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260417. 냉담이야기
요세비
성당에 같이 다니던 친구가 객지 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잘 하더니 어느 날부터 냉담을 하고 있었다. 그냥 냉담만 하고 있으면 모르겠는데 개신교로 개종을 한 것이었다.
그 이유를 어렵게 들었다. 아내와는 천주교에서 결혼식을 치루었고 나름 열심히 성당을 나가고 활동도 했는데 아내가 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은 적이 있었고, 이웃의 개신교 신자가 적극적 권유가 있어 아내가 개신교로 나가기 시작하더니 그 교회의 신자들이 집중적으로 친절을 베풀고 가까이 해서인지 결국 개신교로 개종하였다.
개신교에서 하는 성경공부도 재미가 있고 다들 확신적으로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체험을 하게 하는 등 조직적이고 깊이가 있는 배움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카톨릭은 아는 사람도 없고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공부도 없었다고 한다
이 말은 교리나 교회 제도 등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 들과의 관계, 공동체적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는 이유이다. 소속감의 부재, 자기들끼리 만 어울리는 구성원들의 태도, 그리고 성비(性比)도 요인이 된다.
카톨릭에서 배운 것이나 프로그램은 좋았다고 한다. 개신교에 가서도 카톨릭에서 배운 영성 프로그램이나 시스템도 잘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카톨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함께 하는 기도도 개신교가 더 많은 호감과 열정을 가지게 한다고 한다.
새 신자들이 성당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이내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대체로는 시들시들하다 아예 종교 자체를 떠나는 경우가 많지만 개신교로 옮기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는 비율보다 극히 적은 비율이 개신교로 개종한다. 개신교에 대해 일시적으로 실망하여 천주교에 들어왔다 다시 개신교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천주교를 떠나거나 왔다 다시 떠나는 분들이 냉담자군(群)의 일부를 이룬다.
이런 유형을 다중 종교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소속은 유지하되, 자신이 좋아하는 종교적 가르침을 차별 없이 두루 섭렵하려는 유형은 지식인들 가운데서 많이 발견된다. 이 유형은 크게 보면 ‘탈 제도적 종교성’ 에 속한다. 제도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 욕구를 자유롭게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탈 제도적 종교성’인 까닭이다.
천주교도 개신교 못지않게 지식인 신자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덕을 많이 보는 것은 아니다. 이들 가운데 일부만이 신자들과 어울려 생활할 뿐 대부분은 소속만 유지하는 데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현실적 여건 탓도, 신자들과 깊이 얽혀 시간을 많이 내게 될까 두려워서 꺼리는 것일 수도 있다. 수준이 안 맞는다고 느낄 수도 있겠고. 지식인의 냉담 유형이 이렇다면 소속감 없이 자신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충실한 경우만도 꽤 관심이 있는 경우라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여러 이유로 많은 이들이 냉담하거나 아예 교회를 떠난다. 이제껏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일정 숫자가 교회를 지켜주는 데 취해 교회는 이 현상에 대해 깊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신자 재 교육, 조직의 정비, 새로운 프로그램의 개발, 성경의 쉬운 접근과 기회, 성직자와의 거리감 타파, 많은 부분의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
첫댓글 종교의 선택이 정답이 없다보니 기회가 있을때 냉담도 개종도 하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