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전에서 일격을 맞는 바람에 한국의 월드컵 행에 일단 제동이 걸렸습니다.
역시 중동 원정은 쉽지 않다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경기였습니다. 한국은 비
록 아시아 최강이라고 해도 역시나 원정 경기는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경기에서 패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감독과 선수들을 향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
만, 경기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면밀하게 살펴 차후의 원정 경기에 대비하는 것
이 순서일 것입니다.
원래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은 수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다만 월드컵에서의 4강이라는 놀라운 성과에 묻혀 수비에 문제를 드러내는 한
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잠시 잊혀졌을 뿐입니다.
월드컵에서 사실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세계적인 팀들을 상
대하느라 다분히 수비적인 포메이션을 취했고, 이것이 성공을 거두면서 수비에
서의 약점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었습니다.
수비에 많은 숫자를 두고 수세적인 축구를 펼쳐 상대를 막아내는건 왠만한 수준
의 팀이라면 다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정상적인 축구 내지는 공세적인
축구를 펼치면서 일정한 숫자의 수비력만 갖고도 효과적인 수비를 펼칠 수 있어
야 진짜 좋은 수비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역공에 두번이나 무너져 실점을 당했다면 이것은 다분히 문제있는 수비
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왜 수비력부터 거론하는가 하면 원래 원정경
기를 제대로 치르려면 안정된 수비가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럽 리그 경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름지기 원정팀은 '선수비 후공격'이 하나
의 공식과도 같습니다. 수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절대 좋은 원정 경기를 치를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장 유상철을 비롯해서 박재홍, 박동혁 등으로 짜여진 한국의 수비
라인에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첫번째 실점 상황에서 유상철이 상대 선수와
볼을 다투면서 몸싸움을 벌이다 넘어진 장면은 너무 아쉽습니다. 그냥 알기 쉽게
바깥으로 걷어내거나 진로를 막는 수비를 펼치는게 좋았을 것입니다.
원래 몸싸움으로 수비를 하는게 한국 선수들의 특징인데, 이것은 생각만큼 그리
효과적인 수비책이 아닙니다. 기술이나 스피드를 통해 상대가 몸싸움을 피해 빠
져나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상대의 진입 루트를 막는 지능적인 수비력이 효과를 거둘 때가 더 많습니
다. 결국 상대의 진로를 봉쇄한 상태에서 몸싸움을 펼쳐야 그러한 몸싸움식 수비
가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 수비는 결국 이런데서 헛점을 드러내는 바람에 두 골을 헌납하며 패
배를 당해야 했습니다. 첫 실점은 제대로 클리어링이 안되서 내준 것이고, 두번째
실점은 상대의 공격진로만 막으면 될 것을 무리하게 몸싸움으로 밀어붙이다 그만
어이없는 패널로 이어지며 허용한 것입니다.
상대에게 선취골을 내주자 이후 경기는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우선 사우디가 한
국의 공격력을 의식해서 전원 수비의 형태로 틀을 잡자, 한국은 이렇다할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원래 한국의 공격은 좀 단순한 구석이 있습니다. 측면을 돌파하여 중앙으로 띄워
주면 이것을 받아 포워드가 해결하거나 아니면 달려들던 선수가 해결한다는 방식
인데, 오늘의 사우디는 우선 측면에서 올라오는 한국의 크로싱을 봉쇄하는데 주
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진짜 철저할 정도로.
주 공격루트가 봉쇄되자 한국의 공격은 단박에 그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이 아시아권 팀들의 밀집수비에도 종종 힘들어하는 것은 결국 공격루트가 너
무 단순한 탓도 있습니다. 오늘의 경기처럼 측면이 철저히 봉쇄되면 사실 한국의
공격은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할 때가 많습니다.
세밀하게 중앙을 헤집기에는 정교함이 부족한만큼 그동안 한국의 조직 축구란 사
실 측면 돌파에 촛점이 맞춰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싱이
야말로 한국 축구의 핵심적인 공격루트입니다.
그런데 오늘 경기에서는 돌파 자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크로싱이 줄
어들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 돌파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올리는 크
로싱은 상대에게 읽혀 차단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동국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가 중앙에서 뭔가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제대로 투입되는 볼도 없었을
뿐더러 이동국 자신도 문전을 크게 휘젖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예전부터 해오던 대로 너무 한가지 방식만 고집하다 상대의 밀착수비에 두
손을 들어버린 꼴입니다. 측면 돌파가 장기이더라도, 측면을 돌파하는척 하다가
중앙을 파고들고, 중앙을 파는척하다 측면을 노리는 등의 변화를 주어야만 상대
를 흔들 수 있는데, 이것이 안되다 보니 결국 답답한 경기가 될 수 밖에 없었습
니다.
이런 점에서 이천수에게 아쉬움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천수는 일대일 돌
파가 전혀 안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대일 돌파로라도 변화를 구해야
하는데 주변 선수들과 호흡이 맞지 않아 그런지 그것도 여의치 않은 모습이었습
니다.
돌파가 안되자 이천수는 본래의 자리를 떠나 중앙으로 옮겨갔지만, 중앙이 봉쇄
된 상태에서 그가 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왼쪽으로까지 옮겨갔지만
오른쪽에서 실패했던 돌파가 왼쪽이라고 될리 만무했습니다.
그마나 설기현이 이리저리 볼을 몰고 다니며 뭔가 플레이를 만들어보려 애썼지
만 주변의 선수들과 연계된 플레이로 이어지지 못해 효과적인 공격은 이루어지
지 못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나타났지만 역시 원정 경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중동세가 생
각 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도 입증되었습니다. 한국은 유독 홈경기에
강한 특성이 있지만 상대들도 홈에서는 상당한 강점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정 경기는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가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해야 함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외에 나머지 팀들은 모두 허
접하다는 인식을 갖고 원정 경기에 임했다가는 진짜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점을
겸허하게 되새기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면 보다 나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
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평가전이나 친선경기의 결과에 너무 주목하는 듯한 태도도 버려야 할 것
입니다. 사우디가 홈에서 핀란드에게 대패한 직후, 사우디를 수준 이하의 팀으
로 치부하는 듯한 태도가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
만 알 자베르나 알 카타니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대에게도 한 칼을 지닌
수준급 선수가 도사리고 있으므로 예선이 끝나는 날까지 한시도 상대에 대한 경
계를 늦춰서는 안될 것입니다.
첫댓글아스트로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알 자베르는 누가 맡는다는 식의 얘기만 있었을 뿐 알 카타니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었는데(결장이 예상된다며) 결국 상대의 연막 작전에 보기 좋게 걸려든 꼴이죠. 한국만 탈아시아이고 나머지 팀들은 아시아 수준이라고 우습게 봤다간 큰 코 다칠듯..
첫댓글 아스트로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알 자베르는 누가 맡는다는 식의 얘기만 있었을 뿐 알 카타니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었는데(결장이 예상된다며) 결국 상대의 연막 작전에 보기 좋게 걸려든 꼴이죠. 한국만 탈아시아이고 나머지 팀들은 아시아 수준이라고 우습게 봤다간 큰 코 다칠듯..