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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미/하이데거
질문: 하이데거 철학에서의 존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주세요
답변:
하이데거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는 원칙적으로는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생기생동하는 온우주 대자연(/자연자체)과 인간을 둘러싼 전체적 세계의 전반적 사건과 사태를 지칭하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의 용어입니다.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이해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굳이 정의를 해본다면 '인간 자신을 비롯한 모든 개별 사물들을, 본래적인 그 자체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하는 장이나, 개방되어 드러 나도록 비추어주는 빛으로서의 근거' 정도를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모든 개별 존재자들의 실상이 존재자의 영속적 근거로서의 관념적 '이데아'나 형이상학적 제일원인으로서의 최고의 존재자인 '신'이나 사물의 인식불가능한 본질로서의 '물자체'와 같은 것이 아님을 의미 합니다.이것은 고대 플라톤이래 중세 및 근현대 서양철학의 주체적_ 인식론이나 객관적_자연철학이나 형이상학적_ 니힐리즘 철학의 태도나 근본을 뒤집어 엎거나 해체해버리고 '존재'의 진실을 관념론적이거나 실체론적이 아닌 존재자 _존재_무의 관계론적 생성론적인 관점과 방법에서 파악하려는 태도 입니다.
그래서 그 철학적 접점 내지 관점을 '대상적 존재자'가 아닌 '관계적 존재'의 세계로 돌려 이 '존재'와 관련한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보려는 것으로서, 종래 서양철학의 이성적 논리적 인식론적 과학적 사유와는 전혀 다른, 탈서양철학적(/현상 학적 존재론적) 사유를 전개한다는 입장 입니다.이 말은 달리 말하면 서양 철학의 본질이 이 우주 대자연이나 사물의 궁극적 실재나 본질이나 인간의 본성(/마음)과 같은 것을 주체와 객체로 이분화해서 파악하려는 대립적이고 분열적이고 실체적이고 공격적인 세계와 인간존재의 파악과 해명의 태도와는 달리,이미 세계_내_존재로서의 현존재(/세계속에 이미 던져져 있는 상황적 관계적 현재적 인간존재자)가 '존재와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여 (비대상적이고 세계참여적이고 비공격적_수동적이고 현상학적 존재론적이면서 비일상적인) 본연의 인간존재로서 드러날 때, 이러한 사태를 '본래적 실존'이라고 하고, 이러한 실존의 모습이 이미 '존재'의 빛의 장에 나아가서 있으므로 이러한 사태를 '탈존' 이라고 칭하며, 또한 존재자를 빛 속으로 내보내면서 자신 스스로는 물러나 은폐해버리는 이중성을 일러 '존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존재'란 세계_내_존재로서의 현존재인 인간이 다른 인간이나 동식물이나 무기물등 전체로서의 세계, 즉 개개의 존재자들이나 존재자일반과 맺는 올바른 관계의 총체를 지칭하는 탈인식론적,비대립적,비분열적, 비실체적, 관계론적 사태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바위,구름,산,꽃,개 등 자기의식을 갖 지못한 일반 존재자들과는 달리 자기의식을 지니고 있으면서 스스로 자기(/존재자)의 존재를 문제삼는 세계참여자(/세계_내_존재)로서의 인간(/현존재)의 존재는 그 자체로 대상화 될 수 없고 대상화 되어서도 안됩니다.이 존재(자체)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탈은폐성과 함께 스스로를 감추는 은폐성의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하이데거에게 존재(자체)는 한마디로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존재하는 모든것들을 관류하면서 살아 움직이게하는 원초적인 자연의 힘이나 영적 창조적 생명력이나 범재신론적인 신료같은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이 존재는 우리에게 하늘로서 대지로서 인간으로서 제신(여러 신들)의 모습으로서 이 세계에 나타납니다. 여기서의 제신은 서양의 전통적 존재자_신론이 말하는 신앙의 대상인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하나님(/ 하느님)처럼 사랑의 윤리적 실천적 명령을 내리는 절대적 타자로서의 초월적 초인격적 신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한 지니간 세대의 신,즉 서양의 중세와 근대를 통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며 사람위에 군림하면서 한편으로는 삶에 안정과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지몽매를 조장하고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억압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타락한 거짓 신은 이제 현대의 인간에게는 아무런 설득력도 의미도 없는 존재자의 하나로서 이미 죽고말았습니다. 이제 제신은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 안에서 하늘과 대지와 인간과 더불어 서로 어우러져 관계를 맺고있는 사방세계(/존재적 세계/존재계) 내에서 우리에게 신성의 전달자이자 부활을 알리는 사자의 모습으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망각이 절정에 달한 근현대적 과학기술 문명과 고향상실의 현대적 인간실존의 상황속 에서 현존재의 존재는 이제 '불안'이라고 하는 삶의 뿌리 를 뒤흔드는 '근본 기분'을 통하여 문득 그 정체를 드러내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결국 무#에 뿌리를 두고있는 것으로 표현이 됩니다. 그런데 이 무#는 삶의 블랙홀 같은 것이자 부정적 은폐성을 띄고 있는 것이지만 없지 않고 분명히 있습니다. 이 무#는 알 수 없는 놀라움의 불안,의지할 대상으로서의 신을 위시한 모든 존재자를 상실한 불안의 순간을 통해 문득 경험되곤 하는데, 이 불안의 뿌리인 무#의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은 본질이 결국에는 부정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존재자체'를 드러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 됩니다.우리는 이 무#의 무화1하는 현상인 나의 운명적 실존적 죽음이나 현존재의 시간적 유한성의 인식과 체험을 통해 일상성과 비본래적 상태를 벗어나 진정한 본래적 실존의(/탈존적)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무는 존재의 밝음의 토대 내지는 배경으로서 그 정체와 본질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결국 '존재와 무'의관계를 긍정과 부정의 대립적 관계가 아닌 대칭적 상관관계 내지는 공속적 차이의 관계(/음양의 관계 -) 로 보는 다분히 동양적인 세계관이라고 하겠습니다.예를 들자면 '삶과 죽음'을 대립적 관계가 아닌 대칭적 관계로 봄으로서 삶이 죽음이 되고 죽음이 삶이 되는 것과 같은 그런 비서양적/원환적/순환적/반복적/자연적 세계관이 라고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존재의 의의를 실체적 대상적 내지는 본질적 개념이 아닌 원초적이고 전반성적이며 실존적인 의식과 존재의 통합적 개념이나 세계참여적이고 상황적인 일체 존재자의 관계론적 개념으로 파악하려 하는 데에는 동양의 사상, 즉 붓다나 노장등의 본질부정적 관계론적 생성론적 생명적 존재론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말해주는 한편 철학적 방법론적으로는 훗설 현상학의 '의식의 지향성과 주체와 대상의 괄호치기와 판단중지에 의한 본질 추구의 방법론'을 존재론적으로 변용한 점과 소쉬르등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언어의 의미를 기호간의 차이와 관계적 그물로 간주'하는 새로운 언어학적 관점과 프로이트 심리학의 '의식의 대립적 실체로서의 거대한 무의식의 발견과 그 구조해명'과 딜타이의 해석학 및 키에르케고르의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니체의 신의죽음과 생의철학 등 현대적인 제 사상의 조류가 관련을 맺으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이데거 사상의 근저에는 근대철학이 자아를 실체적인 선험적 자아로 고정화하여 대상을 파악하려는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 인식론적 태도와 인간의 주체적 자아로서의 이성과 이 이성이 낳은 실증적 과학기술문명의 심각한 폐해와 문제점을 해체하고 극복하려는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시대적 소명의식이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그는 근대적 주체 _ 객체분리의 인식론의 극복으로서 현상학적 해석학적 존재론을 들고 나왔고 서양 철학의 순수이성적_인식론적 형이상학이 지닌 물자체의 인식 불가능성에 대한 극복으로서 존재론 적 언어와 시적 사유를 들고나왔는데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말해보겠다고 하는 야심찬 기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의 서양철학은 광의의 이성적 및 탈이성적 무의식적 힘과 의지와 욕망과 충동과 언어와 존재적 탐구를 통해서 철학의 한계와 문제를 돌파해보고자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과연 성공 할 수 있을까요?
필자가 생각하기에 궁극적 성공은 하지 못하겠지만 다양한 철학적 부산물을 산축해내는 의미있는 부차적인 기여는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언어와 이성적 탈이성적 사유를 무기로하는 서양철학은 그 스스로 궁극의 진리에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진리로 가는 여정에서 바른길을 안내하는 나침반 역할은 나름대 로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해 볼 때, 현상적 과학과 이성적 철학과 초월적 종교가 삼위일체적으로 관계를 맺고 통합 적이고 시너지적인 상호작용을 할 때,그리고 여기에 동양적인 방편과 진리체험이 가세를 할 때 비로소 언어와 이론을 초월한 생산적이고 의미있고 창조적이고 문명 구원적인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좀더 본격적이고 상세한 내용과 하 이데거 찰학의 전반적인 윤곽을 알고자 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글을 계속 읽어보시면 됩니다.
통상 존재라는 용어는 보통 온우주 대자연과 소우주인 인간과 그 문명과 역사를 함께 관통하는 형이상학적 또 는 초물리적인 본질로서의 근원적인 실재나 역동적인 실체나 보편적 법칙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1) 통상적인 인간의 감각과 인식과 경험을 포괄하면서도 초월해서 있는 본질적 그 무엇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2) 그것은 유로서의 존재자 일반(예,인간 존재)을 지칭하기도 하고,
3) 인간의 실존인 현존재의 본질이나 구조나 근거나 의미로서의 존재적 진실을 의미하기고 하고,
4) 원자나 소립자 같은 감각을 초월해 존재하는 형이상학적 근원적 사물자체를 지칭하기도 하며,
5) 세계나 역사나 문명을 관통하며 작용한다고 생각되는 정신적 실체로서의 로고스(/법칙)나 세계이성이나 초자연적 또는 범신적 신과 같은 실재를 의미하기도 하고,
6) 종교에서 '진리를 깨달았다.'하고 말할 때의 진리체험과 관련된 체험의 본질적 내용이나 상태나 진실 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철학적 형이상학적 형이하학적 존재론은 '이 근원적인 그 무엇의 본질이나 실체나 구조나 형태나 작용이나 의미나 그 진실이 과연 무엇인가?'하는 물음과 도전 또는 탐구와 관련해서 다양한 관점으로 논의되고 말로 표현되는 내용입니다.이 근원적 그 무엇과 관련한 물음과 도전과 탐구에 대한 응답은 과학적,철학적,종교적,예술적,역사적,경제학적,사회학적,언어학적 언어철학적등의 관점에서 고찰되고 응답됩니다.
과학은 존재의 진리에 관하여 현상적 유물론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개방적 합리적이고 이론적 물리화학적 생물학 적 실증적으로 접근하고 탐구하여 이 물음과 도전에 확실하고 분명하게 응답하려고 지속적으로 점진적으로 노력하고있습니다.
철학은 이성적 논리적 합리적,감성적 탈논리적 미학적, 인식론적 존재론적,형이상학적 형이하학적,유물론적 유심론적,그리고 언어철학적으로 존재의 진실을 고찰하고 사유하여 종합적인 관점에 도달하고자 최대한 노력합니다.
종교는 본질적 본질부정적 초월적 체험적 실존적 실천적인 관점에서 존재의 진리에 관한 물음이나 도전에 응답하여 사람들의 현실적 초현실적 삶에 근거나 의미를 제시하고 방향을 지시하며 길을 안내하고자 진지한 노력을 경주합니다.
현대 서양철학의 전반적인 흐름은,고대희랍 자연철학의 형이상학적 존재론인 원질론과 물활론에 입각한 헤라클 레이토스의 로고스(/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이법)론과 파 르메니데스의 존재론과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및 소크 라테스의 무지의 지의 다이몬 신앙과 영혼 불멸론과 이성적 변증철학과 윤리학과 플라톤의 초월적 초감성적 실재로서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질료와 형상의 문제와 존재자의 논리학, 중세 신학의 창조와 계시와 신앙과 이성의 문제와 신 존재증명과 보편자논쟁 및 종교적 신비주의,근대의 데카르트에서 시작되는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존재의 심신 이원론적 합리주의와, 합리주의적 세계관이 지니는 물질과정신(/몸과마 음)의 이원론적인 분리의 문제의 해결책으로서의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주지주의적 범신론 사상과,인간 의식의 인식적 바탕을 백지적 비관념적 상태로 간주하여 대상세계의 논리적 필연성을 부정하는 경험적 회의주의나 아니면 인간 의식의 인식적 바탕을 주체적 선험적 인식의 틀로 간주하면서 객관적 지식의 성립가능성을 긍정하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를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인간 의식의 인식적 바탕을 주체적 선험적 구성적으로 파악하면서 근대의 학문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의 확실한 토대를 마련 하고자 했던 칸트의 '초월적 통각'의 인식론과,칸트를 계승하며 완성한 헤겔의 세계의 절대적 이성으로서의 변증 법적 유심사관과,헤겔의 형이상학이 지닌 세계이성의 현실적 모순을 깨닫고 이를 뒤집은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적 경제사관,그리고 근현대의 과학적_유물론적 실증주의의 결과물인 최첨단 우주물리학의 상대성이론과 빅뱅 이론과 소립자물리학의 불확정성이론등의 단계를 거쳐 오는 가운데 오늘의 탈인식론적 탈인간중심적 탈과학적 탈전통적인 현상학적 해석학적 존재론 철학과 언어학적 언어철학적 구조주의이론과 수리논리철학 및 언어분석과 탈근대 탈이성주의적 해체철학에 천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사상의 전개 과정에서 물질과 정신과 사회와 역사와 우주 대자연의 본질로서의 존재의 문제는 철학적 과학적 종교적 언어적 핵심 사안으로 매우 복잡 다단합니다.
존재의 문제는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두 가 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현대 초과학의 수학적 이론적 물리주의적 실증적 결론이고
또 하나는 동서고금 의 참스승들이 밝혀준 실존적 체험적 종교철학적 결론입니다.
이 두가지를 살펴본 다음 하이데거 철학의 현상학적 존재론이 던지는 철학적 종교적인 의미와 철학사적 의의에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현대 초과학의 수학적 이론적 물리주의적 실증적 결론은 이렇습니다. 소립자 물리학에서 존재의 본질은 에너지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원자폭탄이 무엇입니까?이글거리며 타고있는 태양이 무엇입니까?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존재의 무시무시한 본질 아닙니까? 과학에서 존재의 본질은 원자핵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전자의 구름상태로 드러나며 원자핵은 소립자들인 쿼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자는 빛이며 이 빛은 입자이자 파동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립자 세계에서 전자의 활발한 운동은 결정론이 성립되지 않으며 확률적으로만 파악이됩니다. 다음순간 어디로 튈지 예측을 할 수가 없다는 결론 입니다. 이 전자의 운동과 소립자들의 힘의 역학관계인 초물질에서 시공간현상과 물질현상과 정신현상과 생명과 우주의 신 비가 흘러 나온다는 다분히 유물론적이면서도 탈유물론적인 비결정적 결론입니다. 거시적존재계나 일상적세계나 극미적 존재계에서의 숨겨져 있거나 드러나 있는 현상으로서의 존재의 실상은 휘어진 4차원공간에서의 운동과 조화,만유인력 중력,전자기력,핵력,전자와 이온현상,우주적 기의 편재 전기전자전파현상, 창조적 신비적 생명력,신체와 마음의 다중적 고차원적 의식현상, 뇌파, 텔레파시 등의 현상으로서 존재의 관계성의 그물이자 신비한 존재자체와 우주적 생명력의 자기표현 입니다.
광대무변의 이 우주 은하계,거대한 존재의 바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현상들이 생겼다 사라지며 혼돈이 아닌 질서,질서속의 혼돈 속에서 스스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빛조차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원물질적인 기를 내뿜기만 하는 화이트홀과 그 연결통로인 월홀과 같은 존재계의 생성 소멸과 관련된 현상들과 실체를 알 수 없는 드러나지 않은 거대한 신비가 이 우주를 덮고있습니다. 과학은 이제 겨우 이 신비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최첨단 소립자 물리학과 우주 물리학의 여러 발견들은 종전의 원자론적 유물론적 실체관이나 세계관을 뛰어넘어 물질이 단순한 물질이 아닌 초물질임을 여실히 밝혀주고 있으며 이 우주의 실체가 끝없는 신비속에서 살아 활동하고 있는 거대한 존재의 바다, 광대무변의 존재계임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과학은 이제서야 존재의 형이상학적 실체에 접근해가고 있는 셈입니다. 유물론에 토대를 두고 출발한 과학과 과학사상과 과학철학은 이제 그 한계를 초월하여 존재의 본질을 향하여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입견과 편견에 물들지 않으며 개방성과 합리성을 토대로 출발한 과학의 미래는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하여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저력을 자신속에 지니고 있으며 그간의 시행 착오를 극복하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많은 영역에서 지대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예상해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동서고금의 참스승들이 밝혀준 존재의 본질과 진실에 관한 실존적 체험적 종교철학적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존재의 본질에 도달한 상태,존재적 진리의 드러남의 사건을 궁극의 진리에 이르렀다.' 또는 '궁극의 진리를 깨달았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무나 공이나 도나 신이나 브라흐만이나 존재나 열반의 상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뭐라고 말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도 곤란한,말을 초월해서 생생히 살아있는 텅빈 것 같으면서도 충만한,신묘하고 신령한 전체 존재계의 상호작용이자 신비하고도 불가사이한 우주적 생명력의 발현이요, 성스러운 영의 활동상태인 동시에 인간의식의 끝없는 신비 그 자체입니다 그 모습은 나누어지지 않은 온전한 하나이면서 동시에 다이며, 그 성질은 신성하고 순수하고 투명하며 스스로를 아는 앎입니다. 인간만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아는 앎의 존재입니다.
인간의 감각과 감성과 충동과 이성과 의지의 토대이면서 이것의 뒤에 깊이 은폐되어 있는 이 직관적 전지적 앎,초월의 지혜와 통찰력,신적 지혜가 이 우주대자연과 물질과 인간의 육신과 마음과 의식과 영혼의 본질이자 인간 존재의 본모습이요 인간본성의 드러나지 않은 참자 기입니다. 이 존재의 드러남의 사태는 에고의 죽음이요 언어의 초월이자 지식의 죽음이며 죽음과 사망으로부터의 부활이요 영생입니다 에고,즉 작은 우물에 갖혀있는 고통과 문제의 근원인 거짓자아는 분노와 탐욕과 집착과 파괴와 폭력과 어리석음을 끝없이 일삼으면서 삶과 죽음을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공포와 불안에 휩싸이는가 하면 투쟁적이고 권력지향적이고 교만하며 인색하고 옹졸하고 잔인합니다. 에고나 기지의 지식은 존재의 하늘 위에 떠다니는 구름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이 에고와 지식의 죽음, 제2의 탄생, 진정한 참자기의 발견,존재의 드러남이 다름아닌 신인神人 예수가 신령과 진정과 진실의 말과 행동과 기도와 십자가의 희생으로 증거해준 하나님(/ 하느님) 아버지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의 실천정신이자, 궁극의 정각자 붓다가 노구를 이끌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실천해 보인 자유자재하고 광대무변하고 심원한 초월의 지혜와 자비의 정신이며, 무위자연의 도를 설파한 노자가 도덕경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했던 우주적 자연적이며 꾸밈없이 진솔 소박한 삶의 모습이자,이 우주의 만물과 모든 인간을 위해 예비된 진리와 참 생명의 길이요 충만한 힘의 창조적 발휘이며 궁극의 자유함입니다. 이 신뢰와 사랑과 지혜와 자비의 정신과 자연적(/실존적) 삶과 진리와 참생명과 충만한 힘과 궁극의 자유,즉 존재의 진실의 드러남은 죽음을 넘어선,사망을 이기고 승리한,영원히 살아서 숨쉬는,하이데거가 알아내고자 했지만 그러지 못한 진정한 존재자(/인간)의 존재의 탈은폐적 사건인 불멸의 참자기(/큰자기/우주적자기)와의 만남인,존재자의 존재와의 만남입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끝내 언급하지 못한 실존적 존재자(/ 인간)의 존재의 본모습이요,우리 인간의 진정한 실체인 것입니다. 이 존재의 진실 안에 두려움이나 불안은 없으며 죽음조차도 초월합니다. 휴식과 평안과 화평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조리와 거짓과 불신과 불의와 악이 만연해 있고 삶과 죽음의 고통과 불안과 고뇌가 아무리 크고 무겁다고 할지라도 존재의 진실,즉 궁극의 진리 만이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평화롭게,행복하게,상생하게,평등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선각자,인류의 스승들이 갈파한 이 우주 대자연과 인간 본성의 참모습이요 존재자의 존재의 본질이요 실체이며 본래의 얼굴입니다. 붓다와 예수와 노자를 비롯한 수많은 동서고금의 선각자들이 설파한 참된 가르침 즉 진리의 말씀의 핵심이요 실존적 삶의 진실입니다.
그러면 하이데거 철학에서의 존재론의 실체와 의미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딜타이의 생의 철학과 현상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세계_ 내_존재의 실존으로서의 현존재의 기초존재분석에서 출발하는 하이데거 철학의 존재론적 해석학적인 사유가 펼치는 존재의 세계는 종래의 서양주류철학인 이성적 대상적 사유에 토대를 둔 데카르트적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존재와 칸트적 주관적 인식론 위주의 서양 철학과 니체로 대변되는 세기말적 니힐리즘과 과학문명과 그 기술이 가져온 전쟁과 심각한 인간본성의 파괴와 전반적인 서구적 지성사의 위기와 한계를 성찰하면서 그 근본을 뒤집어엎고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고자 하는 천재적인 철학적 사유가의 엄밀하고 투철한 정신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서양 비주류 철학의 대담한 시도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이데거는 서양철학의 역사는 잘못된 형이상학의 역사, 즉 존재로부터의 일탈 내지는 존재 망각의 역사로 간주합니다.따라서 이러한 근본적인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플라톤 이전의 고대 그리이스 철학의 시원으로 되돌아가서 뿌리로부터 새롭게 사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으로서의 현상학적 실존론적 존재 분석에 의한 탁월하고 해박하고 단계적인 철학적 사유가 엄밀하고 난해하면서도 예리한 분석의 메스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놀라운 집중력과 천재적 창의력이 빛어내는 적확한 언어 표현은 실로 새로운 차원의 존재이해를 이끌어내어 서양 철학의 선구자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그의 현상학적 존재론적 사상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인간의 의식은 대체적으로 세가지의 차원을 가지고 있 습니다.
첫번째 차원인 표층적 의식현상은 의식의 가장 외면적 차원이며 상부구조적인 토대로서 주로 생각,감정,오감의 작용과 결부된 의식작용의 영역 입니다.주로 의식적 의지적 마음의 작용이며 사리 분별적 인식작용과 이성적 사유작용과, 감성적 감정적 감수작용이 이에 해당합니 다. 즉,이 단계의 마음의 작용에는 이성의 통일적 사유작 용인 논리적 추론적 대상적 의식작용의 확연하고 분명한 분별적 초감성적 인식작용이 있으며,이것의 반대편에 감 성적 감정적 육감적 미적 종합적 느낌과 판단의 직관적 감지작용이나 의지적 정신작용이 있습니다.
두번째 차원은 중간층적 의식현상의 영역으로서 비합리 적 욕망또는 본능적 충동과 상징적 원형적 이미지들이 들끓고 있는 시적 예술적 상상적 잠재의식적 무의지적 의식작용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차원인 가장 심층적이고 존재적인 의식현 상으로서의 순수의식의 감응적 통찰적 영적인 작용은 의 식의 고차원적인 영역으로서 순수직관적 통찰이나,전지 적 감응적 지혜가 작용을 하는 초인적 신적 초월적 우주 적 신비적 의식의 영역입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대체적으로 의식의 첫번째 영역인 종래 주류철학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대상적이고 추론적이고 이원론적인 인식의 태도를 지양하고,감성적이고 육감적이고 직관적이고 전체적인 느낌을 주로하는 수동적 의식의 감지작용을 통한 비대상적 관계론적 분석과 사유의 차원에서 존재와의 대화나 존재의 해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종래 주류 서양철학의 대상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인식 보다는 존재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도모하기 위하여 우선 논리적 이성적 추론을 유보한 채로,(종래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인식론적인 태도와는 대척점에 있는) 감성적이고 육감적이고 전체적이고 직관적인 느낌에 혼을 기울이면서 엄밀한 철학적 언어적 분석과 시적 사유를 구사하는 새로운 방법의 존재 이해와 해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종래 주류철학의 공격적이고 남성적인 전통적 인식론의 사물 인식 태도와는 판이한 수동적이고 여성적이고 감성적인 존재론적 사태 인식의 태도와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즉 존재를 대상화해서 강요하고 압박하고 공격하면서 존재를 탈취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존재에 귀를 기울이며 순응하려는 수동적이고 상당히 동양적인 주류탈피적 주류 헤체적 철학의 새로운 방법인 것입니다.
서양의 과학적 이성적 주류철학적 방법론에 익숙한 사람 들에게는 대단히 불만족스럽고 선뜻 이해가 가지않는 소극적이고 현실도피적이고 비실존적인 태도로 비칠 수도 있는 철학의 방법이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이데거는 이 점에서 초기에 주류의 철학자나 비 평가들로 부터 상당한 오해나 비판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현상학을 기초로한 현대철학적 갈래는 주 객의 이원론적 분리를 극복하려는 기본자세를 지니고 있는데 그 전개는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실존주의 계통의 철학자만 하더라도 서양의 주류철학적 영역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현실참여 적이며 유물론적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대표적 인물로서 인간 존재의 본질적 근거없음과 저주받은 존엄한 자유를 말하는 싸르트르가 있고 그 중간의 유심론적 유신론적 태도로서의 철학적 심리적 종교적 실존적 철학을 말하는 현대과학기술문명과 이성의 병리적 부조리성을 경고하 는 정신병리학자 야스퍼스가 있다고 한다면, 이들과는 존재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르고 생소한 가장 비주류적이고 수동적이면서 종교신학적이고 범재 신론적이고 미학적이며 동양지향적인 실존론적 존재주 의의 철학자로 하이데거가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들 세 철학자는 주_ 객(주체적 의식과 대상)의 이원론적 분리를 극복했을까요? 하이데거는 그나마 약간 극복했다고 볼 수 있겠고 그 나머지는 전혀 극복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존재와의 관계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유물론자요 무신론자인 사르트르의 경우가 존재와의 괴리(/의식의 분열현상)가 가장 심하며 그 다음이 철학적 실존적 신앙의 병리학자 야스퍼스 그리고 현상학적 존재론자인 하이데거가 그나마도 괴리가 덜한 편이라고 해야겠지만 존재와의 진정한 만남에는 모두 성공하지 못합니다.이것은 인간의 정신 또는 영혼의 본질을 이성적 인식능력에 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래 서양철학의 한계입니다 이들 세 사람의 철학이 세상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철학사적 본질적 기여와는 무관한 대중적 수용과 인기로 본다면 싸르트르나 야스퍼스에 비해 하이데거는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할까요.그만큼 그의 철학은 처음에는 생소하고 난해한 철학적 방법과 사유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으로 기억을 합니다만,그는 '실존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자신의 책에서 하이데거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애매모호해서 알 수가 없다고 평했을 정도입니다.하이데거의 존재와 인간의 실존에 대한 철학적 접근의 태도와 방법론이 매우 독특하고 난해했다는 결론이 되겠지요. 그러나 오늘에 와서는 하이데거만이 진정한 실존론적 존재론적 탈서양적 해체적 철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봅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서양의 전통적 인식론적 철학과 동양의 존재적 삶의 철학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는 서양철학의 역사에서 새로운 존재론적 철학의 길을 모색하고 탐구한 매우 선구자적인 진지한 철학자이며 엄 밀한 사유가 입니다.
하지만 하이데거 철학의 진지하고 존재론적인 탐구와 새로운 인식이 가져온 깨달음과 이것에서 도출된 적확한 철학적 언어의 발굴과 구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존재자체의 직접적인 체험, 즉 진리 체험을 결여하고 있는 관계로 결과적으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성적이고 난해하고 현학적이며 사유적인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 본격적인 존재자체로의 진입을 전혀 도모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전기와는 다른 후기의 전회 이후 존재적 언어의 시적 세계를 통해 보여진 그의 존재론적 해석학도 결국은 존재 로의 직접적인 진입이 되지 못한체 존재에의 예술적 미학적 접근과 언어신비주의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서양철학적 방법론인 현상학적 존재론과 언어적 시작적 사유의 한계라고 봐야 겠습니다.
물론 하이데거의 실존적 존재론적 철학이 서양철학사적으로는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 영향도 광범위하고 상당한 것은 부인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존재의 본령으로의 진입에는 전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즉 일상적 의식의 표면적 감각적인 첫번째 차원과 비일상적 감성적 시적 상상적 무의식적 의식의 두번째 차원을 돌파하고 넘어서 의식의 심층적 본질적 초월적 초의식적 궁극적인 차원인 존재의 순수직관적 통찰과 영적감응(/영적인식 )을 통한 존재자체에로의 침투나 초월이나 사건을 이쓸어내지 못합니다. 이것은 이론적 사유적 서양철학적인 차원이 아닌 구도적 방편과 실존적 종교적 진리체험에 토대한 넓고 깊은 존재이해가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사안입니다.
이러한 사안에 대한 결론과 해답은 붓다나 예수나 노자 를 위시한 동서고금의 인류의 참스승들에게서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고 해야 겠습니다. 존재의 핵심을 향해서 은밀하고 부드럽게 침투하고 초월해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렵고 현학적인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요한 침묵과 평정의 신선한 언어나 생생한 진리의 진정성을 담고있는 살아있는 말, 물처럼 바람처럼 걸림없이 흘러가는 존재(/진리)체험에 근거한 존재지향적인 활생과 영성과 부활의 언어, 즉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 요구됩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방법론적인 차원에서는 데카르트와 칸트의 이원론을 넘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 현대서양철학의 반인식론적 해체적 사유의 길을 개척한 선구적인 철학자의 자세를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적확한 철학적 언어구사력은 정말 놀랍고 그 표현들은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철학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존재와 존재자의 명확한 구분을 위시해서 세계_내_존재로서의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인 기초존재론과 우려와 불안이며 현존재의 탈존적 성격과 탈존적 현존재인 존재자의 존재의 규명이며 존재 의미의 시간성과 존재의 탈은폐적 _ 은폐적 이중적 성격과 그 바탕인 무의 작용과 의미 등 참으로 진지하고 의미심장한 실존적 현상들과 그 표현들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며 새로운 사유의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과 죽음과 고통의 실존적 진상을 생생 히 일깨워서 문제를 해체해주고 해결해주며 상처를 치유 해주고 영혼을 구원하고 부활시킬 수 있는 궁극의 차원 초월적 종교적 영적차원으로의 진입을 달성하지 못한 체 철학적 신학적 시적 사유의 영역에 머무르고 맙니다. 어쩔 수 없는 서양철학적 한계라고 보여집니다.
아뭏든 삶의 진정한 문제들은 논리적 이성적 _비이성적 사변적 합리적_ 비합리적 언어철학적 분석이나 이론이나 주장이나 사유나 논쟁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또한 감성적 미학적 예술적 접근의 접목으로 해결 될 사안이 결코 아님을 충분히 인식해야 합니다. 현대의 과학기술과 인본주의적 유물_유심론적 자본주의적 물신론적 감각주의적 사고가 낳고있는 존재망각의 심각한 병폐로서의 현대문명과 인간 실존의 근본문제는 기 존의 서양철학적 이성적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초감성적 사유나, 이것의 반동으로서의 의지적 낭만적 감상적 감성적 예술적 미적 자연주의적 및 실존주의적 반철학적 반형이상학적 현상학적 해석학적 방법이나, 탈근대적 존재론적 해체주의적 철학관이나 언어철학적 논리적 사유도 형태나, 보수적 종교적 신앙행태나 과학적 기술적 방법 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사태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에 기반하면서도 이것을 넘어서 나아가는 실존적 종교철학적 진리체험,언어초월적 진리인식,에고의 죽음과 참자기의 발견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때에만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과 근본적 치유가 가능합니다. 동서고금의 진정한 인류의 스승들의 바른 인도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 이래 지난 2500여년 동안 끊임없이 존재의 인식과 관련된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사유의 바벨 탑을 쌓아오다가 한계에 부닥치며 그 허상적 실체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시각을 선회하여 새로운 현상학적 존재론적 사유를 들고나왔고 철학적 텍스트에 대한 수리논리학적 언어철학적 언어분석의 방법을 모색하여 철학의 근본적인의 혼란과 위기적 상황을 해결하고 치유 하고자 노력하고는 있지만 삶과 유리된 엄밀하고 초전문적이고 알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무래도 제대로된 길을 모색하기 보다는 현기증나는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채로 어둠의 밤길을 더듬고 있는 형국입니다. 철학이 천재적 언어유희에서 벗어나 단순 명괘하고 산뜻 하고 진정 실존적이고 현존적인 진리체험에 바탕을 둔 명실상부한 살아있는 생명의 말로 시급히 거듭나지 못하는 한 그 철학은 결국에는 삶과 무관하고 무의미한 상아탑의 유물,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소외되고 유리된채 버림받은 퇴물 현학적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말의 바벨탑으로 머무르고 맙니다. 철학은 삶을 반영하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진정한 철학으로 다시태어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의 철학은 존재의 진리를 망각한채 전문가의 전유물 이 되어 언어적 환각 상태를 헤어나지 못하고 은폐된 허무주의와 환원주의와 비창조적 해체의 혼란을 거듭하면서 길을 헤매고 있습니다. 오늘의 철학은 존재망각과 언어적 기만의 상태를 벗어나 진리를 되찾고 삶에 진정한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감동과 의식의 변형을 통한 치유와 창조적 생명의 분출과 단절된 인간들간의 벽을 허물어 친교를 가져다줄 수 있는 진정한 신생과 생명의 철학,관계론적 실존의 철학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존재의 본질이란 언어적으로 단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간접적으로 지시,시사,느끼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각을 이룬 동서고금의 모든 참스승들의 올바른 인도와 다양한 방편의 도움을 받아 폭넓고 깊은 이해에 매진함으로써 언어를 초월하여 존재의 진실,즉 존재의 진리에 도달합니다. 궁극적 진리,실존적 진리의 문제는 결코 진리를 둘러싸고 끝없이 벌어지고 있는 철학적 태도로서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사변이나 사유의 문제가 아니며 존재의미의 역사성과 철학적 변천에 관한 해명의 문제나 언어철학적 분석이나 논리적 접근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또한 특정 종교의 신앙에 의거한 간증이 말해주지도 않으며 과학적 이론에 토대한 물리적 기술적 실증적인 증거찾기도 아닙니다. 존재의 진리란 체험자체로서는 오히려 명확하고 확실합니다. 근거없는 단순한 관념이나 언어적 사유,상상적 궤변이 아닙니다.
실존적 종교적 진리체험에서 그 진실이 여여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진리체험,존재체험 그 자체는 비록 다차원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너무도 확실하고 분명하고 생생한 육체적_심리적_영적 현상이요 초현실적 사실입니다. 다만 그 진실을 스스로의 체험으로 명확하게 깨달아 안 다음에 여실한 그 진리체험을 바탕으로 현대문명의 온갖 부조리와 병폐와 가치혼란과 분열과 갈등과 온갖 비인도적인 착취와 억압과 투쟁과 파괴와
살상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스럽고 비참한 여러 현실의 사태들을 근본적이고도 폭넓게 파악하고 진단하여,이 세상 한 가 운데에서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서있는 바로 지금 여기 이자리 이 순간에 우리 모두가 대화와 상호이해와 친교와 협동을 통해 손을 맞잡고 치유해나가면서 자유와 행복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꿋곳이 실천해나가는 것이 오히려 쉽지않고 어려울 따름입니다.
진리의 본래 모습은 교묘한 말이나 현란한 지식이나 거창한 주장이나 이념이 아니며,차별화시키고 구별하고 소외시키는 비범함이나 거룩함이나 고상함이나 근엄함이나 선민의식이 아닌 평범함과 담담함과 자연스 러움 입니다. 진리란 생명있는 것들과 생명의 태어남과 늙고병듦과 죽 음과 고통에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는 맑은 눈물(/연민과 공감)이자 따듯 한 가슴(/염려와 배려)이며 생명있는 모든 것들에대한 사랑과 자비의 실천으로 드러나는 보이지 않는 실체요 영원한 참생명이자 우리의 간절한 소망인 동시에 꾸밈없고 진솔한 삶 그 자체입니다. 진리는 가난하고 고요한 마음에 깃드는 평정과 평화 와 행복과 침묵 입니다.
우리가 살아왔고 살고있고 살아가야할 이 세상이 이처럼 복잡하고 험악하고 비정하고 잔인하며 억압적이고 착취 적이고 폭력적이며 주검과 같은 것은 우리자신의 진정한 본성인 참자기(/존재)에 대한 무지와 망각과 이것이 가져온 거짓자기(/에고)의 온갖 탐욕과 자기집착과 옹졸함과 인색함, 참자기에서 비롯되는 신뢰와 여유로움의 결여가 낳은 의심과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와 경계심 등 자기중심적 위축,강한 자부심이 불러오는 교만함과 자만심과 이것이 가져오는 경쟁심과 투쟁심,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이 낳은 편견과 시기와 질투와 허영과 증오심 그리고 끝없는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온전해야할 마음이 꼬여있고 순전해야할 가슴이 때로 얼룩지고 비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음성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참다운 삶을 위한 존재계의 끊임없는 배려요 염려요 위로이자 계시이며 끝없는 부름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서 조차도 진실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우리의 말과 행동과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이 존재의 소리,진리의 호소를 외면한체 참담한 삶을 살 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겸허한 자세로 이 존재의 소리,진리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이 땅에서의 진리와 그 나라의 실현을 위해 함께 손을 맞잡고 힘차게 나아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