래하면서
그 어떤 유혹과 핍박에도 굴복지 않고
어리석은 우상 숭배자들과 달리
자신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경배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7-11절은 다윗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자신이 비록 당장은 죽음의 위기에 처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죽음 이후의 부활과 영생으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죽음조차 뛰어넘는 신앙의 확신과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다윗이 가졌던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은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가 분명하게 주어지지 않았던
구약 시대의 것이기 때문에 신약 시대의 우리들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희미하고 불완전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
담대하게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는 평소 그의 삶이 여호와만을 자신의 산업과 소득과 분깃(5절)으로 삼은
철저한 여호와 중심의 삶이었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 시대보다 훨씬 분명한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진
우리들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본시에 나타난 다윗의 삶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8절)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여호와를 항상 자기 앞에 모시고 있으며 자기 우편에도 계신다고 말한다.
이는 다윗이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삶을 살았다는 말이다.
또한 다윗은 그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통하여
자신은 요동치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윗은 격동의 세월을 산 사람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는 양을 치면서 맹수들과 싸웠고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는 오랜 세월을 사울에게 쫓기는 삶을 살았으며
왕이 된 후에는 거의 전쟁터에서 보내다시피 하였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항상 요동칠 만한 것들로 가득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요동하지 않았다.
왜?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을 느끼고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며 그를 보호하시는데 그가 요동할 이유가 없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가 닥쳐와도
그는 평안히 누워 자고 깰만큼 마음의 안정을 누렸다.(시3:5)
그는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싸 진 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3:6)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체험한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도 요동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체험해야 한다.
우리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다윗과 같은 특별한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늘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하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여
조금만 어려움을 만나도 요동치는 삶을 산다.
마치 주님이 자기들과 함께하고 계셨건만 풍랑을 만났을 때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처럼 요동을 친다.(막4:38)
주님이 앞에 계시건만 정작 그를 느끼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다윗처럼 항상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그 중에 가장 확실한 방법 한 가지는
항상 하나님과 대화를 통하여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인격적 교제만큼 누가 자기와 함께한다는 것을 느끼기에 확실한 것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만져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나 촉감 등으로는 하나님을 느끼거나 체험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분은 사소한 것을 가지고 이야기해도 거기에 응답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늘 기도하기에 힘쓰면
우리는 우리와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느끼며 체험할 수 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의 시편들은 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이다.
그는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쳤다.
일상의 삶 가운데서 부모나 친구, 동료와 대화하듯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물론 하나님은 그때마다 다윗에게 응답하셨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을 자기 앞에 모실 수 있었고
그분이 자기 우편에도 계시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로 인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았다.
우리들도 기도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하고
우리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느끼고 체험함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